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2월 16일)
<누가복음 2장> “가이사 아구스도와 아기 예수”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1-1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18-24)
『누가복음 2장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누가는 예수님 탄생 사건의 역사적 배경으로서 그 당시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실제적인 역사적 사건임을 밝히는 동시에, 막강한 권세로 세계를 지배하던 세상 제왕의 위세와 하나님 나라 왕의 비천한 탄생을 대비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대제)는 제정 로마 시대 최초의 황제로서 B.C.27년부터 A.D.14년까지 41년간 로마를 통치하여 소위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건설한 사람입니다. 그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이었지만 로마 제국을 견고하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B.C.27년에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를 받아 로마인들에게는 ‘신의 아들’로 여겨지며 로마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 속에서도 가장 강력한 제왕이었습니다.
예수님 출생 당시에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 영토 내의 피지배국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시행했으며, 그런 세상 왕의 강압에 의해 피지배 민족인 유대 백성의 일원으로서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는 마리아의 출산이 임박한 가운데 자신들의 원적지이며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먼 여행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지만 유숙할 처소가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양들의 먹이통인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과 권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천지 창조 이후로 전례가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왕이신 예수님은 초라한 장소에서 탄생했을 뿐 아니라 그 왕을 찾아와 경배한 사람들도 왕족이나 귀인들이 아닌 당시 사회적으로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인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주 탄생의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한 천사들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비천한 탄생이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또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 평화를 주는 사건임을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누가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세상적인 위세와 예수님의 비천한 탄생을 대비하면서, 영원하고 진정한 평화를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전쟁과 피 흘림을 통해 일시적이고 거짓된 평화를 이루는 세상의 제왕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어 이 땅에 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그 탄생에서부터 십자가의 도를 나타내 보이신 것으로서,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이나 하나님의 지혜이며, 약해 보이나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이사 아구스도와 같은 영웅의 출현에 희망을 둡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연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밖에는 인류에게 희망이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 “자기를 낮추시고 비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만이 참 평화를 주시는 왕이심을 믿습니다!”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X/51
첫댓글 아멘
큰 기쁨의 좋은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