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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선 피로해소제疲勞回復劑, 로마 남男은 최음제催淫劑로…
|그리스 녀女는 남성 퇴치제男性退治劑로, 중세 의사는 살균제殺菌劑로
|알고 보면 쓸모 많은 마력 식품魔力食品, 늘 인류와 함께
조선 중기의 명문장가였던 최립崔岦은 저서 ‘간이집簡易集’에서 ‘오신채五辛菜’ 또는 오훈채五葷菜는 승려들의 수행에 방해되는 5가지 매운 나물로, 마늘[大蒜]·부추[구:韮]·파[총:蔥]·달래[小蒜:달래]·흥거[興渠:아위-한국은 무릇, 일본은 생강] 등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채소이다. 예부터 새해를 축하하고 오장五臟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먹는 풍습이 있어 왔다. 특히 마늘은 복통을 멎게 하며 생선과 고기의 소화를 도와주고 역병을 예방한다”고 적었다. 담통膽-으로 고생하던 조선의 왕, 영조는 “마늘이 평소 건강에는 좋지만 담증痰症에는 좋지 않다”며 “냄새 나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질색하였다. 기록으로만 보면 조선시대 마늘은 빈자貧者의 건강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늘이 정력이나 원기를 보하는 강장제强壯劑라는 것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알려져 있다. 기원전 2500년 무렵 만들어진 이집트 쿠프 왕의 피라미드 벽면에 새겨져 있는 상형문자에는 피라미드 건설에 종사한 노동자들에게 스테미너용으로 마늘을 먹였으며, 머리가 아프고 신체가 허약할 때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왕의 무덤에 마늘을 넣었던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두고 맹세하는 것처럼 마늘에 대고 맹세를 하였다.
우리나라의 마늘 도입 시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이미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마늘이 등장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입추立秋 후 해일亥日에 마늘밭에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미 통일신라 시대에 마늘이 약용·식용작물 등으로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늘에는 강렬한 냄새에 얽힌 속신이 많다. 고대 프리기아Phrygia에서는 마늘 냄새가 나는 자는 키벨레Fuente의 신전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마술을 푸는 약초로서 신성시되고,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가 마녀 키르케의 주술을 푸는데 이용했다고 한다. 이슬람권에는 에덴동산을 나온 사탄(샤이탄)의 왼쪽 발자국에는 마늘, 오른쪽 발자국에는 양파가 낫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 외에도 뱀, 전갈, 역병을 물리치는 강력한 약초로서 오래전부터 각지에서 이용되었다. 대大 플리니우스Plinius는 『박물지博物志, Naturalis historia』에서 천연자석을 마늘로 문지르면 자력이 없어진다고 하고,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는 『약물지De Materia Medica』에서 뱀이나 미친 개에게 물리거나 치통의 특효약이라고 하고 있다. - 출처 : 종교학대사전
마늘은 기원전 139년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들어왔다. 실크로드는 무제가 중앙아시아(현 신장웨이우얼)의 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관리를 보내면서 개척한 길이였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을 먹는 곰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까? 고조선이 기원전 4∼7세기 무렵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는 중국의 역사 기록으로 보면 마늘이 그 당시에 동아시아, 즉 한반도에 존재할 수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매콤한 식재료라면 흔히 마늘과 고추를 꼽는다. 특히 마늘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 쑥과 함께 등장할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과연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마늘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세계적으로 언제부터 인류는 마늘과 함께했을까. 고고학과 역사가 전하는 마늘의 짙은 맛과 향기를 느껴 보자.
마늘[학명: Allium scorodorpasum var. viviparum Regel]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마늘의 어원은 몽골어 '만끼르(manggir)에서 'ㄲ(gg)이 탈락된 '마닐(manir)' → '마늘'로 불린 것으로 추정,. 『명물기략名物紀略』에서는 '맛이 매우 맵다'하여 '맹랄' → '마랄' → '마늘'이 된 것으로 추정, 『본초강목本草綱目』은 마늘과 달래의 뜻을 모두 가진 한자 ‘산蒜’을 달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풀이한다. 산에서 나는 마늘을 '산산山蒜', 들에서 나는 것을 '야산野蒜', 재배한 것을 '산蒜 '이라고 하였음.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대산大蒜’ 또는 오랑캐 나라(서역)에서 들어온 달래라 해서 ‘호산胡蒜’이라 불렀고, 야산野蒜을 '달랑괴'로 구분한다. ‘소산小蒜(족지, 죳지: 달래의 고어)’으로 분류한 것도 그 방증이다. 유라시아 전역에서는 곰마늘 또는 산마늘(우리나라에서는 명이나물로 더 알려짐)이 널리 애용되었다. '택산澤蒜', '백피산白皮蒜', 'Garlic'라고도 한다. 꽃말은 '용기, 힘'이다.
