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3월 17일 화요일
[(자)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는 것을 보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천사의 말을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못가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던 병자를 고쳐 주신다(제2독서).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파스카 성야 세례 서약 갱신 후 따름 노래).>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물’은 우리의 일상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차원에서도 깊은 상징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전에 들어설 때마다 성수를 찍고 십자 성호를 그으며, 두 양식의 성수 기도 가운데 하나를 바칩니다.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이 기도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세례 때 받은 은총을 기억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전례 안에서 정화와 축복의 의미로 성수 예식을 거행합니다. 에제키엘서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부활 시기 성수 예식 때 부르는 성가 ‘성전 오른편에서’는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이가 구원을 받고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에 관한 가장 중요한 상징은 특별히 세례 때 우리에게 부어지는 물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탄생의 문을 열어 줍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여정은 늘 생명의 물 가까이에서 이루어집니다. 조용하지만 쉼 없이 흐름으로써 생명을 전달하는 물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은총이 흐르는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생명을 건네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벳자타 못 주변에 앉아 있던 많은 병자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생명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우리가 먼저 생명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하느님께 청해 봅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흐름 안에서 서로를 일으켜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멈추어 서 있던 이들이 삶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김재형 베드로 신부)
죽고 싶지만 죽지도 못하고, 살아도 살아있지 못한 삶!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양 문은 번제물로 바칠 양들을 성전으로 바치기 전 드나들던 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양을 제물로 바치기 전에 벳자타 못에서 깨끗하게 씻곤 하였습니다.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나 딸렸으며, 주랑 아래에는 연못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많은 환자가 물이 출렁거리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아주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는데, 그 타이밍에 제일 먼저 입수를 하는 단 한 사람만이 치유된다는 전설이 퍼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유로 벳자타 연못가에는 수많은 환자들,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사람들이 항상 누워서 대기를 하고 있었고, 보호자들은 매의 눈으로 언제 물이 출렁이는가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누워있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일년 이년, 십년 이십년도 아닌 38년입니다.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그 환자는 평생토록 앓아 누워 지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환자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아침 벳자타 연못으로 정확하게 출근했습니다. 병이 오래 가다 보니 주변 사람들 하나둘 더 떠나고 더이상 다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겨우 기다시피 벳자타 연못에 도착한 그는, 가끔 물이 출렁거려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보니, 늘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가련한 처지를 보신 것입니다. 장장 38년 세월 동안 차라리 죽고 싶지만 죽지도 못하고, 살아도 살아있지 못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온 그의 가련한 처지를 눈여겨보신 것입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묻습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그리고 긴 말씀 하지 않으시고 그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정말이지 은혜로웠던 일은 환자가 예수님을 찾기 전에 예수님께서 그를 먼저 바라보시고 굽어보십니다. 그의 오랜 고통의 세월을 먼저 알아보시고, 따뜻한 음성으로 말을 건네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참으로 눈물겹도록 감사한 말씀입니다.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의 속박과 부자유의 삶을 청산하고 해방과 자유의 길을 걸어가라는 초대의 말씀입니다.지금까지의 제한적인 삶의 방식, 낡은 삶의 방식을 버리고, 보다 넓은 세계, 또 다른 넓은 지평의 삶에로 넘어가라는 초대입니다.
안식일에 발생한 환자의 치유는 유다인들에게 큰 스캔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38년 동안이나 고생했던 환자의 치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었습니다. 그저 안식일 법을 어긴 예수님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였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죄와 악습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바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부단히 어제의 나와 결별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습니다.
