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초월적인지 ('저 밖'에 있는지) 혹은 내재적인지 ('이 안'에 있는지)에 관해
세계의 종교들이 강조하는 바가 서로 다릅니다.
신학(480에서 485로 측정되는)은 지성의 노력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신학은 형상에 국한되며,
형상 너머에 있어서 이성과 논리로는 닿을 수 없는 실상에 대한 맥락화에서 한계를 드러내지요,
신학은 정확한 개념화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주관적 경험의 현실을 통해서만 확증할 수 있는
실상을 나타내려는 시도에서 개념을 이용합니다.
영적 실상에 대한 주관적 앎은 '형언할 수 없다'고 하는 데,
이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위대한 고전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Varieties of Relighious Experience)'에서 묘사된 바와 같습니다.
비선형적인 영적 경험의 절대적 주관성만이 진실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신학에는 깨달은 신비가, 현인, 혹은 화신들의 확실성과 권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신학은 대단히 명석하고 정확할 수 있지만,
이것은 신학이 깨달은 현인이 드러내 준 진실을 포함하고
또 그것을 충분히 인지할 때의 일입니다.
절대적 실상(Absolute Reality)을 다룰 수 있으려면,
신학은 인식론적으로 대단히 정교해야 합니다.
(인간을 어떻게 대상을 알게 되는가?
인간을 자신이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그런 앎은 어떤 수단을 통해서 일어나는가?
혹은 신성의 개입이 없다면 그런 앎이 가능하기라도 한가?)
만일 현인의 주관적 실상이 깨달음에 수반되는 이해와 더불어 포함된다면,
신은 공히 내재(참나로서)하는 동시에 초월(즉, 지고Supreme)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공히(voth)'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의미론적 편의를 위해서지요.
'공히'는 두 가지 다른상태를 암시하지만
실상에서 신은 전적으로 하나임(Oneness)이고,
'재재' 나 '초월' 이라는 용어는
실상(Reality)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지각과 정신작용의 범주입니다.
논리적으로도 , 초월적 신은 또한 내재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데,
그렇지 않다면 신을 한계를 특징으로 할 것입니다.
신이 내재하지 않는다면 신은 인간을 뺀 우주 전역에 있다는 우스꽝스러운 묘사를 낳을 것이고
그렇다면 인간 하나하나는 전 우주에 뚫린 구멍과 같아질 것입니다.
이는 신의 편재함을 구멍 뚫린 스위스 치즈덩어리로 묘사하고,
일류가 그 치즈 구멍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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