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 모세
히11:24-29
서 론
“모세”가 태어날 당시는 애굽에 거주한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을 저지하기 위해 애굽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아 출생시 학살명령을 내렸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출생후 3개월만에 나일강에 던짐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냄” 통속적인 설명으로 건져 낸다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부터 구출하여 약속한 땅 가나안에 인도한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며 정치가입니다.
모세는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났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물에 띄워졌는데 마침 애굽의 왕녀가 발견하여 데려다가 양자를 삼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유모로 들어가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양육받으며 애굽의 학습에 통달하였습니다(행7:22).
하루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애굽사람에게 맞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그 애굽인을 쳐 죽이고 도망하여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 거하면서 그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게르솜”, “엘리에셀” 두아들을 얻고 40년을 지냈습니다(출2:23, 18:3-4).
그가 80세 되던 해 어느날 호렙산(일명 시내산)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로부터 민족 해방의 사명을 받고 애굽에 돌아가 히브리인들을 노예생활에서 부터 해방시켰습니다(출12:51).
광야 생활 40년에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놀랄만한 위대한 영도력으로 민족을 일깨워 주었고 인도했습니다. 그 동안에 홍해의 이적도 일어나고 바위를 쳐서 물도 나게 하였으며 모든 병고를 여호와의 권능을 빌어 해결해 주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맺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때부터 이 율법이 생활의 원칙으로 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이 대략적 모세에 대해 알아 보았으나 더 깊이 분석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불행한 시국에 태어난 모세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후죽순 같이 날로 번성해 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근심하던 중 이스라엘민족을 없애는 방법을 사용했나니 그것은 바로 “비돔”과 “라암셋” 두 국고성을 건축하는 일, 흙 이기기와 벽돌 굽는 일, 여러가지 농사짓는 일 등의 갖은 고역으로 학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더욱 더 번성하였기 때문에 바로는 다시 묘안을 짜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만들어 낸 계략은 장래 이스라엘의 싹이요, 희망이요, 장래인 어린이들을 죽이려는 것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산파 “십보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명하여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여자거든 살려두고 남자거든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왕명을 따르기 보다는 양심을 따르려는 용기있는 산파들의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레위인들로서 “아므람”과 “요게벳”입니다. 모세가 태어난 후에도 바로는 다시 명을 내려 남자 아이는 “나일강”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 명을 어기며 석달을 숨겨 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숨겨 키울 수가 없으므로 아므람과 요게벳은 갈대상자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여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떠 내보냈습니다.
때마침 바로의 딸이 이 나일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갈대 숲속에서 아이우는 소리를 듣고서 하인을 시켜 건져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공주가 어린 모세를 보니 아이가 준수하여 히브리 아이인줄 알면서도 유모를 구해서 모세를 키우므로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같이 모세는 인생 초기에 구구절절이 사연이 많은 가운데서 태어나 성장한 것입니다.
2. 동족애가 강한 모세
(출2:11-12)에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고 했습니다.
