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산은 과거에 '태화산(太和山)'이라 불리웠으며, 중국 최고의 도교성지이다. 무당산은 학식과 사상이 넓고 깊은 도교문화의 장(場)으로써 고대건축의 웅대한 규모를 지니고 있으며, 신비한 '무당쿵후'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무당산은 총 72개봉, 36개 암석, 24개 산골짜기, 11개 동굴, 3개의 연못, 9개의 샘이 있다. 주요 봉우리인 천주봉(天柱峰)은 해발 1,612미터로 초연하게 서있으며, 그 주변의 다른 봉우리들은 모두 주봉을 향해 서있는데 그 기세가 가히 장관을 이루어 볼 만하다. 날씨가 맑아 해가 비추면 푸르른 산과 물을 볼 수 있고, 비가 내릴 때 산에 오르면 푸른 기운이 만연한 '무당선산(武當仙山)의 의미를 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중국 3대 도교명산중의 가장 으뜸으로 명성조 주제(朱梯)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다. 당송조때, 강서 용호산(龍虎山)은 장(張)천제가 수련하던 곳으로 추앙받던 곳이다. 명성조인 주제는 왕위에 오른 자신을 스스로 '진무전세(眞武轉世)'라 칭했다고 한다. 후세에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주제 본인은 정락국(淨樂國)의 왕태자였으나 왕을 이을 생각이 없고 오직 신선이 되도록 수련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후에 주제는 과연 무당산에서 수련을 하여 도(道)를 얻었으며, 주제가 왕위를 버린 후로 무당산은 초목이 무성하여 크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공원 1413년, 그는 20만명의 군사를 동원해서 약 14년에 걸쳐 시간이 걸려 무당산에 궁관(宮觀) 30여곳을 건설했고, 그 면적이 약 160만평방미터에 달하며, 규모가 웅대하고 구조 또한 섬세하고 정교하다. 이곳에 세워진 조각상들도 매우 정교하여 예술의 심오함을 느낄 수 있고, 풍격이 아주 독특해서 모두 세기적으로 보기 드문 것이다. 특히 건축물들의 배열은 모두 산골짜기나 봉우리를 오르는데 있어 편리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여행객들로 하여금 장엄함과 신비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곳은 그 후로도 역대 황제들이 수없이 넗히고 수리하는 등 보건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5킬로미터는 암자/10킬로미터는 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전에 지어진 선종(仙踪)
무당산의 건축물과 진무대제가 수도하던 전설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산을 오르자면 원화관(元和觀)을 통과하여 회용관, 모전정, 태자비, 복진관, 하류를 지나 십팔반을 오르면 무당산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궁관인 '자소궁(紫素宮)'을 만나게 된다. 자소궁은 '전기봉(展旗峰)'아래에 위치하는데 북송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명대에 완건되었으며, 현재 도교의 주요 활동장소중의 하나이다. 매년 음력 3월 초삼일, 9월 초구일이면 이곳에서 성대한 경전활동이 벌어진다. 궁내로는 육중한 기둥을 버티게 하기 위한 3층의 대들보가 세워져있다.
건축장식은 매우 화려한데 기타 종교의 건축물에서 보기드문 형식으로 이는 무당산을 대표하는 최고의 목축구조물로써, 자소궁내로 도교신자들이 머물 수 있는 방들도 마련되어 있다.
옥소궁(玉素宮)을 나와서 오래된 길을 따라 오르게 되면, 황용동/남천문을 통과하여 태화궁에 들어갈 수 있다. 태화봉에서는 천주봉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금봉(金峰)은 천주봉우리에서 세워진 것으로 삼면이 절벽으로, 오직 남쪽으로 통하는 한줄기 통로만이 있는데 태화궁과 접해있다. 태화궁에서 '구연등'까지는 약 100여미터 되고, 무당봉에서 곧장 가면 닿을 수 있다. 산의 꼭대기는 바람이 거세고 한기가 가득한데, 이곳에 서면 주변에 서있는 봉우리들을 아득히 내려다볼 수 있다.
