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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임하는 예배
240526낮 (대하1:2-13)
<2)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재판관들과 온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족장들에게 명령하여 3)솔로몬이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에 있음이라 4)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쳐 두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그것을 위하여 준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5)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지은 놋 제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 6)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7)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 8)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9)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10)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11)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12)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13)이에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 회막 앞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아멘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예배는 왕상3:1-15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이 일천번제의 예배를 모델로 일천번제 헌금을 드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천일 새벽예배를 작정하고 드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예배는 하나님을 최고로 감동시킨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그리도인들에게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4:23-24절에서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레위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기쁘시게 열납하시는 다섯 가지 제사의 종류와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통해서 복을 받기 때문에 예배에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예배는 하나님의 응답과 복이 임했습니다.
6-7절입니다.
<6)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7)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
11-12절입니다.
<11)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12)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솔로몬의 일천번제예배는 이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뿐 아니라 엄청난 복이 임했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물론이요,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하여 주셨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감동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복이 임하는 솔로몬의 예배는 어떤 예배였습니까?
1. 솔로몬의 예배는 하나님께만 집중한 예배입니다.
우리도 예배 중에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옛날에 유럽에 한 훌륭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인생의 성공비결을 한 가지 가르쳐 달라고 임금에게 간청을 아뢰었답니다. 임금은 아무 말 없이 컵에다 포도주를 가득히 따랐습니다. 그리고는 청년에게 건네어 주었습니다. 임금은 별안간 소리를 높여 군인을 하나 부르더니 "여봐라 이 젊은 놈이 저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에 너는 칼을 빼어 들고 이 젊은 놈의 뒤를 따라라. 만약 포도주를 엎지를 때에는 너는 뒤에서 젊은 놈의 목을 가차 없이 내리쳐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청년은 인생의 성공의 비결을 배우러 왔다가 난데없이 목이 달아나게 생긴 것입니다. 그 청년은 가득 찬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엎지르지 않고 잘 다녀왔습니다. 그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맺혀 있었습니다.
임금은 다정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청년에게 말을 했다. "수고했다. 그런데 네가 시내를 도는 동안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지 내게 말해보라"
청년은 대답하기를, "임금님 죄송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듣지를 못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너는 거리에 있는 거지도 못 보았단 말이냐? 너는 장터의 장사꾼들도 못 보았다는 것이냐? 너는 술집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못보고 못 들었단 말이냐?" 다시 청년은 대답하기를, "네, 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를 못했습니다."
인자한 임금은 말했습니다. "그렇다. 이것이 네 인생의 성공의 교훈이다. 네가 거리를 한 바퀴 돌면서도 그 잔만 바라보고 정신을 집중시킨 것처럼 너의 참다운 인생에다 모든 것을 집중하고 살면 너는 성공할 것이고 유혹과 죄의 소리가 너에게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귀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는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 중에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적이 예배하러 나오는 것 아닙니까? 주일에 나와서도 오로지 세상적인 일에만 관심 두고, 다른 사람만 처다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사58:13-14절에,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말씀 했습니다.
성일에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로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고,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예배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성일(聖日)에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청년이 잔에 담긴 포도주를 흘리면 죽을까봐 성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그것에 집중하느라 성에 누가 사는지, 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일에 교회 와서 하나님께만, 예배에만 집중해야 세상 것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니까 엉뚱한 것들만 보고 엉뚱한 것에만 신경 쓰다 예배는 여벌로 드리고 가니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시겠습니까? 우리 교인들은 그런 교인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교회 와서 교회의 시설이나 사람들의 흠을 보았거나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실망했거나 은혜가 안 됐다면 그런 분은 분명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예배 중에는 하나님께만 집중합시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고 하나님을 감동시키시길 축원합니다.
2. 솔로몬의 예배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8-9절입니다.
<8)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9)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솔로몬의 예배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하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감사의 예배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능력 있는 자도 있었고 잘생긴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다 제쳐두고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줍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대신해 왕으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크게 감동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감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자는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자다>라고 유명한 설교자 크리소스톰이 말했습니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들어가면 형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시간에 교회 오실 때 감사로 무장하고 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원망과 짜증, 불평이 가득하여 오신다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도 짜증이 나실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교회 나오신다면 보는 사람도 즐겁고 예배를 드리는 본인도 행복하고 받으시는 하나님은 더 기쁘실 것입니다.
