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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리스도인이여
에베소서 1장1절 / 차명권 목사
1 하나님의 목적으로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025년 새해를 우리는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한해를 한 편의 서신이라고 본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서신의 서두를 읽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인 에베소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그 서신의 서두를 읽었습니다. 이 서두는 마치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머리말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지만, 에베소서 시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듯,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무엇이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서신서는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편지들입니다. 에베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에게 보내시는 편지입니다. 현 시점에는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인이란 무슨 의미인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불과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면서도 그들이 살고 있던 이방의 이교도 지역에 그러한 심오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떤 조직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후에도 기독교가 세계에 감화를 끼칠 수 있는 방식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은 두려워하는데, 그리스도인은 두려움 속에서도 기대와 소망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만, 그리스도인은 본향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미워하고 혐오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데 빠르지만, 그리스도인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구별된 존재들이죠.
오늘 에베소서 1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세 가지 주요 용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것이 인식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서신의 다음 내용들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기 전에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란 말씀입니다.
첫 번째 용어는 ‘성도’라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도로서 지금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나는 성도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성도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우리를 성도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자들입니다.
성도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말의 첫 번째 의미는 우리가 구별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분리된 자들이고, 구별된 자들입니다. 바다에 물고기 떼가 있다고 합시다. 어부가 그물을 드리워서 그 물고기 떼의 일부를 잡아 구별했습니다. 물고기의 어떤 자격과 능력과 대단함 때문에 구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 구별하시고, 이제 너희는 나의 것이야, 라고 하시면서,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성도로 구별된 자들입니다. 교회는 하나의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성도들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그에 관한 완벽한 예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힘도 없고, 보잘 것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별하시고,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
성도들인 여러분은 구별된 백성이요, 하나님에 의해서 소유된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일차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자 성도인 여러분은 이제 빼어난 자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께로 구별된 자들입니다.
세상보다 잘나거나 세상보다 잘해서 구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별하신 다음에 하나님은 구별하신 성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으셔서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면서 세상과 구별된 DNA로 살아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내가 가진 것을 보면 화들짝 놀라는 것입니다. 내일을 부정적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내가 가진 것을 보면 화들짝 놀라며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구별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구별되게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아까 물고기 떼를 그물로 구별한 것을 비유로 말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한 무리를 구별하여 성도로 구별하실 때에는 죄 없는 자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해 놓으시고서 여전히 그들에게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즉,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없이 하시고 용서하심으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즉,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입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 사함을 받게 하셔서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들로 만드셨습니다.
구약에서 시온산이 성산으로 불려지고, 성전에서 쓰이는 기구가 성구로 불려진 것과 같습니다. 그 말은 그것들이 정결함을 입고 구별되어서 다른 무엇으로도 쓰일 수 없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성도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 외에는 다른 것으로 쓰일 수 없게 된 인생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도입니다. 성도가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반드시 성도입니다. 즉, 세상에서 분리되지 않고는 성도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습니다. 세상 안에 살고는 있지만,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사고방식도 이제 세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이제 더욱 괴롭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마음의 변화를 겪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권세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삶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나의 힘과 나의 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령으로 사는 삶으로 구별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읽어보면, 에베소는 큰 도시였습니다. 풍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이교도들이었습니다. 그 거민들은 아데미라 불리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을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자랑하였으며, 또한 우상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요술적이고 마술적인 일들이 자행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기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열두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그들은 진리와 복음에 대해 확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에베소를 돌아보며 그 도시가 이교도들로 꽉 차 있고 거만과 교만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단들과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것이 가득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그러한 토양에서 자라날 것이라는 소망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에서 은혜의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졌고, 성도가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인간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이 한 도시에 들어가게 되면 성령충만한 사도 바울의 인격에서 일어났던 변화처럼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복음은 가장 절망적인 개인을 들어서 성도로 바꾸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신 것은 그러한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정의하면서 말한 두 번째 용어를 볼까요.? ‘신실한 자들’입니다. 여기서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은 ‘믿음을 행사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상처자국을 보고도 믿지 못했죠. 그것을 보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때 믿는, 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신실한 이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의 의미는 확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확실한 믿음의 길로 인도하셔서 그리스도인으로 깊어지게 하십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멋진 사람이 아닙니다. 단순히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별한 진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충만하고 확실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는 믿음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분의 성육신을 온전히 믿습니다. 그의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시고, 부활하시면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음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더는 보지 않으시고,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은 이러한 진리를 믿는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 믿음을 온전히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만, 그 방향으로 심령을 돌린 자들입니다. 온전한 믿음을 사모하고 그 길로 자라가고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를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를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말했죠.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하여 물으면 그 이유를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배우면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함에 이르게 하는 것을 정말 위대한 인생의 가치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물으면, 나 교회 다녀요, 처음에는 그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바라는 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신실하다는 것에는 하나의 의미가 더 있습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믿음에 충성하고 있으며, 바울과 함께 믿음을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믿음을 강하게 찬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 교훈의 모든 풍조에 휘말리는 사람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를 아는 사람들이고, 사도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원수들을 대적하며 맞서서 견고하게 대항할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혹여라도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른다고 하더라도 신실해야 하며, 그분을 부인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설명하는 바울의 세 번째 용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위대한 구절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바울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여러분들은 서로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체들로서 서로 사랑으로 돕고 연합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는 자들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16절입니다.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을 때 우리도 죽었고, 그가 부활하실 때 우리도 그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6절입니다.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순간에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모든 축복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면 그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연약함과 여러분의 무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여해주신 가능성과 능력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믿어야 합니다. 나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생명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어찌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할 수 없는 자이겠습니까? 그분은 포도나무이며,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머리인 예수님의 모든 생명과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복되신 주님께서 숨겨지지 못했다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등경 위에 있으면 어둠을 비추듯이,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은혜로 구별된 존재로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다 보면 세상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자가 되어갑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누구라고 말씀하고 계신지에 대해 강하게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통해 여러분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견고한 신실한 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세상에 말할 수 있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모든 능력과 권세와 축복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어떠함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바라보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도록 여러분 안에서 행하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은혜의 능력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수님처럼 존귀하게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왕이 왕에 대해 깨어 있음으로 인해 왕답게 살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진리에 대해 깨어 있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정말 아릅답고 복된 2025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