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날을 예측해 보십시오.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많은 경제적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내년도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당초에는 2.7% 내외로 예측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2.5%로 그리고 2%대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요즘의 경제적 상황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전망을 해 볼 수도 없습니다. 환율의 등락이나 주가의 등락이나 주가지수의 변동도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 방면에 조금 잘 안다고 자처하는 나도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이나 대학의 학자들도 지금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경제적 흐름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경제적 상황과 연관 지어서 그 관련성을 정확하게 진단하거나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그동안 벌어졌던 모든 것들을 종합하면 이런 일은 이미 예측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이 올 것이라고 예측도 하였었고, 그런 주장들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측들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의 경제적 환경에 너무 의존적이었던 것도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미국의 경제적 상황에 의존적인 우리의 경제적 환경을 지금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경영 경제를 전공한 나도 경제적 환경 바뀌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고, 언제나 고민하고 살았던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앞날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난날을 통해서 내 앞날을 어슴푸레 짐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확실하게 맞출 수는 없어도 대충 점쳐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날을 예측하기 위해서 첫 번째의 방법은 지난날을 한 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날의 나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내 성공과 끈기와 인내와 같은 긍정적인 것들을 통해서 내 앞날의 긍정적인 측면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내 안에 있었던 실패와 실수, 선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일들을 통해서 내 앞날을 예측하고 긍정적인 삶으로 전환하여야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나의 삶은 기고만장(氣高萬丈)하고 교만방자(驕慢放恣)한 삶이었음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날에는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세상의 표징을 보고 앞날을 점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멸망의 날이나 죽음의 날은 영화 ‘지구 최후의 날’처럼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년도 헐리우드 영화)에서와 같이 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날도 또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고 하여도 정말 죽음을 한 시간 만이라도 연장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세상의 표징이 먼저 앞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표징은 아주 두드러진 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주 작고 뚜렷하지 않은 것도 표징이 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평범한 것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 현상 속에서 미세한 부분까지도 표징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은 표징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 살펴보아야 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세 번째의 방법은 경제학이나 역학에서 사용하는 통계적 기법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세상의 모든 법칙에는 아주 미묘한 사이클(cycle)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사이클은 리듬처럼 다가옵니다. 일기예보를 하듯, 지진을 예측하듯, 도로 교통상황을 예측하듯 그렇게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발생하는 급격한 변수를 감안한다면 이 통계적 방법은 아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주역을 풀어나가듯, 토정비결을 보듯 그렇게 통계적 방법의 신빙성을 대단한 발견인 것처럼 신봉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통계적 방법이 앞날을 예측하는데 전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작금의 현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기법입니다.
네 번째의 방법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예측하는 방법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주시어 당신의 계시와 예지로써 우리를 깨우쳐 주시며, 우리에게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특은을 입어 나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고,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이 네 가지 방법을 종합한 예측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보고 여름이 온 것을 아는 것처럼 하느님나라가 다가오는 것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을 맞아들이는지 멀리 하는지는 순전히 내 탓입니다. 내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내 앞날을 예측하고, 내 삶을 새롭게 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대 안에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당신의 말씀은 어긋남이 없을 것이며, 영원불멸의 말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에로의 동참은 내게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2ㄴ-14
나 다니엘이 2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3 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것은 날개가 뽑히더니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일으켜 세워진 다음, 그것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
5 그리고 다른 두 번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다. 한쪽으로만 일으켜져 있던 이 짐승은
입속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
6 그 뒤에 내가 다시 보니 표범처럼 생긴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가 네 개 달려 있고 머리도 네 개였는데, 그것에게 통치권이 주어졌다.
7 그 뒤에 내가 계속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 나왔다.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진 그 짐승은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그것은 또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으며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다.
8 내가 그 뿔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1 그 뒤에 그 뿔이 떠들어 대는 거만한 말소리 때문에 나는 그쪽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
12 그리고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으나 생명은 얼마 동안 연장되었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축일12월 1일 성녀 나탈리아 (Natalia)
신분 : 과부, 증거자
활동 지역 : 니코메디아(Nicomedia)
활동 연도 : +4세기
같은 이름 : 나딸리아
소아시아 지방 니코메디아의 궁중 관리였던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9월 8일)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중에 잡혀 온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찬미하며 행복한 모습으로 모진 고문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인내심과 열렬한 믿음에 감동한 그는 비록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 즉시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그의 아내인 성녀 나탈리아는 옥중의 남편을 찾아다니며 신앙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사형 선고를 받고 방문객의 면담이 금지되자, 아내는 머리를 자르고 소년의 복장으로 위장한 후 관리들을 매수해 남편의 온갖 고통을 위로하고 신심을 굳게 해 주었다. 그가 23명의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처참하게 처형되는 현장에도 성녀 나탈리아는 함께하며 남편을 위로하고 그의 마지막을 목격했다. 박해자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지를 잘라내고 불태워버리려 했으나, 거센 비가 와서 불을 꺼버리고 번개가 사형집행인에게 내리쳤다. 성녀 나탈리아는 어렵게 도끼에 잘려나간 남편의 손을 찾을 수 있었다. 순교자들의 유해는 후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비잔티움(Byzantium)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성 하드리아누스의 축일은 순교한 날인 3월 4일에 지내기도 하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의 유해가 로마로 이장된 9월 8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동방교회는 그의 아내와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8월 26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한편 성녀 나탈리아는 자신과 강제로 결혼하려는 니코메디아의 어느 궁중 관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비잔티움으로 피신하여 여생을 지내고 남편과 동료 순교자들 곁에 묻혔다. 성 하드리아누스는 군인들과 푸주한의 수호성인으로 교회 미술에서 자신이 처형된 모루를 들고 무장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나탈리아 (Natali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