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이 '한왕(漢王)'에 봉해진 것은 기원전 206년,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 천하를 재편하는 과정(홍문연 이후)에서 이루어진 조치입니다. 그 배경에는 항우의 의도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 1. 항우의 정치적 분봉 정책
항우는 진나라를 무너뜨린 후 자신이 천하의 패권을 쥐었지만, 직접 모든 땅을 통치할 수 없었기에 각지 제후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는 '분봉'을 단행했습니다. 이때 항우는 유방을 관중(함양 일대)에서 쫓아내고, 오지의 험지인 **파촉(현재의 사천성)과 한중** 지역을 다스리는 '한왕'으로 임명했습니다.
### 2. 항우의 의도: 유방의 고립과 견제
* **관중에서 축출:** 당초 초회왕과 제후들 사이에는 "먼저 관중에 입성하는 자가 왕이 된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유방이 먼저 함양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우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유방을 견제하기 위해 그를 핵심 요충지인 관중에서 몰아냈습니다.
* **벽지로 유배:** 항우는 유방을 험준한 산악 지대인 한중으로 보냄으로써, 그가 다시 동쪽(중원)으로 나오기 어렵게 만들고 외진 곳에서 세력이 쇠퇴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사실상 유방을 중앙 정치 무대에서 격리시키려는 조치였습니다.
### 3.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
항우는 유방을 고립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유방에게는 이것이 기회가 되었습니다.
* **세력 재정비:** 유방은 한중의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그동안 얻은 인재(소하, 한신, 장량 등)들과 함께 내실을 다지며 세력을 키울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 **명분 확보:** 유방은 자신을 외지로 내쫓은 항우의 처사를 불합리한 것으로 규정하며, 훗날 항우와 대립할 때 '천하를 통일하고 민심을 얻는' 명분을 쌓는 데 활용했습니다.
결국 한왕으로 봉해진 것은 항우가 유방을 억누르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으나, 유방은 이 척박한 땅을 발판 삼아 역으로 천하를 도모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