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광고들은 행복하고 싶다면 상품을 사라고 아우성친다. 교묘하게 일상을 파고든 광고는 이제 인간의 무의식을 조정할 정도의 위력을 갖게 되었고 현대인들은 ‘지름신’에 사로잡혀 쇼핑 목록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장바구니가 무거워져도 행복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재 학 경제·경영 전문 작가
장동건의 차, ‘베티’
“음악 좀 들어도 돼요?” “내가 할게요. 베티가 아직 그쪽 손길이 낯설 거예요.”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한 장면이다. 자동차 안에서 김하늘과 장동건이 주고받는 대화의 일부다. 김하늘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묻는다.
“베티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장동건은 김하늘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내려서 얘기해 줄게요. 베티가 듣잖아요.” 두 사람의 낯간지러운 대화에 등장하는 ‘베티’는 다름 아닌 자동차의 이름이다. 장동건은 자신의 ‘애마’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M클래스에 강아지 이름 같은 것을 떡하니 붙여놓고는 호들갑을 떤다. 그 덕분에 벤츠의 M클래스는 ‘장동건의 차’ 혹은 ‘베티’라고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안락한 승차감이나 월등한 연비 따위를 호소할 필요도 없다. 드라마에서 ‘베티’라는 대사가 한 마디라도 나오는 날이면 그 다음날 벤츠 판매 전시장에 차 문의가 부쩍 늘어난다고 한다.
어디 ‘베티’뿐이랴. 영화나 TV 프로그램 속에서는 수많은 또 다른 ‘베티’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소품을 등장시켜서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PPL(Product Placement)이 광고업계의 주요 마케팅 방식으로 뿌리 내린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초기 단편 영화 속에도 PPL이 등장했다 당시 제작진 중에 부업으로 레버 브라더스(Lever Brothers)라는 비누회사의 홍보 일을 맡은 사람이 있었는데 레버의 ‘선라이트’라는 비누를 몇몇 장면에 노출시킨 것. PPL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고 영화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01년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으로 출연한 카레이싱 영화 <드리븐(Driven)>에는 러닝타임 117분 동안 무려 103개의 PPL 상품이 노출됐다고 한다. 관객들은 6초당 한 개씩 상품을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영화를 본 것인지 상품을 본 것인지 헷갈릴 만하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쇼프로그램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PPL 광고를 접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출연자들이 차고 있는 시계, 신고 있는 신발, 배경으로 등장한 가구나 주방용품 등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베티’라는 말이 등장한 다음날 벤츠 매장의 전화통에 불이 나는 것처럼 어떤 드라마를 보고 난 다음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에 등장했던 신발이나 옷, 혹은 음식을 사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 나갔던 경험 한 두번씩은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실제로 1950년대 미국에서는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가 등장,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신내림 하듯이 찾아오는 ‘지름신’도 알고 보면 소비자들을 세뇌시키는 기업들의 집요한 ‘작업’의 결과일지 모른다. 지름신으로 인해 많은 것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잠재의식을 자극하는 ‘서브리미널 효과’
1957년 미국 뉴저지 주의 한 영화관에서는 <피크닉>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관객들은 영화감상에 푹 빠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소비자 구매 동기 조사의 전문가인 제임스 비카리(James. M. Vicary)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조심스럽게 특별한 실험을 하나 실시하고 있었다. 타키스토스코프(tachistoscope)라는 특별 장치를 이용해서 영화 상영 중간에 메시지를 살짝 끼워 넣었던 것이다.
3천 분의 1초라는 시간은 눈을 한 번 깜빡거리는 시간보다도 짧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조사를 진행했던 제임스 비카리는 “영화가 끝나고 극장 내 매점이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콜라와 팝콘 두 가지 상품의 판매량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4만 5천699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팝콘이 57.8퍼센트, 콜라는 18.1퍼센트 판매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카리의 실험 이후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라는 용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리미널(liminal)이란 심리 용어로 ‘자극에 대하여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서브리미널은 바로 그 점 아래, 즉 일상적인 의식의 경계선 아래라는 뜻이다. 무의식적인 약한 자극이 잠재의식 속에 기억되어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바로 서브리미널 효과라고 한다.
