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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달
이 홍사
노트북 우측 하단에 표시된 디지털시계는 7:44에서 껌뻑 거리고 있다.
그건 한국시간이고 휴대폰을 눌러보니 5:14를 나타내고 있다. 미얀마는 두 시간 반의 시차가 있는 나라이기에 두 개의 시계를 본다. 어젯밤 아홉시 반 이후에는 잠시 혼돈의 시간이었다. 한국은 내년이고 여긴 아직 올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 혼돈스러웠던 건 로컬타임으로 밤 열시 쯤 되어 아내에게 문자를 받고부터다. 올 한해도 열심히 수고하실 당신을 믿는다는 내용인데 겨우 두 시간 정도 남은 올해를 말하는 건 아니지 싶은데 자꾸 아직 올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여긴 아직도 올해라는 답장을 보내고 공중에 뜬 시간을 빨리 소진하고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 시간을 보면 항상 못마땅하다. 시간을 30분 정도 늦추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한국시간은 일제의 잔재다. 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30분 늦추어야 한다. 자축인묘....... 십이 지간으로 일컬었던 시간이 숫자로 변해 일제 강점기에 시계와 함께 들어오며 그 시간을 도쿄시간과 동일하게 맞추어 놓았다. 한국시간으로 정오가 되어 해를 가만히 보면 하늘 중간에 있지 않다. 열두 시 반쯤이면 정 중간에 있는 듯하다. 찾아보니 동지든 하지든 남중은 12시 31분에서 34분사이다. 도쿄와 경도 차이가 얼마나 있는데 도쿄시간을 그대로 쓰는지 모르겠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시간을 우리 고유의 시간으로 맞추는 게 급선무이지만 국회의원들이 무식해서 아무도 거론하는 자가 없다. 옛날에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난데없이 ‘썸머타임’이라는 걸 실시했다. 시간을 한 시간 당겨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30분 늦추는 거야 일도 아니지 싶은데 도쿄 시간을 여태까지 그대로 쓰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무식해서 그런 거론을 하는 자가 없다. 그건 무식한 국회의원들이 똑똑해지는 약을 먹고 깨우치면 할 일이고, 시간을 다시 본다. 노트북에는 7:44 도쿄 시간이자 한국 시간이 나타나있다. 어제 같은 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이 1월 1일이니 새해 벽두에 삼십 분 로스타임을 주고 재야의 종을 치면 간단할 터인데 거론하는 자가 없으니 답답한 일이다.
꼭 보름 전 밤 비행기로 양곤에 내렸다. 보름이 지났건만 아니, 해가 바뀌었건만 지금까지도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네 시에 일어났다. 네 시에 일어나도 한국시간으로 여섯 시 반이라는 게 머릿속에 강력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입력되어 ‘일어날 시간’ 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며칠 더 지나면 괜찮으려나?
인터넷으로 뉴스를 훑으니 한국엔 올겨울 최고의 한파가 세모에 전국을 꽁꽁 얼려놓았다지만 여긴 어지간히 덥다. 방금 새벽샤워를 하고 나왔지만 이마에 땀이 찐득하게 배어나오고 있다. 선풍기를 돌려놓고 탁상용 거울을 보며 촉촉한 머리에 헤어 젤을 발라 빗어 넘긴다,
이 층은 아직 오밤중이다.
가정부 둘이서 쓰는 방은 나무로 된 이 층 다락방이다. 한 명은 취사담당이고 한 처녀는 청소담당이다. 여섯 시가 넘어야 그녀들이 일어난다. 그녀들이 일어나면 목조로 된 천정이 발소리에 쿵쾅거리기 때문에 글을 쓰다가도 단박에 알 수가 있다.
한국에서부터 쓰던 글은 어젯밤 그러니까 작년에 마무리 지어 인터넷 내 카페에 올려놓았다. 이제 그 글을 퇴고하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바로 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 마침표를 찍은 글, 그 이전에 쓴 글을 퇴고 작업을 한다. 그게 내 작업 순서다. 글을 쓰고 바로 퇴고작업을 하면 내용을 다 외고 있기에 객관적인 시각이 없다. 한 두어 달 묵혀 두며 다른 글을 쓰다가 그 내용을 잊어버릴 즈음 퇴고를 하면 남의 글을 보는 듯 객관적인 시각이 생기며 어디서 말이 되지 않는지 어디에 오타가 있는지 단박에 찾아낸다. 그 기간을 글의 숙성기간이라고 명명한다. 그건 나만의 글쓰기 방식이고 오늘은 뭐하지? 자신에게 되묻고 계획을 짚어보지만 뚜렷한 계획이 없다.
