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든다는 것 - 이서린
1. 아직 기역자는 아닌 그러나 거의 기역자 같은 순남 할머니 집 앞 꽝꽝 언 겨울 논에 마른 풀 무더기 같은 작은 개가 있었지 이장님 말씀으론 한 그릇도 안 된다는 백내장으로 시력 잃은 늙은 개는 버려져 두려움과 공포로 울고 있었지 산다는 건 저토록 필사적으로 목구멍 뜨겁게 존재를 알리는 것
2. 시골의 봄은 소리로 시작된다 개구리 중에도 성질 급한 놈 있어 경칩도 전에 울어 쌓더니 휑한 논은 잦은 비로 빗물이 고여 개구리가 떼로 우는 밤이 지나자 경운기는 연신 시동을 걸었다 뒤이은 순남 할머니 유모차엔 외동이란 이름을 얻은 늙은 개 한 마리 앞도 보이지 않고 말 못 하는 식구지만 할머니는 매화와 볕살을 이야기하고 외동이는 알아듣듯 코를 발름거렸다 잊혀졌거나 버려진 생이라 해도 따뜻한 피가 도는 시간 동안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잎이 돋아나는 봄 부근이었다
ㅡ반연간 《서정과현실》(2024, 상반기호) ****************************************************************************************** 여기서 깃든다는 것은 마음을 쏟아붓는 그 무엇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돌멩이에게 물울 주는 어느 연예인, 로드킬에 당한 강아지에게 상의를 벗어 덮어 준 어느 군인, 양복 깃에 꽂는 국회의원 배지 곁에 이런저런 상징물을 달고 있는 초재선 의원들- 순남 할머니의 돌봄을 받는 외동이라는 늙은 개도 알아듣는 봅의 소리가 있습니다 산다는 것의 저 뜨거운 외침이 따뜻한 피가 도는 오늘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마당 포도나무 가지마다 두 송이 꽃숭어리가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담장의 장미나무에도 올망졸망 꽃봉오리가 드러나는 늦은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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