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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집트를 떠나 르비딤 시험에 이르기까지
/ 아말렉과의 전투에 임하는 자세
아말렉과 싸우기 위해서는
계명에 대한 순종심을 가지고
전투 중에 있는 쇠약한 마음을 위로 들어 올려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싸움에 지쳐 믿음이 흔들릴 때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유형의 진리를 동원하여 적과 싸워보자.
원제: Bible Study Notes/합리적 이해
지은이: Anita S. Dole
옮긴이: 배제형
머리말
지나 온 출애굽기편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몇 가지 사건들,
즉 홍해를 건넘,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꿈, 엘림에서의 휴식,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음 등등을 간략히 회상하며 본문을 시작한다.
지난 공부와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제일 중요한 생각은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고 보호해주셨다는 것이리라.
성 서 본 문: 출애굽기 17장 1-1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교리 요점
- 주님께 도움을 꾸준히 구할 때만이
우리는 자신들의 시험을 극복할 수 있다.
- 우리가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알기 위해 말씀을 공부할 때
주님은 그 말씀의 의미를 보여주실 수 있다.
-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 우리를 낙심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악이다.
- 낙심(discouragement)은 정말 이기적이다.
부모를 위한 노트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월절을 기념한 바로 그 날 밤에
그들은 에집트로부터의 여행이 시작되었고
주님은 그들이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셨다.
이 여행은 백성들이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게 되긴 했지만
이 모든 여행기간 동안, 주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 앞에 서서 가셨다.
그 뒤 어떻게 파라오의 마음이 바뀌어
이 백성들을 추격하도록 홍해까지 군대를 보냈는지,
어떻게 홍해가 이 백성들 앞에서 갈라졌는지,
또 이들이 건넌 후 에집트의 군대가 추격을 계속하여
바다 속에 진입하자 바다물이 합쳐져 몰사했는지 등은
우리 모두 기억하는 줄거리들이라고 믿는다.
그 뒤에 두 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쪽으로 인도해갔다.
우리가 자아와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이 노예 생활임을 깨닫고
주님께 순종을 결심하며 주님이 “복되다”고 부르시는
일련의 삶을 향한 우리의 길을 발견할 때
에집트에서 거룩한 땅으로 향하는 우리의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 초반전에야 누구든지 열심을 내고 열정적이며
길은 우리 앞에 열려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를 낙심시키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는 하나씩 인식하고 극복해야 할
많은 나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련과 실망이 함께 하는 광야 여행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17장의 오늘 본문은 이런저런 시련 중에서 두 개를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으로 가는 길에
르비딤이라 불리는 메마른 계곡을 통과하는데 목이 몹시 말랐다.
사마리아 지방의 우물에서 우리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4:13-14)”
모세가 호렙의 바위를 지팡이로 쳤을 때 솟아난 물은
위 구절과 똑같은 생수(living water),
즉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에서 출원되는 진리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이
바위(Rock)와 말씀(Word)으로 불린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 목마름이 해결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즉각 첫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새로운 진리를 배울 경우,
그것을 사용하여 자신 속에 든 어떤 악을 극복하기 전에는
그 진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낮은 계곡에서 위로 들어 올려
도움을 주시는 주님을 꾸준히 바라보아야 하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우리의 모든 선한 결의와 원리들은
우리를 지탱시키고 굳건히 하는데 사용되어야만 한다.
제 1반
학습시간의 대부분을 르비딤에서 일어난 두 사건에 할애해보자.
모세가 산꼭대기에 서서 두 손을 들었을 때
그는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또 홍해를 건넌 일과 만나를 주신 것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의 학습에서는 여호수아의 이름과 역할이 우리에게 새겨지는데
이는 이것이 그가 성경 이야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주된 교훈은
주님의 끊임없는 함께하심과 도움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월절 음식을 먹었을 때
그들은 이미 에집트를 떠날 채비를 완료하고 있었음을
지난 공부를 통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급히 에집트를 떠나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여행했다.
그들이 모두 떠난 뒤 바로가 마음을 돌이켜
그들을 되돌아오게 하고자 군대를 보내 추격했다.
