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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5;1-21, 약속과 은혜를 기억해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2026. 8. 30.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이르기를 벧엘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20여년 이전에 형으로부터 살기 위하여 도망할 때에 하나님께서 만나 주셨던 그 은혜와 그 장소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유는 34장의 내용 때문에 갈등을 하고 고민을 하고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던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그의 가족들과 식솔들은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신앙적이지 못한 모든 것을 다 묻어 버립니다. 신앙적으로 온당치 않고 합당치 아니한 모든 것을 땅에 묻었습니다. 드라빔도 묻었습니다. 마음의 거리낌도 묻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벧엘에 도착을 하는데 다시 만난 그 벧엘을 엘 벧엘 이라 부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인데, 야곱이 하나님의, 하나님의 집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그 은혜의 자리에서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야곱의 곁을 떠납니다. 태어나는 손주들의 성장을 위하여 붙여준 유모이었습니다. 얼마나 슬픔이겠습니까? 야곱은 그래서 엘 벧엘의 상수리나무 아래 유모의 장례를 치르고 그 곳 이름을 알론 바굿이라고 불렀습니다. 눈물과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시작해야 하고 또 다시 떠나는 인생의 길에서 얼굴만 보아도 야곱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동했던 드보라 이었습니다. 얼마나 처량하고 나그네의 삶이었으면 눈물을 흘렸을까요?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들었으면 탄식을 했을까요? 알론 바굿이라 했을까요? 그런데 알론 바굿이라는 탄식과 눈물의 장소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더하여 약속을 하시는데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복을 주시는데 4가지 복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두 번째는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너 이스라엘에게서 나온다. 세 번째는 왕들이 야곱, 이스라엘의 허리에서 나오고, 네 번째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야곱, 이스라엘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 물을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는데 이렇게 야곱이 하는 것은 이전에 하늘과 땅이 닿는 사닥다리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했던 그래서 돌베개 삼았던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었던 광야에서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이고 하나님의 전으로 삼았던 그 일을 다시 이십 몇 년 만에 믿음으로 약속의 이행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당시 이때에 이미 오늘 복을 주시겠다는 4가지 축복을 이미 약속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야곱은 이미 20 여 년 동안 복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다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4가지 복을 허락하셨고 더 놀라운 복을 약속합니다. 그래서 재 연출을 하고 야곱의 일행은 엘 벧엘을 다시 떠나 기럇에브랏,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에 야곱의 전적인 사랑을 받았던 라헬이 막내아들을 낳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라헬이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는데 의미는 슬픔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죽어 가면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아들 이름을 베냐민이라 불렀는데 의미는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막내아들을 슬픔의 아들이 아니라, 능력의 아들로 불렀습니다 그 아들이 베냐민입니다.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은 12족장 중에서 위대한 민족의 씨앗이 됩니다.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지파를 아버지와 삼촌의 반열에 세우고, 베냐민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배출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 번째 축복의 내용이 이루어집니다. 지난 20 여 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라헬을 끝까지 사랑했던 야곱은 라헬을 위하여 베들레헴 길에 장사를 지내고 묘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21절에 다시 야곱이 길을 떠납니다. 여러분, 인생은 길을 떠나고 또 떠나고 떠나는 런 것입니다. 쉬임이 없습니다. 왜 떠나야 할까요? 약속하신 복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두 번째는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너 이스라엘에게서 나온다. 세 번째는 왕들이 야곱, 이스라엘의 허리에서 나오고, 네 번째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야곱,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것을 위하여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1. 먼저는 야곱의 생애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생애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이 어느 부분입니까? 야곱의 생애는 모든 부분이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전 생애가 그렇습니다. 출생이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형, 에서의 복을 가로채서 자기의 것으로 삼은 것이 극적인 생애입니다. 그리고 이 것 때문에 본토와 친척, 아비와 어미 집을 떠나 광야로 가는 것도 극적인 생애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곳에서 은혜를 받고 그의 모든 것을 드려서 약속을 하고 약속을 받아내면서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을 만든 것이 극적인 생애입니다. 