비카리의 실험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미 연방의회와 연방통신위원회에서는 서브리미널 효과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해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를 규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을 통해 시청자가 의식할 수 없는 음향이나 화면으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일명 ‘코카콜라 실험’으로 불렸던 이 실험은 이후 조사방법에 대한 논란으로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일반적인 실험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주먹구구식 실험이었으며 논문이나 저널 등을 통한 발표가 아니라 개인적인 주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비카리 자신이 내뱉은 말이 정확한 사실인 양 포장되어 신문과 잡지에 소개되고, 또 거기에 새로운 사실들이 덧붙여져 입소문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비카리의 실험은 근거 없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브리미널 효과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화나 TV 프로그램들은 조금 더 집요하고, 조금 더 과감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관객과 시청자들의 잠재의식을 파고들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인 마틴 린스트롬은 자신의 책 『쇼핑학(Buyology)』에서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의 코카콜라의 PPL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우리나라의 <슈퍼스타K>나 <K팝스타>와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몇몇 회사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고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코카콜라다.
이 프로그램 곳곳에는 코카콜라 브랜드 이미지가 숨어 있다.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벽의 색깔은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빨간색이며 그들이 앉는 의자와 소파는 코카콜라 병을 연상시키는 곡선 모양이다. 심사위원들 앞에 코카콜라가 놓여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한심사위원은 참가자의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묻는 질문에 코카콜라를 한잔 들이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시청자들은 알게 모르게 코카콜라 브랜드에 노출되면서 무의식 중에 코카콜라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다. 프로그램이 나가고 나면 코카콜라의 매출이 늘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름신’을 멀리하고 행복을 찾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해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징표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나 반지를 선물로 주고받는다.
다이아몬드가 오래 전부터 귀한 물건으로 여겨져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그러한 관습이 자연스럽게 뿌리 내리게 된 데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그 이면에 바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DeBeers)’가 있다.
드비어스는 할리우드의 멜로 영화에 거액의 협찬금을 제공하면서 다이아몬드를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만약 영화사가 다이아몬드 대신 사파이어나 진주 회사로부터 협찬을 받았다면 남녀 간의 사랑고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보석의 종류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다이아몬드이든, 사파이어든 우리의 일상생활이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달라지거나 조종당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백화점에 가면 아주 아름다운 백그라운드뮤직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마냥 아름답게만 듣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음악 선곡 하나에도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느린 템포의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면 고객의 발걸음과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매장 체류 시간이 늘어나고 또 직접 구매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반대로 혼잡한 시간대에는 다소 템포가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흘려보냄으로써 고객의 회전률을 높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최근에는 인간의 두뇌 활동을 분석해 마케팅에 접목시키는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마케팅 방법이 활성화되면 아마 기업들은 조금 더 고객의 머리 깊숙한 곳으로 찾아와 보다 더 많은 상품을 사라고 속삭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신내림 하듯이 찾아오는 ‘지름신’도 알고 보면 소비자들을 세뇌시키는 기업들의 집요한 ‘작업’의 결과일 것이다.
『쇼핑의 과학』의 저자인 파코 언더힐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브랜드에 열광하는 20세기에 대해 근본적으로 믿음이 없다. 나는 악어나 폴로 선수가 새겨진 셔츠를 한 벌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청바지에 붙어 있는 상표는 아예 떼어버린다.
나는 솔직히 로고 때문에 우리가 돈을 지불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로고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대가로 그들이 우리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당당한 말인가.
노예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불행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브랜드의 노예, 상품의 노예이기때문일 것이다.
노예의 삶에서 탈피해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서는 길이 될 것이다.