생약명生藥銘은 '대산大蒜'이다. 마늘은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하여 일해백리一害百利라고 부른다. 2002년 미국 『타임Time』지는 마늘을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하였으며, 마늘은 그 자체로 먹어도 좋고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사용해도 좋은 기능성 식품이라 예찬하였다. 미국암연구소(NCI)가 1992년에 발표한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Designer food(좋은 식품을 적극적으로 섭취함으로써 70세에 질병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프로그램)'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마늘이 위치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 인터넷매체 '허핑턴 포스트'가 의학 및 영양 분야의 유명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선정한 최고의 건강식품 20가지에 뽑히기도 했다.
제사상祭祀床을 차릴 때 고춧가루와 더불어 마늘이 금기가 된 이유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고추도 그렇지만 마늘도 양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금욕적禁慾的인 종교는 마늘을 두려워한다. 수도자修道者에게 양기陽氣는 세상의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고통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기로 뭉쳐진 흡혈귀吸血鬼들은 마늘을 무서워한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마늘은 좋은 귀신, 나쁜 귀신을 가리지 않나본다. 마늘이 가진 귀신을 쫓는 힘이 조상의 귀신까지 쫓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제사상에 놓지 않는다.
마늘은 강력한 살균 및 항균 작용, 체력증강, 강장효과 및 피로회복, 정력증강, 동맥경화 개선, 신체노화 억제, 냉증, 동상 개선 작용, 고혈압 개선 작용, 당뇨 개선 작용, 항암작용, 아토피성 피부염의 알레르기 억제 작용, 정장 및 소화촉진 작용, 해독작용, 신경안정 및 진정 작용에 효능이 있다.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마늘을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있다. 종기를 제거하고 풍습과 나쁜 기운을 없앤다. 냉과 풍증을 제거하고 비장을 튼튼하게 하며 위를 따뜻하게 한다. 토하고 설사하면서 근육이 뒤틀리는 것을 치료한다. 전염병을 예방하고 해충을 죽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상의학(四象醫學)에 의하면 마늘은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하여 말초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손발이 차고 아랫배가 냉한 소음인少陰人이 먹으면 소화기능과 순환기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열이 많은 소양인少陽人은 마늘을 과다 섭취하면 병이 악화될 수 있고, 마늘도 독한 식품이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특히 공복(空腹) 상태에서 복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마늘은 성질이 따뜻해 몸의 온기를 돕는 힘이 크다. 현대의학에서 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본초강목은 마늘에 대해 “온역溫疫(전염성 열병)을 해소한다”며 그 면역 효과를 강조했다. 14세기 서양에서도 전염병을 잡는 특효약으로 인정받곤 했다. 유럽에서 흑사병pestis이 창궐했을 때도 영국 런던의 마늘 장수들은 멀쩡했다고 한다.
몸의 온기를 돕는 게 면역과 관계있다는 건 감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감기는 한의학에서는 ‘상한傷寒’, 영어로는 ‘콜드Cold’라고 표현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차가움’을 감기의 원인으로 본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콩나물국을 먹고 땀을 내거나 쩔쩔 끓는 온돌방에 몸을 지지는 행동 또한 몸에 온기를 도와 바이러스를 물리치려는 지혜다. 불가佛家에서 마늘을 금지 음식 중 하나로 꼽는 것도 그 뜨거운 본성이 남자의 스태미나를 북돋우기 때문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인 이시진李時珍(1518~1593)과 중국 원나라 때 의학자인 왕정은 음식으로서의 마늘을 이렇게 평가했다. “음식의 부패를 막고 악취를 없앤다. 여름에 먹으면 더위나 습기의 피해를 막을 수 있으며 고기와 면류의 소화를 돕는다.” 부작용도 거론했는데, “날로 먹거나 오래 먹으면 간을 상해 눈이 손상된다. 눈병이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현대의학의 연구 결과도 이런 평가에 힘을 싣는다. 매운맛의 알리신 성분은 항균 작용, 신진대사 촉진 작용, 피를 묽게 하는 항혈전 작용이 강한 것으로 증명됐다. 심지어 항암 작용을 한다는 논문도 적지 않다. 또한 마늘 속 스코르디닌 성분은 자궁을 따뜻하게 하는 등 부인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늘류의 작물이 인간과 함께한 것은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자들이 이탈리아 북부의 푸마네 Fumane 동굴을 조사한 결과 약 3만5000년 전에 백합, 민들레, 파스닙(당근과 비슷한 구근식물) 등과 함께 마늘 같은 식물의 뿌리를 그린 동굴 벽화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식물의 구근은 생장을 위한 여러 영양소를 모아둔 것이니 농사를 짓기 이전 구석기시대부터 주요한 식량원이었다.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는 단순히 일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제사와 주술적인 염원을 기원하며 그린 것이다. 구석기시대부터 마늘은 단순한 식용을 넘어 주술적인 의미도 가진 것이다.