그리고 밧단 아람에서 삼촌과 함께 20년을 살아 온 것이 극적인 생애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두 부인을 얻고 두 하녀를 부인으로 삼아서 낳은 11남 1녀의 자손을 거느린 것이 극적인 삶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10번의 변역과 거짓으로 일관한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이 극적인 인생입니다. 20년 끝에 이룬 부가 한 떼와 두 떼와 12떼를 이루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도 극적인 반전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는 삼촌을 떠나서 다시 고향으로 가는 그 과정에서도 삼촌이 스스로 축복을 하고 야곱의 모든 부를 인정한 것도 극적인 인생의 반전입니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과 함께 야곱은 존재론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20년 만에 귀향하는 요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전의 야곱을 기억하면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부를 한 떼와 두 떼로 형, 에서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고 회유를 합니다. 여러 가지 인간적인 묘안을 사용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형의 위협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 홀로 남아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씨름을 걸어오시고, 마침내 힘을 쓸 수 있는 중심이 무너져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얍복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허벅지 관절이 무너져 내린 장면, 또한 극적인 반전입니다. 그런데 이 씨름으로 인하여 야곱은 찬탈자, 속이는 자라는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이 장면, 역시 극적인 반전의 인생입니다. 처음으로 이름의 뜻이 바뀝니다. 간밤의 씨름이 끝나고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를 때 허벅지관절이 위골되어 절뚝거리며 눈물과 흙먼지가 뒤범벅되어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야곱입니다. 그날 아침의 태양은 이전에 떠올랐던 태양이 아니라 브니엘, 하나님 얼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붙여졌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이 탄생한 자리는 야곱의 능력이 증명되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중심이 무너진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는 힘의 증폭으로 강해지는 외적인 성장이 아니라 힘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내적인 성장을 이루는 신앙이었습니다.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한 야곱은 형 에서와 감격적인 해후를 맞이합니다. 조금 전까지 모든 것을 이용해도 듣지 않았던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반겨 맞이하고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야곱에게는 큰 은혜이었습니다. 반전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형, 에서와 헤어진 후 숙곳과 세겜으로 옮겨 상당 기간 머뭅니다. 야곱 여정의 목적지는 아버지 이삭이 거주하고 있는 헤브론이었지만, 이렇게 중도에 머물렀던 이유는 20여년에 걸친 밧단아람, 외삼촌 집에서의 고단했던 삶을 쉬고 재충전하기 위함이었고, 천사와 씨름할 때 위골된 허벅지 관절로 인해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형이 바뀌었음에도 형, 에서를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동생을 위하여 동행해주고 지켜주고 고향 헤브론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끝까지 인간적인 마음으로 형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창 33;13-14,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적당하고 합리적인 말로 형, 에서를 돌려놓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이제는 되었다고 하는 생각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겜으로 길을 떠납니다. 문제는 세겜에서 일어납니다. 세겜의 젊은 추장에게 딸 디나가 아픔을 당합니다. 추장은 디나와 결혼하겠다고 간청을 하지만 복수심으로 가득 찬 야곱의 아들들은 거짓말로 속여서 할례를 행하게 하게하고, 할례의 상처가 아물기 전 고통이 가장 심할 때 그들을 공격하고 살해하고 노략합니다. 그 사건으로 두 민족 사이에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이 증폭 되였고, 야곱의 가족은 주변 민족들로부터 멸족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위기의 한 복판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야곱입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과 결정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후회스러울까요? 그런데 이런 때에 오늘 본문으로 시작을 하면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이것이 야곱의 연속된 반전의 인생이고 삶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35;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다시 또 떠납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오늘 축복하신 내용을 위해서요. 그런데 야곱의 이런 반전의 인생은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 십 년입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계속된 반전의 인생입니다. 여러분, 평안과 형통이 항상 언제나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습니다. 다 이루어 놓은 것 가운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항상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형통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형통하고 평안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받은 은혜 가운데에도 당면하는 문제가 발생을 하고 그래서 나그네 길이고 험악한 세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가오는 환란과 어려움을 이겨 낼 수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항상 강 한자와 약한 자 사이에 있습니다.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에 있습니다. 