신년이 되어도 굉장히 게으른 미얀마 사람들은 쉬지 않는다. 않는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자의로 일을 하는 게 아니기에 쉬지 못한다는 말이 걸맞다. 휴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1월 1일 달력에 빨간 날이 아니라 일을 하고 1월 4일이 독립기념이이라 그날 쉬는 걸로 되어있다. 그러나 내가 꾸려가는 업체는 외투 법인이기에 로컬 회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제 퇴근하는 두 명의 매니저들에게 얼마간의 보너스를 주고 서툰 영어로 내일은 홀리데이라고 했더니 웬 일이냐는 듯이 희색이 만연해서 새해 덕담을 영어로 던지며 꽁지가 빠지게 사라졌다.
오늘은 뭐 하지? 라는 질문을 뇌리에 깔고 오늘 분량을 글을 쓰는 동안 가정부들이 일어나고 일곱 시 가까이 되어서 비즈니스 파트너 회사 사장인 망망쏘와 쬬우에게 Happy New Year 라는 새해 인사를 똑 같이 동시 문자로 날렸다. 답은 오 분 간격으로 날아 왔다. 둘 다 똑 같이 해피 뉴 이어를 서두에 깔고 뭐라고 영어로 휘갈겨 놓았는데 아마도 올해는 더 건강하고 사업번창을 기원한다는 내용으로 풀이를 했다. 휴대폰 영문자판을 더듬거리며 Thank You 를 동시에 날리고 나니 총괄 매니저인 이 부장이 제 방에서 새 집을 지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왔다. 상투적인 새해 덕담을 주고받고는 바로 씻으러 들어갔다.
이 부장은 어젯밤 내 눈치를 보다가 아홉 시가 넘어서 한국 친구와 술 약속을 하고 나갔다. 옆에서 들으니 새로 타운이 형성된 빌리지 입구에 있는 꼬지 집에서 만나자고 서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통화 내용을 들으며 같이 나가서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끼일 자리가 아님을 간파하고 체념했다.
미얀마 꼬지 집은 우리나라 포장마치와 비슷한 노점이지만 현지인들이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빼곡히 둘러앉아 대나무 막대에 꽂힌 돼지 내장을 빼어 먹고 자기가 먹은 대나무 꼬지를 헤아려 계산한다. 겉보기는 허술하지만 맛은 일품이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통향료가 첨가된 국물에 돼지 내장을 삶아서 맛과 향이 그만이며 거기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레 현지인들과 대화가 되고 친구가 된다. 슈퍼에서 술을 사가도 무방하다. 맛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은 실컷 먹고 일어나 계산을 하면 우리나라 슈퍼에 파는 라면 한 봉지 값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임시 사무실로 꾸며놓은 숙소의 거실 옆자리, 김 사장 자리는 아직 빈자리다. 한국의 부가세 신고 때문에 일주일 전에 들어갔다. 소규모로 무역을 하는 김 사장은 한국에도 사업체를 가지고 양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부장은 김 사장의 소개로 열흘 전에 항공권을 끊어주고 급하게 불러들였다. 부도난 해운회사의 지점장으로 미얀마에서 삼 년간 체류한 경험이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 그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며 눈치를 본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빈둥거리는 상태라 메일 두어 번 주고받고는 김 사장 뜻을 알고 감지덕지하며 바로 날아왔다.
미얀마에 해외사업을 시작하며 비즈니스 파트너로 결과를 보아서 얼마간의 지분을 주기로 한 지사장은, 그가 수기로 작성한 엉터리장부를 보고 내 다혈질이 폭발하여 그날로 전격해임을 표명하고 씩씩거리다 임차하여 사무실 겸 숙소로 쓰던 집을 넘겨주고 장부만 들고 나왔다.
막막한 상태에서 맨 먼저 김 사장을 전화로 불러냈다.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김 사장의 숙소에 임시둥지를 틀었다. 다음 날부터 이틀에 걸쳐 김 사장과 둘이서 돌아가는 현장을 찬찬히 파악하니 가슴 쓰리지만 영수증도 없는 엄청난 수업료를 냈다. 내가 시작한 사업은 구체적으로 중저가의 연립주택을 지어서 현지 중산층 이하 서민들에게 공급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땅은 하청을 준 로칼 건축회사 차명으로 직접 사서 시작한 것도 있고 지주와 공동개발로 계약한 곳도 있다. 제일 먼저 올라가는 건물의 한 층을 차지하여 사무실 겸 숙소로 쓸 생각이다.
내 의도를 파악한 김 사장의 배려로 우리 건물이 지어질 동안 더부살이로 호의를 입고 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제 일 층 콘크리트 작업을 겨우 마친 건물이 언제 육층으로 완공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염치없지만 사무실을 다시 임차할 처지가 아니라 김 사장이 불러들인 이 부장을 중간에 놓고 눈칫밥을 먹고 있는 셈이다. 김 사장이 있었다면 어제 같은 날 당구나 한 게임 치고 술자리로 이어졌을 터인데, 쩝!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다. 타국의 새해 아침이라 그런지 그의 부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여겨진다.
