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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 1969년 4월 22일 출생
"중증외상센터 외과의사에게 책은 난중일기다."
소속 아주대(의과대학 외과학교실교수)
아주대병원(권역외상센터 소장 및 외상외과 과장)
1995년 아주대 의과대학 졸업
2002년 아주대 대학원 의학과 의학박사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수
2004년 아주대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전임강사
2007년 영국 로열런던병원 트라우마센터 연수
2013년 아주대 의과대학 의과학교실 교수
2010년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장 및 외상외과 과장
* Albert Schweitzer(1875년 ~ 1965년)는
프랑스 알사스 지방(원래는 독일 영토) 출신으로
철학자, 음악가, 의사.
1913년 아프리카로 건너가
원주민의 의료와 전도에 힘씀.
1928년 괴테상, 1952년 노벨 평화상 수상.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문화 철학〉을 지음.
1. 국가유공자의 아들대한민국 국가 유공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6. 25 직후 북한과의 교전상황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 유공자였습니다.
친구들이 ‘병신의 아들’이라 놀리는 게 두려워서
중학교 때까지 아무에게도 국가 유공자의 가족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늘 가난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와 동사무소에서 참전용사에게 지급하는 밀가루를 이고 오다
떨어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사람들 눈을 피해 서두르려다 발을 헛디딘 거였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밀가루를 주워 담았습니다.
가끔 술을 마신 아버지는 제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찾았는데
국가 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의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몇몇 병원을 돌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 사회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 곳인지
잘 알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아픈 사람에겐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전전하던 중
외과의사 이학산 선생님께서
제가 내민 카드를 보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저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저를 비롯해 형편이 어려운 분들께 거의 돈을 받지 않고 치료를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외과 의사 선생님.
사람 가리지 않고 성심 성의껏 치료해주시는 모습이 참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굉장히 어린 나이였지만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꼈고,
그분들과 같은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의사가 되면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가 환자 한 명 한 명을 잘 봐주면,
그 사람들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잖아요.
환자를 진료하는 일 자체가 봉사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의대에 갔습니다.
의대 4년을 마치고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더 이상 의사의 길을 갈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 제적 신청을 하고
2주 뒤 해군 갑판병으로 입대했고
국가 유공자 아들이라 병역 감면 혜택을 받았습니다.
6개월 간의 훈련을 마친 뒤 해군 일병으로 전역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 6개월간의 해군 생활이
저로 하여금 다시 의사의 길을 걷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을 바꿔준 시간이었습니다.
상사와 전우들은
제가 의사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이 강조하신 게 바로 뱃사람의 정신이었습니다.
“뱃사람은 어떤 큰 파도도 헤쳐 나가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소금기와 기름때에 찌든 군복은 값진 것”이라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학업을 계속 이어가길 권유하셨습니다.
아마 해군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의사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인생에 있어
해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죠.
지금도 수병 근무복에 붙어있던 하얀 명찰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역 이후
병원으로 돌아와
2001년까지 외과에서 간 · 담도 · 췌장 외과를 전공했습니다.
석 · 박사 논문 역시 대량 간 절제에 관해 썼습니다.
그러다 2002년 연구강사 시절에
병원 응급실에서 외상 환자를 전담으로 치료할 의사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얼마 뒤 교직 발령을 받았고
같은 의사들끼리도 꺼리는 응급실을
거의 떠밀리다시피 온 것 같아요.
의사로서의 대단한 포부나 사명감을 가지고 여기 온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처음 외상센터에 발령받고
다음 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병원으로 가
수련 과정을 거쳤습니다.
한국에선 배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지도 교수였던
미군 예비역 해군 대령 출신 외과의사인 Bruce Potenza 교수를 만나
외상환자 치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들었습니다.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굉장히 깨달은 바가 컸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주한미군 중증외상센터 치료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30만 명 정도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세상을 떠납니다.
흔히 암이나 심 뇌혈관질환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시기인 40대 이하 젊은 사망자들의 경우,
중증외상으로 인한 사망이 압도적입니다.
교통사고로만 연간 4,500명이 사망하는데
다양하게 다친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2만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 밖에도 자살, 타살, 산재, 추락사고 등 외상의 원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긴급한 수술이나 치료를 담당하는 곳이
중증외상센터입니다.
지난해 전북에서 두 살 배기 남자아이가
외할머니와 함께 후진하던 견인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곧바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사고 당시 이 어린이는 골반이 심각하게 골절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도착 22분 만에
의료진은 수술 대신 이송을 택했고,
각 지역 대학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등 12곳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이 아이를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국립중앙응급센터의 도움으로
사건 발생 7시간 만에
아주대학교 외상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아기가 처음에 한 방울의 혈액을 수혈 받기까지 3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는 동안 누구 하나
이 작은 아이에게 피 한 방울 수혈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 이 아이는 세 차례나 심정지를 겪으며 수술을 받았지만
다음날 새벽에 숨을 거뒀습니다.
우리나라 외상환자의 50%가
골든아워를 지키지 못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합니다.
