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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자: 2025.2.9 주일 낮 예배
- 말씀: 눅4:1-2/ 마태복음 4:7
- 제목: 그리스도인의 도전과 응전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찬양: 사랑은 하나님의 것- 서로 사랑하라
- 은혜의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오늘 이 시간저희 만나인들을 새롭게 하시고 붙들어 주시어, 성령 춤안하신 가운데 이 예배와 주님의 명령을 행하기에 적합한 그릇이 되게 하소서. 인간의 의지를 깨뜨리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종으로 저를 빚어 주셔서, 주님의 말씀 사역의 살아 있는 증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찬양: [새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 온 것
- 말씀 참조
마태복음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누가복음 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고린도전 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출애굽기 17: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 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 들어가는 말씀
하나님께서는 목적 하에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시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이 “광야에서 …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라는 구절을 통해 명확해집니다. 한 가지 목적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 우리가 시험 당하는 모든 측면에서 똑같이 시험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병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우리로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 주님은 인간적 본성을 가지시고 우리와 같은 연약함에 시달려보셨기에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2:18). “시험 받는”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기서 “시험대에 올리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상황으로 인해 시험대에 올려지고 시련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같은 시련을 겪으신 자로서 이해해 주시고 동정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1. 시험의 세 가지 - 마 4:3-4
이때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빵이 되게 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에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라고 쓰여 있다.”
첫 번째 시험은 온갖 종류의 육체적 욕망들을 포함하는 육신의 정욕과 관련됩니다. 우리 주님은 금식기간 동안 목마르고 굶주렸습니다. 기갈이면 감식이라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하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돌을 떡으로 바꾸어 보라고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명기 8:3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만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실로 우리가 먹는 것은 말씀입니다. 돌덩이는 악마의 음식이요 만나는 생명입니다. 우리 교회명이 만나인 것은 바로 생명의 말씀이요 주님의 몸이 바로 생명이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시험은 이생의 자랑과 관련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4:5-7). 마귀는 여기서 성경 구절 (시편 91:11-12)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대적하려 시도하지만, 주님은 다시 그에 반대되는 성경 말씀 (신명기 6:16)을 들어 당신의 능력을 남용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6)
마귀는 시편 91편 11절~12절 말씀을 들어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네가 뛰어내리면 천사가 와서 받쳐주도록 하나님께서 하실 거다. 네 발이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실 거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지 않느냐. 너 분명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대로 뛰어내려봐.”
우리 주위에 흔히 있는 마귀들의 궤계입니다. 믿지 않은 자가 믿는 자를 시험할 때,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서 데리고 노는 것이지요.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믿는 자가 왜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자업자득입니다. 그만큼 ~~답지 않은 것들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 말씀을 거절하셨습니다. 왜입니까? 분명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나, 여기서는 사탄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고백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말이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자리를 떠나면 됩니다. 굳이 대적하지 마십시요. 마음에 상처만 남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집니다.
세 번째 시험은 안목의 정욕과 관련된 것으로 (마태복음 4:8-10) 만일 예수님이 본래 오신 이유인 십자가 수난과 처형을 우회하여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 길이었을 것입니다. 마귀는 이미 세상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에베소서 2:2),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충성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주님의 거룩한 본성이 몸서리쳐질 일인데 주님은 날카롭게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대답하십니다 (마태복음 4:10; 신명기 6:13).