욕망의 침상을 들고 일어나 참된 안식으로 가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은 사순 제4주간 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를 만납니다. 38년이라니, 참으로 기나긴 세월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베데스다 못가의 풍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천사가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 나을 수 있는 곳입니다. 말이 좋아 '자비의 집'이지, 실상은 선착순 한 명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모두 들러리가 되어야 하는 지옥입니다. 옆에 누운 형제가 경쟁자이고, 내가 살기 위해 저 사람을 밀쳐내야만 하는 곳, 그것이 베데스다의 실체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왜 그토록 피곤한지, 왜 우리 인생에 참된 안식이 없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를 묻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학생 때는 학교에서 경쟁을 해야 했고, 여자를 좋아할 때도 그랬으며, 사제가 되어서도 남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이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에덴동산의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하느님처럼 되리라'는 탐욕을 품은 순간부터 겪어야 했던 그 피로를 저도 똑같이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안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닙니다. 바로 내 안의 '욕망'입니다. 소유욕은 스스로 주님이 되려는 마음이고, 육욕은 스스로 창조자가 되려는 마음이며, 교만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는 마음입니다. 이 '삼구(三求)'라는 마귀를 내 안에 모시고 사는 한, 우리는 억만금을 가져도 베데스다의 환자처럼 늘 목마르고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안식에 이르는 길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욕망은 채울수록 더 커지는 바닷물과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소설 속 노인 산티아고는 마침내 바다 먼 곳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만납니다. 노인은 며칠 밤낮을 죽음과 사투하며 그 물고기를 잡으려 고생합니다. "나는 저놈을 꼭 잡아야 해! 그래야 내가 최고의 어부임을 증명할 수 있어!" 그의 온 신경은 오직 그 거대한 물고기라는 욕망에 고착됩니다.
결국 물고기를 잡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물고기는 뼈만 남게 됩니다. 노인은 그 앙상한 뼈를 끌고 항구로 돌아와 지쳐 쓰러집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함뿐이었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 소설을 쓴 작가 헤밍웨이 자신의 인생입니다. 그는 노벨상과 풀리처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와 욕망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점에서 그는 안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보여줄 것이 없다"라는 강박과 허무에 짓눌린 그는, 결국 노인처럼 지쳐버린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의 비참한 노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참된 안식은 가장 훌륭한 작품을 내놓으려 고군분투한 뒤에 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안식은 내가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그럴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욕망을 채워 증명하려는 시도가 멈추지 않는 한, 우리 인생은 뼈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돌아오는 노인의 고된 항해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가 "건강해지고 싶으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너는 아직도 1등으로 못에 들어가는 것만이 행복이라 믿느냐?"라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거라." (요한 5,8) 이제 더 이상 그 욕망의 근거에 의지하지 말고, 그런 욕망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침상이 필요 없는 존재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때 참 안식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느님 아버지가 우주의 주인이신데 자녀가 무엇을 뺏기 위해 싸우겠습니까? 내가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이 들어오면, 스스로 주님이 되려는 소유욕도, 창조자가 되려는 육욕도, 심판자가 되려는 교만도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미 다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이 안식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누군가 전해주는 진리를 받아들일 때 가능합니다. 욕망의 침상을 버리고 참 정체성을 회복하여 안식을 얻은 대표적인 사례를 보겠습니다.
세계적인 동기부여 강연가 닉 부이치치는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었습니다. 15세 이전의 그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밤 "내게 손과 발이 생기게 해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남들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 1등은커녕 평범한 사람만이라도 되고 싶다는 그 간절한 욕망이 오히려 그를 38년 된 병자보다 더 깊은 절망의 침상에 묶어두었습니다. 그는 8세와 10세 때 욕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결핍에 대한 욕망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15세의 어느 날, 그는 요한복음 9장의 태생 소경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요한 9,3) 이 말씀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손발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몰라서 불행했구나!'
그는 하느님이 자신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믿기로 했습니다. 손발을 가지고 싶다는 그 처절한 욕망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참된 안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애라는 '들것'을 부끄러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들것을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희망을 전하는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누구보다 행복한 안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욕망에서의 자유는 "내가 그럴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침상을 들고 걸어갈 때 완성됩니다.
