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꼭 드러내야 하는 마음 》
시 13:1~6
〈 감기와 사랑은 감출 수 없다 〉
엊그제 치과를 갔습니다. 예약시간이 저와 같은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함께 TV를 보게 되었고, TV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TV가 저와 그 분을 공통 과제속으로 묶어주었습니다.
초면인데도 그 분이 저에게 말을 겁니다.
“참 저 사람 이해 못하겠어요, 가만히 있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괜히 계엄을 해 가지고…”
이런 때, 맞장구 쳐 드려야겠지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치과 간호사가 저보다 먼저 그 분을 호출했습니다. 잠시 저 혼자 TV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때 격언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고뿔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
감기 환자는 콜록거립니다. ‘나 감기 걸렸소!’라는 표시입니다. 감추지 못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그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감추지 못합니다.
감기, 사랑은 감출 수 없지만, 웬만한 감정은 다 감출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시기 질투하는 마음 적당히 감춰집니다.
마음속 계획, 뭔가를 시도하려는 마음도 감출 수 있습니다.
꽁꽁 숨겼다가 ‘서프라이즈’ 할 수가 있습니다.
윤 대통령, 자기 속내, 적당히 감추고 임기를 채웠더라면 탄핵까지 안 갔을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감기나 사랑처럼 감출 수 없었던가 봅니다.
대통령이 유튜브에 빠져 있습니다.
유튜브는 잘 선별해서 보면 유익이지만, 어느 한 편에 쏠리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태극기 부대’로 일컬어지는 광화문 시위자들, 그들은 분명 치우친 사람들입니다.
보편성을 잃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놀랍게도 윤 대통령이 그들과 동일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유튜브를 통하여 세상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형성된 편향된 세계관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이 편향되었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부정 선거 음모론’ 무엇이 문제입니까?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음모론 〉
음모론, 음모론 하는데, 무엇이 음모론입니까?
지난 12월 29일 제주항공 사고가 있었습니다.
무안 공항 인근에 있는 식당 주인이 사고 장면을 찍었습니다.
그 동영상을 언론사들이 수없이 반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전문가가 찍은 것처럼 수준급의 동영상이었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니 이렇게 잘 찍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이건 사전에 서로 짜지 않고는 이렇게 잘 찍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SNS에 올립니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동조합니다.
‘맞다. 사전에 꾸민 일이 틀림없다.’ 이것이 하나의 관점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것을 ‘음모론’이라고 말합니다. 부정 선거 음모론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틀림없이 선거 결과가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생각대로 안 나왔습니다.
그때,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다기보다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뭔가 꾸몄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동조하기 시작합니다.
점차 ‘맞아,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획책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상한 주장을 폅니다.
매우 그럴듯하게 꾸며서 유튜브에 올립니다.
이런 컨텐츠를 하나 둘 보다가, 점점 확신에 빠집니다. “선거에 부정이 있다.”
나중에는 확증편향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다가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 들고 광화문에 나가는 겁니다.
이러한 음모론 중에 고질병이 ‘전라도 사람 빨갱이’ 음모론이 있습니다.
전라도 출신은 무조건 미워합니다. 그리고 전라도를 왕따 시킵니다.
오죽하면, 한덕수 국무총리가 고향 전라도를 속이면서 살아야 했을까요?
음모론 중에 ‘종북좌파 음모론’이 있습니다.
정치인 중에 북한 김정은의 지령을 받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음모론입니다.
주체사상을 따른다 해서 ‘주사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주 희박한 가능성을 극대화하여 일반화시킵니다. 이것을 음모론이라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 경계해야 할 것이 음모론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 음모론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잘 성찰해야 합니다.
세계 역사에서 음모론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성찬을 오해해서 ‘기독교는 사람을 죽여 피를 마신다’
이런 음모론이 초대교회에 횡행했습니다.
〈 드러내야 하는 마음 〉
안타깝지만,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러한 음모론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감기와 사랑은 감추지 못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기와 사랑 그리고 음모론에 빠지면 감추지 못한다.’
음모론에 빠져서 그것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낸 것이 윤 대통령의 12.3계엄선포입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신 관리입니다.
헛된 사랑에는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감정 관리입니다.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관리입니다.
사람은 ①육신 ②마음 ③감정, 이 셋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적당히 감추어야 할 것들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감추고, 어떤 것을 드러내고자 합니까?
