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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남 부여 서동공원 궁남지(宮南池)를 찾아서 ③
-궁남지(宮南池)와 무왕(武王)의 사랑이야기-
이 궁남지는 원래 백제의 무왕(武王)과 신라의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사랑이야기가 서려 있는 무대입니다. 그래서 이제 멀리서 보았던 연못 궁남지 포룡정(抱龍亭)으로 향했습 니다.
사비길로 향합니다.
멀리서 잡아본 포룡정(抱龍亭)
궁남지의 섬에 있는 포룡정(抱龍亭)을 바라보니 운치가 빼어납니다. 이제 이곳을 찾아갑니다.
이 수레를 타고 가면 좋을 같은데...
가는 길에 만난 연꽃
눈을 돌리면 이런 연꽃을 만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꿈을 키우는 연꽃
서 계시는 틈에 살짝 한 컷~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또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숫타니파타-
셋이서 함께 섰습니다.
쌍련(雙蓮)이네요.
혼자서 가며, 게으르지 않은 성자, 비난과 찬양에 마음이 이끌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남에게 인도되는 일 없이 남을 인도하는 자- 이런 현자(賢者)들은 그를 성자(聖者)로 안다. -숫타니파타-
마치 연꽃이 흙물에 물들지 않듯이
용(龍 수행 완성자)은 온갖 (편견을) 떠나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고집해 논쟁해서는 안 된다. 마치 연꽃이 흙물에 물들지 않듯이, 성자는 평안을 설법하는 자이며, 탐내는 일이 없고 이 세상의 욕망으로 때묻지 않는다. -숫타니파타-
낮고 습한 진흙에서 연꽃은 피어난다.
高原陸地 고원육지 높은 언덕 육지에는 不生蓮花 불생연화 연꽃이 나지 않고 卑濕淤泥 비습어니 낮고 습한 진흙에서 乃生此花 내생차화 이에 이 꽃 피어난다. -유마경(維摩經)-
나, 여기 있어요.
연인처럼 -임종분-
풀 섶에 숨어 핀 강아지 꽃과 같이 그렇게 아주 넉넉하게 연꽃을 만나면 마음이 질펀해진다.
궁남지를 돌아 황포돛대에 서면 그렇게 아주 서운하게 들꽃으로 서서 기다린 연인과 같이
일편단심 품어온 아낙의 사랑 포룡정 정자에 묻어온 그리움 찾아 풍류를 읊는다.
덩달아 춤추는 여늬 바람과 같이 넘실대는 궁남지의 사화 가고 싶은 곳 연인의 바람으로 운다.
잠시 사색에 잠기다.
포룡정과 연육교
궁남지에 왔으니 다시 한번 궁남지에 대하여 백과사전을 빌어 알아볼까 합니다.
「궁남지(宮南池)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제 사비시대 의 궁원지(宮苑池)이다. 별궁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의 동쪽 일대에는 대리석을 팔각형으로 짜 올린 어정, 기와편, 초석(礎石) 이 남아 있다. 1964년 대한민국 사적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궁남지의 면적은 210,881㎡로 약 63903평이라 합니다.
「궁남지에 대해서 《삼국사기》〈백제본기〉 무왕 35년(634년)에 '3월에 궁성(宮城)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의 사방 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고 되어 있다. 백제 웅진(熊津)시대의 왕궁이었던 공산성(公山城) 안에서는 당시의 것으 로 판단되는 연못이 왕궁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함께 발굴된 바 있다.」
포룡정이 눈앞에
「《삼국사기》무왕 37년조에는 "8월에 망해루(望海樓)에서 군신(群臣)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39년조(年條)에는 "3월에 왕이 왕궁(王宮)의 처첩(妻妾)과 함께 대지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궁남지는 처음 만들어질 때 붙은 이름이 아니고 백제시대에는 단지 대지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뱃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규모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며 현재는 1만평 정도만 남아 있다.