나 스스로 안식하려고 하면 누구도 평화를 보지 못합니다. 더 큰 힘에 나를 내어맡기고,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백할 때만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안식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교부들의 말씀을 가슴에 새깁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했습니다. "욕망의 노예가 된 영혼은 기둥에 묶인 개와 같아서 결코 안식을 누릴 수 없다." 또한 성 에프렘은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안식의 집을 지으려 하시는데, 우리는 그곳을 욕망의 오물로 채우고 있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이제 우리를 옥죄던 욕망의 침상을 들고 일어납시다. 주님을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하느님 자녀라는 정체성과 자존감으로 살아갑시다. 대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합시다. 그분 계명에 순종하며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 인생은 베데스다의 수용소가 아니라 영원한 안식의 잔칫집이 될 것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엘파소에서 한 어르신이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이 메일로 소통하는 시대에 10시간 차를 타고,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편지에는 손 글씨로 공동체의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작년 4월에 서울 대교구에서 파견된 신부님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 서울 대교구에서는 더 이상 사제 파견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사제를 파견할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대부분 70이 훌쩍 넘으신 어르신들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제가 4년 전에 갔을 때 주일 미사 참례하는 분이 20명이 남짓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의 마음은 한국말로 고백성사를 보고, 한국말 미사를 1달에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뉴욕에 있을 때도 후배 신부님이 있어서 갔었고, 재작년 달라스에 와서도 갔었습니다. 어르신들 편지를 읽으면서 한 달에 한 번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월요일에 가서 고백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한 후에 화요일에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지난 2월 23일에 처음 다녀왔습니다. 어르신들은 모두 좋아하셨습니다. 좋은 일은 함께 나누면 좋으니, 이웃에 있는 포트워스 신부님에게도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엘파소 공동체에 다녀오면서 1999년, 제가 처음 본당 신부로 사목했던 성당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서울 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이었습니다. 주일 미사에 50여 명 나왔고, 평일 미사에는 10명 내외가 나왔습니다. 교구로부터 사무실 직원 급여와 미사예물을 지원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춥고, 무료한 날들이었습니다. 사목에 필요한 사람,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3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3년이 저의 사제 생활 35년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어머니는 기꺼이 저와 함께 3년을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사제관 식복사 일을 해 주었고, 본당에서는 레지오 단원으로 교우들과 함께했습니다. 어머니는 활동으로 가정방문도 하였고, 환자 방문도 하였습니다. 오웅진 신부님을 찾아가서 꽃동네 수녀님 파견을 부탁했습니다. 오웅진 신부님은 두 분의 수녀님을 보내 주었습니다. 수녀님은 교리를 가르쳤고, 성당 청소와 화장실 청소도 기쁘게 하였습니다.
가정방문을 통해 알게 된 자매님과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자매님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다가, IMF의 영향으로 쉬고 있었습니다. 7명으로 시작했던 태권도는 입소문을 타고 아이들이 오면서 많이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늘면서 성당 마당에 아담한 태권도 도장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양재동에 있는 국기원에서 가서 승단 심사도 받았습니다. 수녀님은 아이들에게 간식도 주고, 교리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세례받을 때 부모님도 성당으로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억입니다. 여름이면 서울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왔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성당을 찾았습니다. 저는 비용을 받지 않고 성당의 시설을 사용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신부님들은 비용을 받지 않았어도 가실 때면 감사헌금을 주고 갔습니다. 경기 지역 사제 회의를 본당에서 준비했고, 신부님들은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는 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25인 승 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신부님들은 점심값으로 기꺼이 버스 한 대를 마련할 수 있는 후원금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사제 성화의 날에 저는 사목 체험을 발표했습니다. 그 발표가 계기가 되어서 저는 교구청이 있는 명동에서 사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1 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예언자는 생명을 살리는 물, 생기와 활력을 주는 물을 보았습니다. 물은 필요하고, 물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단순히 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의 삶이 생명을 살리는 말과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의 말과 행동은 일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물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물이 힘이 있고, 물이 영적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물을 그렇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물은 단순히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말라 버려지듯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살아야만 영적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우리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통로입니다. 기도, 전례 참여, 단체 활동 등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주님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될 수 있고, 주님의 크신 사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38년 동안 병고에 시달렸던 사람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꼭 물속으로 들어가서 씻어야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주님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소서.”