이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막 도착했을 때 그들을 따라잡았고
이 백성들은 그들의 탈출이 실패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백성들을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하셨다.
먼저 주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 백성 뒤쪽 주위로 이동시켜 에집트 군대가
그들을 보지도 못하고 접근도 못하게 하셨다.
그 다음 홍해의 물을 뒤로 물러나도록 함으로
그들이 마른땅 위를 건너게 하셨고
그리고 마침내 에집트 군대가 그들을 추격하려하자
바닷물을 다시 되돌려 그들 모두 물에 빠져 죽게 하셨다.
백성들은 거룩한 땅에 도착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해야 했다.
제 2반
본 장은 우리가 광야 여행길을 지도로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시내산을 에집트와 거룩한 땅과의 지리학적인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늘 본문의 두 사건에서 강조해야할 교훈은
우리가 주님께 의지할 때마다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보자.
지도를 펴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뒤
지나간 코스를 짚어보기 바란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그들은 마라에서 일단 멈추었는데,
거기서 주님은 모세에게
어떻게 쓴물을 달게 만드셨는지를 보여주셨고,
열두 개의 샘이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 서 있는
엘림에 이르러 그들은 휴식을 갖기도 했다.
제 16장은 메추라기와 만나라 불리는 기적의 양식이
공급되었음을 말하고 있는데
이 양식은 광야생활 40년 동안 매일 공급되었다.
그런 다음 오늘 본문이 시작된다.
이 백성들은 해안가를 떠나 시내산을 향하여 여행하고 있었다.
홍수 때는 급류가 흘러내리지만 지금은 메마른 상태다.
일반적으로는 시내산을 계명이 주어진 특정 봉우리로 생각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산맥을 때로 호렙산이나 시내산이라고 부른다.
또한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전투를 치러야 했다.
아말렉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종종 이스라엘의 적으로 언급되는데
단어 아말렉(Amalek)이란 ‘계곡에 거주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들은 특히 골치 아픈 공격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신명기 25장 17-18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아말렉 사람들은 패배했고
모세는 르비딤에 제단을 세워 아말렉족과 싸울 때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언제나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념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기드온 지휘 하에서 그들과 싸워야 했고,
그리고 그 후에는 사울 지휘 하에, 또 다윗 지휘 아래에서
다시 그들과 싸워야 했다.
제 3반
오늘 공부의 포인트는
우리가 주일학교나 교회에서 배우고 이해한 모든 진리를
일상생활이나 일상의 사고에 꼭 활용해야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다.
이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고향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는
길고도 고된 여행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는 우리의 개혁과 거듭남은,
즉 우리의 천국적인 고향으로의 여행은 길고도 느린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12장부터의 모든 사건은
우리에게 있게 되는 개혁(reformation)의 시기를
영적 의미로 묘사해 주고 있으며
이 시기란 우리가 자신속의 결점들을 인식해서
하나씩 하나씩 고쳐보려고 노력해 가는 때를 말한다.
광야 여행 동안 이 백성들은
하느님의 법을 상징하는 모세에 의해 인도되었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 앞에서 이동한
이 두 기둥에 의해 인도되었으며
백성이 멈추기를 원하실 때는 그들은 가만히 멈추어 서 있었다.
이 기둥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현존(presence)을 표징한다.
스웨덴볽은 말하기를,
주님은 그것들을 통해 그분의 현존을 분명히 하신바
그것은 실제로 천사들의 집단이었다고 한다.
주님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이는 우리와 함께 하는 천사들은
언제나 우리가 배운 진리를 상기시켜주고
그 진리에 순종하도록 권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배우려는 열망으로 말씀을 읽을 때
주님은 바로 이 천사들을 통해 말씀 안에 있는 진리를 보여주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씀의 문자를 읽을 때
우리와 함께 있는 천사들은 그 내적 의미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무사히 건너고
추격했던 에집트 군대는 몰살된 놀라운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한 뒤 뒤따르는
첫 실제의 시험을 그려준다.
