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믿어주는 것이 사랑이더라 ●
우리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에 나를 좋아하는 집사님은 새벽기도회에서 은혜를 많이 받는다고 늘 고마워했다. 그 분이 어느 날 부터 새벽기도 설교시간에 손수건을 꺼내어서 눈물을 훔치곤 하신다. 무조건 은혜받기로 작정하신 분 같아서 더 고마웠다. 기도하러 나오셨는데 짧은 설교에 눈물이 흐를 정도라면 대단한 은혜가 아닌가? 비슷한 시기에 한 청년의 주일 예배 태도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그는 평소에도 좀 그랬는데 예배시간에 핸드폰을 자꾸 뒤적인다. 심지어 설교 본문을 읽어야 하는 시간에도 그 버릇이 중단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설교를 하고 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에 문자까지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 불러서 따끔하게 책망이라도 해볼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어느 날 이웃교회에 장립식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적당하게 자리를 정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순서지가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순서지에 찬송과 성경본문이 서비스 되는데 미처 준비 못했나 보다. 할 수 없이 핸드폰으로 성경 본문을 찾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아내가 허리를 툭 치면서 목사가 예배시간에 폰 만지작 거리면 괜히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 있으니까 자신이 가지고 온 성경을 같이 보자고 한다. 그리고 다음 부터는 꼭 가지고 다니란다. (아내의 말이 틀린적 없었지만 굳이 잔소리까지나..ㅎ) 그 날 따라 예배시간이 길어지면서 눈이 따가워진다. 나는 평소에 인공눈물을 넣는데 하필이면 그날 따라 주머니를 뒤져도 인공눈물이 없다. 할 수 없이 손수건을 꺼내어서 눈동자를 적당히 눌러서 아픈 부분을 맛사지 했다. 그러다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 그 집사님도 나처럼 눈이 건조해서 그랬구나.. 아, 그 청년도 나처럼 성경을 핸드폰에서 찾았구나(나중에 그 청년과 우연한 기회에 대화를 해 보니 설교에 은혜가 되면 자기 핸드폰에 메모를 해 둔단다..ㅎ)
알고 보니 드러난 현상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나 혼자 착각을 해서 한 분은 은혜를 엄청 사모하는 분으로, 또 한 넘(?)은 좀 삐딱한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치부했다. 그 사람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느냐로 그 사람의 행동을 좋게, 혹은 나쁘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으니 사실은 내가 덜 떨어진 목사이다...ㅎㅎ
사람을 평가할 때에 우리의 관점이 개입되어서 무조건 좋게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은근히 나쁜 사람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듯 하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어지면 그가 나에게 아쉬울 수 있는 말이나 예의 없는 행동을 해도 좋게 받아 들인다. 심지어 욕을 해도 친근감으로 받아 들이고, 연락을 안해도 굉장히 바쁜가 보다 라는 우호적인 생각을 한다. 반대로 평소에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온갖 잡다한 생각까지 그에게 덮어 씌우곤 한다. 그게 사람이다. 그게 나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내가 먼저 그를 믿어주면 관계가 좋아진다. 실제로 자기 교회나 자기 교인을 늘 자랑하는 목사님은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고 교인을 믿어주는 넓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었다. 믿어주는 그 마음이 교회의 평강과 교인을 성숙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성경에서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어 놓았고(롬16:4), 갈라디아 교인들은 나를 위해서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줄 성도들(갈4:15)이라고 칭찬한다. 위의 말씀을 표면으로만 보면 정말 대단한 교인들이었구나 그래서 바울은 힘을 얻을 수 있었구나 우리 교인들도 이런 헌신이 있어야 할텐데 라는 단세포적인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니 정말 교인들이 바울에게 찾아 와서 목을 내어 놓겠다고 했거나, 정말 눈을 빼어서 주겠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교인들을 보면서 이들은 나에게 이 정도의 마음이 있는데, 이런 마음이 있는 성도들을 내가 더 사랑해야겠다는 바울의 넉넉한 마음이었다.
마치 좋은 어머니는 철부지 아이가 속이려 들 때에 일부러 속아 주고 오래도록 기다려 주었던 그 일로 인해서 큰 인물로 자라는 것처럼 결국은 그가 나를 사랑하느냐 보다 내가 그를 믿어 주는 마음의 크기가 사랑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신다는 것이 오롯이 믿어질 때에 저절로 표현되는 또 다른 고백이다. 먼저 믿어주는 큰 사랑의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쯤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