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맥 덩어리에 핀 곰팡이 한 알갱이 같은 나라는 존재인데 내 속
에 으뜸인 하나(절대)에서 나온 이상한 것, 바른 것, 근본(根本)인 것
이 하나 있는데 이는 하느님 씨(얼나)다. 이것을 인식하려고 하는 것이
삶의 지상 목표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이 하느님의 씨(얼나)를 싹
틔운 사람이라고는 몇 안 된다. 얼나의 씨를 싹틔운 사람을 이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 몇 천 년의 역사가 흘렀어도 얼나의 씨가
싹튼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최후의 승리를 한다는 이것
이 아직 그 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멸망할 제나(自我)만을 바
라보는 이러한 세상에 싹튼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사람들의 얼씨가 싹트고 안 트고는 별 문제로 하고 이 사람도 싹이
텃는지 안 텃는지 모르겠다. 싹이 트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정신적인 살
림이 구차하나 이렇게 사는 것을 나는 자랑하고 싶다. 언제나 마음이
평안하다. 옆에 사람들은 알 수 없겠지만 하느님의 씨가 마음속에서 싹
이 트는 척만 해도 기쁘기 그지없는데 얼싹이 터서 자라난 사람은 얼
마나 좋을 것인가? 얼싹이 튼 사람으로 온 세상이 가득 찬다면 이 세
상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