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실재 사물의 세계가 아닌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이며 현대인들은 물질이 아닌 이 가상성의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말하였다.
현대자본주의에서 브랜드의 등장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외에 어떤 "상징가치"가 존재함을 명확하게 증명하였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이제 그 제품이 가지는 특별한 기능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 브랜드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에 만족할 뿐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변화는 과거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구매행태를 보인다고 믿었던 아파트라는 상품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을 허용하였다. 여러 연구소나 조사회사의 조사결과 아파트 구매의 주요기준 중의 하나가 입지, 교통, 학군과 더불어 브랜드라는 가상의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의 브랜드들은 부동의 시장선도브랜드 삼성물산의 래미안(來美安)을 중심으로 GS건설의 자이(Xi), 대림의 e-편한세상,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I"Park)등이 서로의 독특한 아우라(Aura)를 뿜어내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각각의 브랜드들이 시장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만들어내는 가상의 이미지, 그 독특한 아우라는 무엇인가?
삼성물산의 래미안(來美安)은 브랜드네임 자체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어쩐지 외국어같은 느낌과 함께 표현된 한자 브랜드네임에서 세련됨이 풍긴다. 소비자들은 래미안(來美安)의 광고를 보면서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 왠지 래미안(來美安)에 살면 남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즉, 그 가공된 이미지가 래미안(來美安)을 시장 내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치로 올려놓았다. 이제 래미안(來美安)은 U-Plan이라는 거창한 캠페인까지 진행하며 미래 주거환경에 대한 패러다임을 선점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기호가 아니다. 하나의 문화적 방식으로서의 브랜드의 이야기 즉, 신화가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래미안(來美安)이라는 브랜드는 곧, 자부심에 관한 신화이다.
GS건설의 자이(Xi : Extra Intelligence)의 경우를 보면 브랜드 네임에서 표출되는 래미안(來美安)과는 또다른 첨단감이 가미된 세련됨이 느껴진다. 또 자이의 심볼은 정말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롯데 캐슬의 심볼 문장이나 대우건설의 푸르지오가 사실주의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면 자이나 포스코건설의 더 샆(The #)은 그 양극에 위치하고 있다. 개성, 자율 그리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념과 일치한다.
광고커뮤니케이션 상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지켜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광고는 "상품을 문화적 기호로 포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자이의 광고는 아파트라는 상품을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혁신적인 생활공간으로 의미를 재포장하려고 애쓰고 있다. 아파트에서 "혁신"이라는 메시지 자체도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런칭 초기의 "남들에겐 꿈이지만 자이에게는 생활입니다" 라는 슬로건에서 최근 "Refresh your Life!"까지 자이의 "생활의 혁신"이라는 기본사상을 끊임없이 가공하고 있다.
대림의 e-편한 세상을 살펴보자. e-편한 세상은 참 부르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쉽다. 그리고 심볼이나 로고타입도 편안하다. e-편한 세상은 초기부터 꾸준히 "편안함"과 "친근함"이라는 이미지를 가꾸어 왔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에코프로젝트"라는 광고캠페인을 보면 대림이 가공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존에 선점하고 있는 "편안함"이라는 핵심 이미지에 미래 주거환경의 주요 테마인 "환경"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어 한다. 생각해 보면 e-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환경"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닌가?
자이가 생활의 혁신 측면에서 "Refresh"를 말하고 있다면 e-편한 세상은 편안한 주거공간에서의 "환경"을 이야기하는 데에 그 차이가 드러나 보인다. 소비자들은 자이에 살면 첨단의 생활공간에서 다양한 문화혜택을 누리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지만 e-편한 세상에 살면 이웃과 즐거움을 공유하며 여유있는 삶을 가꾸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대우건설의 푸르지오(Prugio)는 브랜드네임 자체에서 강력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실제 푸르지오의 의미는 푸른(Pur)지구(Gio)의 합성어로 네임에서 표출되는 친환경적인 이미지가 이미 가공되어 있다.
그러나 긍정적이지만 한정된 이 이미지는 푸르지오의 다양한 이미지의 확장을 가로막는 저해 요소로도 작용할 여지가 있다. 최근의 푸르지오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서 그러한 고민들이 드러나 보인다.
김남주라는 빅모델이 포도를 밟고 아이들과 낙엽을 차던 초기의 모습에서 트렌드를 주도하는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Trend Setter) 으로 거듭나고 있다. 푸르지오는 브랜드네임에서 본연적으로 전달되는 이미지외에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기업들에게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뿐만이 아니다. 기업들은 자신의 브랜드가 하나의 사회문화적 방식으로서의 이야기가 되어 신화가 되길 원한다. 바디샵(Body Shop)의 아니타 로딕(Anita Roddick)은 바디샵이 특정분야의 용품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여성과 환경,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정치철학이라는 훌륭한 아이디어의 전달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래미안(來美安)이라는 아파트는 이미 자부심에 대한 신화인 것처럼 다른 아파트브랜드들도 그들만의 신화를 위해 소리없는 아우성을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브랜드에 담겨진 신화는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어지기 보다는 소비자들에 의해서 창출되어 진다는 점이다. 결국 래미안(來美安)이든 자이(Xi)이든 e-편한 세상이든 간에 여러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의해 생성된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결정하는 것은 수용자(Audience) 즉, 소비자들이 주체적으로 해독(decoding)한 이미지인 것이다.
현대의 소비함으로써 존재하는 인간들에게 브랜드는 하나의 확정적인 삶의 방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삶의 방식을 넘어서서 브랜드는 그 수용자 개인의 존재의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 속에서 과거 미디어가 메시지(Media is Message)라는 말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브랜드가 곧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