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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1)
마 18:19-20, 약 4:1-3
■ 미국의 무디가 1872년 영국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었는데 열흘 동안 400명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무디는 왜 이렇게 작은 마을에 부흥이 임하는가 기도하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 교회에 선천적 장애로 침대에 누워있는 마리안 아들라르드라는 여인이 매일 기도했다. “하나님, 나는 몸이 아파 예배에 나갈 수 없지만, 우리 교회에 부흥을 보내주시옵소서. 부흥을 보내주시옵소서.” 이 여인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 독일이 통일된 배경을 아시는가? / 공산당에 눌려 살던 사람들이 1989년, 동독의 어느 작은 교회에 모여 촛불을 켜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바흐가 오르간 연주한 곳으로 유명한 이 교회에 사람들이 하나 둘 기도하러 모였다. 결국, 그 수는 1만 명, 3만 명, 5만 명 그리고 50만으로 불어났다. 그 결과 마침내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말았다. 성도들의 기도 때문이었다.
■ 새벽 기도를 시작하셨겠구나 / 6·25 때에 있었던 일이다. 신앙심 깊은 어느 부모가 아들을 최전선으로 보내며 당부했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어느 곳에 있든지 새벽 5시가 되면 우리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전쟁터는 험한 곳이다. 많은 시험이 있고 유혹이 있고, 잘못될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이 청년은 부모님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그 기도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죄의 길로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고, 경건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보초를 서고 있을 때 새벽 다섯 시가 되었다. 바로 부모님이 자기를 위해 기도한다고 약속하신 시간이었다. ‘지금쯤 어머니 아버지께서 새벽 기도를 시작하셨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젊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가 무릎을 꿇음과 동시에 머리 위로 ‘타-앙!’ 하고 총알이 날아갔다. 무릎을 꿇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서 있었다면 영락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 너무나 가난하여 공부해야 할 나이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남의 구둣방에서 직공 생활을 하던 소년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소년은 하나님을 믿었고, 12명의 기도 동지들을 모아 일주일에 하룻밤씩 모여서 특별 기도회를 했다. 어려워서 공부를 하지 못했으나 노동하며 기도하던 그 소년은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전 세계 350만 회원을 가지가 있는 Y.M.C.A.를 창설한 조지 윌리엄이다. 세계 최초의 민간단체로 현재 120개국에서 5천 8백만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 큰 기도를 한 사람 / 구두 수선공이었던 한 소년이 꿈과 소망 없이 살아가다가 예수님을 믿고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졌다. 꿈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는 구두 수선 가게 자기 자리 앞에다 세계 지도와 세 가지 표어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고는 자신의 인생을 하루하루 새롭게 시작했다. - 큰 비전을 가지라(Great Vision), - 큰 기도를 하라(Great Pray), - 큰 기대를 걸라(Great Expect) - 남의 구두 수선 가게에서 수선이나 하는 사람이 꿈을 품어봤자 수선 가게 하나 정도 차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꿈은 전혀 달랐다. 그는 세계 지도를 품에 넣고 그 당시 아무도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모두 비웃었다. 후원자도 없었다. 아내까지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런데도 그는 인도로 뛰어 들어갔다. 선교의 아버지, 선교의 원조 윌리엄 케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위하여 기도하였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일을 해냈다.