수많은 광고들은 행복하고 싶다면 상품을 사라고 아우성친다. 교묘하게 일상을 파고든 광고는 이제 인간의 무의식을 조정할 정도의 위력을 갖게 되었고 현대인들은 ‘지름신’에 사로잡혀 쇼핑 목록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장바구니가 무거워져도 행복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재 학 경제·경영 전문 작가
장동건의 차, ‘베티’
“음악 좀 들어도 돼요?” “내가 할게요. 베티가 아직 그쪽 손길이 낯설 거예요.”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한 장면이다. 자동차 안에서 김하늘과 장동건이 주고받는 대화의 일부다. 김하늘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묻는다.
“베티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장동건은 김하늘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내려서 얘기해 줄게요. 베티가 듣잖아요.” 두 사람의 낯간지러운 대화에 등장하는 ‘베티’는 다름 아닌 자동차의 이름이다. 장동건은 자신의 ‘애마’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M클래스에 강아지 이름 같은 것을 떡하니 붙여놓고는 호들갑을 떤다. 그 덕분에 벤츠의 M클래스는 ‘장동건의 차’ 혹은 ‘베티’라고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안락한 승차감이나 월등한 연비 따위를 호소할 필요도 없다. 드라마에서 ‘베티’라는 대사가 한 마디라도 나오는 날이면 그 다음날 벤츠 판매 전시장에 차 문의가 부쩍 늘어난다고 한다.
어디 ‘베티’뿐이랴. 영화나 TV 프로그램 속에서는 수많은 또 다른 ‘베티’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소품을 등장시켜서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PPL(Product Placement)이 광고업계의 주요 마케팅 방식으로 뿌리 내린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초기 단편 영화 속에도 PPL이 등장했다 당시 제작진 중에 부업으로 레버 브라더스(Lever Brothers)라는 비누회사의 홍보 일을 맡은 사람이 있었는데 레버의 ‘선라이트’라는 비누를 몇몇 장면에 노출시킨 것. PPL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고 영화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01년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으로 출연한 카레이싱 영화 <드리븐(Driven)>에는 러닝타임 117분 동안 무려 103개의 PPL 상품이 노출됐다고 한다. 관객들은 6초당 한 개씩 상품을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영화를 본 것인지 상품을 본 것인지 헷갈릴 만하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쇼프로그램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PPL 광고를 접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출연자들이 차고 있는 시계, 신고 있는 신발, 배경으로 등장한 가구나 주방용품 등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베티’라는 말이 등장한 다음날 벤츠 매장의 전화통에 불이 나는 것처럼 어떤 드라마를 보고 난 다음 자신도 모르게 드라마에 등장했던 신발이나 옷, 혹은 음식을 사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 나갔던 경험 한 두번씩은 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실제로 1950년대 미국에서는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가 등장,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신내림 하듯이 찾아오는 ‘지름신’도 알고 보면 소비자들을 세뇌시키는 기업들의 집요한 ‘작업’의 결과일지 모른다. 지름신으로 인해 많은 것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잠재의식을 자극하는 ‘서브리미널 효과’
1957년 미국 뉴저지 주의 한 영화관에서는 <피크닉>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관객들은 영화감상에 푹 빠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소비자 구매 동기 조사의 전문가인 제임스 비카리(James. M. Vicary)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조심스럽게 특별한 실험을 하나 실시하고 있었다. 타키스토스코프(tachistoscope)라는 특별 장치를 이용해서 영화 상영 중간에 메시지를 살짝 끼워 넣었던 것이다.
3천 분의 1초라는 시간은 눈을 한 번 깜빡거리는 시간보다도 짧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조사를 진행했던 제임스 비카리는 “영화가 끝나고 극장 내 매점이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콜라와 팝콘 두 가지 상품의 판매량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4만 5천699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팝콘이 57.8퍼센트, 콜라는 18.1퍼센트 판매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카리의 실험 이후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라는 용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리미널(liminal)이란 심리 용어로 ‘자극에 대하여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서브리미널은 바로 그 점 아래, 즉 일상적인 의식의 경계선 아래라는 뜻이다. 무의식적인 약한 자극이 잠재의식 속에 기억되어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바로 서브리미널 효과라고 한다.
