점심식사후 성산일출봉을 찾아 오르고 다시 올레길2코스를 이어간다.
올레길 옆으로 성산일출봉이 있으니 꼭 정기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올레길 1,2코스를 걷는동안 성산일출봉이 북극성인 양
한시도 눈에서 멀어지지 않은 탓인지 더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고성오일시장터인 남동삼거리에서 마을 포장길을 따라 걸어서 홍마트네거리로 접어 들것이다.
예전에 구제역때문에 올레길2코스가 아마도 여기서부터 시작을 했지싶다.올레길때문에 유명해진 `홍마트`다.
우측의 갈대습지는 성산국민임대주택건설지구다. 세월지나면 자연속의 올레길도 많이 변할거다.
갈대습지의 갈대가 바람에 눅은 모습이 마치 가을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같다.
억새고 투박한 삶이 깔린 올레길과 오랜세월을 함께한 그늘이 큰 팽나무도 반갑고...
성산읍 고성리인 외곽지 주택가라서 더 한적하다.
올레꾼 무인쉼터인 비닐하우스형 가건물이다.
커피도 끓여 마실수도 있고 수확한 감귤을 1봉지에 1천원을 두고 가져가는 무인판매를 한다.올레꾼의 양심을 팔면 안된다.
담장을 빼곡히 뒤덮은 동백나무 숲이 참 인상적인 동네길이 보는 즐거움으로 심심하지가 않다.
팽나무 그늘이 시원한 쉼터다.하지만 갈길이 멀어서... 패슈!~
도로를 건너서 올챙이올레길로 접어든다.
인도에 이름모를 고운 꽃들이 기분을 즐겁게 하고...
무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제주폭염이라...바람을 시원하게 맞고싶다.대수산봉이 어여오라 손짓하는듯 하다.
대수산봉으로 향하는 올챙이올레길 입구에 정자쉼터가 있으나 패슈!~
무우를 심은건가? ...제주무우는 색다르다던데...
오름의 숲이 침엽수림으로 빼곡하게 자리하여 울창하다.마음이 성급히 끌린다.
대수산봉 숲길로 접어드니 원시림처럼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이 햇빛도 가리운다.
오름길을 쉬지않고 올라 이마에 땀을 훔치고 하늘을 보며 시원한 바람 한자락 가슴에 안으며 보는게 마치 명화의 한장면 같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명 `하늘의자`다.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양심의자라 주춤해 진다?...ㅋㅋㅋ
우리님들 앉을때 궁예의 관심법으로 보는게 제일이겠다.어험!!!~
성산일출봉과 주변의 아름다움이 옅은 채색의 수채화로 펼쳐진다.
바람을 맞는 등대언덕이 아름다운 섭지코지다.많은 TV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동통신 중계탑이 왠지 멋스럽다.
남서쪽으로 많은 오름들이 옹기종기 솟아 있다.
시흥리의 두산봉과 알오름이 반갑고 우측으로 종달리의 지미봉이다.
대수산봉(큰물뫼)에서 바라보는 종달리의 지미봉과 오조리 식산봉을 두고 초록의 펼쳐진 들밭이 평화롭다.
`하늘의자`에는 누구든지 하늘을 우러러 한번 부끄럼이 없어야만 앉을수 있다?...일명 `양심의자`라 해야겠지...
발길은 오늘을 걷지만 바라보는 눈은 내일을 꿈꾸게 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람을 안고픈 마음에 섭지코지로 막 달려가고 싶다.
올레숲길에도 친절하게 화장실이 아담하게 자리한다.
고성리 신양공동묘지다.후손들이 돌보지 않아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토실하게 귀여운 감자들이 내버려져 있다.힘들게 농사지은건데 아깝다.
이게 무슨 농사라더라.그저 답답하네.그려!~ㅎㅎㅎ
이쁘긴한데 그대 이름은 무엇인고?...
한낮의 폭염속에 걷는 올레길은 지치고 힘들어도 주변 경관들이 아름답고 삶을 느껴가는 길이라 충분히 걸어 볼 가치가 있다.
농심과 땅심이 어우러져 대풍이길 바라고...
요놈은 또 무엇인고?...털복숭이 푸들꽃?수세미꽃?...ㅎ~
제법 땡볕길을 걸어 우리님들도 피로와 갈증이 심해 보인다.그래도 눈에는 신대륙을 발견한 양 호기심이 가득히 행복해 보인다.
갑자기 눈이 시원해지는 초록의 향연이다.걷는 길에 기분도 전환이 되고...
너무나 한적한 인적없는 혼인지를 조용히 들어간다.오아시스를 만난 기분들이다.대문에 작대기가 하나도 없네.
혼인지(婚姻池)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로 1971년8월26일 지정되었고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1693번지에 자리한다.
혼인지는 탐라(지금의 제주)의 시조인 고·양·부 삼신인(三神人)이 지금의 온평리 바닷가에 떠밀려 온 나무상자 속에서 나온
벽랑국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을 올렸다는 조그마한 연못이다. 삼신인은 수렵생활을 하고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다가, 나무상자 속에서 나온 송아지와 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를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으며, 이때부터 농경생활이 시작
되었다고 한다. 나무상자가 발견된 해안을 황루알이라고 부르는데, 황루알에는 세 공주가 바위에 디딘 발자국이 남아있다고 한다.
야외 전통혼례를 할 수 있도록 잘 정비되어 있다.앞으로 비싼 예식장을 찾지말고 전통혼례를 많이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
혼인지 연못에는 연잎들이 빼곡하다.
사막을 넘어온 기분인 우리님들은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으로 여유로이 즐기며 한참을 쉬어간다.