젤을 발라 마르며 굳은 앞머리를 살짝 만져본다. 헤어 젤을 사용하고부터 심심하면 만져서 확인하는 게 나도 모르는 버릇이 되었다. 앞머리를 만지다가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훑었다. 까칠한 게 내 머리가 아닌 듯하다. 이게 언제 자라려나? 손바닥으로 다시 한 번 훑어보지만 뒤통수는 여전히 까칠하다.
며칠 전 저녁 무렵에 짬을 내어 이발을 했다. 숙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처음 가는 타운 빌리지 입구의 로컬 이발소라 이발 실력이 미심쩍었지만 단골로 가던 시내 이발소까지는 너무 멀어 그냥 그곳에서 이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로컬이발소는 우리나라 60년대 이발소라고 생각하면 그 시설이 상상이 된다. 의자에 앉으며 젊은 이발사에게 다 자라면 이 형태가 되도록 깎아달라고 손을 동원하여 의사를 전달했다. 분명히 알았다고 했는데 깎고 보니 머리가 영 아니었다. 옆머리를 너무 잘라버린 것이다. 이발요금은 우리나라 보통 이발소 요금의 십분의 일이 못 미치는 금액이다. 못마땅하지만 숙소로 와서 머리를 감았다. 헤어 젤을 바르며 거울을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에 머리와 옆머리는 너무 자르고 귀에 맞닿은 아래 머리는 평소보다 길게 남겨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없는 짬을 만들어 머리를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러 갔다. 아직 미소년 티를 벗지 못한 이발사는 어제저녁에 머리를 깎고 간 이방인이 또 나타났으니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여기를 조금만 더 깎아달라고 하고 내 말을 알아들었냐고 현지어로 띠바비? 하고 물었다. 녀석은 분명히 띠래! 하며 알았다고 했다. 이발의자에 앉자 전동기로 밑머리부터 어? 어! 하는 사이에 옆머리까지 바로 밀어 올렸다. 거울을 보고 있느니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조금만 깎아달라는 말을 조금만 남기고 깎아달라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눈을 떠 보니 완전히 해병대 훈련병 머리가 되어있었다. 녀석은 파우더가 묻은 스펀지로 목덜미를 털어주며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그래! 더럽게 마음에 든다. 이 새끼야.
알아들 수 없는 한국말을 던져놓고 이발소를 나왔다.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녀석은 꾸뻑 인사를 했다. 말귀를 못 알아들었을 뿐이지 악의는 없었다. 숙소에 와서 머리를 감고 젤을 바르며 보니 아무리 보아도 해병대 훈련병 머리다. 이참에 해병대 훈련소에 재 입대를 할까? 아니면 윗머리마저 밀어버리고 미얀마에 절이 많은데 절로 들어갈까? 거울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는 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이니까 한 열흘 지나서 시내 단골이발소에 가서 다시 고르면 괜찮겠지! 체념했다. 그런데도 앞머리를 만지다가 보면 언제 손에 뒤통수에 가서 까칠한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아침에 인터넷을 검색하며 벌써 열 번도 넘게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다.
이 부장이 씻고 나온 다음에도 아침마다 묻던 그날의 스케줄을 묻지 않았다. 오늘 특별한 스케줄은 없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서로의 책상 앞에 앉아 서로의 노트북을 펴놓고 하릴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새해가 들어 바뀐 것들을 훑어보았다. 한국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던 단골 생고기집조차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었지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인터넷을 훑다가가 보니 또 정전이라 노트북을 종료시켰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정전이 되는 나라다. 다운타운의 큰 건물들은 모두 자가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숙소가 있는 빌리지는 부촌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시설이 없다. 어떤 날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저녁을 먹은 적도 있다. 앉은뱅이 의자를 당겨놓고 그 위에 발을 올리고 의자를 뒤로 젖혀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창으로 들어온 강열한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잠결에 땀을 훔치다가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열 시가 넘었다. 내가 잠이 들자 이 부장은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팬티까지 가랑이에 쩍쩍 들어붙었다. 새벽에 샤워를 했지만 씻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다. 다시 욕실로 들어가 물을 뒤집어쓰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이 부장이 제 책상에서 도면을 펼쳐놓고 재검토하고 있었다. 현지 스타일로 짓는 연립이라 단순해서 내 머릿속에는 이미 다 들어있는 도면이다.
-이 부장 시내 한 번 나가볼까?
-시내는 왜요?
-카 쇼룸 한 번 둘러보고 A4용지나 좀 사오게
-차를 바꾸시게요?
-아니 꼭 바꾼다고 하기 보다는 차 시세나 한 번 알아보려고.......