《삼국사기》 의자왕(義慈王) 15년조에 "2월에 태자궁(太子宮)을 지극히 화려하게 수리하고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는 궁남지의 조경(造景)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시초가 되 었다고 전하고 있다.」
포용정(抱龍亭)
「궁남지에 대한 조사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 9차에 걸쳐 수행되었다. 조사 결과 사비시대에 조성된 인공수로, 목조저수조, 우물지와 도로유구, 수정 경작지, 토기 가마터, 굴립주건물지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고, 6~7세기와 3~4세기의 유 물이 출토되었다. 목간은 주로 6세기 무렵 조성하여 사용된 인공수로와, 목조저수조 내부의 퇴적된 개흙층에서 출토되었는데, 행정 구역명, 인명, 지명 및 수전을 개간했던 사실이 적혀 있다.」
포룡정(抱龍亭) 편액 -김종필(金鍾泌) 전국무총리 글씨-
계축오월(癸丑五月)이라는 관지로 보아 단기 4306년 서기 1973년 5월에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룡정(抱龍停)이라는 뜻은 뭘까요?
포룡(抱龍)은 용(龍)을 안았다[抱]는 뜻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따르면,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인데, 그의 어머니가 홀로 수도 남쪽 못 가 [南池]에 집을 짓고 살면서 못 속의 용과 관계를 맺어 장을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일설에는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 가의 용신과 관계를 맺어 낳았다고 합니다. 이런 설화를 바탕으로 정자이름을 포룡정(抱龍亭)이라 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용(龍)과 용신(龍神)은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러니 법왕(法王)의 뒤를 이어 무왕(武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
포룡정 앞에서 기념사진
무왕이 조성한 이 연못은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볼 때 무왕의 어머니가 살던 곳이자 선화공주와의 아름다운 사랑이 맺어진 곳이기에, 예전부터 있었던 남지(南池)를 크게 조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포룡정 뒷편의 분수대
다음은 포룡정 주변의 수련(睡蓮)을 담아 보았습니다. 여기에 명찰이 있어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린 스모크 원산지 : 미국
칼라스션샤인 원산지 : 미국
피라미 원산지 : 태국
퍼플조이 원산지 : 미국
블루 스카이 원산지 : 태국
포룡정을 물러나와 다시 연지로 향합니다. 궁남지 연지는 무척 광활합니다. 가는 곳마다 환호성과 감탄사를 연발하게 합니다.
포룡정을 나와서 다시 다른 연지로
또 다른 연꽃 세상
연지에 버드나무가 참 많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버드나무는 연인들의 사랑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은 것입니다. 버드나무 류(柳)와 머물 류(留)는 같은 음이기 때문입니다.
버드나무는 이별 장면에 종종 등장합니다. 길을 멀리 떠나는 사람에게 이별의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내마음이 그대 마음에 머물고 있음을 전하는 의미에서 버드나무를 꺾어 선물했다고 합니다. 연인과의 관계에도 그렇겠지요.^^
연꽃같은 맑은 마음이 오래 머물기를...
늘 맑고 향기롭기를
서동♡ 선화 주제관
이 궁남지를 서동공원이라 합니다. 이곳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서려 있 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史)》『기이(紀異)』제2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가 홀로 수도 남쪽 못 가[南池] 에 집을 짓고 살면서 못 속의 용과 관계를 맺어 장을 낳았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이며 재주와 도량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항상 마[薯蕷]를 캐다가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은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 공주 선화(善花. 혹은 善化)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는 머리를 깎고 신라의 수도로 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고는 노래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 부르게 했는데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짝지어 두고 서동(薯童) 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네.
동요는 수도에 가득 퍼져 궁궐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서동(薯童)과 선화공주(善花公主)
「백관들은 힘껏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유배 보내게 했다. 공주가 떠날 때 왕후는 순금 한 말을 여비로 주었다. 공주가 유배지에 도착할 즈음, 가는 길에 서동이 나와 절을 하고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는 몰랐으나, 우연한 만남을 기뻐하며 그를 믿고 따라가 몰래 정을 통했다. 그런 후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의 징험을 믿게 되었다.」
서동요. 무왕의 사랑이야기
「그러고는 함께 백제에 도착하여, 어머니가 준 금을 꺼내며 앞으로 살아갈 계책을 세 우자고 했다. 서동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무슨 물건이오?"