누구든지 이곳에 오게되면 사색과 치유가 바로 이것이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고,양,부 삼선인과 벽랑국 삼공주가 합방을 하였다 하여 `신방굴`이라 일컬으며
굴입구로 들어가면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어 가가 신혼방을 꾸몄다고 전해 내려온다.
혼인지에는 아직 연꽃이 피질 않았다.7월이면 만개를 할 판에 폭염으로 더위를 피하는건가?...아쉽네.
사막을 지나 오아시스를 만났으니 물도 보충하고 발도 시원스레 씻어주고 옅은,진한 화장도 하고서 나무그늘아래 푹 쉬다간다.
이제 우리님들은 하나되어 서로가 먹거리도 나누고 정도 건네 받는다.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머물고...
어이,갑장마산댁! 뭐 하자는 거여?...ㅎㅎㅎ
이제 우리는 가족이 되었어요.언니,오라버니,형님으로...ㅎㅎㅎ
힘내라꼬?...이쁜넘!고운넘!ㅎㅎㅎ
마치 겨우살이같은 분위기인데, 나무가 `풍요속빈곤`이랄까?...멋스럽지 못한게 특이하다.
나무와 꽃들의 아름다운 조화다.기분이 상쾌해진다.
내륙의 올레길을 한나절 걷다가 다시 바다가 있는 해안올레길로 가는 온평리 어촌마을을 지나고...
이쁜넘들 이름을 몰라서 미안하기도 하고...
이집 대문은 참 이색적이고 재미가 있다.쥔장이 어떤 분이실꼬?...ㅋㅎ~
제주화산석 꼼보돌담을 감싼 담쟁이들이 너무나 아름답다.한컷!~
틈사이로 예쁜 모습들을 보여주는 귀엽고 앙증스러운 놈들...
어이,갑장마산댁! 얼굴 안들고 뭐 하는거여?...ㅎㅎㅎ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참말인가?...ㅎㅎㅎ
온평이 해안도로 건너편에는 환해장성이 마지막 길임을 알리며 환영한다.
온평이 해안도로 건너편에는 환해장성이 마지막 길임을 알리며 환영한다.제주도 해안을 따라 쌓아 놓은 성벽이다.
1998년 1월 7일에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다.적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쌓았다. 19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고장성`에 의하면 "연해환축하여 둘레가 300여리라.고려 원종때 삼별초가
진도에서 반하니 왕은 시랑, 고여림 등을 탐라에 파견하여 영병 1,000명으로 이를 대비하여 장성을 구축하였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탐라기년`에는 "6월에 영국 선박이 우도에 정박하여 섬에 작은 흰 기를 세우고섬둘레 연안의 수심을 1개월동안
측량하면서 돌을 모아 회를 칠하여 방위를 표시 하였다.이때 권직 목사는 크게 놀라 마병과 총수를 총동원하여
만일의 변을 대비하였고,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하여 환해장성을 축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느 해안마을같이 도로가에 해초들을 자연스레 햇볕에 말리는게 정겹다.
하루종일 걷고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가슴이 터질듯 하다.
반가운 온평포구는 그저 한적하기만 하다.
해녀집에서 시원한 소맥 한잔을 해야지.우리님들의 올레길 완주를 자축하기 위해서...
그래도 마지막 인증 샷을 해야지...
그래도 마지막 인증 샷을 해야지...
온평리 어촌의 촌로들도 `수고했다`며 반기신다.
온평포구를 꼭 기억하라고 주변에 공원처럼 여러 조형물들로 많이 꾸며 두었다.
바다야!~등대야!~ 바람에 실려오는 너네들의 애환과 사랑을 느끼려고 내일 다시 오마!~
제주올레 3코스 시작점, 온평포구에는 약 5미터 높이로 첨성대 모양의 도대불이 서있다. 도대(道臺)불이란 소규모 등대로서
'길을 밝히는 불’이란 뜻이다. 도대불은 해 질 무렵 뱃일 나가는 보재기(어부)들이 불을 켰고 아침에 배가 들어오면 껐다고 한다. 1970년대 어촌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며 이 도대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상어기름, 고기기름, 송진 등
다양한 연료를 사용하며 그 형태와 점등기구도 다양했다고 한다. 도대불이 그 마을 어부들이 축조하여 점등 담당자를 두고 운
영한 소규모 민간 등대를 말한다면, 등대(燈臺)는 국가(또는 정부)가 축조 운영하는 대규모 콘크리트 등대를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1903년 인천 팔미도에 설치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도대불이란 등대는 그 훨씬 이전부터
제주도에서 존재했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도대불의 시설이나 터가 남아 있는 곳은 현재까지 확인된 곳이 17군데라고 한다.
도대불이란 공공재가 가장 최근까지도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축조 운영되었다는 사실은 정부개입을 전가의 보도처럼 생각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도대불은 사용료(도대불의 축조 운영에 제공하는 노력)를 지급하지 않은 어부들이 불을 보지 못하도록 배제하지 않고, 또 많은 어부들이 동시에 똑같은 불을 보지 못하도록 경합적이지도 않다. 경제학에서 이러한 배제불가능성(non-excludability)과 비경합성(non-rivalry)을 갖는 재화를 공공재(public good)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공공재에
대한 정부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제주도의 도대불은 정부개입 없이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산 제공되었다.
내일은 저 높다란 건물에서 다시 내륙 올레길로 출발 해야 할 것이다.
전복보다 소라가 더 비싸다네.싱싱한 안주를 보니, 목마름은 금새 술잔에 스폰지를 담궈둔 것처럼 빈잔이다.
우리님들의 올레길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느라 너무나 진지하다.열정이 대단한 우리님들,건배!~
D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