오늘의 성인
성녀 제르트루다 (Gertrude)
활동년도 : 626-659년
신분 : 수녀원장
지역 : 니벨레스(Nivelles)
같은 이름 :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복자 페핀(Pepin, 2월 21일)과 성녀 이다(Ida, 5월 8일)의 딸로 태어난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는 란덴(Lande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들의 경건한 생활을 본받았으므로 스스로 수도생활에 헌신하고자 노력하였다.
639년 복자 페핀이 사망하자 성녀 이다는 니벨레스에 수도원을 세우고 딸과 함께 입회하였는데, 딸인 성녀 제르트루다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656년에 원장직을 사임한 그녀는 성서 연구와 고행하는데 몰두하였다.
환시의 은혜를 받은 것이 특기할 만하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여행자와 정원사의 수호성인이다.
성 파트리치오(Patrick)
신분 : 주교, 선교사
활동지역 : 아일랜드(Ireland)
활동연도 : 389?-493년
같은이름 : 바드리시오, 빠뜨리시오, 빠뜨리시우스, 빠뜨리치오, 빠뜨리치우스, 파트리시오, 파트리치우스, 파트리키오, 파트리키우스, 패트릭
로마제국의 브리튼(현재의 영국) 식민지에서 지방의회 의원이었던 귀족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난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389년경 스코틀랜드 던바턴(Dunbarton) 근처 킬패트릭(Kilpatrick)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세 때에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열정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꿈 속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탈출한 그는 200마일이 넘는 길을 헤맨 끝에 킬랄라(Kilala) 만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항해 준비를 마치고 있던 배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자신이 경험한 노예 생활을 자신의 회개를 위한 기간이자 앞으로의 사도직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 경험을 통해 아일랜드에 신앙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명에 따라 그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아일랜드를 회개시키려는 열망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교황청으로부터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432년경에 성 게르마누스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초대주교였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를 계승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 추장들과 과감하게 만났고, 대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Roma)를 방문하였고 아마(Armagh)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선교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40년간의 활동에서 그는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라틴어 공부를 비롯하여 아일랜드를 서방교회와 아주 가깝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록한 영적 자서전인 "고백록"(Confessio)을 썼는데 그것은 일종의 호교서이기도 하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493년 3월 17일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아일랜드의 다운패트릭(Downpatrick)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상징은 뱀과 토끼풀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아일랜드에 있는 뱀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내어 없애 버렸다는 것과 그가 어떤 미신자에게 한 줄기에 잎사귀가 3개 달린 토끼풀을 가지고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였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성 파트리키우스를 기념하는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에 국화인 토끼풀을 옷깃에 달고 녹색 옷을 입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함께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제 안에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제 뒤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제 앞에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제 옆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차지하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제 위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제 아래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고요함 중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위험 중에 계시며,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 안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친구와 낯선 이의 입에 계시옵소서.
- 성 파트리치오
성 요한 사르칸데르(John Sarkander)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체코(Czech)
활동연도 : 1576-1620년
같은이름 : 요한네스, 요안네스, 조한네스, 조안네스, 조반니, 존, 죤
성 요한 사르칸데르(Joannes Sarkander)는 오스트리아계의 슐레지엔(Schlesien, 실레지아) 태생으로 13세 때에 부친이 사망하자 14세의 어린 나이로 프라하(Prague)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그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올로모우츠(Olomouc) 교구장의 눈에 들어서 교구사제가 되었다.
