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 - 이근화
머리가 가려운 것은 머리카락 때문이 아니다 머리카락을 잘라도 남는 가려움 머리를 밀어도 남는 가려움에 대한 생각들
그건 당신이 없어야 당신이 그리운 것과 마찬가지일까 옆에 있는 사람을 끝없이 그리워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머리를 긁으며 그리움의 전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배관을 손보는 사람의 전문성은 어떤가 비행기를 조종하다 양파를 절이는 사람의 전문성은 어떤가 인생 전환의 시점에서 플러스마이너스를 따지지 않는 말 못할 가려움
가려움의 마을에서 가려움의 집을 짓고 가려움의 난로를 피우고 가려움의 허기를 지핀다
말 못 할 곳이 가렵고 너의 오만과 허세가 가렵고 나의 두려움과 떨림이 온통 가렵다
어느 순간 가렵지 않게 되었을 때 웃음이 날지 울음이 날지 그건 모르는 일 끝까지 가렵다 해도 가려움에 대해 묻지 않을 일
바꾸지 못한 물건 바꾸지 못할 마음 바꾸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의 전문가적 시선
ㅡ월간 《現代文學》(2024, 3월호) *********************************************************************************************** 15년만에 주택 내외벽 도색을 새로 하려고 그동안 구석구석에 쳐박혀있던 물건을 치웁니다 첫 외손녀가 두 돌 때 '집이 더럽다'고 내뱉은 말에 충격을 받아 붉은 벽돌로 외벽을 붙이고 안과 밖을 새로 칠 했으니 어언 15년입니다 여기저기서 선물 받은 양주병이 나오고, 열살 넘은 씨간장도 나오고 묵나물 봉지도 나옵니다 풀고 다시 묶고 닦으면서 버릴 것과 다시 보관할 것을 구분하다보니 머리밑이 가려워옵니다 한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의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에 공연히 하말 거들다가는 다툼으로 번집니다 가렵다고 함부로 긁었다가는 어떤 뒷탈이 날지 모르니까 가려움의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어차피 버리지 못할 물건이고, 바꾸지 못할 마음이 계속 그자리에 머물텐데...... 집안살림의 전문가는 예나 지금이나 온전히 아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