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악산성벽길을 트레킹하고 내친 김에 청계천, 서울풍물시장, 동관왕묘까지 찾았다.
북악산성벽길만 걸어도 충분하겠건만 오늘은 왠지 발걸음이 길어졌다. 오늘의 투어 코스는 전철 4호선 혜화역(4번 출구) - 성균관대학교 - 와룡공원 - 숙정문 - 청와대뒷길 - 인사동 쌈지길 - 청계천 - 풍물시장 / 동관왕묘 - 동묘역에서 마무리를 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교정
고려 때까지 개성에 있던 성균관은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가 수도를 한양으로 옮김에
따라 139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대학교인 것이다. 성균관은 고려말과 조선시대의 최고 교육기관인 태학(대학)의 명칭으로 학궁 또는 반궁이라고도 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교정을 가로질러 드디어 와룡공원 입구에 있는 정자에 다다른다.
높다란 북악산성벽길 외곽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선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 5)에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년)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전망대에 이르러 성북구 방향을 조망한다. 사진의 가장 왼쪽에는 삼청각의 일부가 보인다.
삼청공원 말바위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하여 산에 올라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하여 말(馬 )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 라는 설도 있다. 예전에는 바위에 벼락이 많이 친다고 하여 '벼락바위'라 불리기도 했다.
말바위 부근에서 인증샷
숙정문(전면, 바깥쪽에서 본 모습)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처음에는 이름이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후에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며,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둘레길이 아름답다.
이 문을 통과하면 청와대 외곽 2선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출입문을 들어 서 청와대 전망대를 향해 나아간다.
청와대 건물을 둘러 싼 1선 울타리가 보인다. 청와대 춘추관이 있는 왼쪽 길로 접어 든다.
조선후기에 중건된 경복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건물로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세웠다.
경복궁 동십자각
경복궁의 망루였으나 지금은 경복궁과 떨어져 도로 정중앙에 섬처럼 놓여 있다. 십자각은 말 그대로 건물 평면이 열 십(十)자인 건물을 말한다. 그런데 경복궁의 망루는 평면이 사각형이라 원칙적으로는 십자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볼 때 용마루가 열 십자로 교차하는 모습이라 십자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궁궐 ***
동아시아권에서는 궁성 정문 옆에 궁을 수비하는 망루를 두었는데, 이것을 궐(闕)이라고 부른다. 즉, 궁궐(宮闕)은 궁(宮)과 망루(闕)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인사동 쌈지길을 걸어본다.
인사동이란 지명이 생긴 것은 1914년이다.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조선 초기 한성부 중부 '관인방'과 '대사동'을 하나로 합치면서, 각각의 지명에서 한 자씩 따와 인사동을 만들었다.
쌈지길은 (주)쌈지가 지은 건물로 건축가 최문규는 장사가 골고루 잘되면서 최대한 많은 가게가 입점할 수 있도록 1층에서 옥상까지 연속적인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치 500m 길이의 인사동길을 수직으로 감아서 말아올린 것 같아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건물의 형태도 아니고, 파는 물건도 아니며, 빙글빙글 돌아 하늘로 올라가는 즉 건물이 아닌 걷는 길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는 현상이다.
쌈지길을 탐방한 다음 정통 인사동길을 걸어 본다.
31빌딩 앞에서 청계천으로 접어들어 하류방향으로 걸으며, 청계천 도보여행을 즐긴다.
풍물시장을 구경하고 동관왕묘를 찾았다가 동묘역에서 오늘의 투어를 마무리하였다.
동관왕묘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묘하는 뜻으로 중국의 장수 관우(162~219)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지냈던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 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1601년(선조 34)에 지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 중 동관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 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라고는 하나 중국 관우의 조각상을 두고 제사를 지낸 시설이라는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