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누아르 영화의 진수는 뭐니 뭐니해도 영웅본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우룬파(주윤발)가 롱코트를 입고 성냥개비를 입에 문 채 쌍권총을 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바바리코트가 더 유행했고, 성냥개비를 입에 문 패러디는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입니다. 요즘은 성냥 공장이 대부분 문을 닫는 바람에 이쑤시개로 대치되었고, 2년 전엔 요즘 최고의 스타인 임영웅이 저우룬파를 패러디한, 이쑤시개를 문 광고가 한동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습니다.
그걸 보며 문득 이쑤시개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예전엔 식사하고 이쑤시개를 쓰는 이를 보면 ‘그걸 쓰니 잇새가 벌어져 음식물이 더 끼이지’하고 생각했습니다. 치과의사 소견도 대부분 그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제가 이쑤시개를 사용하게 되면서 과연 이 말이 맞는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양치질로 잇몸 사이의 음식물이 거의 제거가 되었는데 지금 그게 덜 된다는 건 나이 듦에 따른 이 사이 벌어짐의 요인이 더 큰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식사하고 이쑤시개를 사용합니다. 저도 얼마 전부터 사용하게 되었는데, 치간칫솔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지인들을 보면 이가 좋다고 자부하는 이는 아직도 대부분 이쑤시개를 쓰지만, 이에 돈을 많이 들인 사람들-즉 이로 고생을 많이 한 이들-은 치간칫솔, 치실을 많이 쓰더군요. 저는 아직 이가 좋은 편이지만 이쑤시개를 버리려 합니다. 이 사이를 넓히는 주원인은 아닐지언정, 영향은 주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지인에게 문의하여 부정확한 지식을 좀 더 적확하게 바로 하는 노력은 언제나 재밌습니다. 즐거운 일입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흑색 김의겸이, 19년 기자 생활에, 보좌관 2명 포함 9명이나 되는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국회의원이, 그것도 제1당의 대변인이라는 자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터뜨린 작년의 청담동 술자리 녹취록 파동은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가 거짓이라 했고, 핸드폰 동선 추적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흑석-흑색선생이 터뜨린 가짜뉴스가 한두 건이 아닌데도 대변인 자리는 굳건합니다. 이러한데도 민주 지지층 70%는 청담동 술자리가 아직도 사실인 걸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확증편향도 이 정도 되면 현상이나 증상이 아니고, 병증입니다. 야만 그런 게 아니고 여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진보 진영만이 아니라, 보수는 차라리 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는 시점인데, 답답한 심사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누가 시원하게 뚫어주려는지 돌아보지만 기대난망입니다. 올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만난 업체 사장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사업의 앞날이 불투명해 불안하기만 한데 더 갑갑한 건, 정치도 경제, 사회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어려운 시기에 정책자금 융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시작이라고 위로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끝내 어두웠습니다. 초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제게도 긍정의 기운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로 고생을 많이 한 분들이 제대로, 더 이와 잇몸 건강을 챙기듯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심기일전, 확증편향 일변도에서 벗어나 집단지성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희망 없이 꽉 막힌 상황이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이라 믿고 싶습니다.
한쪽 문이 닫힐 때에는(모셔온 글)===============
"신은 한쪽 문을 닫을 때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을 열어 놓는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잊지 못할 대사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맞이하게 되는 그 어떤 절망적인 일이라 해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 영화에서는 친절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시련에 빠져 그대가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다고 믿는 순간에도
어딘가에 길은 있습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위를 보십시오.
하늘은 뚫려 있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신은 우리에게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을 준다는 사실을..
-----박성철의 '누구나 한번쯤은 잊지 못할 사랑을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