감사와 불평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면 안 될 일도 되고 막힌 일도 뚫어지는 은혜가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질병을 물리치는 막강한 보약이라고 의학자들이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감동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려면 여러분의 심령을 감사로 가득 채워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솔로몬의 예배는 정성이 담긴 예배입니다.
6절입니다.
<6)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왕상3:4절에는 <일천번제(一千燔祭)>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일천 마리의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천 번의 예배가 아니라 일천 마리 번제물(燔祭物)을 드린 예배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그 일천번제라는 말속에는 솔로몬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도 나타나지만 특히 솔로몬의 하나님께 대한 정성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정성이 담긴 신앙고백, 찬양, 기도, 그리고 정성이 담긴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솔로몬을 보세요. 그가 예배를 드리러 기브온으로 갈 때 혼자가지 않았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 백부장, 재판관, 그리고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을 명하고 온 회중과 함께 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예배는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참여한 거대한 예배요, 그의 믿음과 정성이 가득 담긴 예배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예배였습니다. 함께하는 예배가 은혜롭습니다. 가족과 함께, 여러 성도와 함께 예배할 때 은혜가 됩니다. 이 예배 속에는 솔로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정성이 가득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예배도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혹시나 대충 드리는 형식적 예배, 아니면 가인의 제사처럼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아무리 많이 드려도 주님은 전혀 감동을 받지 않으실 것이고 오히려 진절머리를 내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구약 성경 이사야 첫 부분을 살펴보면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1:12-13절입니다.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 선지자가 외친 마당만 밟는 예배, 우리 주님이 그토록 진절머리를 내는 예배는 어떤 것일까요? 가식적인 예배, 형식적인 예배, 그리고 위선적인 예배를 하나님은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일단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도 어떤 예의를 갖추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예배는 한 주간의 모든 일 중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장 소중한 예배가 진정으로 소중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되려면 우리의 복장도 제대로 갖추어져야 하고 마음도 제대로 갖추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배 시간에 여러분이 교회 나올 때 집에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와야 합니다. 남성분들은 평소 안 매던 넥타이도 좀 매고 평상시 안 입던 양복도 입고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와야 합니다. 여성들도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장 아름답게 화장도 하고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자가 하나님께 갖추어야 할 예의입니다. 그런 예의를 갖추면 우리의 행동도 조심스러워 집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보니까 내고 안보면 안내고 하는 헌금이 아니라 내 마음이 듬뿍 담긴 진실과 정직이 담긴 헌금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액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마음과 믿음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잔치 집에 갈 때도 예의를 갖추고 갑니다. 장례 집에 갈 때도 예의를 갖춥니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곳에 오면서 예의 없이 오면 안 되지 않습니까? 명품 옷을 입고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형편에서 정성이 들어 있는 예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십니다.
요21:7절입니다.
<7)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예수님이 죽으시자 베드로와 제자들이 다시 바닷가로 나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자기 생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 밤에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리하면 고기를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요한이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고 소리쳤습니다. “주시라” 이 소리를 듣고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예수님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고 배에서 뛰어 내립니다.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겉옷을 둘렀습니다. 고기 잡던 중에도, 다급한 중에도 그는 겉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당시에 겉옷은 오늘날로 말하면 정장입니다.
요13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말을 씻기실 때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겨주셨습니다. 발을 다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주님도 말씀을 전할 때 겉옷을 입고 예의를 갖추셨습니다.
요13:12절입니다.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어떤 부부가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빠가 운전을 하면서 갑자기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와~ 오늘 목사님 설교 완죤히 죽을 쑤더구만... 아니 일주일 동안도 대체 뭘 하셨길래... 그것도 설교라고 하남~ 그 정도 설교면 나도 하겠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옆에 타고 가던 엄마가 한마디 거듭니다.
"설교도 엉망 이었지만... 찬양댄 왜 또 그리 죽을 쒀! 반주자 따로, 지휘자 따로, 완전히 따로국밥이드만..... 성가 대원들이 아침을 안 먹고 왔나... 다 죽어가는 소리에 다가 악보에 코들을 박고... 지휘자는 그냥...우짜고 자짜고...
한참을 부부가 불평을 늘어놓고 있을 때....뒷자리에 잠자코 타고 가던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한마디 합니다...
“아빠~ 엄마~ 그럼 천원 내고 본 예배가 그렇지...”
“어제 토요일에 비싼 돈 주고 본 영화는 잼났었잖아~”
“다음부턴 천 원짜리 예배드리지 마시구 큰 돈 내고 예배 드려 보세요~틀림없이 그런 말씀 안 하실테니깐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정성의 예배는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앞에 예의와 진실과 정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에 감동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예의에 감동을 받습니다. 여러분들도 누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주면 감동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함에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의 정직함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 예배에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4. 솔로몬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11절입니다.