공주가 말했다.
"이것은 황금인데, 한평생의 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서동이 말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는 이런 것이 흙덩이처럼 쌓여 있소."
공주가 이 말을 듣고는 매우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천하의 지극한 보물입니다. 당신이 지금 금이 있는 곳을 아신다면 부모님의 궁궐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동이 말했다.
"좋소"」
서동과 용화산 사자사(龍華山 師子寺) 지명법사(知命法師)
「그래서 금을 모았는데, 마치 구릉처럼 쌓였으므로 용화산(龍華山. 지금의 익산 미륵산)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知命法師)가 있는 곳으로 가서 금을 운반할 방법을 물었다.
법사가 말했다.
"내가 신통력으로 옮겨 줄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갖다 놓으니 법사는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의 궁궐에다 금을 날라다 놓았다.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하 게 여겨 서동을 더욱 존경했고, 항상 글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 일로 인해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중략>」 이상으로 무왕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그 도리를 잊고서 상련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침을 생략한 터였지요. 다만 묘법님은 서울 출발 전 요기를 조금 하시고 나오셨다고 는 하나 허기지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꽃에 취해서 그런지 저는 배고 픔을 몰랐습니다. 돌아볼 연지는 무궁무진 남았는데 아쉽지만 여기서 멈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쉬울 때 멈춰야지요. 멈출 때를 알아야 위험하지 않지요. 지지불태(止知 不殆)입니다. 그래도 수련은 조금 담아야 할 것 같아 부랴부랴 담았습니다.
수련지(睡蓮池)
수련이라 하면 보통 생각하기를 '물위에 뜬 연꽃'이란 뜻으로 알고 '수련(水蓮)'이라 알기 쉽지만, 그것이 아니라 '잠(睡)자는 연꽃(蓮)'이란 뜻입니다. 수련(睡蓮)입니다. 수련(睡蓮)이라 일컫게 된 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꽃을 오므려, 밤이면 잠을 자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수련은 종류가 다양한데 하나도 이름을 모르겠습니다.
핑크빛이 도는 수련이 멋있네요.
수련 한 송이 보니 일승의 도리를 배우는 우리들은 一의 의미를 잘 음미해 보아야 하 겠습니다.
일(一)이란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고, 진(眞)과 속(俗)이 하나이며, 만법이 일심(一心)의 소현임을 뜻하지요. 굳이 의미를 붙여보자면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
특이한 자태를 뽐내네요.
수련 두 송이를 보니 불이(不二)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납니다. 불이(不二)란 모든 분별이 소멸한 마음자리를 말합니다. 모든 망상으로 인한 시시비비 (是是非非)가 사라진 자리입니다. 일(一)은 '진리'를 말하고 이(二)는 '거짓, 가짜'라는 말이니 불이(不二)란 거짓이 '아니다. 가짜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망상으로 인한 분별이 끊어진 자리이니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흰빛을 띠고 있는 수련
여기는 세송이가
수련 세 송이를 보니 삼법인(三法印)이 생각납니다. 삼보를 공경하는 우리는 늘 삼법 인을 깨달아 불필요한 집착에 정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기는 묘하게 네 송이의 수련이 있습니다.
수련 네 송이를 보니 불자는 철두철미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사무치 게 알아 낮이나 밤이나 사념처(四念處)를 생각하고 사정근(四精勤)에 힘써야 진정한 불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는 다섯 송이가 피어났네요.
수련 다섯 송이를 보니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을 알아 일체의 고액(苦厄)을 건느셨다 는 반야심경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일체의 선법을 생하는 근본인 오근(五根)은 번뇌를 조복시키고 성도(聖道)로 인도합니 다. 오근이란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근)이지요.
