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어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손해되는 세 가지를 좋아하는 인간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학교에 가려면 적어도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학교 가는 길은 동네 앞으로 난 논길과 냇가의 둑을 따라서 학교가 빤히 보이고,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 길이였습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는 동네의 아이들이 몰려와서 일렬로 죽 늘어서서 종알거리며 장난도 치고 형들이랑 얘기도하고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 섞여가지 않고 따로 따로 무리를 지어 가는 모습이 지금도 아련히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6학년의 이른 봄이었는데 새 학기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날은 집에서 할머니의 생신날이었고, 손님들을 초대해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부름을 하다 보니 시계가 흔치 않을 때 나와 동생이 그만 동네아이들과 늦게 뒤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침 첫 수업 예비 종소리가 울린 것은 학교 앞 400m쯤 떨어진 곳이었는데 나와 동생은 급히 뛰기 시작했습니다. 막 교문에 들어서려는데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가시는 모습이 보였고 다급히 교실에 들어가니 지각을 한 아이들 세 명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우리들에게 다가오셨는데 손에는 예의 복숭아나무 회초리가 들려져 있고 여지없이 종아리를 맞거나 손바닥을 맞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엄하시기로 소문나신 분이었고, 학교에서 6학년 담임선생님을 오래 맡아서 하셨던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평판이 높은 분이셨기 때문에 우리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특히 지각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는 선생님은 그날 단단히 벼르신 모양이었는지 우리 앞으로 다가오더니 아무 말씀도 없이 우리가 입은 홑적삼을 들치시고 등에다가 손을 쑤욱 넣으시고는 등짝을 손으로 더듬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보고는 들어가 앉으라고 하시고 나머지 세 명에게 종아리를 걷으라고 하시고 매를 때리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지금 나는 너희들의 등에 손을 넣어보았다. 분명 종소리를 학교에 오는 동안 들었을 것이다. 늦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뛰어왔어야 한다. 그런데 한명은 뛰어와서 땀이 흠뻑 젖어 있었고, 나머지는 종소리를 듣고도 천천히 왔다. 이런 정신으로 공부하면 장래 무엇이 될 수 있겠느냐?”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느님나라에는 지각해서도 안 되고, 게으름을 부려서도 안 되는 학교 가는 길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은 지 벌써 65년이 됩니다. 아직도 그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어 계씨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공자왈: "익자삼요, 손자삼요. 요절예악, 요도인지선, 요다현우, 익의; 요교락, 요일유, 요연락, 손의."
孔子曰: "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佚遊, 樂宴樂, 損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아하는 일 가운데 유익한 것이 세 가지이고,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해로운 것이 세 가지이다. 자신의 행동을 예악의 범주 안으로 절제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훌륭한 점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현명한 벗이 많은 것을 좋아하면 유익하고, 교만의 즐거움을 좋아하고 일 없이 편안하게 놀기를 좋아하고, 연회를 벌여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면 해롭다."
공자는 사람들이 '손해되는 세 가지를 좋아함‘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 세 가지 즐김이 있다는 것인데 손자삼요(損者三樂)라고 합니다. 교락(驕樂:교만 방자함을 즐김), 일락(逸樂:과도하게 놀기를 즐김), 연락(宴樂:주색을 즐김)이 바로 손자삼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좋아해서는 안 되는 손자삼요를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손자삼요로 살면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재미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십니다. 바로 손자삼요에 빠지지 말라고 이르시지요. 물러터지게 살았어도 이제는 아주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일을 이루어야 할 때라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무르게 합니까? 세상의 부귀영화가 우리를 나태하게 하고 무르게 만듭니다. 요즘 아이들이 점점 물러지고 나약해지는 것은 가난하고 못살 던 때 고생하면서 살았던 우리의 삶을 한(恨) 갚음으로 우리들의 아이들만큼은 호강시키면서 살게 하겠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혹시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을 무르게 한 것은 아닌지요. 내 자식을 ‘사람 되게 해 달라.’고 매를 가지고 선생님을 찾았던 우리의 부모님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치관의 부재입니다.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집니다. 지금의 가치관은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적인 사고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신앙, 사랑, 기도, 종교, 가정, 사회도 우리의 올바른 가치관에서 새롭게 꽃필 수 있습니다. 이제 이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서 정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하는 태도의 부족입니다. 근검절약하며 최선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노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하느님 앞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시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나왕이라는 나무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와 같은 열대우림에서 성장하는 나무입니다. 한대지방의 나무는 재질이 아주 단단하지만 열대지방의 나무는 아주 무르고 여립니다. 속나무는 너무 물러서 손톱으로 글자를 새길 정도입니다. 그러나 바다에 오래 담가두고, 증기 솥에 찌고, 접착제로 단단하게 붙인 다음 강한 압력으로 눌러 합판으로 만들면 못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나무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입니다. 그리고 아주 뜨거운 증기 솥이며, 강력한 접착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은 물러터진 우리들을 잘 단련하시어 아주 단단하게 만드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당신의 몸을 산산조각 내시어 접착제가 되시고, 당신의 성령으로 우리를 강력하게 인도하여 주십니다. 용기를 내어 단단한 주님의 사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통치권과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5-27
15 나 다니엘은 정신이 산란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환시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16 그래서 나는 그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다가가서, 이 모든 일에 관한 진실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그 뜻을 나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17 “그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다.