<11)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솔로몬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모든 문무백관을 다 대동하고 거창하게 산당을 찾아 제사를 드리러 와서 그것도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제사를 드린 왕이 없었습니다. 다윗조차도 이렇게까지 예배드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한 번에 일천의 번제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갑자기 자녀들이 안하던 짓으로 아양을 떨고, 서비스가 좋으면 부모는 이놈이 뭐가 원하는 것이 있구나? 부탁할 것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놈이 뭐가 대단하게 원하는 것이 있구나? 구하는 것이 있구나 생각하시고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꿈속에서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십니다.(7절)
솔로몬은 이 때 지혜를 구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상황이라면 무엇을 구했을까요? 아파트 한 채? 건강? 예쁜 배우자, 돈 많은 남자? ..... 그러나 솔로몬이 구한 것을 보세요.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이 백성을 잘 다스리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10절)
솔로몬은 자기의 욕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것은 다른 속셈이 그 속에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를 구한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백성을 잘 돌보게 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속에 탐욕이 없었습니다. 얼마든지 부(富), 재물(財物), 존영(尊榮), 원수의 생명, 장수(長壽), 요즘 같으면 권력(權力), 건강(健康)등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은 한마디도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감동케 했습니다. “솔로몬아! 네가 너를 위하여 부귀영화도, 장수도 구하지 않고 내 백성을 잘 다스리는 지혜를 구하다니”(11절) 하나님이 너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구한 지혜 뿐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영화도 더하여 주셨습니다.(12절)
솔로몬이 부귀영화나 나라의 부강이나 건강이나 장수를 구하였더라면 하나님이 들어주셨겠지만, 감동 받으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갑자기 안마를 해주고, 안하던 애교를 피고, 구두를 닦아주고, 입 써비스를 하면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고 말하십니까? 이놈이 뭐가 필요한 것이 있구나? 뭐가 필요하냐 말해봐? 그러면 분명 <용돈이 필요하다. 장난감이 갖고 싶다. 옷을 사 달라...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허락을 해 달라>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러면 그렇지 네가 엄마아빠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있는 것이지....그래도 부모니까 필요한 것을 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 자녀 때문에 감동 받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자녀가 뭐가 필요하니? 말해봐 다 들어줄게...아빠엄마 기분이다...이 아이가 아니에요 마무 것도 필요 없어요? 저는 엄마아빠가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감동의 도가니입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이놈이 다 컸구나. 부모 마음을 다 알아주고, 은혜를 다 알아주니..내가 고생하며 자식 키운 보람이 있구나....이렇게 되는 거죠...그러면 자식이 해달라는 것 다해주고 싶어집니다. 아니 알아서 미리 해주고 싶습니다. 이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도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 와서까지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까지 자기 위세를 과시하려는 분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까지 탐욕을 드러냅니다. 시기하고 질투로 떡칠해져 있습니다. 나보다 나 보이면 은근히 무시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아닌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내 자식보다 잘난 자식 같으면 은근히 무시합니다. 자기보다 열심히 하면 은근히 협조도 안합니다.
교회 안에서 구축하며 누리던 자리를 빼앗길까봐 예수님조차도 경쟁상대로 삼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의 철천지원수가 되어 책망의 대상1호가 되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와 예배가 세속에 물들고, 인본주의화(人本主義化) 되어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내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예배를 이용하려 든다면, 교회는 퇴락하고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그런 예배자는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이런 교인 없으신 줄로 믿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위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솔로몬의 예배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였습니다.
솔로몬의 예배는 감사가 있는 예배였습니다.
솔로몬의 예배는 정성이 담긴 예배였습니다.
솔로몬의 예배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위한 예배였습니다.
솔로몬의 예배가 하나님을 감동시켜 놀라운 응답과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예배가 되었듯 여러분의 예배도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초창기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는 예배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정(王政) 후반에 가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 성전을 지은 손으로 우상 신전을 짓고, 우상에게 예배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큰 비극이 그로인해 비롯됩니다. 그것은 바로 통일왕국이 둘로 나누어져 분열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만 잘하는 신앙생활, 처음만 예배 잘 드리는 사람, 처음만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나중은 실망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여러분의 예배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 감사가 있는 예배, 정성이 담긴 예배, 하나님만을 위한 예배가 되어...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