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7.16) 카드 빚에 시달린 인천의 한 가정이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어머니와 자녀 셋이 모두 참변을 당한 사건은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가 피부병에 걸려도 병원에는 데려가지 못하고 약만 발라주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이런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비교적 젊은 어머니가 자신의 몸소 낳은 어린 아이들마저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가정의 불운에 우리 사회는 모두 이를 동정하고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슨 罪라고!” , 죽은 사람도 불쌍하지만 “엄마, 나 죽기 싫어!” 라고 발버둥치는 아이들을 아파트 창문으로 억지로 떠밀어 죽이는 것은 그러나 아무리 여러 가지 상황을 참작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정당화되거나 미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이전 김대중 정부에서 유발한 신용카드 남발 유도 정책이나 이를 방조한 현 노무현 정권의 죄과를 물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복지정책의 부실이나 사회적 안전망 미비에 대해서도 무시하겠습니다. 빨리 한국 사회에 사회적 안전망과 약자 보호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자명한 결론으로 만족하기로 합니다.
단지 이 논문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들이 걸핏하면 자녀들을 앞세우고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한국인들의 어리석은 사고방식을 논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자녀들을 죽이는 한국식의 동반자살은 뿌리뽑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나의 계몽사상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2) 정신분석학의 진단
아이들과 동반자살한 엄마의 심리에 대해 정신분석학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혜신 원장(마음과마음 신경정신클리닉)의 말입니다.
"동반자살은 자신과 타인을 분화하지 못한 정신적 미성숙의 결과다. 애인이나 자식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 따라죽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개별적 주체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다. '내가 없으면 네가 고생할 거다'라는 생각, 그리고 그 고통에서 구해준다는 식이라 엄마는 타살에 대한 별다른 죄의식이 없다. 죽음을 구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심리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한국적 정서와 맞물려 더욱 강조되기도 한다. (미디어 다음 7.18)
(3) 법철학적, 윤리적 입장
위에서 정혜신씨는 동반자살하는 심리를 정신적, 심리적 미성숙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 - 자녀의 경우 이는 타자라고 보기 힘든 관계입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자녀일수록 부모들은 특히 엄마들은 아이를 자신의 일부 아니 자신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적 미성숙은 손씨의 사건에서처럼 윤리적으로 보아 책임이나 범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즉 정신적 미성숙이 면책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시간강사이야기(cafe.daum.net/dozent) 게시판에서 ‘바보’라는 ID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이 사건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전 죽은 사람이 너무 밉네여 것도 아이들의 인생까지 그들의 인생이 자기 것 이랍니까? 그리 힘들면 개인파산 신청하고 시설이나 기관에 아이들을 잠시 맡겨두고 본인도 잠시 보호해주는 시설에 가서 재기의 삶을 살겠다는 생각은 해봤는지, 힘들다는 말 듣고 도와주지 못했던 형제들의 가슴은 그 죄책감은 어쩌라고...시설이나 기관이 아이들을 잘 돌봐 줄텐데, 엄마와 약속하고 정기적이든 부정기적이든 찾아가고 함께 살날을 기약할 순 없었는지...부모교육도 필요하고 부모의 자격도 필요하고...할 일이 참으로 많네여”
저도 위의 ID 바보 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저는 더 나아가 생활고로 동반자살 아니 살인+자살하는 사람들을 배출하는 한국인들의 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역시 바보님과 같은 논리입니다.
저 역시 아이들 키우는 사람으로서 동반 자살을 시도한 손씨 부인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기는 합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흔히 고아라고 불리어 지는데 그 신세가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결손가정 아이들이나 고아들은 잘못된 길로 나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모가 없이 큰 자녀들이 반드시 사회적 낙오자나 부랑아나 범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라서 나중에는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부모가 없이 자라게 되면 물론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평생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동반자살하는 엄마들이 그런 생각 즉 부모 없이 아이들은 잘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죽여서 미리 그런 고통을 면하게 해 준다는 사고방식은 극히 불합리한 것입니다.
이는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지나친 속단이고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성장기의 고통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고통의 성장기 다음에 기쁨의 장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부양책임은 그 아이가 성년이 되기 까지 입니다. 그 다음은 아이는 법적, 도덕적으로 자유가 주어지며 성숙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갈 권리와 의무가 주어집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낳은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면 이는 ID 바보님의 말처럼 어린이 양육기관 , 고아원이든 입양기관이든 에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시설에 맡기면서도 서로 만나는 방법도 있고. 한국 사람들, 왜 이렇게 시련을 이겨내는 용기와 지혜가 없습니까?
서구에서는 평생 깨어나지 못하는 혼수상태 내지 식물인간 이라고 할지라도 환자의 동의 없이 보호자나 의사들 마음대로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합니다. 10 년 후 아니 50년 후라도 의식불명의 환자가 소생할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의식불명 환자에게서 환자의 동의 없이 생명연장 기구를 제거하는 것은 위법, 부당 행위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제 파닥 파닥하고 싱싱하며, 생의 활기가 넘치는 개구장이 꼬마들을 그 부모가 죽인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낳고 자기도움 없이는 아이가 살기 힘들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자기가 낳았기에 자기가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인권의식은 극히 바닥입니다.
만약에 동반자살 아니 살해한 그 어머니의 논리가 옳다면 이 땅의 모든 고아들과 장애자들 혹은 결손가정 아이들은 모두 죽음보다 못하다는 말입니까?
아니다! 아니다! 설령 부모 없이 들풀처럼 거칠고 외롭게 자라났어도 이제는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가꾸는 많은 보육원, 고아원, 홀트 아동복지 출신들이 있습니다.
가족 동반 자살의 논리는 한마디로 한국의 인권경시, 인격 무시에서 이루어 지는 비인간적인 현상입니다. 물론 그런 사회적 여건은 반드시 고쳐져야 하겠지만 아이를 개인소유물로 보는 폐단은 이제 완전히 바뀌어 져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국가에서 아이를 부모로부터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리고 덧붙여 이런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잘못된 일방적인 사랑 혹은 과잉된 보호, 부양 책임의식 그리고 지나친 교육 열이 한국의 다른 청소년 인권 침해, 즉 입시지옥에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끝)
첫댓글이 뉴스를 접했을 때 더 기가막혔던 것은 "동반자살"이라는 문구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안다면 "자녀 살해 후 자살" 쯤으로 설명했어야 옳았을 듯한데....애들이 죽고 싶어서 죽은 것도 아니고...눈에 확 들어오는 말로 설명하려다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좀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첫댓글 이 뉴스를 접했을 때 더 기가막혔던 것은 "동반자살"이라는 문구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안다면 "자녀 살해 후 자살" 쯤으로 설명했어야 옳았을 듯한데....애들이 죽고 싶어서 죽은 것도 아니고...눈에 확 들어오는 말로 설명하려다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좀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