바로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는 동족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인에게 민족적 분을 품고서 자기 동족을 고난에서 구해내고자 그 애굽인을 죽인 것입니다. 이같은 행위가 토출되기까지는 생모 요게벳을 통한 히브리인의 민족 사상과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신앙 사상의 밀봉 교육이 크게 진효하여 애신(愛神) 애족심에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너는 어찌하여 동족을 치느냐”고 했으니 이는 분명히 골육상잔의 비극을 보면서 호소하듯 말하는 모세의 탄식입니다. 사실 애굽에 억류된 이스라엘이야말로 어리석은 백성들입니다. 저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동족끼리 싸우는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순간 모세는 애국자적인 입장에서 호소하였지만 저들은 모세를 향해 대들며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으로 세웠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나도 죽이려느냐?”고 반항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돕는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만일 저희 동포들이 모세의 권위에 대항하지만 않았어도 모세가 미디안으로 가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어 동족구원의 과업수행이 더 신속히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들이 완악했기 때문에 모세의 40년의 능력 배양이 필요했으며 역시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40년이란 훈련 기간이 지나야만 여호와께서 정하신 시기가 도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인격을 훈련시키시고 그를 통해 일했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켜 그분의 종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거듭난 후에 그를 들어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3. 신령한 성령불의 체험자
(출3:1-6)에서 “떨기 나무불꽃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말라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또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내 백성의 애굽에서의 무고와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내가 내려와 구원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려고 하노니 이제 너를 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불꽃 가운데서 소명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개인을 찾아주시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 하나를 불러주셨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심은 옛날 종들은 주인의 명을 받으면 종의 자세를 취해야 하며 다만 겸손과 복종과 봉사의 의무를 가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주님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되 “이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인의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너는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40세의 젊었을 때 모세는 이미 자기 동족을 도우리라는 일종의 의협심에서 애굽인 하나를 죽였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의 학식과 열심과 수완이 능히 민족을 구원하는 대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모세는 고백하기를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라고 이제는 자기의 무력을 고백하였습니다. 자기의 연약과 무가치를 통감하는 태도였습니다. 여기에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사명이 오는 법입니다.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하니라”고 바울은 부르짖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입은 무장의 옷을 해제하고 “주여 나를 이제 주께 맡깁니다”라고 고백할 때에 참된 여력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실의와 고난의 광야 40년의 생활 인생의 정력도 거의 다 쇠퇴한 80의 노인 이제 모든 것을 단념하고 싶어 졌을 때 모세는 새로운 인생을 발견했습니다.
불붙는 가시덤불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불로써 그의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이제 모세의 귀에는 다시 탄식하며 구원을 기다리는 고난의 백성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의 눈은 다시 광채를 내뿜었습니다. 그는 약동하는 용기를 다시 품고 애굽을 향하여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불붙는 가시덤불 이는 모세에게 새로운 사명과 삶의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불붙는 가시덤불이 여러분의 발걸음 앞에 나타나셔서 하나님 사명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축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4..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모세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모세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애굽 바로왕에게 나타났습니다. 지팡이 끝에서 열가지 재앙이 내려지고 나일강의 신인 “뱀, 소, 강, 태양신”이 힘을 잃었고 애굽 천지는 뒤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지팡이로 홍해 바다를 가르고 하나님을 믿지않는 애굽 사람들을 홍해에 수장하고 사백년간을 종살이로 지내던 이스라엘을 해방하였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사십년을 만나로 먹이시고 반석을 지팡이로 치니 생수가 터져 나오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사십년의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시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주시고 이로써 이스라엘은 한 종족의 민족으로서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는 백이십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건국 건교의 창업을 완수한 것입니다. 모세는 뒷일을 여호수아에게 부탁하고 느브산에 올라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고 백이십년의 긴 생애를 희생하면서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사십년의 생활속에서 자기 실존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자기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거룩한 소명 의식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거룩하고 권능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사로 잡혀 끌려가는 모세의 계획과 행동과 전쟁은 모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의 것이었습니다. 신앙이란 용단이며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곁에 계시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사로 잡힌 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기적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5. 바로에게 10가지 재앙을 보여준 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바로의 거부는 결국 재앙을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첫째,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
(출7:20)에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했습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것은 매우 비참한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심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나일강이 애굽인들의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나일강을 더욱 숭배하고 예배하였습니다.
(2) 애굽인들이 나일강을 무죄한 아기들의 피로 물들였기 때문입니다. 물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물보다 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애굽인들은 그 흔하고 가장 중요한 물을 볼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물이 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그들의 주요 양식(민11:5) 이었는데 물이 피로 변함으로 고기마져 죽어버렸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일강 하수가 피로 변하는 재앙은 7일간 계속 되었습니다(출7:25). 그런데도 바로는 좀처럼 회개를 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둘째, 개구리 재앙
(출8:6)에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했습니다. 바로의 궁, 침실, 침상, 바로의 신하의 집, 애굽 백성의 화덕, 그리고 떡 반죽 그릇이 다 개구리로 충만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애굽인들이 가장 깨끗하게 여기던 곳들입니다. 그런데 개구리 재앙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개구리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개구리 신앙이 고대 비석에 종종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개구리를 재앙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개구리가 복을 준다고 믿었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개구리 재앙을 내렸을 때에는 바로와 그의 백성이 개구리의 재앙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개구리들이 애굽땅을 덮었을 뿐만 아니라 애굽인들의 집에서 침입하여 그들의 침실에 들어가고 그들의 부엌 용구를 더럽혔습니다. 개구리가 너무 많아서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셋째, 이 재앙
(출8:17)에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생축에게 오르니” 했습니다. 이의 재앙은 과거 두가지 재앙과는 성질이 좀 다릅니다. 나일강수가 피가 된 재앙과 강에서 개구리가 많이 올라왔다고 하는 재앙은 물의 형태가 변한 것이고 또 개구리가 갑자기 번식하게 되는 재앙이었으나 이번의 이 재앙은 생명이 없는 “티끌”이 생명이 있는 “이”로 된 재앙이었습니다.