이 시험이 올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벅차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보다 주님을 믿고 전진한다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를 덮친 적이
정말 얼마나 미약한 존재였던가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또 광야에서의 처음 몇 주 동안의 이야기,
즉 어떻게 주님이 마라에서 쓴 물을 단물로 만드셨는가,
어떻게 엘림에서 백성들을 쉬게 해주셨는가,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할 때 어떻게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매일의 양식을 위해 만나를 공급하셨는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시내 산으로 가는 길에 산 사이의 협소한 계곡에 있는
르비딤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을 공부하고 있다.
먼저 이 백성들은 길을 가면서 물이 없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는
자기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이 솟아나게 했다.
물과 바위(rock) 이 둘은 모두 진리를 상징하지만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진 진리이다.
바위는 선한 삶을 건설해야 할 기초되는 진리를 표징한다.
우리는 이 진리를 배우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진리는 때로 우리에게
고되고(hard) 팍팍한(dry, 메마른) 듯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오직
이 진리를 사용해 보려고 전력을 쏟을 때만 비로소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만족스럽고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문득 알게 된다.
그 뒤 우리에게는
새로운 진리를 실행에 옮길 기회가 주어지는데
우리의 이기심과 세상 욕망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잘못된 생각들과 자신의 결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들이 아말렉족이다.
이들을 더 살펴보려면 신명기 25장 17절-18절을 읽어보자.
신 25:17-18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우리가 "노력하는 데 지쳤을 때" 우리 마음에 떠올라
우리가 가장 약한 곳을 공격한다.
우리는 그들을 단번에 그리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전투에서 우리의 지도자는 여호수아인데
그는 “싸우는 진리, truth fighting”를 표징하고
나중에는 거룩한 땅을 정복하는 지도자가 된다.
모세는 언덕위로 올라가서 주님에게 그의 팔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우리가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주님의 법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그분께 도움을 요청하면 그분이 도우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론과 훌은 모세와 함께 올라가서 모세의 손을 받쳐주었다.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 주님께서 그를 모세의 대변자로 세워
파라오와 그 백성에게 나아가도록 한 인물인데
그는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한 법을 표징했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 중 하나인 훌은
우리의 스승과 부모가 이 가르침들로부터 우리에게
줄 수 있었던 특별한 것들을 표징한다.
즉 우리의 내적인 시험을 올바르게 대처하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극복하는데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이 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리하여 전투가 승리로 마무리된 후
모세는 르비딤에서의 이 일을 기념하는 제단을 쌓았다.
우리 모두 경험을 통해 어떤 것을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보통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생각한다.
그러나 승리도 경험이기에 우리는 그것들도 기억해야 하며
특히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분이 주님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르비딤에 있는 제단의 이름은 ‘’여호와 닛시’라 하였는데
이는 ‘여호와 나의 깃발’을 의미한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시리라"고 말했다.
그릇된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서 떠오를 때는 언제든지
모세의 이 말을 기억해야 하며, 그런 다음 주님께 도움을 구하여
이 생각들을 몰아내어야 할 것이다.
기본이 되어줄 상응공부
바위 = 근본 되는 진리
물 =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진리
모세 = 신성한 법
여호수아 = 싸우는 진리
아말렉 = 내심 속에 있는 악에서 비롯된 거짓
제 4반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자들은
이집트를 떠나 광야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따라서 광야를 배회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이야기는
그들이 인식해야 할 시험에 대한 대비와 투쟁에 따르는 기술을
보여주는데 매우 실용적인 가치가 있다.
우리는 때로 만일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 있었다면,
즉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우리 앞에 계속 보고,
우리가 통과하도록 홍해가 갈라졌다가
그 뒤 그것이 우리의 적들을 덮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또 기적적으로 달게 되기 전후의 마라의 물맛을 보고,
메추리를 먹고, 날마다 만나를 모았다면
우리는 결코 불평을 하거나
다시는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 자신의 공통된 경험에 대한 상징적인 그림이다.
말씀은 언제나 구름(불)기둥으로 앞장서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주님은 우리 전 인생을 망라하여 우리를 보호하고 먹여주셨다.
그런데도 고난이나 시험이 올 때마다 우리는
불평하고 흔들리고 의심한다.