A4용지를 김 사장 걸 허락도 없이 두 묶음 헐어서 쓰고 있다. 두 묶음이면 반 박스다. 사람이란 큰일에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도 그런 사사로운 문제에 내색도 못하고 마음이 상할 수 있다. 더부살이 하는 주제에 그런 문제로 마음을 상하게 해선 안 된다. 김 사장이 들어오기 전에 한 박스 사다 두고, 나가는 김에 차량 가격이나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차를 보려구요?
-RV 차량. 가격이나 알아보지 뭐 심심한데........
미얀마에는 중고차 가격이 한국에 비하면 서너 배 비싸다. 한국 차는 드물고 인기가 없다. 도로에 굴러다니는 차량 구 할이 운전석이 오른 쪽에 달린 일본제다. 그렇다고 도로가 일본처럼 차량 좌측통행은 아니다. 처음에 운전석에 앉으면 좀 이상하고 서툴지만 한나절만 끌고 다니면 몸에 익는다.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차도 마찬가지다. 승용차량은 중고로 들어오는데 관세가 삼백 프로라 그 관세가 차량 가격에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어 엄청 비싸다. 내가 지금 타는 차는 육 년이 넘은 중고인데 한국의 어지간한 소형차 새 차 값을 주고 샀다. 이 부장에게 말은 안하고 있지만 지금 차는 먼저 지사장이 오래 타고 다녀서 그 사람의 냄새가 너무 배어있어서 싫다. 형편이 되면 기분을 쇄신하는 차원에서 차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다시 바꾼다면 도로사정을 고려해 일본제 RV 차량으로 구입하고 싶은데 지금 수익은 없고 투자기간이라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아보고 또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얼마에 넘길 수 있는지 파악하고 싶다.
이 나라는 차 한 대가 있으면 다섯 식구가 먹고 산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만 그건 가이드북을 편집하던 삼 년 전의 얘기고 경제개방정책 이후에 폭발적으로 불어나 늘린 게 택시고 지금은 시내 가려면 정체가 심해 거의 한 시간 이상 걸린다. 택시를 잡고 시내 술래파고다를 외치면 팔 할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차가 정체되어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은 택시가 거리 시간 병산제로 합리적이지만 여기서는 흥정을 먼저 하고 타야한다. 갈 때는 오천 짯을 주고 간 길을 돌아올 때는 삼천 짯으로 오는 경우도 허다하고 부르는 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택시를 그냥 보내고 다음에 오는 택시를 잡아 반값에 오는 경우도 있다. 가만히 보니 같은 거리지만 차가 신형이면 택시비를 좀 더 부르고 고물이고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차면 택시비가 좀 싸며 외국인 혼자 타면 좀 비싸고 현지인과 동행이면 좀 싸게 부르는 나라다. 장삿속이 없는 것인지 느긋한 국민성 때문인지 휴일이면 카 쇼룸마저도 문을 닫아버리기에 오늘처럼 휴일이 아닌 날, 시간이 있을 때 돌아보아는 게 상책이다.
RV 일본 중고차량 가격이나 알아보고 돌아오면서 A4용지를 한 박스 사온다는 생각으로 이 부장을 옆에 태우고 숙소를 나섰다. 그래도 새해 첫날이라 쉬는 현지 업체들이 많은지 도로가 다른 날보다는 한산했다. 어제 저녁 무렵에 다운타운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보니 큰 파고다가 있는 곳마다 밤샘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큰 혼잡을 빚었는데 오늘은 밤샘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다 자고 있는지 쉐다곤 파고다 앞조차도 정체 없이 신호 한 번에 통과할 수가 있었다.
양곤에서 가장 큰 중고차 시장은 어딘지 알고 있었다. 중고차 매매업체 여러 곳이 연합하여 한 군데 자리를 잡고 있다. 다른 카 쇼룸은 한사람이 하기에 겨우 차 몇 대를 놓고 팔고 있는 곳이라 그런 곳에서는 형성되는 가격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그 곳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장안평 중고차 시장쯤 되는 곳이다. RV 중고차 값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관심은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얼마에 매입해줄지 그게 더 큰 관심이었다. 중고차 시장까지는 정체 없이 모든 신호를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었다. 중고차 시장에 당도하여 거대한 쇼룸 입구 도로 가장자리에 주차를 했다. 멀리 빈터에 주차를 하면 중고차 장사치들에게 내 차를 보여주기가 번거로울 같고 교통 흐름에 전혀 방해가 될 것 같지 않아 그곳에 주차를 했다.
이부장과 다정하게 번호판이 없는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생각하고 있던 모델과 연식을 찾아내고 가격을 물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가격보다 조금 더 불렀다. 외국인이 가면 조금 더 부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얼마에 매입해 주느냐에 따라 흥정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대께서 매입할 우리 차를 보라 가자고 어눌한 영어로 장사치를 도로로 데리고 나왔다.