☞ 오늘 본문 시편 13절을 쓴 시인은 어떤 마음 하나를 강력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첫째, 주의 대면을 청하는 마음입니다.(1~2절)
둘째, 주의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3~4절)
셋째,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 마음입니다.(5~6절)
① 대면을 청하는 마음 / ②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 / ③ 구원을 기뻐하는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을 시인은 강력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 시인이 이 시를 적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_ 이 시를 읽은 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대면을 청하는 마음,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 구원을 기뻐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살아라!”
“감기, 사랑, 음모론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 가지 마음을 드러내라!”
〈 첫째, 주의 대면을 청합니다.(1~2절) 〉
(1~2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시인은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1절)”라고 적었습니다.
시인은 한두번 주님을 찾아나선 것이 아닙니다. 수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어느 때까지니이까~”를 1~절에서 네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2번, 2절에서 2번, 참으로 간절합니다.
이 대목에서 요즘 한국인들, 아티스트에 대한 덕질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 그들에게 매혹되어 물심양면으로 아끼지 않고 투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반을 수십, 수백 장 사서 이웃에 선물합니다.
그리고 음원을 반복해서 듣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습니다. 조회수가 쑥쑥 올라갑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덕질, 오늘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온종일 듣고싶습니다. 또 자기의 마음, 하나님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지 않는 것 같아서 속이 탑니다.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1절)”
☞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고 계십니까?
연예인에 대한 덕질은 그 아티스트가 나를 돌아보지 않는 줄 알면서 좋아합니다.
동작 하나하나에 환호합니다. 꺄악~ 소리를 지르고 까무러칩니다.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도 이렇게 해 보셨습니까?
시편 13편을 쓴 시인, 연예인 덕질과는 차원이 좀 다릅니다.
혼자 좋아하는 짝사랑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시지 않는다? 견딜 수 없어요!
시인의 마음,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둘째, 주의 응답을 기다립니다.(3~4절) 〉
덕질, 임영웅을 좋아하고, 아이유를 좋아하면서 그와 인격적인 교제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멀리서, 자기 혼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좋아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몰라준다면 속 상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립니다.
(3~4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좋아할 때는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향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을 하지않으신다면, “내가 사망의 잠을 자게 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셨다!”
시인은 시편 13장에서 바로 이 고백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시인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내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은 이 신앙이 있습니다. “내 생명 하나님이 주셨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첫째, 하나님 뵙고싶어요!
둘째, 하나님 응답해주세요!
셋째는 뭐지요? 하나님 제가 구원을 기뻐합니다.(5~6절)
〈 셋째, 주의 구원을 기뻐합니다.(5~6절) 〉
첫째, 하나님 뵙고싶어요! / 둘째, 하나님 응답해주세요! 셋째, 주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세 번째가 매우 중요합니다.
(5~6절)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셋째, 주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그냥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격언 하나를 말씀드렸습니다. ‘고뿔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
여기에 덧대어 ‘감기와 사랑, 그리고 음모론을 감출 수 없다.’
이 세가지에 빠지면 호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밖으로 삐어져 나옵니다.
아무리 감추어도 소용없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알게 되어있습니다.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 세 가지 말고도 또 하나, 송곳처럼 나오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 마음! 이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 맺음 〉
오늘날 기독교인들,
감기 걸리면 숨기지 못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숨기지 못합니다.
음모론에 빠지면 숨기지 못합니다.
감기에 안 걸리도록 하는 것 ① 육신 건강
잘못된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 ② 감정 건강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것 ③ 마음 건강
사람은 ① 육신 ② 감정 ③ 마음, 이 셋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육신을 다스리고, 감정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2025년 새 해에는 우리가 꼭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당부합니다!
“감기보다도, 사랑보다도, 음모론보다도, 반드시, 꼭 드러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시편 13장을 쓴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드러내라!”
시편 13편을 쓴 시인, 지금 이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은 드러낼 줄 모르고,
감기, 사랑, 음모론에 빠진 모습이나 드러내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지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원의 기쁨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머니에 송곳을 집어넣으면 삐져 나옵니다. 감출 수 없습니다.
감추려 해도 비집고 나오는 감기, 사랑, 음모론!
그런 것 말고, 오직 구원의 기쁨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받은 기쁨을 드러내는 성도가 참된 크리스천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