보이는 힘과 없는 것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런 자신의 생애를 돌아볼 때 정말 험악했다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강한 자와 약한 사람 사이에 있음을 늘 인식하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 생애가 험악했던 이유, 반전의 삶이 연속되는 이유는 대부분 야곱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사서 고생을 했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 집을 떠나서 삼촌 집으로 가야하는 일,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형, 에서의 축복기도를 가로챘던 사건,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장자의 축복 기도를 빼앗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일입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그렇게 고생한 것도, 얼굴 예쁘다는 것 하나 때문에 어떻게든지 라헬과 결혼하려 했기 때문이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 때문에 얍복 강에서 밤새도록 씨름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근본적으로 야곱 자신의 문제 때문입니다. 세겜 땅에서 고생을 한 것도 하나님께 벧엘에서 내가 다시 돌아오면 여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자기가 약속을 해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세겜 땅이 좋다고 거기에 머물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딸 디나에게 불상사가 되었던 그 일 때문에 일어난 보복과 살인도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마음고생을 한 것도 요셉을 편애했기 때문입니다. 야곱 생애 험악했던 모든 일들은 따지고 보면 야곱 본인이 그렇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반전의 상황 속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또한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상할 정도로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믿음과 신앙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항상 보는 눈에 의해서 반응을 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해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택하셨고 복을 주셨다고 어머니 리브가를 통해서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형, 에서를 비교하면서 견딜 수 없는 좌절감을 갖습니다. 비록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버지 이삭의 사랑의 결핍은 야곱을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를 유난히 편애했기 때문에 아버지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아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래서 집착을 하게 됩니다. 라헬과 꼭 결혼해야 되겠다는 마음도 집착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급함, 몸부림, 집착이 있는 사람, 야곱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사실 이런 것에 걸릴만한 이유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야곱이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이렇게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조급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지 못할까봐 안달을 했습니다. 야곱은 항상 부족했고, 항상 억울했고, 항상 두려웠고, 항상 염려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스스로무엇인가 위하여 애를 쓰고, 방법을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강자 앞에서 스스로 괴롭히는 삶이었습니다. 평생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결국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험악할 이유가 없었는데, 험악했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이렇게 험악하게 살았다고 표현하는 위기를 그냥 보고만 있었는가? 여러분, 야곱은 결국 위대한 사람,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그러면 야곱은 어떻게 반전의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됩니까?
2. 야곱의 인생가운데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극복입니다. 야곱은 기가 막히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위기가 있습니다. 내용은 다 다르지만 위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삶이고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을 염두하고,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위기와 어려움이 섞여있는 것이 인생이고 이것이 나의 삶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여러분, 골프공의 표면을 살펴보면 많은 작은 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홈을 딤플(Dimple) 이라합니다. 왜 딤플이 있을까요? 딤플이 있으면 골프공이 날아갈 때 난기류를 만들어 공기가 공 표면을 따라 더 오래 흐르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딤플이 없는 매끈한 골프공이 공기 저항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지요? 매끈한 공이 더울 멀리 날아 갈 것 같은데 딤플이 있어야 공기 저항을 반으로 줄여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거리가 늘어납니다. 이를 비유해서 늘 잔병치레 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에 비해서 오래 산다고 하는데 일종의 딤플 효과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보다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부족한 부분을 지혜와 인격의 향기로 가꾸어서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자기 발전의 성장 발판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멋지게 살아가는 삶을 딤플 라이프 (Dimple Life)라고 부르고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을 딤플러(Dimpler)라고 합니다. 여러분, 누구에게나 딤플이 있습니다. 그 딤플을 성공의 디딤돌로 삼아 인생의 반전을 이룬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인생의 순간순간의 수많은 문제들과 딤플을 통하여 인생을 반전시켰습니다. 