■ 암병을 믿음으로 고쳤다 / 1960년대 오스트리아 어느 국립병원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그 병원에서 한 50대 여성이 1년 이상 살기 어렵다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어느 날 아침 회진하던 주치의에게 이 환자가 매달리며 간청했다.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의사는 한참이나 말을 못 했다. 병력일지에 적힌 기록을 봐서는 도저히 어떻게 살려낼 방법이 없었다. 의사는 그래도 무슨 말을 해주어야겠다 싶어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살려 드릴게요. 1년 이상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사실 암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아주머니의 경우는 특별해요. 무슨 암인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답니다. 저희가 밝혀내기만 하면 고쳐 드릴 수 있어요. 새로운 의학을 공부한 전문의사가 와서 아주머니를 다시 진단하고 암의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면 고쳐 드릴 수 있어요.’ 이 말을 들은 환자는 그날부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마지막 부탁입니다. 이 한 가지만 들어주십시오. 새로운 의학을 공부한 의사를 어서 빨리 이 병원으로 보내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웬일인가? 처음 보는 낯선 의사가 환자 앞에 와서는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를 향해 ‘She is moribund’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듣고 ‘그래, 나는 모러번드라는 암에 걸렸다’라고 생각한 환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눈물로 감사하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나에게 새 의사를 보내주셨고, 그 의사는 내 병명을 밝혀낸 거야. 이제는 주치의 말대로 나의 병명이 밝혀졌으니까 곧 내 병을 고칠 수 있을 거야. 주님! 감사합니다.’ 그녀는 감사와 환희의 뜨거운 눈물로 매일 그녀가 머리에 베고 자는 베개를 적셨다. 그렇게 이 환자는 1년을 넘겼고 이듬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했다.
많은 의사는 그녀의 암 병이 고쳐진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동안 그녀에게 별다른 치료도 하지 않았고, 약도 투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암 병이 치료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의사들은 그녀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무엇을 놓고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셨어요?’, ‘예! 1년은 너무 짧으니 몇 년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요.’, ‘그래서요?’, ‘저의 주치의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병명을 몰라서 못 고친다고. 그러나 새롭게 공부한 전문의사가 와서 제 병명을 알아내면 고칠 수 있다고 합디다. 그래서 그날부터 새 의사를 보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 아주머니 기도대로 새 의사가 왔습니까?’, ‘네,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였죠?’, ‘저기 저분이 오셨어요.’, ‘그래요? 저분이 뭐라고 그러던가요?’ ‘모러번드요!’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의사는 졸도할 만큼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모러번드는 병명이 아니라, ‘다 죽어가고 있다. 이제 끝났다’라는 영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아주머니가 기적과도 같이 살아나게 된 것은 병명을 알면 고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암 병을 믿음으로 고치게 되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의학계에 발표하였다.
■ 모니카의 기도 / 우리가 어머니 주일을 맞을 때마다 믿음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고 그런 때면 으레 생각하게 되는 분이 한 분 있다. 그분은 우리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고 볼 수 있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Monica)이다. 아들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마니교를 신봉하고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니 어머니 모니카(Monica)는 아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 잘못된 종교생활에서 돌이키게 하려고 얼마나 애쓰고 기도하였는지 모른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여 년을 애타게 기도하였다. 그러나 아들 어거스틴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날로 더 심해졌다. 모니카는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한번은 자기 교구의 암 브로스(Ambros) 감독을 찾아가서 흐느껴 울며 호소했다. ‘신부님, 제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버리시나 봅니다. 제가 아무리 애타게 이렇게 오래 기도해도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나 봅니다. 제가 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위하여 10여 년을 하루같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면서 한참 흐느껴 울었다. 이때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소하는 모니카의 모습을 보고 있던 암부로스 신부는 ‘자매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결단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상 빛나는 어거스틴이 나오게 되었다.
● 모든 종교는 기도가 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절대자를 향해 기도한다. 부처를 믿는 불교도들도 열심히 기도한다. 시내나 산속에 있는 절을 찾아가 108배를 하기도 하고, 일천 배를 하면서 기도를 한다. 알라신을 섬기는 모슬렘들도 열심히 기도한다.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어김없이 메카 방향을 바라보고 기도한다. 라마단 금식 기간에는 침조차 삼키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무속신앙, 샤머니즘을 섬기는 자들도 간절히 기도한다. 전에 계룡산에 가보면 수많은 큰 나무나 바위 밑에서 굿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자식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다른 종교나 샤머니즘을 믿는 이들의 기도행위를 보면 어쩌면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것보다 훨씬 간절해 보인다. 훨씬 더 정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 사고 안에는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생각이 있다. 지극정성을 들이면 하늘이 감동하여서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면 자기가 믿는 신이 자기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와 다른 종교나 무속신앙인들이 드리는 기도의 차이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먼저 기도의 대상이 다르다. 타종교인들은 부처님의 형상을 본뜬 불상이나 알라신에게 기도한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수만 개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 기도한다. 무속인들은 귀신을 향해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 생명이 없는 사람의 손으로 새겨 만든 불상이 어찌 응답할 수 있겠는가?