오늘 본문에서 홍해를 따라 남쪽으로 여행하던 이스라엘 자손은
시내 산으로 가는 도중에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르비딤이라고 하는 좁고 건조한 계곡으로(wadi, 와디) 올라가며
목마름에 대해 다시 불평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목마름(thirst)이
진리의 결핍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떤 선한 교인이, 어쩌면 그 자신이
임박한 문제에 직면하여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왜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나?’ 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거의 돌을 던질 정도로
모세에게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 순간 주님은 대답하신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 오너라.
나일 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오너라.”
이것은 여러분이 교회에서 인정해 왔던 몇몇의 원리와
과거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현 문제에 적용하라는 의미이다.
“호렙의 바위로 가서 네가 가진 지팡이로 바위를 쳐라.
그러면 물이 터져 나와 이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
호렙의 바위로 가라는 것은
말씀 속에서 발견한 진리로 가라는 것이고
지팡이로 바위를 친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 속에서 발견한 것을 사용하려는 진정한 의도를 가지고
말씀으로 나아가라는 분부이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진리를,
즉 생명수(the water of life)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주님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어떤 적이 숨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이런 적을 인식하고 싸울 때까지는
더 이상 아무런 발전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계신다.
그 적이 바로 아말렉이다.
아말렉이라는 이름은 ‘계곡에 거하는 자’를 뜻하는데
아말렉은 아브라함 계통의 퇴조된 분파의 하나로서
우리의 초기 자아의지나 이기심의 지속적인 영향을 표징한다.
신 25:17-18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아말렉은 매복하여 기다리다가 이스라엘을 뒤에서 공격하여
허약한 낙오자들을 쓰러뜨린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가 피곤하고 낙심할 때
우리의 모든 오래된 나쁜 습관들이 종종 불쑥 튀어 나와
우리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호수아는 본문의 전투에서 지도자로 처음 언급되는 인물인데,
후에 그는 모세를 대신하게 된다.
그는 싸우는 진리(truth fighting)를 표징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여호수아의 지도력만 가지고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 만큼 잘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젊을 때 진리를 사용하려는 전투들에서
그것이 다른 사람과의 논쟁이든,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과의 논쟁에서든 간에
우리는 아직 진리를 사용하는 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종종 상대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주님은
아주 은밀히 뻗쳐오는(insidious) 시험까지도
우리가 정복해낼 수 방법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아직 모세에 대한, 즉 계명에 대한
단순한 순종의 원리를 갖추고 있다.
이 순종은 우리 삶에 주님의 능력을 불어넣는다.
모세는 언덕위로 올라가서 주님을 향해 그의 팔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심을 고수해야 하고
우리의 싸움 중에 있는 쇠약한(low) 상태 위로 마음을 들어 올려야 하며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진실하게 믿는 게 아님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모세는 힘이 빠지자 바위 위에 앉았는데
이는 우리가 마치 주님 안에서 휴식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아론과 훌이 그의 팔을 떠받쳐 주었다.
오늘 본문의 모세, 아론 그리고 훌은 세 가지 수단을 그리고 있다.
이 수단을 통해 주님은 우리가 지치고 낙심할 때
우리를 공격해오는 시험을 뚫고 우리를 지탱시켜 주신다.
모세는 직접 말씀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아론은 교회의 교리로부터 오는 진리를,
그리고 훌은 우리가 진리를 이해하고 적용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회와 주일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나타낸다.
얼마 후 출애굽기 24장 13-14절에서
모세가 계명을 받으러 산에 오르려 할 때 그는 백성들에게
만일 자기가 없는 동안 지도가 필요하게 되면
아론과 훌에게 가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온 진리를 꾸준히 의존해 가노라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즉 우리가 맞닥뜨린 이기적 욕망의 ‘해’가
질 때까지 우리를 참고 견디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시험을 이길 때
이 승리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되고
모세처럼 주님께 제단을 세워 승리의 자리를 표시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찾기만 하면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힘을 주시려고
우리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And when we conquer, we should not take the credit to ourselves
but should, like Moses, build an altar to the Lord
to mark the place of victory so that we may remember
that the Lord will always be at hand to give us strength
if we look to Him.)