비단 이 어린이가 운이 나빠 이런 일을 당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19구급대가 환자를 구조한다 해도
이 병원, 저 병원 치료를 해주겠다는 병원을 찾아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245분, 4시간가량이 걸립니다.
병원에 도착한다고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전공의가 환자를 살피고
혼자서는 안되겠다 싶어 전문의를 찾고
결국 검사와 수술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됩니다.
이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입니다.
2010년도에
한 기자가 일주일 간 우리와 함께 상주하며
병원으로 오는 모든 외상환자를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나온 기사 제목이 ‘사고사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였습니다.
한 주 동안 외상외과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조사한 결과
주로 생산직 노동자나 음식점 배달부, 사무직 노동자, 자영업자, 대학생 등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분들입니다.
당시 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골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쉽게 다치고 죽는다는 거였습니다.
이제껏 길바닥에서 죽어나갔지만
끝내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중증외상센터를 운영 중인 미국이나 영국은 어떨까요?
미국 내 어디에서든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할 경우,
1시간 이내에 병원 외상센터에 도착해 수술 받을 수 있는 확률이 82%입니다.
사막이나 얼음 땅 같은 오지에서 사고가 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골든아워가 지켜진다는 뜻입니다.
영국 런던의 경우에는
95%이상의 환자가 1시간이내에 수술적 치료를 받습니다.
환자가 있다면 미국 내 주택가 어디에든 구조 헬기가 내려앉을 수 있습니다.
외상센터를 갖추기 전까지
미국 외상 환자의 사망률은 34%가량 됐지만
시스템이 생긴 이후 15%로 그 숫자가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약 10년 전쯤
영국 로열런던병원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250년이나 된 낡은 병원이라
비가 올 때면 늘 건물 여기저기서 물이 샜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세계 석학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후학을 양성하고 환자를 돌봅니다.
이곳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진정성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영국은 1년 365일 중 320일
헬기가 뜰 수 없는 기상상태를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외상환자가 발생하면
헬기가 의료진과 의료장비를 모두 싣고 15분 안에 직접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의료진과 파일럿 모두가 자기 목숨 걸고 흙투성이가 된 채 뛰어다닙니다.
그래야 환자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하루 평균 네 다섯 번 헬기가 출동합니다.
바로 이 진정성이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힘입니다.
지난해 경기소방 구조 헬기를 타고 환자를 구하러 간 일만도 166건입니다.
출동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민원도 받습니다.
산에서 다친 등산객을 구하러 출동을 했는데
헬기가 내려앉는 과정에서 주변 등산객들의 김밥에 모래가 튀었답니다.
강북의 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소방서 옥상의 헬기장을 없애라고 했습니다.
중랑천 한가운데 헬기장을 지어서 비가 오면 물에 잠깁니다.
단지 조금 시끄럽다는 이유로 다른 환자를 살리지 못해도 괜찮습니까?
말레이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나
오만과 같은 중동국가들도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이 1:1입니다.
2011년에
석해균 선장이 소말리아 해적의 총격을 받았을 때
미군 헬기로 2~3시간 만에 오만 병원에 옮겨졌고
도착한 지 1시간 안에 수술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외상센터 시스템과 전문 의료진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곳 의사들 대부분이
영국에서 수련을 거쳐 의료기술이 뛰어났고
우수한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만 아랍 국가였기에 혈액 공급이 원활치 않고
약이 부족해 우리나라로 이송됐던 겁니다.
외상외과에서 진료를 한다는 건
육체적으로 거의 막노동에 가까운 일입니다.
매일 핏물과 오물을 뒤집어쓰며
환자의 몸 속을 스스로 뚫고 들어가 생명과 사투를 벌입니다.
우리 인체는
체중의 5% 정도에 달하는 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절반이 조금 안 되는 1.5L 정도만 빠져나가도
환자는 사망직전에 도달합니다.
1.5L 짜리 우유팩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걸 바닥에 쏟아내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요?
중증외상환자에 있어서의 일분, 일초는
우유팩에서 우유가 쏟아져 나오면서 팩이 비워지는 시간과도 같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피를 빨리 막아내지 못한다면 환자는 죽습니다.
그래서 사고 현장으로 헬기를 띄우는 겁니다.
소방항공대 파일럿과 의료진,
우리의 안전을 담당하는 캐빈크루까지 총동원됩니다.
헬기 안에서 약을 준비하고 현장에서 환자를 구출하면
상처 부위에서 뿜어 나오는 피를 손끝으로 막으며
헬기 안에서 응급수술을 진행합니다.
일반적인 외과의사의 업무가
외래 진료, 응급실 진료, 입원 환자 진료, 수술적 치료로
크게 네 가지 정도라면
외상외과 의사의 경우 한 가지가 더 추가돼야 합니다.
바로 항공 출동과 현장 응급 시술입니다.
제가 특별해서 이런 걸 하자는 게 아닙니다.
