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3.11. 12) 말씀/ 마태 13:31-32
주님 정원에 심겨진 겨자씨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태복음 13장 32-33절을 보면 천국을 겨자씨로 비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러분 겨자씨 본적이 있습니까? 겨자나무는 이스라엘에 오는 순례객들이 가장 보고싶어하는 성지 식물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겨자씨의 천국 비유를 들어서 많이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겨자나무를 보면 모두 크게 실망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데 눈 앞에 펼쳐진 갈릴리 호수를 보면서 은혜를 받다가도 그 주변에 잡초처럼 자란 겨자나무를 보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것은 겨자나무가 너무나 볼품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겨나나무를 보면 눈이 동그래져서 이렇게 되묻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저게 무슨 겨자나무에요? 그냥 잡풀 이지..!" "어떻게 저게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가 그 가지에 깃들어요? 혹시 잘못 아신 것 아니에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와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겨자는 사실 일, 이년생의 초본입니다. 겨자씨의 크기는 보통 2~3㎜ 정도 되는데 그런 교자씨가 초본에서 관목으로, 그리고 관목에서 큰 가지가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이게 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겨자는 보통 1m 정도, 아무리 높게 자라봤자 1.5m 정도에서 성장이 그치는 그냥 잡풀 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잡초처럼 자란 겨자 풀을 한 번이라고 봤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를 우리식으로 상상해서 잘못 이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 봤기 때문에 몰라서 나름대로 생각하며 오해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한 말씀을 읽을 때, "겨자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 정도의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 겨자씨 나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렇게 볼 품 없는 겨자씨 잡풀의 한 알이라도 예수님이 정원에 갇다 정성것 심으면 엄청나게 성장해서 새가 깃 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 들려주신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잡초처럼 피는 겨자 풀들을 보았던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겠습니까! 당시에 갈릴리 사람들은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이방의 갈릴리'라고 멸시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겨자씨 잡풀과 같은 그런 존재들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셨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 비린내 나는 어부 세리, 열혈당 등 이들이야말로 잡초 같은 정말 볼품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거두어 하나님의 정원에 정성것 심고 물을 주어서 기르시면 수많은 새들이 깃드는 인류의 거목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은 얼마나 큰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가졌겠습니까! 렐루야!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비유를 들으실 때 그냥 겨자씨 자풀들이라 하시지 않고 겨자씨 한 알 이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를 자루에 담아 여기저기 뿌리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 알을 가져다가 심는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겨우 그 작은 잡풀의 작은 씨입니다. 그런데 그 한 알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새들이 깃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작은 씨앗 한 알, 한 생명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이 말씀은 참 은혜가 되는 말씀 이었습니다. 하나가 하나님의 역사의 원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부흥리라는 것을 수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당장 많은 수가 늘어나는 것을 기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양들도 20-30명 몰려와야 흥분이 되고 믿음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갔는지 한 둘만 남고 나머지느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정원에 심겨서 자라고 있는 영혼들만 실제로 역사 속에 남아 성장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채마밭에 심기워진 영혼만! 중국 유학생 양들도 그동안 얼마나 많이 왔다 갔다 했습니까? 그런데 코로나 시대가 지나고 유행이 지나고나니 현재는 염단단 동방만 주님의 정원에 남아서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까? 한번에 오천명씩 몰려 들어 예수님은 산에서 산상 수흔 말씀을 하셨고, 바다에 배르 띄워 설겨를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에 바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남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사람들 유다를 빼거 11제자뿐 이었습니다. 부흥이란 외적으로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 입니다. 세상 저주받은 땅에서 살고있는 한 생명을 옮겨다가 하나님의 정원에 심어서 가꾸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저 잡풀에 불과한 겨자씨가 하나님의 정원에서 잘 키어 성장하고 자라 큰 나무가 되어 온갖 새들이 깃들이고 노래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 그것이 부흥입니다. 한 사람의 내면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일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저한 부흥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세요. 오랜 구속 역사를 계획하신 하나님은 딱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 숭배하는 집안에 썩고 있는 75세의 늙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정원에 옮기시고 25년 동안 물을 주며 가꾸셨습니다. 그는 믿음 안에서 잘 자랐습니다. 