생명없는 무생물이 생명있는 생명체가 되게 하는 것은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창조주가 아니면 생명없는 것을 생명있는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이가 들 끊은 그들의 몸은 그들의 교만에 대한 쓰라린 경책이었습니다. 이 재앙은 그들의 교만을 겸손케 하였고 그들의 영광을 더럽히는 숭배 대상에 대한 혐오와 넌더리를 경험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재앙의 중요한 열쇠는 이가 생겨난 그 재료에 있습니다. 애굽인이 임의로 섬기는 신이 땅의 티끌인데 재앙으로 심판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넷째, 파리 재앙
(출8:24)에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 떼가 바로의 궁에와 그 신하의 집에와 애굽 전국에 이르니 파리 떼로 인하여 땅이 해를 받더라” 여기 파리 떼란 히브리어로 “아룸”인데 “개파리, 말파리, 소파리”라는 뜻으로 보통 파리보다 크고 쏘는 힘이 강합니다. 이 파리 떼에 의한 재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파리 떼를 보내니라고 바로에게 예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가 하나님의 예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파리떼를 보내셨고 바로의 궁을 비롯해서 그의 신하들과 국민들의 집과 땅에 피리 떼가 이르러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예고하심은 깨닫고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것인데 이 예고를 무시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악질 재앙
(출9:6)에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고 하신대로 애굽의 모든 생축에 악질 재앙이 임하여 죽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생축을 종교적으로 승배하였는데 그것들이 여호와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악질에 걸려 죽었으니 그것들이 신의 자격이 없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네째번 재앙까지는 주로 자연과 곤충들에 대한 재앙이었으나 이제는 인축을 쳐서 생명과 재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가져오므로 바로 왕과 애굽인들에게 고통을 가증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이나 생축에 대하여는 재앙을 면하게 하시고 보호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 세상의 재난이나 그의 사랑하는 백성과 소유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읍시다.
여섯째, 독종의 재앙
(출9:10-11)에 “그들이 풀무의 재를 가지고 바로 앞에 서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날리니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 독종이 발하고 술객도 독종으로 인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독종이 술객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독종 재앙은 짐승들에게 내리는 악질병의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의 몸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재앙들은 모세가 아론을 통하여 하였지만 여섯번째 독종 재앙은 모세 자신이 직접 행함으로 말미암아 본 재앙의 중대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모세가 독종 발생을 위한 매개물로써 취한 것을 풀무재였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축복해 주는 도구였지만 오히려 자신들을 괴롭히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오늘의 독종의 매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택한 백성을 괴롭히고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와 하나님 없는 지상주의를 꿈꾸는 자들이 바로 고대 애굽의 바로가 아닙니까? 이 바로의 풀무불의 악진이 독종의 원인이 되어서 교회를 괴롭히고 뭇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일곱째, 우박 재앙
(출9:23)에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마다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한채 그들은 어리석게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우박이 담긴 대접을 기울여 애굽 온 천지를 우박의 재앙으로 덮어버린 것입니다. 24절에 애굽 개국 이래 처음보는 우박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을 동반한 재앙으로 들에 있는 사람과 짐승과 나무와 채소가 다 우박과 벼락에 맞아서 죽고 상하고 꺾여졌습니다. 실로 무서운 광경이었고 참혹한 재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