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움
최명애
‘무소유’ 수필집에 담겨 있는 스님의 무소유 사상은 우리를 편안함으로 인도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송광사 불일암에 간 적이 있다. 가는 길에 무소유 길을 걸었다. 송광사 뒤 고즈넉한 산길을 지나 길 양옆에 대나무 숲길로 연결되는 오붓한 산책로다. 법정 스님을 생각하며 걷다 보니 종착지 불일암 마당으로 들어선다.
스님이 직접 지었다는 암자 건물과 나무 의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방명록에 기록한 후 스님의 사리가 모셔진 후박나무에 합장 삼배를 하였다. 앞마당에는 정성스레 채소밭과 정원을 가꾸어 놓았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신 스님의 청빈한 삶이 그대로 남아있다. 암자는 고즈넉하면서도 깔끔하고 단아하여 저절로 묵언수행이 되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살 만큼 살다가 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겼다. 살펴보면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있지만, 그 물건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인가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물건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구속하여 불미스러운 사회문제들을 많이 본다.
살림살이는 어떠한가. 결혼 초년 시절에는 지인들과 집 왕래가 잦았다. 이사하면 집들이하고, 애들 백일 잔치, 돌잔치를 집에서 했다. 그뿐인가. 어른이 돌아가시면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면서 큰일을 대비하여 그릇 및 기구들을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다. 이젠 모든 행사가 밖에서 이루어지기에 그 많은 그릇의 쓰임새가 없어졌다. 그런데도 자식, 손주가 오면 사용할 것이라고 처분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이삼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버리지 못하고 어느 구석에 보관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또 사서 보탠다. 자식들은 결혼하여 곁을 떠나고 있는데, 물건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 마음 한 곳을 짓누르고 있다.
물질을 하염없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욕심의 근원인 마음을 비워야 한다. 법정 스님은 소유하기 위해서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고 집착하면 괴로움을 겪는다고 한다. 집착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손에 쥔 물건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모두 내려놓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무소유에 이르면 비로소 집착에서 오는 괴로움이 없어지며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욕심과 집착, 아집을 버리는 것이 바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리라.
법정 스님은 난초 화분 2개를 선물 받아서 정성 들여 키우다 보니 집착이 되었고, 난을 기르면서 꼼짝 못 하게 되는 괴로움을 갖게 되었다. 다른 이에게 난을 보내고 나니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을 가졌고,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는 보기 드물게 주변 사람들에게 보시행을 실천하고 있다. 이웃에서 1개를 받으면 2개를 주는 행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욕심을 가지지 않아도 항상 주변에서 챙겨준다고 한다. 그 또한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이 아닐까? 욕심 없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 늘 마음도 부자고 주변에서 챙김을 받게 된다고 한다.
마음을 비우면 조그만 한 것 한 개를 가져도 고마워하고 행복해한다. 장자는 “모든 것을 버렸을 때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 된다.”고 했다. 이해하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어 실천하려고 마음을 다잡지만, 나의 욕심은 언제나 역행하고 있다. 작은 것이 있으면 큰 것이 필요할 것 같고 망치가 있는 데도 장도리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수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첫댓글 무소유는 법정스님이 우리에게 던진 영원한 화두라는 생각입니다. 결코 놓아 버릴 수 없는 생의 화두!
늘 가보고 싶던곳 다녀오셨군요. 화두처럼 무소유를 들어보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늘 부끄럽습니다.
가족들과 다녀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무소유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생각을 바꾸는 것 같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만고 불변의 진리이지만 사람들은 소유 앞에 늘 마음이 약해집니다. 더욱 매진하여 훌륭한 작가가 되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마음을 비우려 하면 오히려 고통이 되는 법. 알면서도 실천 하지 못하는 것이 중생의 심기가 아닌가 합니다. 요양보호사의 보시 행이야 말로 무소유의 참 모습인것 같습니다. 무소유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