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상대만 때리는
SNL코리아의 ‘속빈 풍자’
© 제공: 한겨레
최근 <에스엔엘(SNL) 코리아>의 풍자는
힘있는 정치인 비판보다 만만한 이들을 조롱하는 일이 거듭되고 있다.
사진은 ‘콜드 오프닝’ 코너에서 대선 양강 후보 부부를 풍자하는 장면.
에스엔엘 코리아 유튜브 갈무리
쿠팡플레이 의 시즌1 말미, ‘인턴기자 주기자’ 캐릭터로 인기를 모은 배우 주현영은 그 캐릭터 그대로 당시 대권을 향해 달리던 대선 주자들을 차례로 만났다. 이재명 후보에게 “영화 와 둘 중 한 편을 봐야 한다면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묻고, 윤석열 후보에게 “이재명이 내 캠프에서 일하는 것과 내가 이재명 캠프에서 일하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이란 질문을 던지며 놀던 주현영은, 모든 후보들에게 이런 공통 질문을 건넸다. “만약 후보님이 대통령이 되신다면 가 자유롭게 정치 풍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건가요?” 표를 얻으려 출연한 후보가 이런 청을 거절할 리는 없었다. 는 모두에게 흔쾌히 “정치 풍자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돕겠다”는 말을 듣는 데 성공했고, 보는 이들 또한 쪽이 얼마나 센 정치 풍자를 준비하길래 저렇게 각오를 다지는지 궁금해했다.
후보의 혐오조장은 외면하는 ‘풍자’
시즌2 시작과 함께 는 ‘콜드 오프닝’ 코너를 통해 옆집 사는 이웃 윤석열(김민교)과 김건희(주현영) 부부, 이재명(권혁수)과 김혜경(정이랑) 부부가 신경전을 벌이는 콩트를 선보였다. ‘사적인 통화’를 나누는 김건희에게 “무슨 통화를 그렇게 길게 하시냐. 그러다가 7시간 하시겠다”라고 말하는 이재명 후보나, 이재명 후보에게 “아들분이 피시방 가서 뭐 걸고 하는 걸 좋아하시나 보다”라고 말하는 윤석열 후보의 모습이 그려진 ‘콜드 오프닝’을 보며 사람들은 “ 가 이를 단단히 갈았다”며 환호했다.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저걸 정치 풍자라고 할 수 있나? 대선 주자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표를 얻겠다는 목적으로 대놓고 혐오를 조장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뉴스 토크쇼 진행자부터 전국의 택시기사들까지 모두 다 마음 놓고 이야기하는 가십들만 한 차례 더 놀려먹고는 어떻게 대단한 정치 풍자를 한 것처럼 굴 수 있지?
물론 ‘콜드 오프닝’ 코너가 훑고 지나간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아들의 불법 도박과 성매매 의혹, 윤석열 후보 아내 김건희의 경력 조작과 감성에 호소하는 기자회견 등이 마냥 사소한 사안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는 윤석열 캠프가 끊임없이 ‘여성가족부 해체’를 말하고 양성평등 채용목표제 폐지를 말하며 젊은 남성들의 여성혐오에 편승하는 것에 대해, 이재명 캠프가 후보의 , 채널 출연을 ‘페미 채널’이라는 일부 남성 네티즌들의 지적만 듣고 보류하기로 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외국인 건강보험 납부액이 급여 혜택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사실을 쏙 빼놓은 채 “중국인들이 줄줄이 가족들을 달고 들어와 건강보험 혜택을 본다”는 식의 발언으로 외국인혐오를 조장하는 윤석열 캠프의 혐오 조장 전략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의 발언에 “다 했죠?”라고만 대꾸하고 자리를 피한 이재명 후보의 회피도 다루지 않는다. 거대 양당 후보의 정책에서 노동정책이 깡그리 실종된 것도 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치 풍자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의 관심사는 ‘정치인’을 풍자하는 것에 쏠려 있다. 정작 “그들이 정책을 통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어 하는가”라는 ‘정치’의 본질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이유를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를 만들어가는 작가와 크루들부터 힘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는 유튜브에서 논란이 될 만한 이슈를 따라다니며 더 많은 논란을 조장하는 일명 ‘사이버 레커’ 채널들의 혐오 조장이 판을 치는데도 그들을 풍자하기보다는 외모로 구독자를 모으는 여성 비제이(BJ)들, 일명 ‘여캠’들을 패러디하고 놀려먹는 쪽을 택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편집자에게 폭언과 흉기를 동반한 폭력을 저질러 검찰에 기소되고, 과거 방송 출연 당시에도 작가들에게 폭언을 쏟아낸 끝에 방송에서 하차한 전력까지 드러난 남성 방송인이 있음에도, 는 그보다는 짝퉁 명품을 산 것으로 비판을 받는 여성 방송인을 조롱하는 쪽을 택했다. 언제나 더 다루기 만만한 쪽, 놀려도 크게 나무랄 만한 사람이 없는 쪽을 놀려먹어 버릇해온 이들이, 정치를 풍자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이 없는 건 일견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판적 시청자 ‘프로불편러’ 조롱도 는
‘자영업자로 살아남기’라는 콩트를 통해 질병관리청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을 비판했다. 그러나 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입은 영업손실을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 기획재정부의 재정 정책이나, 언제는 백신에 대한 공포를 조장했다가 나중엔 백신을 제대로 확보 못 했다고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말을 바꿔온 언론, 백신에 관련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안티백서들은 건드리지 못했다. 힘센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니, 끝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안을 조정하는 질병관리청만 조롱하고 끝날 수밖에 없었다. 과거측은 마치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된 코미디를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듯, 더 나은 방송을 만들어달라고 비판하는 시청자들을 ‘프로불편러’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콩트까지 만들어 보인 바 있다. 비판도 해봤어야 제대로 하는 법, 비판하는 사람들을 ‘프로불편러’라고 일축했던 이들이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질병관리청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신나게 놀려댔던 는, 최근 고정크루 정이랑, 스태프, 호스트로 출연했던 배우 정일우 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녹화 중단과 결방을 결정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확진자들의 빠른 쾌유와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아울러 동료들의 투병으로 인해 생긴 이 예기치 못한 휴지기가, 의 작가진에게 ‘만만한 상대 놀리기’가 아닌 ‘제대로 된 풍자’란 무엇인지 성찰해볼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게 한주 성찰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이승한 _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