1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
19 나는 다른 모든 짐승과 달리 몹시 끔찍하게 생겼고, 쇠 이빨과 청동 발톱을 가졌으며,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는 네 번째 짐승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었다.
20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에 있던 열 개의 뿔과 나중에 올라온 또 다른 뿔에 관한 진실도 알고 싶었다.
그 다른 뿔 앞에서 뿔 세 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다른 뿔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으며, 다른 것들보다 더 커 보였다.
21 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22 마침내 연로하신 분께서 오셨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권리가 되돌려졌다.
이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차지할 때가 된 것이다.
23 그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네 번째 짐승은 이 세상에 생겨날 네 번째 나라이다.
그 어느 나라와도 다른 이 나라는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짓밟으며 으스러뜨리리라.
24 뿔 열 개는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임금이다. 그들 다음으로 또 다른 임금이 일어날 터인데
앞의 임금들과 다른 이 임금은 그 가운데에서 세 임금을 쓰러뜨리리라.
25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떠들어 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마저 바꾸려고 하리라.
그들은 일 년, 이 년, 반년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지리라.
26 그러나 법정이 열리고 그는 통치권을 빼앗겨 완전히 패망하고 멸망하리라.
27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축일12월 2일 성녀 비비아나 (Bibian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연도 : +4세기경
같은 이름 : 비비안, 비비안나
로마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비비아나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교황 연대표”(Liber Pontificalis) 안의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468-483년) 교황의 생애 중에 등장한다. 그 내용 중에 성 심플리키우스 교황이 로마의 팔라티움 리키니아눔(Palatium Licinianum) 근처에서 거룩한 순교자 비비아나의 유해를 모신 성당을 축성했다는 언급이 있다. 5세기부터 성녀 비비아나와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다프로사(Dafrosa, 1월 4일)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졌지만, 그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승에 따르면, 성녀 비비아나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아쿠아스 타우리나스(Aquas Taurinas, 아마도 오늘날의 몬테피아스코네 Montefiascone)로 추방당한 로마의 전 총독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12월 22일)의 딸이자 성녀 데메트리아(Demetria, 6월 21일)의 언니이다. 성 플라비아누스는 박해받는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피신처를 마련해 도울 만큼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군대가 들이닥친 순간에도 교우들과 함께 성녀 아녜스(Agnes)의 순교록을 읽으며 용기를 북돋우고 주님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순교의 길로 들어섰다. 성 플라비아누스가 순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에 있던 성녀 다프로사와 두 딸 역시 재판관 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배교할 것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재판관은 성녀 다프로사를 참수형에 처했다.
졸지에 부모를 잃고 모든 재산마저 빼앗긴 성녀 비비아나와 성녀 데메트리아는 로마의 집정관으로부터 갖은 유혹과 회유, 배교를 강요당하며 잔인한 고문의 위협까지 받았다. 그 충격과 고통으로 인해 어리고 연약했던 성녀 데메트리아는 병약한 상태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재판관은 성녀 비비아나를 굴복시키고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게 만들려고 속임수를 써서 어느 창녀의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성녀 비비아나는 믿음의 힘으로 정결을 지킬 수 있었다. 집정관은 다시 그녀를 간질환자들과 미친 사람들이 갇힌 방에 집어넣었지만, 그들 또한 그녀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결국 집정관은 성녀 비비아나를 기둥에 묶어놓고 죽을 때까지 채찍질하라고 명령했다. 수없이 매를 맞아 죽어가던 그녀에게 한 사형 집행인이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찔러 목숨을 빼앗고, 그 시신을 야생 짐승들에게 던져주었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그녀의 시신은 로마의 한 사제가 거두어 어머니와 동생이 묻힌 곳에 안장했다.
로마의 신자들은 363년경 그들의 무덤 위에 경당을 세워 순교자들을 공경하며 전구를 청했다. 그리고 5세기 성 심플리키우스 교황 때 그곳에 동정 순교자 성녀 비비아나에게 봉헌한 성당이 건립되어 현존하고 있고, 그 성당 안에 성녀 비비아나가 죽기까지 묶여서 채찍질을 당한 기둥이 보존되어 있다. 비비안나(Bibianna, Vivianna)로도 불리는 성녀 비비아나(Viviana 또는 Vivian으로도 표기)는 박해 때 겪은 일로 인해 간질병 환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또 성녀의 무덤 주변에서 자란 허브의 효능에서 기인해 알코올 중독자, 두통 환자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비비아나 (Bibian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