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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송백노이하우스 B동 뒤에 "흙시루"라는 향토 음식점 정원 중앙에
2016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이 150년 된 살구나무가 있다.
樹高는 7m 정도이고 반달 모양을 한 樹冠의 넓이는 초가삼간 지붕 정도이다
유월이 되면 노랗게 익은 살구들이
떨어져 바람에 떼굴떼굴 구르고 있다
이 나무는 효암마을 앞 모래밭에서
이 지역이 발전소 부지로 편입되을 때 밑동만 남기고 베어질 뻔했으나
이 집 사장이 이식해 와
다행히 효암 마을의 역사를 보존하게 되었다
현재 효암리는 ' 해맞이로' 주변을 제외한 거의 전부가 원전 부지라
거주 주민은 아예 없지만
80년대 초에는 전복죽 등을 파는 횟집이 여러 곳 있었고
연수원 근무 시
토요일이면 정문 옆 해송이 우거진 "언덕 베기 자드락길" 끄트머리 바닷가기슭에 姑婦間이 사는 가게에 간다
이 고부도 비학마을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구멍가게지만 담배 , 잔술 , 라면 , 실과 바늘 , 쫀드기 , 새우깡 , 캬라멜 콘 등 없는게 없다
" 할매 , 연수생들 마이 와십니꺼 "
나는 통제가 불가능하면 안전이라도 확보하고자 했다.
소주 됫병에서 중간 컵에 따라 "원 샷" 한다.
연수원 야외 전시장 뒤에 철망에 가린 무덤들을 본다,
산기슭이 아니라 해안 암석이 기괴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곳에
공동묘지로 하다니 참 이상하다
조간대에는 해조류가 파릇 파릇 싹이 트고 고동이 붙어있고 , 새끼 끼가 옆 거름을 친다
나는 이곳을 참배하는 이를 본 적이없다
이들은 무연분묘로 처리되어 한 줌의 흙이되어 발전소 부지가 될 것이다
이곳에서 마지막 횟집을 하는 남사장에게 공동묘지를 왜 저기에
" 섰을 까요" 라고 물었다
농사 지을 땅은 모자라고 해서 쓸모도 없는 곳이라 그렇게 했다고 한다 . 내 생각과 딱 맞다
이 사장은 골매마을 쪽에 " 저온 냉장고 " 가 있는 배밭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해운대로 이사 온 이후에도 마누라 와 배 밭에 가면 산 딸기 군락을 안내해 준다
마누라와 나는 허리 아픈 줄 모르고
따서 한 솟쿠리가져 온다.
길천에서 중국집을 하여 월래 반점 만큼 돈을 벌었으나 "춤바람"으로 돈도 마누라도 잃어버리고
사라져 가는 효암에서
'사흘 굶고 담 안 넘는 놈 없다' 라는 심정으로 개업한 중국집 골방에서
" 고스톱·육백·삼봉·뻥과 투전과 비슷한 짓고땡·섯다. 오야 굿비"를 했고 , 효암 '장' 이장이 참석하면 나는 돈을 딴다.
뒤 담화를 들어보니 이 사람이 " 장안읍 선수" 란다
연수원 정문 옆 논에 알알이 영글은 나락이 고개 숙이고 있어 가보니 벼 베기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좌동 미누라 외사촌 인 장부규"고 또 한 사람은 '효암마을 장이장'이다
화투장을 잘 모르는 내가 돈을 딴 이유를 알았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효암천을 가로 지르는 효암다리를 건너면
울산광역시 서생면 비학리이다
교육용 발전 장비 등을 전시한 야외 전시장과 운동장 그리고 생활관 등이 있는 원자력 연수원있다
원자력계에 따르면 신규 원전을 법정 계획에 포함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서생면에 원전이 들어설 부지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 회장은
한수원 인재개발원과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 대학교(KINGS) 일대 부지를 제시했다.
손 회장에 따르면 이들 부지는 사실상 한수원 소유이기 때문에 보상과 주민 이주가 필요 없다.