16세기에 이 지방은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회원의 도움을 받아 이단자의 개종 운동을 전개하여 250명의 개종자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주위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데, 1618년에 30년 전쟁이 체코 동부 모라비아(Moravia)에서 터졌을 때 난리를 잠시 피하기 위해 폴란드의 크라쿠프(Krakow)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본당 신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홀레쇼프(Holesov)로 돌아와 갖은 고초를 겪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는 1860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5년 5월 21일 체코의 올로모우츠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요셉 (Joseph)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활동지역 : 아리마태아(Arimathea)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조셉, 요세푸스, 요제프
네 복음서에 모두 언급되어 있는 아리마태아 사람 성 요셉(Josephus)은 의회 의원이었으나 유대 당국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비밀리에 예수를 따라 다닌 제자이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다가 예수님이 운명하자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고운 베로 싸서 바위 무덤에 모셨다(마르 15,43-46; 마태 27,57-60; 루카 23,50-53; 요한 19,38-42).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한 일이 없고, 하느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프랑스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여 가는 성 필립보(Philippus, 5월 3일) 사도를 수행하였고, 잉글랜드(England)로 파견되는 12명의 선교단의 책임자였다고 한다.
가브리엘 천사의 도움으로 그들은 잉글랜드 왕이 하사한 땅에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대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는 아마도 이곳에서 서거한 듯 보인다.
또 성 요셉은 최후 만찬에 사용된 성작을 물려받은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연령회와 장의사의 수호성인이며, 동방교회에서는 7월 3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루가23,50-56
50 의회 의원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올바르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51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을 한 일이 없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동네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이었다.
52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53 그 시체를 내려다가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 만든 무덤에 모셨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이었다.
54 그 날은 명절 준비일이었고 시간은 이미 안식일에 접어들고 있었다.
55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도 그 곳까지 따라가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어떻게 모시는지 눈여겨 보아두었다.
56 그리고 집에 돌아가 향료와 향유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계명대로 쉬었다.
마르15,43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마태 27,57-61
묻히시다 (마르 15,42-47 ; 루카 23,50-56 ; 요한 19,38-42)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하였다.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요한19,38-42
38 그 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게 하여달라고 청하였다.
그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요셉은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렸다.
39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40 이 두 사람은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42 그 날은 유다인들이 명절을 준비하는 날인데다가 그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공관복음서의 보도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니고데모가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함께 "유대인의 장례 관습대로" 예수의 시신을 존경스럽게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무덤에" 안장한 점이 크게 다르다.
그대신에 여인들에 관한 언급은 없다.
특히 예수의 시신을 존경스럽게 염하고 깨끗한 무덤에 안장한 내용은 예수 자신이 들어올려져 영광스럽게 된다는 요한 복음서의 독자적인 전승 내용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은 마르코 복음사가의 보도(15,43)에 따르면 "명망있는 의회의원"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 거주했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
니고데모도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처럼 숨어서 비밀리에 예수를 따랐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두사람은 이제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예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를 결정적으로 드러내게 된 셈이다.
또한 이 무덤은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의 소유였다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전한다(27,60)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란 표현은 예수의 왕적인 품위와 거룩함에 상응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신 예수의 영광을 시사하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의 이 무덤은 오늘날 "예수의 무덤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 위치했었다고 하며 역사 고고학적으로도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주석에서)
성녀 비트부르가(Withburga)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데르햄(Dereham)
활동연도 : +743년경
같은이름 : 비트브루가 위트부르가 위트브루가
성녀 섹스부르가(Sexburga, 7월 6일)와 자매간인 성녀 비트부르가는 이스트앵글리아(East Anglia)의 왕 안나(Anna)의 딸이다.
그녀는 작은 언니의 뒤를 따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는데, 노퍽(Norfolk) 연안의 홀크햄(Holkham)에서 다년간 은둔생활을 하였다.
부친이 전쟁에서 서거한 뒤에는 데르햄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주변에 수많은 여성들이 모여들자 그곳에 수녀원을 세웠다.
그녀는 743년 3월 17일에 선종했고 유해는 이스트 데르햄 성당에 안장되었다가 50년 후 성당 안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녀의 유해는 조금도 부패하지 않았다.
그녀는 위트부르가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