-얼래? 이게 웬 일이야?
도로에 나와서 이 부장과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할 말을 잊었다. 중고차 가게 주인은 무슨 일이야고 물었다. 도로 가장자리, 바로 여기에 세워두었던 우리 차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 치가 바로 앞에서 차를 닦고 있는 사람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결과는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갔다는 것이다. 불법주차라고.
-헐~ 이 나라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나?
이 부장의 말이었고 나도 그 말에 공감했다. 중고차 가게 주인이 부근에 있는 다른 장사치들을 불렀다. 그러니 너도 나도 나와 예닐곱 명이서 미얀마 말로 뭔가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우리가 택시를 타자 택시 기사에게 이놈 저놈이 뭔가를 부탁했고 택시는 출발했다.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부근의 동 사무소였다. 우리나라 칠십 년대 동사무소를 생각하면 그 시설이 상상이 된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동사무소마저도 한 쪽 벽에 선반을 만들어 작은 부처님을 모셔놓고 촛불이 켜져 있었다. 참 못 말리는 불교나라다. 그러나 나는 거부감 없이 안으로 들어가서 맨 먼저 불단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 예를 올렸다. 그 동안 택시 기사가 직원에게 상황을 얘기하니 차량 번호를 물었다. 이 부장도 나도 차량 번호를 외우고 있지 못했다. 번호는 알겠는데 앞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하니 얼마 전에 깐도찌 호수에서 차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생각나 스마트폰의 사진을 검색했다. 그 사진을 찾아 확대하니 차량번호가 찍혀있었다. 그걸 확대해서 보여 주었다. 가장 명확한 방법이다.
얼굴이 까만 동 직원이 서류에 먹지를 깔고 뭔가를 작성하더니 운전자인 내 이름을 물었다. 손가방에 든 여권을 꺼내 던져주었다. 그 여권으로 작성하더니 아버지의 이름을 묻는 것이다. 돌아가신지 거의 삼십 년이 된 아버지의 존함이 왜 필요한가? -아하 그거구나!
미얀마에는 이름 앞에 붙는 성이 없다. 그래서 모든 공문서에는 신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이름을 적는 칸이 별도로 있다. 아내와 공동명의로 외투법인 사업자를 낼 때도 그랬고 은행에서 법인계좌를 만들면서도 그랬다. 아버지의 존함뿐이 아니라 돌아가신지 사십 년이 넘는 장인의 존함까지도 들먹여야 했다. 아내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볼펜을 받아들고 아버지의 성함을 영문으로 적어주었다. 아버지의 존함을 영문으로 적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이다. 서류 작성이 다 되자 먹지 밑에 깔린 뒷장을 떼어주며 어디로 가라고 했다. 그 말은 택시 기사가 들었으니 우리는 택시를 타고만 있으면 된다.
-이 부장! 오늘 아버지 존함을 영문으로 적으면서 생각한 건데,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차를 팔지 말고 그대로 타라는 계시를 내린 것 같아!
-부친 연세가 올해 얼마죠?
-돌아가신 지 이십오 년이 다 되었어. 살아계시면 오늘로서 여든 셋, 아니 넷.
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나와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 부장에게 나보다 성질이 더 급한 아버지의 살아생전 얘기를 들려주었다. 성질이 급하기로 따지면 분명 아버진 나보다 한 수 위다. 아버진 어떤 결정할 일이 있으면 말씀을 안 하시고 생각만하시다가 머릿속으로 결정이 되면 망설임 없이 바로 밀어붙이신다. 당연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마련이다. 살아생전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니와 상의하는 법이 없이 혼자서 머릿속에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비교분석 하시고 혼자서 결정하신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동안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신다. 아버지께서 입술을 깨물고 계시면 어머니는 ‘너 아부지 또 뭔 일을 내려는 모양이다.’ 하시며 은근히 핀잔을 주는 게 고작이다. 내가 고민이 있으면 입술을 깨무는 버릇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 싶다.