주민 이주에 최소 10년 이상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추가 토지매입과 주민 이주가 필요한
영덕과 삼척과 비교해도 시간과 비용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수원 부지를 대단히 힘들게 확보했다
봉화산에서 이른 아침에 바라본 동해는 여명이 수평선과 해무 사이로 스며들자
여명 위에 솟아오른 해무가
하늘 위에 떠있는 섬인 양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黃山 雲海에 비견할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사라진다.
수평선 아래에 잔잔히 보이는 물결 위로 노란빛과 빨간빛을 뿜으며
먼바다에 떠 있는 배 한 척이 그려내는 오방색이 발전소 삼면이 동해에 둥글게 둘러 싸여
있음을 알게 한다.
갈꽃이 휘청거리며 은빛 물결을 이룰 때
월례 초교 전교생이 봉화산 봉수대에 가을 소풍을 간다.
고추잠자리가 갈꽃 끄트머리에 사푼히 앉아 바라본다.
사택 아줌마들도 소풍 날이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든 없든 봉화산으로 간다
함께 어울려 수건돌리기 , 보물찾기 등으로 맑은 가을 하늘을 만끽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에는 효암 마을이 있었고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에는 세 곳의 마을이 있었다.
비학 마을과 골메 마을 그리고 신리 마을이다.
효암 마을은 신고리핵발전소 1, 2호기가 건설되면서 임랑 등으로 이주하였고,
비학 마을과 골메 마을은 3, 4호기가 건설되면서
비학마을은 간절곶으로 유명한 나사리 등으로 이주했고
골메마을 원주민들은 신리마을 등으로 이주하였다.
신리마을은 고리핵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이주한 주민들과
신고리핵발전소 건설로 효암 마을과 비학 마을 그리고 골메 마을 주민들이 이주하며
원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생긴 마을이다
이 신리 마을 주민은 또다시 옮겨 가야할 운명이다.
보상받아 떠난 사람은 새 삶에 실패하여 유민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핵발전소 건설이라는 굴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이 ‘고향 상실 위자료’ 소송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절절한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길천마을에서 효암마을로 가려면 봉화산 허리 길을 지나야 하는데
폭설이 오면 길이 막혀 가지 못한다.
봉화산 봉수대에 古里 앞 바다를 볼 수 있는 展望臺가 있으면 한다
길천 삼거리 일대 논 밭을 수용한 원전 2호기 건설용 保稅藏置場과
기자재 보관을 위한 야적장과 창고가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도 창고 안에 있었다
도로 건너 밭길을 조금 가면
길천 식육식당이 있다.
허질구레한 모습의 반백의 늙은이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희끗 희끗한 머리의 초로의 여자가 장사하고 있다.
초등학교 다니는 여식애가 있는 부부라니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사연인즉 영감은 성생활을 못하는 사람인데
이 마을에 흘러 들어온 모녀를 받아들여 이 가게를 하며 함께 산다고 한다
나는 술집이나 밥집이나 몇 번 가면 치부책을 만들기 때문에 상대는 나에 대해 잘 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갈 때 아줌마가
"옆자리에 살며시 앉으며 '김 주사님 ! 휴일에 야적장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 라고 한다.
'왜 요' 야적장에 들어가 널여있는 고찰을 줍겠다" 라고 한다
생뚱맞은 얘기를 해서 술을 그만 마시고 와 버렸다.
야적장을 둘러보니 철판, 전선 . 애자 . 철근 . 시멘트 . 전붓대 등 인력으로 옮길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면 땅 위에 떨어져 있는 고철를 모으겠다는 것이다
다음날 초소에 " 휴일에 이 사람들 출입하여 청소할 수 있도록 하세요"
라고 부탁했다.
한참 후 휴일 " 해주 아빠 손님 오셨어요" 해서
나가보니 그 사장이 급히 무언가를 놓고 가버린다
풀어보니 " 한우 뭉티기 덩어리 와
봉투 하나였다."