육신이 본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빠지게 되는 많은 시험들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 우리는 그러므로 승리할 수 있고 시험으로부터 해방된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체험하신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효과적으로 섬기지 못하도록 하는 이런 흔한 시험을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나아가 우리는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성경을 가지고 우리가 정확히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마귀의 권세는 무수한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 오지만, 모든 시험은 그 중심에 동일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즉,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 그것입니다 (요한1서 2:16). 우리는 오직 마음과 정신을 진리로 채움으로써 이러한 시험을 인식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 있어서 크리스천 용사의 갑옷은 오직 하나의 공격 무기,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에베소서 6:17) 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친밀하게 알면 우리의 손에 칼이 쥐어지고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2.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고린도전서 10: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도전에 매번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응전하여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고전10:13말씀에서 모세의 출애굽 당시의 하나님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와 음행, 주님을 시험하고 원망하는 것 등이 말세를 만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신약 시대의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기록됐다는 예표라고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서의 본보기를 주목하지 않고 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서 있는 자들이 아니다. 언제 넘어질지 모릅니다. 신명기32:35절 말씀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한 발은 현실의 안주에 한 발은 주님의 말씀 안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어떠한 시련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주 안에서 실족하지 않는 만나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각심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자라가야 한다. 우리의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피할 길을 내셔서 능히 시험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시험이 올 때 낙심하여 죄에 빠지지 않고 주님이 예비하신 피할 길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도전받는 것이 우리 삶의 현실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싸움입니다. 이는 마치 불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욥기 5장 6∼7절에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는 세 가지 싸움이 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입니다. 둘째는 인간과 사회와의 싸움이고 셋째는 인간과 마음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늘 도전을 당합니다. 여기서 지면 종이 되고 이기면 왕 노릇하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당하는 싸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죄의 도전을 받고 죄에 대한 싸움을 싸웁니다. 죄에 대한 도전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시편 38편 4절에는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죄가 우리들을 습격하고 우리를 도적질하는데, 우리가 이 죄에 대해서 응징하지 못하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됩니다.
또한 세상의 유혹과 탐욕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유혹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23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3장 5절에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죄악의 유혹과 욕심의 도전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고 도전 당할 때, 염려와 근심과 괴로움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고통 받으며 염려와 근심을 당하는 것에 대해 이상히 여길 것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고난은 모든 사람이 당하는 삶의 도전이요 괴로움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오직 응전하여 이길 것이냐, 패배하여 종이 될 것이냐의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3.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인생 가운데 우리는 수없이 도전을 당하는데, 응전해 이겨야 왕 노릇 합니다. 도전에 실패하면 개인, 가정, 생활, 자녀 뿐 아니라 사회, 국가, 집단이 종 노릇하게 됩니다. 삶에 여러 가지 도전이 다가올 때 사람들은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또는 “왜 다른 사람은 안 그런데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 왜 내게 이런 문제가 다가오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여러 가지 고통이 다가오고 도전이 다가올 때 이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저항하고 부정하면 고통은 더욱 심해집니다.
베드로전서 4장 15∼16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다가온 고통을 수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고통을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이 있으므로 도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한 약속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삶 가운데 도전을 당할 때 그에 응전할 수 있는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찾습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늘 읽고 공부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가 그 고난에 응전할 수 있는 말씀을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 말씀 없이 우리는 고난에 대해 응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마치는 말씀
예레미야 33장 3절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이상 우리는 도전이 올 때마다 엎드려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다가오는 심하고 고통스러운 도전이 지나고 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5년 입춘절인 지난 주에 3-4일간에 걸쳐서 엄청난 눈과 폭풍한설이 강타했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복된 날이 되어 이렇게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한 일기를 보입니다. 엊그제 몰아치던 폭풍한설도 지나고 나면 오늘처럼 좋은 날을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좋은 날만 주시면 감사하는 마음은 약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심한 도전 끝에 얻는 응답은 감사합니다.우리는 일반적으로 도전을 당하기 전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큰 시련과 환난, 질병의 도전을 당하게 되면, 그래서 마음이 깨어지면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 몸부림치고 매섭게 기도하게 됩니다. 뜨겁게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여 결국 도전은 극복되고 우리는 승리하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우리를 해하려던 그 어떤 마귀도 감당하게 됩니다. 몇 년이 걸려도 기도하여 이루리라는 각오와 인내로 우리 삶의 도전에 대한 응전을 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바울과 같이 도전에 대해 응전하면서 굳은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벽면에 걸린 말씀판입니다.
함께 빌립보서 4장12절로 13절을 봉독하시면서 용기와 응전의 각심을 다지시기 바랍니다.-빌4장10-13 말씀입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 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시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과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