아버지 얘기를 하는 동안 택시는 번호판이 없는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시청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우리 차도 여기 어디에 있을 터인데 차들이 워낙 많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정문 앞에 서 있는 관리인에게 뭐라고 묻고 주차장 입구에 마련된 야자수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책상 두 개를 놓고 사무를 보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의 수장은 무궁화 큰 것 두 개의 계급장이 달린 경찰이었다. 미얀마사람치고는 피부도 뽀얗고 굉장히 잘 생겼다. 그가 우리를 보고 영어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며 ‘유어 배리 핸섬!’ 이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손가방에 넣어둔 동사무소에서 받은 서류를 내밀자 기분이 좋아진 그가 차를 찾는 절차를 택시기사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일단 견인 요금을 내야 한다. 견인 요금이 칠만 짯!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숙소의 가정부 보름치 급료다. 그걸 내니 영수증을 끊어 주었다. 눈치를 보니 거기서 바로 차를 찾는 게 아닌 모양이다. 기사가 택시가 있는 곳으로 쫒아 가서 택시를 돌려서 오는 동안 나는 그 잘 생긴 경찰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왔으며 건설업을 하고 있다. 당신 정말 한국 배우같이 잘 생겼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하니 그 경찰이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내 앞머리를 만져보는 것이다. 빳빳한 머리카락, 젤을 바른 머리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름을 물어보니 뭐라고 하는데 역시 미얀마 이름이다. 미얀마 이름은 한 번 들어서 기억하기 어렵다. 앞에 붙는 성이 없어도 굉장히 길고 혀가 돌아가지 않는다. 숙소의 가정부들도 이름을 우리가 부르기 편하게 줄여서 부르고 심지어 거래로 만나는 사람조차도 우리 방식대로 줄여서 망쏘, 쬬우, 빠덴, 하며 짧게 부른다. 택시 문을 여는데 무궁화 두 개짜리 경찰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영어로 덕담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새해 첫날부터 이 모양인데 복 많이 받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액땜을 해서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거라고 했다. 고맙다고 하며 크게 웃어주고는 역시 잘 생겼다고 다시 말하곤 택시 문을 닫았다.
택시를 타고 간 곳이 좀 전에 들렀던 동사무소다. 모든 관공서 업무가 전산화 되어 있지 않으니 발품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동 사무소 직원에게 영수증을 보여주자 면허증을 달라고 했다. 국제면허증으로 다시 미얀마에서 발급 받은 면허증을 주니 면허증을 보고 뭔가를 기재하고는 돈을 내고 오라고 했다. 영수증을 다시 들이밀며 돈을 냈다고 하니 견인요금 말고 벌금을 내고 오라는 것이다. 이 자식이 가만히 보니 영어를 좀 할 줄 아는데 미얀마 말만 쓰고 있었다. 벌금을 내는 곳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면허증을 주면 벌금을 내고 바로 가도 되지 않느냐고 하니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다. 방법이 없다. 이 부장은 인내의 한계를 느꼈는지 표정이 일그러져 욕지거리의 파편을 씹고 있었다.
-이 부장!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어. 마음 풀어!
택시기사가 골목 안으로 가다가 몇 번이고 론지(미얀마 남자들의 치마처럼 생긴 하의)를 입고 있는 주민들에게 물어 골목 끝에 매달린 돈을 납부하는 곳을 찾아냈다. 밖에서 보아도 일반 주택은 아닌 공공 사무실인데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 마감도 하지 않은 오래된 건물이다. 택시기사를 따라 들어가니 빡빡머리에 덩지가 큰 젊은 녀석이 론지를 입고 책상 앞 나무의자에 앉아 자고 있었다. 빡빡머리에게 돈을 내러 왔다고 하자 녀석은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점심시간이라고 하며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기다란 나무의자를 가리키며 거기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빈 책상이 두 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담당 직원이 점심을 먹으러 나간 모양이다. 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며 기다렸다. 미얀마는 어디에도 금연구역이 없다. 금연구역이 없으니 당연히 흡연구역이 따로 없다. 에어컨이 돌아가지 않는 자리면 어디서건 흡연이 가능한 나라다, 심지어 손님을 잔뜩 태운 시내버스기사가 담배를 물고 운전하지만 누구도 뭐라고 하는 승객이 없는 나라다.
이 부장과 성격이 급한 아버지 얘기를 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벌써 끝났지 싶은데 점심 먹으러 나간 작자들이 오지 않는 것이다. 시계를 보고 자고 있는 빡빡머리에게 이 부장이 큰 소리로 물었다. 점심시간이 언제까지냐고. 녀석은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시계를 보더니 서랍을 열고 주섬주섬 도장과 장부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무슨 돈을 내러 왔냐고 물었다. 택시기사가 들고 있던 고지서를 내밀자 금액을 확인하고는 돈을 달라고 했다. 녀석이 담당인 모양이다. 이 부장과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원인이 들어와서 기다리는데 점심시간이라며 자고 있는 공무원이라니....... 이 부장이 딱 한 마디 했다.
-정말 환장할 나라네요.