자극적 맛-약리 효과로 사랑받아
빙하기가 끝나고 유라시아 일대에서는 야생 마늘(곰마늘 또는 명이나물)을 널리 식용했다. 특히 덴마크 중석기(구석기와 신석기 사이 약 1만4000년∼6000년 전)의 할스코우Halsskov라는 유적에서는 야생 마늘을 구덩이에 저장하고 먹었던 흔적도 나왔다. 지금 먹는 마늘 장아찌처럼 마늘 특유의 독한 맛을 없애고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유라시아와 북미에서도 신석기시대 이래 원주민 사이에서도 비타민과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입맛을 돋우는 자극적인 맛의 야생 마늘은 널리 사랑받는 식자재였다. 특히나 기나긴 겨울을 견뎌야 했던 유라시아 북반구에서는 필수 요소였다.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마늘 뭉치.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쪽마늘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아쉽게도 식물은 땅속에 묻히면 잘 보존되지 않는 데다 마늘은 역한 냄새 때문에 갈거나 쪄서 먹어서 더욱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다만 식물학적 연구 결과 우리가 먹는 마늘의 기원지는 실크로드의 한가운데인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 일대 중앙아시아로 알려졌다. 빙하기 직후 이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마늘을 먹는 풍습이 근동과 인더스 등 주변의 고대 문명으로 널리 퍼졌다. 대략 6000년 전부터 근동 지역에서 마늘을 먹은 흔적이 보이는데, 특히 이집트에서 마늘의 흔적이 많이 발견됐다. 이집트에서는 약 5700년 전부터 마늘의 그림이 등장하고 유명한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도 항아리에 담긴 마늘 더미가 발견됐다. 이집트 지역이 건조해서 식물이 잘 남았고, 또한 피라미드 같은 대형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육체노동을 독려하는 데 마늘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약 출애굽기에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이 광야에서 이집트에서 먹던 부추와 파, 마늘을 생각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장면은 유명하다.
사실 마늘 사랑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세계 문명에 남아 있다. 미로로 유명한 지중해의 고대 문명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에서도 마늘이 발견됐으며,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도 경기 직전 폭발적으로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늘을 사용했다. ‘도핑’과 비슷하다. 고대 로마인들은 마늘을 가장 귀하고 성스러운 식자재로 애용했다.
단군신화 마늘, 現 쪽마늘 아닌 듯
고대사회에서 마늘이 사랑받았던 이유는 향신료가 부족하던 시절 자극적인 맛을 내는 재료였다는 이유와 함께 특별한 약효에 있다. 마늘의 약효는 히포크라테스는 물론이고 3500년 전 쓰인 이집트의 의학서 ‘에버스서(Codex Ebers)’나 인도의 베다Veda에 잘 나와 있다. 인도와 로마에선 자양강장의 효과를 이용해 최음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반대의 경우로도 사용되었으니, 고대 그리스 여성의 축제인 스키라Skira 때 여성들은 남편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마늘을 먹어서 냄새를 풍겼다고 한다.