영감이 情으로 준 것이라 돌려 주기에는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것 같아
다음 날 퇴근 후 직원들과 함께 길천 식당에서 ' 코가 비틀어 지 듯 마시고'
어제 받은 봉투를 주었다
봉투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 얼마만큼 먹었는지 모른다
오리 궁뎅이 지난 곳처럼 흔적이 없다.
" 해주 엄마 우리 소고기로 포식 한 번 하자 "
"우리 식구가 먹기에는 너무 많으니 이웃하고 나누어 먹겠다" 라고 한다.
고리 사택 2 단지 104동 4 라인 아줌마들이다
"지금은 서울 본사다 . 지방 다른 사업소다 " 로 떠난 아줌마
'듣도 보도 못한 과일' 들고 마누라가 입원해 있는 동남권 원자력 병원으로 왔다
"지나 가는 이"도 왔다
오후 내내 그 많은 경험에 그 입담을 보태니 마누라도 오후 내내 즐거웠다.
"지나 가는 이 " 남편이 나와 같이 직군은 다르지만 같이 근무한 강 ㅇㅇ이고
이 사람 형님이 51회 선배 강ㅇㅇ이다 .
발전소 부지 아래에 活性斷層이 있다고 언론에서 떠든다
부지 바로 밑에서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활성단층에서 50년의 원전 수명에 맞춰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0.1% 정도밖에 되지는 않는다.
사실 경상도 지방은 신생대 때 隆起했기 때문에 활성단층들이 많이 분포해 있다.
하지만, 2016년 한 해에만 단층 주변에서 두 번이나 지진이 연달아 일어나고
그와 관련된 대처가 미비하여 거주민들의 불안을 증폭시킨 일이 있는 만큼 앞으로라도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
잠재적인 영향권 내에 있는 거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은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부산, 울산광역시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50%도 되지 않는다.
이유는 울산 공업단지의 전력 소비량이 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1인당 전력 소비량이 2,141kWh로 전국 평균인 737kWh의 3배 가까이 되고
부산의 소비량인 483kWh에 비하면 4배 넘게 차이가 난다.
기장의 아홉 포구
월례포, 동백포, 무지포, 이을포 , 가을포 , 공수포 ,기포 , 독이포, 화사을포 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포구는 고리마을의 화사을포였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건립되면서였다.
옛날에는 아이포라 했는데 이곳에 봉화대가 설치되면서 화사을포라 불리어졌다.
통신 수단의 발달로 봉화가 사라지고 명분이 없어진 화사포가 고리마을로 명명되었다.
마을이름에 불(火)자는 아이포 봉수대와 원자력이 건설된 것은 불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도 있었다.
이 마을 30여 가구의 주민들이 집단 이주한 온정마을은 바다 수심이 깊고 파도가 심해 태풍이 오면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축대를 높이 쌓고 호안 매립을 보강하여 안전성을 확보하였다.
이주 당시 방파제가 설치됨에 따라 기존 동백항과 함께 온정항(道지정)이 생겼으나
지금은 항에서 제외되었다.
포구에는 포구나무가 없고, 죽도엔 대나무가 없고, 가을포에 갈대가 없는 것처럼.
무슨 영문인지 동백리에는 동백나무가 없다.
동백리는 동백나무와 상관이 없는 지명이다.
조선 초기까지 동백포가 존재했는데 마을 이름을 새로 정하면서
그 이름에 따온 것으로 동백리라 한 것이란다.ㅅ
古里는 북쪽에 129m 높이의 봉화산이 있다. 북쪽을 제외한 서쪽과 남쪽 동쪽 전체가 동해안과 접하며,
이 해안 지역은 대부분 암석 해안이었으나 현재는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매립되어 방파제가 되었다
내가 외로이 고리본부로 전출되어 왔을 때
월내역은 도로에서 제법 오르막길을 올라와야 했다
도로 옆 암석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驛舍를 덮고
昇天하는 용의 모습인 가지의 그림자가 주변 집들을 드리우고 있는
수령이 수백 년 되어 보이는 고목이 버티고 있었다
그늘 아래에 빨간 벽돌 슬라브 집에 세로 간판에 " 역전다방" 가로 간판에 " 은하수 다방" 이
오른쪽에 각각의 여닫이문을 출입구로 하고 있고
옆에 잡화상을 끼고 있는 가정집이 있다
" 월내" "역전" "은하수" " 은하철도 999"
묘한 情趣를 자아낸다.