마침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지작된 믿음의 역사가 또 한 사람 이삭, 또 한 사람 야곱으로 그리고 열두 아들을 통해서 계승되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약속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은 후손들을 허락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브리서 11:12) 죽은 자와 방불한 딱 한 사람이었지만 나중에 하늘의 뭇별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후손을 양육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부흥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 사람 요셉!.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흉년에서 구원하시는데 딱 한사람 요셉을 부르셔서 사용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도 얼쩔 수 없는 일곱 해 대 흉년에서 약속의 자녀들인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이 다 굶주려 죽게 되는 위기 상황에 대처할 사람은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옥중에 갇혀 있는 죄인 한 사람 요셉이면 충분했습니다.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해 야곱과 11형제들 그리고 애굽과 온 세상이 다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역사도 마찬가지로 광야에서 양 똥치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모세 한 사람을 불타지 않는 털기 나무에서 부르셔서 60만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은 아담 한사람으로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 22) 나와 너 온 인류가 저주 받아 죽게 된 것은 아담 한 사람의 죄,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말씀을 거긴 죄 때문 이었습니다. 구원 역시 한 사람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한 분으로 인해 모두가 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겨자씨 한 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많은 수가 필요하지 않고 딱 한 사람, 믿음의 한 사람, 딱 한 사람 순종하는 한 사람 이면 충분 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 아무리 큰 세상도 하나에서 시작되었고, 하나로 인해 망했고, 하나로 인해 회복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세상이 다 죽게 되었고, 예수님 한 분으로 세상이 다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는 한 사람의 역사입니다. 한 사람이 천 이고, 한 사람이 만 이고, 한 사람이 열국 이고, 한 사람이 우주입니다. 우주 교회 역사는 겨자씨 한 알의 역사입니다. 아멘, 아멘!, 지난주 현옥 집사님의 전화를 받고 김종식 기원님이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흥분이 되고 기뻤습니다. 그냥 한 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2년동안 하나님이 우주교회 독서모임 채마밭을 일구시고 준비하셨는데 드디어 겨씨를 보내시는 구나! 그런데 동시에 이명남 집사님도 전화가 와서 그동안 자신이 도와주고 굦하였던 색소폰 동아리 동행에서 활동한느 새분이 독서 모임에 관심을 갖고 오고 싶엏나다고 하였습니다. 기쁘면서 동시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채마밭이 작은데 한꺼번에 4분이 오면 어떻하지? 좁지 않을까? 의자를 더 놓아야겠네...어떻든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 13분이 주일 예배보다 더 많은 수가 참여하여 모임을 갖고 헤어졌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한 사람이 전체이고 세계입니다. 김종식 기원님 한 분이 오셔서 주님의 정원 채마밭에 심겨져 자라면 얼마나 큰 나무가 되겠습니가! 이는 거대한 역사입니다. 여러분들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읽어보셨지요? 반문객/ 김현종의 하나의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제가 처음 이 시를 읽고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우리는 확신해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민족 국가도 한 사람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하나가 같이 나 한 사람이면 세상은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현옥 집사님은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 큰 나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수많은 새들이 깃드릭, 꽃이 피고 냇물이 흐르는 숲이 있다는 것, 그 밀이 숲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김종식 기원님이 혼 자 온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미래 한 생애가 온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주님의 정원을 더욱 잘 가꾸어서 겨자씨 한 알을 정성것 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정성것 심어서 가꾸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지난 주 월요일 주영 정공에 가서 11월 예배를 드리고 았습니다. 한 열명정도 예배를 드리고 나서 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15년 이상 얘배를 드렸지만 여전히 직원수는 한 열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재중 집사님 한 사람이 어느새 거목으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재에는 책들이 가득 채워지고 마음 중심은 하나님 말씀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고 삶의 좋은 본이 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녁에 큐티 채마밭 손질을 하고 다음 날 큐티 말씀 교정을 하고 있는데 톡이 왔습니다. ”오늘 큐티말씀 하루종일 묵상하고 필서하고..성도님들의 댓글을읽고 답장해주시는 목사님의 글을묵상하다가..다시 본문에서 "주인이라"단어에 댓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맞습니다.우리는 종이 아니라 주인의 아들입니다. 역시 주인입니다.“ ”주인으로 살고싶습니다.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주인이 되고싶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부흥 목표를 주인이 되는 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정원에 심겨진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온 우주 공간으로부터 새들이 날아와서 깃들이는 역사입니다. 이것이 부흥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역사에 하나. 한 사람은 매우 중요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 한 사람이 주님의 정원에 심겨지고 잘 자라서 우주로 뻗어나가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가는 역사의 주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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