고지서에 적힌 금액은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미얀마 숫자로 적혀 있기에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고 있었다. 차량 번호도 아직까지 아라비아 숫자로 다 고치지 않고 더러는 미얀마 숫자로 표기되어 있는 게 있다. 지금 국제화 시킨다고 새로 검사를 받는 차량을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넘버로 교환을 하고 있는 상태다. 왼쪽 팔뚝 전체를 컬러 용 문신으로 감은 빡빡머리가 천 짯 자리 지폐를 세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문신이 조폭의 상징이지만 여기선 위화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문신이 흔한 나라다. 공무원이 문신을 하고 있는 건 보통이고 심지어 스님들마저도 팔뚝이나 가슴팍에 문신을 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내가 내민 지폐는 천 짯짜리다. 이 나라에도 오천 짯과 만 짯짜리 지폐가 있다. 그러나 그런 고액권은 부자들의 금고에 다 들어가 있고 흔하게 통용되는 건 천 짯짜리다. 연립주택을 짓기 위해 땅을 사고 중도금을 치룰 적에 돈이 든 큰 자루를 네 자루나 차 트렁크에 싣고 간 적도 있다. 은행을 못 믿어 아직까지 부자들은 집에 금고가 아니라 돈 창고를 갖추고 있는 나라다. 서른 장이 넘는 돈을 헤아린 녀석이 고지서 영수증에 도장을 찍어 북 찢어 내밀며 ‘익스프레스 머니’라고 짧게 말했다. 급행료를 달라는 것이다. 보통 이천 짯인데 가는 곳 마다 그런 돈을 요구하는 나라라 새삼스러울 건 없다.
-이 자식! 민원인을 세워두고 실컷 뒤집어 자고 급행료를 달라네?
녀석이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이천 짯을 내밀었다. 녀석은 그 돈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받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제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이다. 월급이 워낙 박한 나라니까 이해해야 된다. 영수증을 받아들고 택시를 타고 갔던 길을 되짚어 다시 동 사무소로 갔다. 동 사무소의 아까 그 얼굴이 유난히 검은 직원도 영수증을 검토하더니 영수증에 도장 하나를 더 찍어주고 면허증을 손에 들고 ‘익스프레스 머니’라고 했다. 뿌리가 야무지게 박힌 관행인 모양이다. 면허증이 아직 녀석의 손에 있는데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폐 두 장을 내밀고 면허증을 받았다. 면허증을 받아서 들고 나오는데 내 뒤통수에 대고 녀석은 영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했다. 나는 돌아서서 녀석을 보고 웃어주었다. 결코 화를 내서 좋을 건 없다. 그냥 웃어주는 게 최고다.
다시 택시를 타고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택시기사는 한 번 가 본 곳이기에 길을 묻지 않고 바로 찾아갔다. 가는 동안 이 부장과 성격이 급한 아버지 얘기에서 대를 물려 지금 입대하여 훈련을 받고 있는 아들 녀석의 얘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중단하고 우여곡절 끝에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을 간 아들 녀석과 녀석의 여자 친구를 얘기하며 한참을 웃었다. 택시기사는 웃는 우리를 돌아보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영문도 모르고 자기도 웃었다. 아마 차가 그렇게 견인되어 갔으면 우거지상으로 돈을 내고 돌아다녀야 할 터인데 웃고 있다니, 참 희한한 외국인이라고 생각이 되었던 모양이다.
차량보관소에 가니 아까 그 무궁화 두 개짜리 경찰이 아는 체 하며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내민 영수증을 보더니 옆의 직원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내용인즉슨 한 시간에 이백 짯 씩 보관료를 받고 있었다. 두 시간 반이었지만 경찰은 두 시간으로 기재를 해주는 호의로 두 시간 치 보관료를 냈다. 그렇게 친절하게 구는 동안 나는 그에게 정말 잘 생겼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 그 돈을 내니 그 영수증에 도장을 찍어주고 차가 있는 위치를 일러주었다.
-이 부장! 이 영수증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두자.
차는 번호판이 없는 차들이 정렬되어 있는 주차장 뒤편에 있었다. 운전석 문고리에 붉은 딱지가 붙어 있었다. 딱지를 떼어내고 끌고 오면서 다친 곳이 없나 한 바퀴 돌아보니 차는 멀쩡했다. 거기까지 따라온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계산하는데 이만 짯을 달라고 했다. 비싸다고 하니 자기 가이드 비는 붙이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할 수 없이 요구하는 금액을 줘서 보내고 이 부장을 태우고 나오면서 보니 임시 사무실에 경찰이 앉아 잘 가라고 손을 들어보였다. 나는 차창을 열고 ‘헤이! 폴리스 컴 히어!’ 하고 소리쳤다. 이 부장은 무슨 영문인가 싶어 나를 힐끔 보았다. 경찰이 냉큼 차 옆으로 왔다. 나는 손가방의 지갑을 꺼내 오천 짯짜리 한 장을 내밀며 그대가 참 잘 생겨 주는 익스프레스 머니라고 했다. 어라? 이게 뭐야? 경찰은 낯빛이 바꾸면서 정중하게 사양했다. 오히려 코리언인데 새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겨 미안하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돈을 쥐고 있던 내가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얼른 돈을 지갑에 넣고 명함으로 바꾸었다. 미얀마에 와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될 때 전화하면 맥주나 같이 한잔하자고 말했다. 그는 명함을 받고 꼭 전화하겠다고 하며 헤어 젤을 발라 빳빳한 내 앞머리를 신기한 듯 장난스럽게 살짝 만져보며 웃어주었다.