교과서에 나와있으니까.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할 거라면
적어도 교과서에 나온 기본은 지켜야만 하니까요.
아주 소수더라도 제대로 된,
외상환자 치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수익과 관계없이
국제 수준으로 인력을 채용하고
오롯이 외상환자를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을 충분히 늘리고
그 인력을 꾸준히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외상외과 의사로서 이 직업은 정말 추천하지 않습니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서
세계 최대 용병회사인 미국 군사업체에 지원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최소한 외상외과에 대한 수요와 존중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단 뜻입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왜 의사가 됐지?’
‘왜 하필 외상외과 의사가 됐지?’ 생각합니다.
대학병원을 그만둬도 할 일이 있어야 하는데
외상외과는 시스템 없이 운영이 불가능하니 그럴 수도 없어요.
올해 우리 병원 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꼭 이 분야 전문의가 되고 싶다면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외과의사는 온종일 서서 손으로 수술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고 부담이 돼서
실제로 외과의사들은 수명이 짧은 편입니다.
정신력도 좋아야 합니다.
매 순간 환자의 생사(生死) 갈림길에서
핏물과 오물을 뒤집어써가며 일해야 합니다.
환자의 배를 갈랐을 때 피가 확 솟거나
췌장이 다 깨진 환자가 와도
여기저기서 솟던 피를 수술로 막고
혈압을 잡아가며
저승 가던 환자도 끌고 올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가 도착했다는 콜을 받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나가고
진료를 볼 수 있을 만큼 예민하고 민첩해야 합니다.
방대한 양의 의학 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니
공부도 잘해야겠죠.
마지막은
인성.
죽어가는 환자 살려놓고도 욕을 먹는 게 우리 일입니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운전하다 의식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하반신을 못 쓰게 됐거나
인공항문이 생겨있고 그러니 화가 날 수밖에요.
저는 총상 전문가가 아닙니다.
제가 만나는 환자의 대부분은
건설노동자, 공장 노동자,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같은 분들이죠.
그 동안 이 생활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한쪽 눈이 거의 안보이고
어깨도 부러진 후에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지만
그저 환자 살아나는 걸 보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서 있는 겁니다.
이제 제게 남은 건 진정성 하나입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입니다.
어떤 일이든 진정성을 가질 때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외상센터도
외형이 아닌 시스템을 국제 수준으로 만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이순신 제독이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목숨을 바치기까지 겪은 사건들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죠.
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끝없이 일으켜 세운
이순신 제독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고독한 그의 내면이
아주 몽환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처음부터 스토리에 온전히 이입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던 걸 다시 읽고 또다시 읽기도 합니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제 상황에 대입해 제 이야기로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어요.
누군가가 처한 상황과 내면을
이토록 진정성 있고 유려한 언어로 써 내려갈 수 있다니요.
김훈 작가 작품을 읽을 때면 늘 깊은 경외감을 느낍니다.
다음은 김훈 <남한산성>
최근에 영화로도 나온 작품이죠?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당파의 다툼,
아스라이 무너져가는 조국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의 삶을 그립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이토록 생생한 소설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에 또 한번 감탄했습니다.
사실 제 짧은 글이나 표현으로는 감히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박완서 작가께서
김훈 작가를 두고
“한국문학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이라 표현하신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정확한 찬사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은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영화광이 작부와 살며 시나리오를 쓰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지만
실은 그것이 할리우드 영화의 교묘한 짜깁기였음이 밝혀집니다.
작품은
주인공의 삶이 가짜에 불과하다며 끝이 나지만
오히려 제 생각에는
카피의 모자이크화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고,
선진국 여러 곳에서 가져온 각기 다른 장점의 모자이크를
잘만 맞추어 내어 환자를 살리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과의사라고 해서
모든 수술을 다 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스스로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나보다 더 좋은 의술을 가진 세계의 훌륭한 의료진들의 의술을 잘 카피하고 공부해
모자이크화하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가 환자 살리는 일엔 저작권이 없으니까요.
다음으로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입니다.
대학 때 국문학과 선배한테 물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되냐고.
그랬더니 선배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문학 작가인 만큼
이문열 책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며 추천했습니다.
그날부터 <사람의 아들>을 시작으로
<영웅시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이문열 작가의 작품은 가리지 않고 읽은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책을 읽을 때 한 작가의 작품을 쭉 따라가는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을 떠나 책을 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작품을 막론하고 표현력이 정말 뛰어나죠.
이문열 작가의 다양한 작품 속에는
자전적 내용이 잘 녹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문열의 <초한지>
가 있습니다.
초한전이라는
전쟁의 주축인 항우와 유방이라는 두 영웅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자들이
충성과 변절을 거듭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웅이 되기를 꿈꾼 두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지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항우와 마지막까지 남은 최측근 무장들이
죽기 전까지 전투를 치르는 상황이
아주 생생한 서사와 묘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죠.
마치 초한전을 실제로 보고 쓴 것처럼
독자를 치열한 전장의 한복판으로 이끌어가는
작가의 문장력에 수없이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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