도로 산기슭 쪽에는 富者의 등급을 메기는 "멸치구딩이"를 넣은 가건물이 즐비하다
고운 모래가 넓게 깔려 있었던 월내해수욕장은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애용되었다.
2019년 7월 15일부로 여객취급이 중지되었으나,
2021년 12월 28일 동해선 2단계가 개통됨으로써 전철전용역으로 다시 부활하였다.
신축한 월례 역사는 전국을 통틀어 봐도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이다.
고리는 1969년 원자력 발전소 건설로 주민이 이주하며 현재는 법정리로만 존재한다.
이곳의 원자력 발전소는 1971년에 착공하여 1978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갈 데가 없어 고향을 찾아온 사람이 고향에 가야 하는데 봉화산 둘레 길이 폭설로 막혀 버리면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삶의 속도를 지키며 살고 싶은 사람에게 가속페달을 밟게 하여
고향을 떠나게 한 우리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도
우리의 미래를 위하는 것이다.
갈맷길이 효암 마을 앞 비학 마을을 잇는 효암 다리에서 봉화산 봉수대를 지나 길천 삼거리까지 연장하면
고리 마을과 효암 마을 사람들이 고향이 그리울 때 찾아 볼수 있다
2012년 2월 9일에는 1호기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연료봉 교체 등의 작업을 위해 정비 중인 관계로 원자로가 가동 중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자로 온도 자체는 높지 않아서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2012 년 2월 9일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아 장시간 전원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원자로온도가 상승해 노심이 녹아내리는 현상
(노심용융, Melt Down)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고리원전본부장과 고리제1발전소장이 9일에 한 지방 의원의 전화문의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한국수력원자력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은 12일이었다고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3일부터 이 사고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2012년 3월 16일에 문제의 비상디젤발전기는 아직도 가동 불능 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1978년에 들여온 구식을 교체도 안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수원 관계자는 '노심이 녹은 게 중대사고지! 전기공급 중단 정도가 무슨 중대사고냐' 라고 발언했다.
말은 맞다마는 할 말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원전이라 수명 연장을 놓고 말 많고 탈도 많으며 얼마 전에는 불량 부품 납품 비리가 터졌던 곳이라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옆 나라 원전에서 일어난 일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원자로에 전력 공급이 끊겨버린 사고였던 것을 감안하면
일반인들의 시각에선 낙관적일 수 없었다
이에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수명 연장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7일 오후 6시 부산광역시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에서 발전소로 들어가는
전기를 차단하는 '계통분리' 작업을 진행했다.
오후 7시에는 원자로 가동도 중지했다.
고리 1호기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대신 냉각제가 작동하여
300도의 원자로는 서서히 내려가
6월 18일 0시 0분(24시)에는 90여 도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며
90도가 되면 영구 정지 판정을 받는다고 했다.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는 핵연료를 냉각한 뒤 안전성 검사를 거쳐 5년 뒤인 202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해체에는 약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사회에서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19일 영구 정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고리원전 1호기 입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준공을 기념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진「민족중흥의 햇불」이라는 기념탑이 있다.
휘호 원본을 연수원 이전시 내가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잘 보관하도록 조치하였다
기념탑 앞에서 김종채 고리원자력본부장 주최
초등학교 "글 짓기 대회"가 열였다
사회자 박ㅇㅇ홍보 부장
" 최우수상! 월례국민학교 4학년 김해주 "라고 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