답례로 한 번 웃어주고 큰 도로로 나와서 곧 바로 문구 도매상으로 갔다. 어쩌면 오늘 문을 닫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매장에는 손님이 더 많이 북적거렸다. 거기서 재바르게 A4용지 한 박스를 사서 차에 싣고 숙소로 왔다. 오면서 이 부장에게 말했다.
-엄청 비싼 A4용지니까 아껴 써야 돼! 집에 라면이 있을까? 초하룻날부터 이렇게 배를 길들여서야....... 그래도 다행이야. 오후에 견인되었으면 오늘 찾기에는 턱도 없었을 거야. 그치?
아주 늦은 점심이었다. 라면에 식은 밥을 말아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그것조차도 가정부의 눈치가 보였다. 여태 점심도 안 처먹고 뭐하고 싸돌아다녔을까? 가정부 퓨퓨는 그런 눈치를 주는 듯 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종일 시달린 나머지 내가 너무 민감해진 건가?
늦은 점심을 대충 때우고 이 부장은 사무실로 쓰는 거실의 제 책상 위에 놓인 외장 하드를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방에 틀어박혀 외장 하드에 수록된 영화를 보며 무료한 시간을 때울 모양이다.
차를 찾으러 다니 때는 마음이 조급지만 숙소에 들어오니 남는 게 시간이다. 짬만 나면 서툰 한국어로 재잘거리던 김 사장 매니저 엥이도 나가고 없었다. 반바지에 편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정원으로 나왔다. 바로 저기다. 정원의 키가 큰 야자수 두 그루에 묶여있는 그물침대가 비어 있었다. 엥이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자주 애용하는 곳이다. 마침 야자수 그늘이 그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방으로 다시 들어가 어젯밤에 읽던 책을 들고 나왔다. 그물침대에 누워 이따금 하늘을 보며 한가롭게 독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슬리퍼를 벗고 그곳에 올라가 누우니 야자수 잎 사이로 맑은 하늘이 잘 보였다. 책을 읽는 것은 힘 들었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저절로 그물침대 좌우로 조금씩 흔들렸다. 책을 겨우 두 페이지 정도 읽으니 약간의 어지러움을 동반하는 졸음이 왔다. 하품을 두 번이나 하며 읽던 한 페이지를 마저 읽고 책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곤 금세 잠이 든 모양이다. 얼마나 잤을까?
-사장님 저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책을 들추고 보니 이게 뭐야? 어둠살이 내리고 있었고 그렇게 외출보고를 하는 이 부장은 머리에 한 아름 되는 달을 이고 있었다. 너무도 큰 달이다. 오늘이 보름인가?
-어딜 나가려고?
한 아름이나 되는 달을 보고 건성으로 물었다.
-요 앞에........ 후배가 이리로 온다고 해서 잠깐 만나고 오겠습니다.
-으응....... 알았어.
역시 달을 보고 누운 채 대답했다. 다시 그물침대가 좌우로 흔들렸다. 다행히 이 부장은 달은 그대로 두고 미얀마 말로 쎅빼잉이라 불리는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이 부장이 나가는 동안 나는 달을 보고 넋이 나갔다. 이 정도로 큰 달은 처음 본다. 참 온전하게 흠 잡을 데가 없는 달은 담장 넘어 옆집 야자수 잎에 걸려있었다. 적도 부근의 보름달은 이렇게 감동적으로 뜨는 것인가? 그물침대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야자수 위에 걸린 달이 조금씩 흔들렸다. 사진으로 남기면 멋진 작품이 되겠지만 스마트폰을 가지러 가는 사이에 달이 없어질지 모른다. 사진 대신 달을 내 기억에 저장시키며 적도의 달에게 홀리고 있었다. 처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보는 듯 약간 흥분되며 쓰다듬어보고 싶었다. 오늘은 양력으로 새해 첫날이다. 이렇게 온전한 달을 보고 있으니 올해는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문득 들었다. 그 잘 생긴 경찰의 말마따나 낮에는 액땜을 한 것이고 이제부터 저 달처럼 올해는 풍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오늘의 좋지 않은 기분에 덧씌우기를 했다. 적도의 달은 처녀의 젖가슴을 보는 듯 나를 약간 흥분되게 만들고 있었다. 그물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적도의 풍만한 달에게 홀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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