비카리의 실험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미 연방의회와 연방통신위원회에서는 서브리미널 효과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해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를 규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을 통해 시청자가 의식할 수 없는 음향이나 화면으로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일명 ‘코카콜라 실험’으로 불렸던 이 실험은 이후 조사방법에 대한 논란으로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일반적인 실험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주먹구구식 실험이었으며 논문이나 저널 등을 통한 발표가 아니라 개인적인 주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비카리 자신이 내뱉은 말이 정확한 사실인 양 포장되어 신문과 잡지에 소개되고, 또 거기에 새로운 사실들이 덧붙여져 입소문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비카리의 실험은 근거 없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브리미널 효과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화나 TV 프로그램들은 조금 더 집요하고, 조금 더 과감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관객과 시청자들의 잠재의식을 파고들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인 마틴 린스트롬은 자신의 책 『쇼핑학(Buyology)』에서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의 코카콜라의 PPL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우리나라의 <슈퍼스타K>나 <K팝스타>와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몇몇 회사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고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코카콜라다.
이 프로그램 곳곳에는 코카콜라 브랜드 이미지가 숨어 있다.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벽의 색깔은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빨간색이며 그들이 앉는 의자와 소파는 코카콜라 병을 연상시키는 곡선 모양이다. 심사위원들 앞에 코카콜라가 놓여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한심사위원은 참가자의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묻는 질문에 코카콜라를 한잔 들이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시청자들은 알게 모르게 코카콜라 브랜드에 노출되면서 무의식 중에 코카콜라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다. 프로그램이 나가고 나면 코카콜라의 매출이 늘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름신’을 멀리하고 행복을 찾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해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징표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나 반지를 선물로 주고받는다.
다이아몬드가 오래 전부터 귀한 물건으로 여겨져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그러한 관습이 자연스럽게 뿌리 내리게 된 데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그 이면에 바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DeBeers)’가 있다.
드비어스는 할리우드의 멜로 영화에 거액의 협찬금을 제공하면서 다이아몬드를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만약 영화사가 다이아몬드 대신 사파이어나 진주 회사로부터 협찬을 받았다면 남녀 간의 사랑고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보석의 종류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다이아몬드이든, 사파이어든 우리의 일상생활이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달라지거나 조종당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백화점에 가면 아주 아름다운 백그라운드뮤직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마냥 아름답게만 듣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음악 선곡 하나에도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느린 템포의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면 고객의 발걸음과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매장 체류 시간이 늘어나고 또 직접 구매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반대로 혼잡한 시간대에는 다소 템포가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흘려보냄으로써 고객의 회전률을 높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최근에는 인간의 두뇌 활동을 분석해 마케팅에 접목시키는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마케팅 방법이 활성화되면 아마 기업들은 조금 더 고객의 머리 깊숙한 곳으로 찾아와 보다 더 많은 상품을 사라고 속삭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신내림 하듯이 찾아오는 ‘지름신’도 알고 보면 소비자들을 세뇌시키는 기업들의 집요한 ‘작업’의 결과일 것이다.
『쇼핑의 과학』의 저자인 파코 언더힐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브랜드에 열광하는 20세기에 대해 근본적으로 믿음이 없다. 나는 악어나 폴로 선수가 새겨진 셔츠를 한 벌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청바지에 붙어 있는 상표는 아예 떼어버린다.
나는 솔직히 로고 때문에 우리가 돈을 지불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로고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대가로 그들이 우리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당당한 말인가.
노예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불행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브랜드의 노예, 상품의 노예이기때문일 것이다.
노예의 삶에서 탈피해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서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