제 5반
시험과 의심과 낙심의 시기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두 가지 교훈은
말씀에 대한 올바른 접근과
주님을 꾸준히 의지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우리를 다스리고 구원하시는
주님과 그분의 능력을 믿고 또 말씀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의 위급한 상황에서 그분의 도움을 충분히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리에 띠를 두르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은 채 첫 유월절 음식을 먹고 즉시 길을 떠나
그들의 첫 번째 큰 추진력이 꺾이기 전에 홍해에 도착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좌절에 이르렀고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한 가지 선한 결심에 힘입는 것만 가지고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음을 말해준다.
홍해에서 에집트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의 뒤쫓아 왔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 속의 옛 습관들이 아직도 건장한 채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인식하고 또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을 극복할 수 없음을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와 멸망 사이에 서 있는 것은
우리의 수호천사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뿐이시다.
(We need to recognize this and also to feel our inability
to overcome them in our own strength.
It is only the Lord present with us in the form of
our guardian angels who stands between us and destruction.)
스웨덴볽은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여행하는 동안 그들을 이끌었고,
또 추격해 온 에집트 군대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숨기기 위해
홍해에서 밤새도록 그들 뒤에 서 있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실제로 그 안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천사들의 집단이었다고 한다.
시편 27편에서 우리가 읽는다.
“나 어려운 일 당할 때마다 당신의 초막 안에 숨겨 주시고..”
사실 우리가 세상의 노예 된 상태에서 진실하게 자유로워지기 전,
우리는 주님에 의해 우리들 앞에
‘길이 열리는 것을 보는 경험’을 더 많이 해야 하고
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를 뒤쫓던 적들의 무력함이 인정되어야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홍해를 건너는” 모습이다.
마라에서의 쓴물이 단물로 되는 이야기,
엘림에서 충분히 휴식하는 광경,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시는 이야기를 우리는 공부해 왔다.
이러한 광야에서의 초기 경험은 우리의 삶을 개혁하려는 노력 중에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는 첫 번째 혜택을 그려주는데
이는 광야 여행 전체는
거듭남이 시작되기 전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개혁, reformation”의 시기에 대한 묘사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이스라엘 백성의 배고픔은
선함이 없는 우리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그려준다.
만나를 주시는 이야기는
주님께서 우리 삶을 강건케 해주시기 위해
매일매일 그분의 선함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내용이다.
목마름이란 진리가 필요하다는 우리의 느낌을 표징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내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하는지..
만나가 공급된 후
호렙의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는 내용이 이어진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 오너라.
나일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오너라.
내가 호렙의 바위 옆에서 너 앞에 나타나리라.
네가 그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나와 이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
이것은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진리를 발견하는 우리의 패턴이다.
즉 우리가 “내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할 때마다
따라야할 패턴이다. 이 구절을 보다 상세히 이해해 보자.
모세가 우리의 지도자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법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고
인정하는(acknowledgement) 것을 표징한다.
호렙의 바위는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말씀(Word)이다.
주님은 항상 호렙의 바위 위에서 우리 앞에 서 계신다.
따라서 필요한 진리를 위해서 우리는 말씀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이것에는 그 밖의 특별한 지시가 있다.
즉 교리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원리를 뜻하는
이스라엘의 장로 몇 사람과
과거의 위기 속에서 경험한 주님의 능력 곧 지팡이를
우리는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팡이를 손에 들고 바위를 쳐야 한다.
이는 즉, 그 진리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말씀을 한낱 사람의 작품으로 읽는 사람이나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증을 찾기 위해 말씀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물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여행 초기에 반드시 배워야 하는 교훈 중 하나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살면서 여러 차례 필요로 하게 되는
또 다른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불)기둥을 따라 다니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었다.
홍해를 건널 때 그들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고
주님은 그들의 길을 열어 주셨고 적들도 파괴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 뒤의 경험들에서도 그들은 단지 구하기만 하면 되었고
주님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주셨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싸워야 할 적과 부딪치도록 허락되어졌다.
우리가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을 조금 나아가
자신감(confidence)과 힘을 조금 얻자마자
우리는 반드시 이 힘을 써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말렉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들은 르비딤에 있었고
내륙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짜기를 지나고 있었다.