야곱의 삶은 험악한 세월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은 험악했을지 몰라도 끝은 해피엔딩이었습니다. 바로의 면전에 섰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으로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광입니다. 바로의 절대적 신임과 총애를 받게 된 것은 총리대신의 아버지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죽은 줄 알고 있었던 그 사랑하던 아들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그 소식 하나만으로도 그때까지의 험악한 세월이 다 보상되고도 남는 일입니다. 거기에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기근에 시달리던 온 가족들 다 살게 되고 바로의 초청으로 그가 보내준 수레를 타고 그가 보낸 길양식을 먹으며 이집트로 가서 가장 기름진 땅을 하사받아 번성하며 살게 된 것은(창45:17-21, 46:1-7) 숨이 막힐 정도로 복된 반전의 인생입니다. 야곱이 바로 앞에서 백삼십 년의 세월이라는 험악한 나그네 길을 보냈다고 술회하지만 그 이후로 요셉이 산 삶은 평안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삶이었습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 요셉은 수종을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사십 일 걸려 향으로 처리하게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칠십 일 동안 야곱을 위하여 애곡하였습니다(창50:2-3).애곡하는 기한이 지나자 요셉은 바로의 허락을 얻어 아버지의 유언대로 가나안 땅에 장사하러 올라갔습니다(창50:4-6). 그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병거와 기병이 심히 큰 떼를 지어 요셉을 따라 올라갔습니다(창50:7-9). 이것은 바로 왕의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장례의 의식과 행렬입니다. 오늘 이전의 반복된 반전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면 그토록 험악한 세월이었는데 하나님에 의하여 상황의 극복이 됩니다. 반전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어려운 순간이 찾아 왔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은 우왕좌왕한 발걸음을 멈추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초심을 기억하고 그 신앙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결국은 사람을 들어 하나님은 역사하시는데 사람을 통해서 해결이 되게 하고 해답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극복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야곱은 결국 위대한 인물이 되고, 역사를 이루어 내고, 죽어가면서도 소망을 갖는 인물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의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위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와 고통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생스럽고, 어려워도. 여러분이 이 말씀을 진실로 믿는다면 삶의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험악한 세월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생명싸개 안에 있습니다. 야곱이 지녔던 그 숱한 약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약해지고 곤고해질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붙잡고 죽기로 매달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분, 윈스턴 처칠은 건배를 들면서 나는 누구에게도 건강이나 부를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말했습니다. 여러분, 9/11테러아시지요? 9/11 테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백이 있습니다. 한 고위 임원은 9/11 테러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유가 그날 아들의 유치원 첫 등교일이라 데려다주느라 회사에 늦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한 남성은 동료 직원의 도넛을 사러 가는 차례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어느 여성은 알람이 울리지 않아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살아남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뉴저지 교통 체증 때문에 회사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버스를 놓쳤고, 다른 이는 커피를 쏟아 옷을 갈아입느라고 늦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못 간 사람도 있었고, 집에 전화를 받으러 되돌아갔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그날 새 신발을 신고 출근하던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신발이 불편해 발이 부었고, 그는 약국에 들러 밴드를 사기 위하여 잠시 지체했는데 그 잠깐의 지체가 바로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이라 합니다. 여러분,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추모하면서도 순간순간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여러분, 차에 갇혀 길이 막힐 때, 엘리베이터를 놓쳤을 때, 무엇인가를 깜빡하고 되돌아가야 할 때, 아침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잠시 멈춰서 묵상을 하시면 어떨까요? 지연이 결코 낭패가 아니고 어쩌면 하나님의 시간표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새 생명의 연장과 복된 아침이 이그러질 때에, 함께 하는 사람이 늦장을 부리고, 열쇠가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인생 지나가는 가로등마다 빨간불 때문에 짜증이 날 때마다 화를 내지 마시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되지요? 왜요?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일 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 32;10절 여호와께서 야곱을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고,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을 지키시고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고, 주님의 눈동자 같이 지키실 줄로 믿습니다. 야곱처럼 삶의 반전이 일어나고 다시 길을 걷더라도 결국에는 약속한 4가지 복으로 승리하시는 그래서 주님을 드러내시고 한 시대를 위대하게 사시는 참된 남은 2026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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