■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 / 대학생 시절에 속리산에 MT를 간 적이 있다. 법주사 경내에 들어서면 옆 산 높이와 비슷할 만큼 큰 불상이 있다. 당시에는 시멘트로 만든 엄청나게 큰 불상인데 지금은 84kg의 금을 입힌 금동미륵대불이 있다. 그 불상 앞에 많은 사람이 돈을 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깜짝 놀란 만 한 일이 벌어졌다. 큰 불상 위를 나르던 새 한 마리가 실례했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부처님 코끝으로 떨어졌다. 더 자세히 보니 불상 얼굴 곳곳에 새똥의 흔적이 보였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코에, 얼굴에 오물이 떨어져도 피하지도 못하고, 치우지도 못하는 불상 앞에 기도하다니….
그렇다. 생명이 없는 대상을 향하여 생명을 지닌 인간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른 종교와 무속인들의 기도와 우리가 다른 것은 기도의 목적이 다르다. 다른 종교는 자기 소원성취가 목적이다. 그들은 신을 감동하게 해서 자기의 소원을 이뤄야 한다. 그래서 훨씬 더 공을 들이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 목적은 소원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의 기도는 환경의 변화를 위해 간구한다. 자기가 보기에 좋지 못한 환경을 바꿔서 자기가 원하는 좋은 환경으로 모든 것을 바꿔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환경의 변화가 아닌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먼저 기도해야 한다.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자신의 가치나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헛수고이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외치시면서 마태복음 6:25-34에서 하신 말씀은 설교를 이해하기에, 우리가 모두 신앙생활을 하는 데 기본이 되는 말씀이 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몇 번이라도 읽자.
마 6:25-34 / 그러므로 내가 전정으로 말한다. 먹고 마시고 입고하는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이미 생명과 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먹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왜 의복 때문에 걱정하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으나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그 꽃만큼 아름답게 옷을 입지는 못하였다. 30)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돌보아주시지 않겠느냐? 31) 그러므로 음식과 의복을 쌓아두려고 걱정하지 말라. 32)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33)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
■ 십 년 전에 각 언론 매체에 기도와 관련하여 소개된 희한한 사건이 있었다. 제주도에 사는 52살의 한 남자가 5년 전 자기 집에 기도방을 만들었다. 집 안에 기도방을 만들 정도로 신심이 깊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자신은 기도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 8살, 9살인 두 딸로 하여금 자신이 만든 기도방에서 기도하게 했다. 그것은 두 딸이 원하거나, 특별한 영적 훈련을 위함이 아니다. 자신의 두 딸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영험하다고 믿어 하루에 7~8시간씩 기도방에서 기도를 시켰다. 그 이유는 이랬다. 이번 주 경마에서 어떤 말이 우승할 것인가를 알기 위함이다. 우승 경주마를 알아맞히지 못하면 심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2년 전부터는 아예 학교도 보내지 않고, 기도방에서 기도만 시켰다. 그러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제주지방경찰청에 구속이 되고, 두 딸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두 딸이 받은 상처와 고통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 남자의 기도는 우승 경주마를 알아맞히는 수단일 뿐이다. 요행으로 알아맞히면 기도 응답이요 틀리면 응답받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런 허무맹랑한 인간의 욕구성취를 위한 기도를 5년, 아니 50년을 계속한들 기도하는 사람이나 강요한 사람 모두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될 리는 만무(萬無)하다.
▶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기도가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의 유형들이 있다. 믿음으로 드리지 않는 기도, 죄를 품고 하는 기도, 용서하지 않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없다. 그리고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 역시 응답받지 못한다….
잘못된 동기(wrong motives)를 가지고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한 기도는 응답이 없다. 설령 이런 기도는 응답이 되어도 문제이다.