아말렉은 ‘계곡에 거하는 자’라는 뜻으로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은 우리의 의지 속에 있는 악,
또는 의지의 ‘쇠약한(low)’ 상태를 그려주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아말렉 사람들이
적진의 후방에 매복해 있다가 튀어나와
낙오자들과 지친 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임을 배웠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의심과 낙심, 또 성급한 판단이나 말에 빠져드는 시험에
저항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느끼던가!
우리의 의지력은 약하고(at a low point)
우리의 개인적인 약점은 갑자기 드러나 통제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때 주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진짜 본성이 무엇인지,
주님의 보호와 도움이 없이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시는데 우리에게는 이 계시가 필요하다.
모세가 나서서 말하기를
“.. 나는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소!”
이것은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들어 올려
과거 그분이 도와주신 것을 기억하며
힘을 얻기 위해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바라보려는
우리의 즉각적인 노력(attempt)을 보여준다.
(이는 시험에 응전하는 우리의 자세다.)
모세는 우리가 직접 말씀을 읽는 가운데 발견하는
진리로서의 법을 상징하는데
이 법은 우리가 의지해야할 첫 번째 것이다.
모세의 팔이 들려 있는 한 이스라엘은 우세했지만
그러나 모세의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우리를 돕기 위해
‘..을 하지 말라.’ 는 엄격한 말만 가지고 싸우는 것에 싫증이 난다.
(주님의 법은 간단히 말해 십계명으로 “.. 하지 말라”가 주축을 이룬다.
우리를 떠받치기 위해 “..하지 말라”라는 강경한 자세만 가지고
전투를 해나가면 피곤해져 힘이 빠진다는 말이다.)
스베덴보리는 오늘 본문의 모세, 아론, 훌이
우리에게 세 단계로 중재되는(in three stages of its mediation)
신성한 진리를 표징한다고 말한다.
모세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진리를 표징한다.
즉 말씀 자체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다.
그리고 이제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어질 아론은
처음부터 모세의 대변자가 된 사람인 바,
그는 교회의 교리로 설명된 말씀에서 온 진리를 표징한다.
훌은 이 백성들의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그는 아마 우리의 목사나 교사, 그리고 우리 자신의 묵상이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진리처럼
이 중재하는 진리가 또다시 중재된 것을 표징한다.
(Hur, who was one of the leaders of the people,
represents this mediate truth again mediated,
as, perhaps, it comes to us from our pastors and teachers
and in our own meditation and experience.)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가 지치고 낙심되어
자신의 약함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우리는 말씀에서, 교회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으로부터
주님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대해 배운
모든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갖다놓고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팔을 좌우에서 각각 붙들어 떠받치니
해가 질 때까지 그의 팔은 처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그 백성을 칼로 쳐 이겼다.”
우리는 우리의 바위이신 주님께 우리의 믿음을 두어야 하며
자기 사랑의 해가 지고 우리가 승리할 때까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고 강하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분의 도우심에 대해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모세는 이를 기억하기 위해 제단을 쌓았고
그 제단을 “여호와 닛시, Jehovah nissi”라 불렀다.
그것은 “주께서 사령기를 드셨다. the Lord my banner.” 라는 의미다.
우리는 다음 투쟁에 대비하여
우리를 강하게 하기 위한 경험을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참고 문헌
스웨덴볽의 저서 「천국의 신비 제 8555항」에서
“앞장에서는 내적 의미로 세 번째 시험이 다루어졌고
그것은 선의 결핍에 대해서였다.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바,
이 장에서는 내적 의미로 네 번째 시험이 다루어지고
그것은 진리의 결핍에 대해서다.
이 시험을 뜻하는 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물이 없어 불평한다.’ 는 구절이고
그러므로 신앙의 진리가 주님에 의해 그들에게 주어졌는데
이것이 ‘호렙의 바위에서 나오는 물’ 로 나타내어졌다.
그런 다음 ‘악에서 온 거짓’과
‘신앙의 진리와 선’ 사이에 전투가 뒤따르고
이 전투가 아말렉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투로 표징되고 있다.
신앙의 진리와 선 가운데 있는 이들이
주님을 향해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는 승리하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는 지는 모습이
모세가 그의 손을 들고 있는 동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승리하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지는 것으로 표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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