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흙담아래 심은 박 줄기가 단발머리 같은 초가 지붕을 타고 넝쿨을 이룰 때면 꽃피우기 적기인 7월이지요.
애기 박을 꼬리에 단 박꽃이 낮엔 시들하다 밤이면 생기를 찾아 모성적으로 박을 키우는데, 장관인 하얀 꽃들이 썩은 초가지붕과 대조적인 듯하나 전체적인 어울림이나 조화는 순수한 닮은점이 있어 여름 불볕에 탈색되어 흉해진 다른 꽃이 감히 범접을 못한답니다.
착한 박꽃에 향이 미미한 이유가? "밤새 청개구리에게 이파리 이불을 덮어 찬이슬을 막아주고, 벌들이 화분을 소복이 이고 나오면 그 넉넉함과 부지런함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베짱이를 다독이느라 배려의 향을 다 써버려서" 그럴 것 같아요.
박꽃은 밤에 받은 정기를 아끼는 듯! 아침부터 잎을 하늘을 향해 두 손 모으듯이 모으고, 수분을 더이상 뺏기지 않으려고 종일 미동도 않다가 해지면 밤이슬을 빨아들이기 위해 순식간에 활짝 가슴을 내밀어 서늘한 기운을 받아 낮에 쓸 에너지를 비축하는데 마치 태양열을 받아 뜨거운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때 "박 각시"가 날라 다니며 수정을 시키죠.
가만히 보면 박꽃은 신비로운 면이 있습니다.
눈부신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옷자락 같은 하얀 살결에 가늘 한 실핏줄 잎맥이 마치 실루엣 같으며 청아하게 부풀은 눈꽃의 푸른 혈관 같은데, 검소하면서도 화려한 듯! 그 모습을 보면 언 듯 어릴 때 유월 늦장미가 화려히 핀 공소 뜨락 성모상의 형상에 비교하면 너무 과할까요?
화려한 겸손이시고 평생 순명하셨으며 그칠 줄 모르는 향기 같으신 성모님 말입니다.
한여름 새끼박이 꽃을 이고 주렁주렁 열리면 마치 군사들을 사열하듯!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하나 둘 샘을 해댔고
호박보다 맛은 없지만 껍질은 삶아 말려 야물어지면 바가지 같은 퍼 담는 도구로 썼죠. 물바가지, 0바가지말예요.
자상하신 아버진 박에 구멍을 슝! 슝! 뚫어 유선방송 스피커를 안에 넣고 처마에 달아주시면 울림역할을 했죠. 에코처럼 말입니다.
바느질 하시는 어머닌 따라 부르시며 감춰뒀다 봄놀이 때 꺼내 한 곡조 뽑으셨고, 해거름에 박꽃이 피니 그기에 맞춰 저녁밥을 지으셨다. 하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밤 이야기를 만드는 박꽃이지만 "생체시계" 때문에 "튜울립의 개화처럼 잎이 처지는 현상"이 있다하며 김빠지게 해도 제 눈엔 아름답기만 하니 어쩌면 좋죠?
첫댓글 참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