중세 페스트가 유행할 때 의사들은 새 부리 같은 마스크와 옷을 뒤집어쓴 뒤 몸에 마늘을 바르고 입안에 마늘을 씹어서 병자의 나쁜 기운을 막고자 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사람들은 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강한 살균 작용을 하는 마늘에 악마나 전염병을 쫓는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무덤에 마늘을 함께 넣었고, 중세 페스트가 유행할 때 의사들은 새 부리 같은 마스크와 옷을 뒤집어쓴 뒤 몸에 마늘을 바르고 입안에 마늘을 씹어서 병자의 나쁜 기운을 막고자 했다. 19세기 말에 아일랜드 작가 스토커가 쓴 ‘드라큘라’에서 마늘이 주요한 소재로 쓰인 이유도 이런 믿음의 연장선상이다. 이렇듯 마늘은 그 효능이 천사 같지만 냄새와 맛은 악마 같은 양면성을 지닌 작물이었다.
15세기 유럽의 건강지침서 ‘Tacuinum sanitatis’에 등장하는 마늘 수확 장면.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산마늘[학명: Allium microdictyon Prokh.]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산마늘은 말 그대로 산에 자연적으로 나는 마늘을 말하지만 뿌리가 마늘처럼 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잎이나 산에서 나는 나물류 중 유일하게 전체 풀에서 마늘 냄새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각총茖葱, 산총山蔥, 산산山蒜, 명총, 멩이, 멩, 맹이, 명이, 망부추, 멩이풀, 산마눌, 서수레, 얼룩산마늘, 울릉도에서 춘궁기에 이 식물을 먹고 목숨을 이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명이나물, Alpine-leek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설악산, 울릉도의 숲속이나 북부 산지에서 자란다. 생약명生藥銘은 각총茖葱이다. 위장을 튼튼히 하는 작용과 해독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적용질환은 강심, 자양강장, 건위, 곽란, 구충, 소화불량, 심복통, 옹종, 자양, 제습, 진정, 진통, 창독, 포징, 풍, 해독, 해수, 식욕부진, 만성피로, 스트레스, 권태, 건위, 이뇨, 항암작용에 등이다. 꽃말은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이다.
한국, 진정한 마늘 식문화 종주국
특이하게도 유럽과 유라시아의 여러 민족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도 산마늘은 공통으로 ‘곰마늘’이라 부른다. 겨울잠을 자고 난 곰이 그 냄새를 맡고 정신을 차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는 민속학자도 있다. 지금도 시베리아에서는 4, 5월에 눈이 녹으면 제일 먼저 올라오는 ‘체림샤’(곰마늘)가 시장에 등장하면 봄이 왔다고 여긴다. 비타민이 풍부한 마늘은 기나긴 겨울에 지친 사람들의 자양강장제였다. 마늘은 빙하기가 끝난 직후 마치 겨울잠을 깨는 곰처럼 새로운 문명의 시대로 진입하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약초였다. 아마 빙하기 시절에 푸르른 채소가 그리울 때 가장 먼저 자라나는 마늘은 필수품이었을 것이다.
지난 1만 년간 인간의 역사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늘은 언제나 귀한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마늘이 가진 효능은 지워지고 부정적인 의미로만 각인되었다. 역한 냄새를 다스리는 제대로 된 가공과 요리법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그 사용도 많이 줄었다. 현재 유럽에서 마늘을 음식에 주로 쓰는 나라는 헝가리나 이탈리아가 거의 유일하다. 헝가리는 고기 수프와 여러 민속 음식에 마늘을 넣는데, 그 이유는 유라시아 동쪽에서 밀려온 마자르족의 문화가 기반이 되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로마의 영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마늘 소비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한국은 마늘을 풍부하게 활용하는 다양한 음식문화를 발달시켜 명실상부한 레시피의 하나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마늘 식문화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마늘을 멀리했어도 한국은 마늘을 꾸준히 사용했고, 이는 역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을 비하하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집 문이 열리기도 전에 조선인들이 좋아하는 마늘 냄새와 간장 냄새…복도에 배어 있었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에 등장하는 조선인 소유 6층 건물에 대한 표현이다. 재일교포가 살던 거리와 건물이 마늘 냄새로 덮였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재일교포는 ‘닌니쿠 구사이’(마늘 냄새)라며 사회적으로 멸시를 당하면서도 마늘이 들어간 한국 음식의 레시피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마늘 사랑은 그러한 차별을 이겨낸 것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마늘蒜은 빙하기 이후 세계인들의 역사와 언제나 함께한 중요한 작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작물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 동아일보 2024년 10월 08일(월)〈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이상곤의 실록한의학(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