금정의 자금성은 1419년 건설된 것으로 사면에 모두 '천문(天門)'이 세워져 있고, 푸른 돌에 조각이 되어 있다. 똑바로 세워진 자금성은 가파른 절벽 위에 건설되어 있는데, 고대 건축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금전은 중국 최대의 유금으로 만들어진 대전으로 무전식, 구채두공등 가히 봉건사회의 최고급 건축술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주로 황제 전용으로 사용하던 곳이었으며, 금전내부로 진무제의 동상이 있는데 약 10톤에 달하며, 머리를 발아래까지 늘어뜨리고 위엄있게 앉아 있다. 실제 진무동상은 명성조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주제가 왕위를 물러난 이후, 적지 않은 친족들이 도교를 믿고 따랐는데, 주제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무당산의 넓은 토목 사이로 특별히 전무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 공예가들이 진무의 신선스러운 형상을 본떠 만들었는데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적지 않은 공예가들을 참수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마음이 선한 공예가들이 다시 명성조의 모습을 담아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현존하는 '진무동상'으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금전에는 운표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에서 수많은 기이한 경관을 볼 수 있다. 매년 봄에는 벼락으로 금전의 곳곳에 지어진 묘당에 화재가 나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금전은 전혀 손실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비가 내리고 해가 비추면 마치 금으로 만들어진 기둥같은 형상이 금전위로 생기는데 이 기이한 경관은 금전의 특수한 구조와 천주봉의 특수한 자연 조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금전은 현재 560년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항상 처음 지어진 듯한 신선함도 간직하고 있다.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지하고, 유함으로 강함을 극
무당무술은 중화무술 제1대 명종으로, '복종은 소림, 남종은 무당'이 대표한다고 한다. 현재 전해지는 것으로는 태극권, 팔봉장, 기공, 경공등 모두 무당파에 속한다. 무당권은 27대째 전수되어 내려오고 있으며 모두들 수련해 고수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무당산의 저명한 도사 장삼풍이 꿈에서 뱀과 까치가 서로 어울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 꿈에서 깨어나 만든 것이 '아당권(牙當拳)으로 절제된 움직임과 유하면서도 강한 것을 물리치는 동작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것을 수련하면 신체를 보호하고 수명도 길어지며 병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당무술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연단술(煉丹術)'로, 연단의 목적은 장수하면서도 약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후에 연단술은 외단과 내단으로 나누어졌는데, 외단이 전통적인 수련법이며, 내단은 몸의 내부를 화로와 같이 만들어 정적이면서도 기(氣)와 신(神)을 약(藥)이란 개념으로 사용하여 신체내에 '丹'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장수하며 죽지 않고,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내단술은 남북조때 생겨나 송금때에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외단은 주요한 원료를 독극물인 수은으로 하는데, 먹는 것 중에 가장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외단술이 완전히 터득되면 내단술과 같이 연마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모두 건강과 장수, 병을 치료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이외에도 수일(守一), 행기(行氣), 토납(吐納)등이 있다.
도교의 기원
만약 여행할 때 주마간산격으로 대강 낮은 수준의 여행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당산을 향유하되 그 내력을 이해해야 하는데, 특히 도교문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도교는 중국 전통문화인 유(儒), 불(佛), 도(道)문화중 하나로, 중국 본토의 종교다. 주요 사상으로는 노자사상으로 당연히 고대사회의 귀신숭배사상과 무술문화, 전국시대의 신선사상등이 내포되어 있다. 노자가 말하길 도를 수련하면 능히 160~200세지 살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로불사를 추구하는 신선학과 노자의 도교사상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자는 도교의 교주라 불리운다.
도교의 창시자는 동한말의 장능(張陵)으로, 장사제라 불리운다. 그의 손자 장노(張魯)는 한나라 중엽 정교를 건립하고 정권을 잡았는데, 후에 조조를 따랐다고 한다. 장노의 아들인 장성(張盛) 역시 4대 장사제로 강서 용호산(龍虎山)에서 존엄함을 빛내고 수련하였으며, 용호산 역시 최고의 도교 명산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