시간이 있으면 수련 여섯 송이, 일곱, 여덟 송이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 그러면 육바라밀ㆍ칠각지ㆍ팔정도도 생각해 보는 건데 말입니다.... ^^
꽃모양이 양귀비와 비슷하다는 물양귀비.
이제 궁남지를 벗어나는 순간에 다시 어여쁜 연꽃이...
유혹 -권화옥-
너 안의 나는 바람이다 내 안의 너는 향기로움 아름다운 언어로 하늘을 보고 청정의 받침대로 세상을 본다 내가 물결이 되어 너를 안아 준다면 어떤 몸짓으로 대답할까
연꽃의 향기로움을 내 안에 품고
언제나 그 향기로움을 잊지 않도록
처염상정(處染常淨)하며 넉넉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수만 평 연꽃나라 연꽃세상 다음에 또 만나요. 연꽃보살님! _(())_
우중 연꽃 -가남(嘉南) 임애월-
수만 평 연꽃나라 백제 부여 궁남지 수련(睡蓮)과 홍련, 백련 가시 품은 가시연
알몸의 관불욕불(灌佛浴佛) 후 두 손 모아 합장할 때
굵어지는 빗소리는 청아한 목탁소리
명치 끝에 고인 번뇌 가볍게 털어내면
눈부신 비로자나불 부처님이 되시네.
아쉽게도 연꽃과 작별하고 10시 20분경 연지를 벗어나 법우님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33333 향했습니다. 이 시간이면 대구의 보현님 일행이 정림사지를 돌아 궁남지로 향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인근의 연잎밥을 하는 식당에서 위장을 위로하며 연꽃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고, 한 잔의 커피로 피로를 풀며 다음 탐방지인 정림사지로 향했습니다. 공양은 묘법님이 설판으로... 감사합니다.
다음은 교과서에 나오는 정림사지 오층탑을 만나시게 됩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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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련 종류도 많거니와 물양귀비도 새롭네요. 궁남지 연꽃을 올리실 때 감탄사가 나온다는 말씀에 기대를 하면서도 반은 의아했습니다만, 정말 보면서 감탄사가 나오네요.
연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말았습니다. 시도 올려주시고,, 감사합니다. _()_
수련지의 수련은 혼자만 보고 왔는데 이밖에도 많은 수련이 있었을 것입니다.세상은 끝을 만이 아니고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싶어서 많이 갖다 붙였는데 너무 감하셨다니 감사합니다. _()_ _(())_
더 예쁜 수련이 있었을 것인데 기다리는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그만 양껏 담지는 못했습니다.
연지에 두 시간 정도 머물렀지만 연지가 광활하여 반도 못 봤을 정도이니 이곳의 연
모르겠습니다. 단지 연
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궁남지를 보는 내내 행복 그 차체였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실제로 보면 감탄사가 연발 나올것 같아요.
다양한 수련도 ...
후기 정말 잘 봤습니다 감사 또 감사합니다. _()_
미소님 내외분과 함께하였더라면 좋은 작품 많이 담으셨을 것입니다. 연을 보시면서 시름을 덜으셨는지요 _()_ _(())_
미소님이 시간 낼 형편이 안 되실 것 같아 부득이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다음 주는 사찰순례를 다녀오고자 합니다. 그때 기회가 되시면 함께하실래요
요즘도 수고 많으시죠
후기 잘 보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백우 일을 부지런히 한결과
다른사람보다 일찍 끝냈답니다.
밤 3~4시까지 몇일하고 토요일 일요일도 했어요.
다음주라면 31일요. _()_
@미소 사람들 중 불협조자들이 많아 더욱 힘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_()_ _(())_
더운 날씨에 너무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히 쉬세요. 말일엔 어디든 가 보려고 합니다.
궁남지에 얽힌 사연들과 아름다운 자태를 다시금 봅니다. _()_
지금도 생각해 보면합니다.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