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
16.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들
숙명의 뼈대 위에 운명의 살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명은 카르마의 외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르마의 중심을 차지하는 숙명과 달리 이번 생에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숙명은 한 번의 생으로 바꾸기 어렵지만, 운명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숙명은 신체를 구성하는 뼈와 흡사하고, 운명은 그 위에 붙어 있는 살이나 근육과도 같습니다. 병원에서 얼굴 모습을 바꾸기는 쉬워도 골격을 고치는 일은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황소의 예를 들어 개념을 조금 더 설명해볼까요. 어떤 소는 풀이 적고 자갈이 많은 열악한 지역에서, 또 다른 소는 풀이 무성하게 자란 강변에서 태어난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모든 소에게는 목줄이 매어져 있다고 가정하지요. 소가 타고난 지역적 환경과 목줄의 길이는 소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숙명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목줄이 닿는 범위의 풀을 얼마나 뜯어 먹을지는 소의 자유의지에 달린 운명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자유의지의 범위마저 궁극적으로는 전생의 습에 영향을 받습니다만, 주어진 틀 속에서 얼마나 많은 풀을 먹는지는 소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카르마는 큰 틀에서 환경을 결정짓지만, 우리는 주어진 숙명 속에서 노력과 의지로 삶을 바꿀 가능성도 갖게 됩니다. 이 틀에 입각해 저는 전생 리딩 때 내담자가 만든 업의 바다에 뛰어들어 현생에 영향을 미치는 카르마의 구조, 즉 외피와 중심의 크기나 양자의 상호 관계를 파악합니다. 특히 외피인 운명에 초점을 맞추어 면밀히 살핍니다. 숙명보다 비교적 가벼운 업의 기운으로 형성되어 있는 운명은 본인의 노력으로 정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적 배경이나 성별 등은 카르마가 만들어낸 숙명이지만, 회사나 주거지를 옮길지 말지 등은 우리의 의지가 관철되는 운명적인 차원에 속합니다.
한편 숙명과 운명 사이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이혼 문제입니다. 결혼은 당사자 간의 합의와 가족들의 인정으로 무난하게 이루어져서, 우리가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대부분 두 사람 사이의 강력한 카르마적 인연법에 의해 성사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의 자유의지가 크게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특히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큰 영향을 주고받으며, 과거 생의 카르마적 인연을 해소하고, 그런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 각자의 영적 완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에서 숙명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연도 필연적으로 숙명적 카르마가 다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이 다하게 되면 영적 채무를 기반으로 노예계약처럼 강력했던 숙명적 인연 고리가 느슨해지고, 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카르마가 완전하게 해소되기 전에는 배우자와 많은 어려움을 겪어도 관계를 청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카르마적 제약이 끝나는 시점이 되어 두 사람 사이의 숙명적 카르마가 해소되면 관계 청산이 가능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경우에 이혼을 원하는 분들께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제! 종이 울려서 링에서 내려오셔야 합니다. 서로 다투고 싸움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서로 충분히 싸웠고 서로 이겼습니다. 이제는 상처받은 부위를 치료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서로를 위로하면서 잘 싸웠다고 상대방을 칭찬하십시오.”
물론 이런 시기가 되었어도 함께 살아왔던 관계에 대한 미련이나 자식 문제 등 여러 이유 때문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혼은 자유의지로 선택 가능한 일이 됩니다. 리딩에 따르면 서로가 가진 숙명적 업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운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카르마적 인연법이 해소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이혼은 또 다른 업을 생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남의 불행 위에 행복의 집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불행의 씨앗은 자라서 언젠가는 우리의 행복한 집을 반드시 파괴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숙명과 운명의 차이는 카르마의 제약이나 간섭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작용하느냐와 자유의지가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느냐로 판가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