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거리에서 만난 작은 문들
피렌체의 오래된 돌계단 앞에 화가 한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검은 모자 아래로 흰 수염이 내려오고, 안경 너머의 시선은 손에 든 휴대전화에 머물러 있습니다. 노란 조끼와 청바지, 물감 자국이 묻은 앞치마. 주변에는 크고 작은 그림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림을 벽에 기대어 세우기도 하고, 이젤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의 눈높이보다 훨씬 낮은 바닥에 나란히 펼쳐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장면에서는 화가보다 그림 속 문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초록색 문, 붉은 문, 푸른 문.
꽃과 덩굴이 둘러싼 문.
낡은 벽 안쪽에 조용히 들어앉은 문.
모두 닫혀 있는데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 앞에 잠깐 서 있으면 누군가 안쪽에서 발소리를 내며 다가올 것 같습니다.
문고리가 돌아가고, 잘 왔다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피렌체를 여행할 때 우리는 대개 유명한 것들을 먼저 찾습니다.
성당의 커다란 돔을 바라보고, 미술관에서 오래 기다리고, 광장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름을 알고 온 작품 앞에서는 설명을 읽고, 꼭 봐야 한다고 들었던 장소에서는 조금 더 오래 머뭅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휴대전화에는 수많은 사진이 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마음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예상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유명한 작품의 이름보다 골목의 빛이 먼저 생각나고, 웅장한 건물보다 작은 가게 앞 의자가 떠오릅니다. 어디인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워도 그곳에서 느꼈던 마음은 오래 남습니다.
이 거리 화가의 모습도 그런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은 무엇인지, 언제부터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는지, 왜 문을 자주 그리는지는 사진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펼쳐놓은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지나가던 발걸음을 조금 늦추고 싶어집니다.
그림 속 벽은 반듯하지 않습니다. 색은 한곳에 얌전히 머물지 않고 서로 번집니다. 오래된 문 주변에는 붉은빛과 노란빛, 초록빛이 어울려 있습니다.
실제 골목에서 보았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문이 그림 안에서는 자꾸 눈길을 붙잡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하루에 수많은 문을 지나갑니다.
집을 나서는 문, 일터로 들어가는 문, 병원 진료실의 문, 자주 가는 가게의 문. 너무 익숙해서 모양도 색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문들입니다.
그런데 낯선 도시에서는 작은 문 하나를 앞에 두고도 오래 서 있게 됩니다.
이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까.
저 창문에서는 아침에 어떤 풍경이 보일까.
문 옆 화분에는 누가 물을 줄까.
여행은 그렇게 평소에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합니다.
멀리 떠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눈이 조금 달라집니다.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에서 잠시 떨어져 있으니, 돌벽의 거친 표면도 보이고 작은 꽃의 색도 보입니다.
그림 속 문들을 바라보다 보면 풍경을 보는 마음이 어느새 자신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좋아해서 오래 들여다본 때는 언제였을까.
필요해서 산 물건 말고, 예뻐서 손에 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해야 하는 일을 고르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고르는 데에는 얼마나 익숙할까.
우리는 오랫동안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 일터에 필요한 사람,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 그 역할들을 성실하게 해내느라 자신의 취향은 자꾸 뒤로 밀립니다.
먹고 싶은 음식보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생각하고, 가보고 싶은 곳보다 함께 가는 사람이 편한 곳을 먼저 고릅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에게 묻는 일조차 어색해집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어디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지.
피렌체의 거리에서 이 그림들 앞에 서게 된다면, 아주 작은 선택부터 해보고 싶습니다.
초록색 문이 좋은지, 붉은 문이 좋은지.
꽃이 많은 그림이 좋은지, 오래된 벽이 드러난 그림이 좋은지.
설명하기 어려워도 괜찮습니다. 그냥 자꾸 눈이 가는 그림 하나를 고르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택도 아니고, 실용적인 이유를 붙여야 하는 선택도 아닙니다. 내 마음이 먼저 움직인 쪽을 한번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선택이 더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익숙한 것은 많아지지만,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는 망설임도 늘어납니다. 괜히 수고스러울까 봐, 잘하지 못할까 봐, 지금 시작해서 무엇 하나 싶어서 마음을 접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사진 속 화가의 모습에 조금 더 오래 눈길이 갈 것 같습니다.
물감 자국이 묻은 앞치마와 펼쳐진 그림들이 보입니다. 그림을 세우기 위해 가져온 받침과 상자도 보입니다.
거리에 작품을 펼쳐놓는 일에는 손이 많이 갈 것입니다. 그림을 옮기고, 세우고, 정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가고, 누군가는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어갈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한 장의 사진에는 조용히 담겨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그의 삶을 멋대로 낭만적으로 꾸미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언제나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고, 거리에서 보내는 하루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이 더 가까이 느껴집니다.
화가는 특별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앉아 있습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순간입니다.
그 평범한 사람 곁에, 그가 만든 색들이 놓여 있습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이렇게 다른 사람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을 밖으로 꺼내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도 오래 머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그림들은 지금 이 거리의 풍경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여행길에서 그림 한 점을 마음에 담는다면, 그것은 피렌체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작은 그림을 벽에 걸었을 때, 그림 속 초록색 문만 보이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날의 돌계단과 검은 모자, 그림 앞에서 잠시 느려졌던 발걸음도 함께 떠오를 것입니다. 바쁜 일정 사이에서 나 자신에게 건넸던 짧은 질문도 생각날지 모릅니다.
나는 어떤 색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가.
그 질문에 거창한 답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산책을 조금 더 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꽃을 하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오래 미뤄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잘하지 못해도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또 너무 오래 뒤로 미루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피렌체의 거리 화가는 문을 그려놓았습니다.
그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앞에서 따뜻한 방을 생각하고, 누군가의 생활을 상상하고, 잠시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을 느낍니다.
좋은 여행도 그런 여운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돌아온 뒤에 일상은 다시 시작되지만, 익숙한 하루를 바라보는 눈에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늘 지나던 골목을 조금 천천히 걷게 되고, 좋아하는 것을 골라보게 되고, 다음에 가고 싶은 곳을 마음속에 하나 남겨두게 됩니다.
언젠가 피렌체의 골목에서 이런 화가를 만나게 된다면 잠깐 멈춰보고 싶습니다.
그림을 한 장씩 바라보고, 마음에 드는 문 앞에서는 조금 더 오래 서 있고 싶습니다.
다음 장소로 서둘러 떠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색 하나쯤은 분명히 알아두고 싶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그 색이 문득 생각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피렌체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돌계단 앞에서 작은 문 그림들을 보았다고.
그리고 그 그림들 앞에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내 취향을 다시 떠올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