사람들은 왜 다투고 싸우는 것일까? 야고보는 사람들이 다투고 싸우는 원인을 마음속에 있는 정욕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야고보는 세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교회 안에서 왜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날까? 교회 안의 싸움이 일어나고 다툼이 생기는 이유는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인간의 부패한 욕심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약 4:1-3 / [세상의 친구]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움을 벌이고 분쟁을 일으킵니까? 그것은 여러분 속에 숨어 있는 악한 욕망 때문이 아닙니까? 2) 여러분은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빼앗아 가지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심에 못 이겨 싸움을 벌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여러분이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목적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자신의 쾌락을 구하는 데만 급급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욕심이 간절히 원하는 그것들은 우리가 서로 싸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절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음에서 얻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미워하고, 다투고, 싸워도 그것을 얻지 못한다. 야고보는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야고보는 우리가 얻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구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은 또한 아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라고 분명히 지적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모두 응답받는 것은 아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고, 찾는 이가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다 받고, 찾고, 열려야 하는데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대로 우리의 모든 기도 제목이 다 응답받지 못하고 있다.
야고보 사도는 그 이유를 우리가 구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욕을 쓰려고 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3절에 ‘정욕으로 쓰려고’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본문에서 ‘정욕’이란 곧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하기는 하는데, 이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는 데 쓰려고 잘못 구하고 있다. ‘하나님 저 벼락부자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의 이면에는 더 많은 재물을 통해 세상을 더 즐기며 살아가려는 악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의 깊은 곳까지도 다 관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정욕을 위해서 구하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볼 때는 그러한 기도가 응답받는 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결국 우리 영혼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런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다.
■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며 돈이 급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교회 건축을 하는데 돈이 급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돈이 나올 궁리가 없습니다. 제가 복권을 한 장 살 테니 하나님 꼭 당첨되게 해주세요!’ 목사님이 복권 판매소 가서 복권을 샀다. 집에 와서 이번에는 자기 가족들 다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복권을 붙잡고 간절하게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고 하셨죠? 하나님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서 기도합니다. 이 복권에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꼭 당첨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셨을까? 아니다…. 겉으로 보면 정말 믿음 좋은 거 같고, 언뜻 보면 그럴싸한 기도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 방법이 아니다. 결국, 복권은 꽝이 나왔다. 그럼 그 교회가 정말 그 복권 당첨이 안 되어서 망했을까? 아니다. 그날 이후 목사님은 자기 마음을 다시 정리했다. ‘그래, 내가 나 자신을 속였구나! 복권 당첨 돼서 교회 세웠다는 게 무슨 하나님의 영광이 되겠는가? 내 꾀에 내가 넘어갔구나?’ 그날 이후 목사님이 교인들과 함께 매일 밤 교회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했다. 하도 마음이 답답하고 간절하니까 목사님은 기도원에 들어가서 집중적으로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이와 같은 일이 있고 난 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교회는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나님께서 정말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교회가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성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헌금이 겨자씨가 되어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그 추운 겨울날 자신이 기도원에 들어가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 비록 교회의 어려운 재정 문제 때문에 기도원도 갔지만, 가서 하나님의 더 크신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을 그대로 주시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러이러한 것을 주십시오’하고 구했는데, 하나님은 ‘나중에 한 참 지나서 저것 저것을 주기기도 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 생각이 틀렸고, 하나님이 지혜로우시다는 것을 훗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모세는 자신이 40세에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후 40년 뒤, 모세가 80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모세의 강한 혈기를 낮추시고, 그가 의지하던 애굽의 권력과 보화가 다 사라진 후, 그의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는 훈련을 먼저 하시고 그를 사용하셨다. 모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모세보다 더 지혜로우셨다.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면 받는다. 그러나 구해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욕대로 구하기 때문이다. 구하면 받을 것이란 예수님의 약속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전제 속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는 결코 응답받을 수 없다.
다시 한번 3절을 보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여기서 ‘잘못 구함이라’라는 말은 ‘너희가 악하게 구함이라’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정욕을 위한 기도는 잘못된 기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실 때 악한 기도이다. 그러한 기도 자체로 이미 하나님 보실 때 악을 행하고 있다. 따라서 정욕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결코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의를 구하는 자는 구하지 않아도 구한 것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된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부와 명예나 원수의 목숨이나 자신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의 삶에 허락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정욕을 위한 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 보실 때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구한 것 외에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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