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야, 정신차려! 너 현준이 만났지, 오늘? 빨랑 보고해, 응? 빨랑! “
나는 애꿎은 요한이 정강이를 발로 뻥뻥 까면서 깨웠다. 겨우겨우 침대맡에 걸터앉은 요한.
”야, 너 빨리 불어. 오늘 현준이 자식 만나서 무슨 얘기했어? 응? “
”으..별거 없어. 현준이한테 들어..”
그러면서 이자식은 푹 꼬꾸라져서 그냥 쿨쿨 자버린다. 어휴.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옷도 안 갈아입고, 이빨도 안닦고… 에잇. 나도 모르겠다. 난 그냥 나와서 내 방으로
건너갔다. 분명히 현준이 그 자식이 우리 팀으로 조만간에 또 찾아올텐데…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난 불쌍한 지수씨 생각이 났다. 내가 이렇게 지수씨의 일에 관여하는 이유,
쓸데없이 끼어들어서 주절대는 이유…
김. 지. 수. 바로 그 이름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랑 단짝 친구 이름이 김지수였다. 우린 사진 한 장 같이 찍은 적
없지만, 지금도 내 기억속에 생생하다. 정말 귀엽게 생기고, 단발 머리에, 유난히 윗 앞니
두개가 좀 크고 토끼같이 생긴 애였다. 더군다나, 지수의 특기랄까.. 그건 좋아하는 노래를
거꾸로 부르는 거였다. 그 때 우리가 한창 부르던 노래가 산토끼 노래였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끼토산 야끼토 를디어 냐느가 총깡총깡 서면뛰 를디어 냐느가
이런 식으로 가사를 거꾸로 해서 부르곤 했다.
6월인가, 7월인가. 그 날은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북적대는 사람들과 많은 프로그램
속에서 난 지수가 학교에 왔는지 안 왔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우리 반 애들과 섞여서
땡볕 아래서 청군 모자를 쓰고 나란히 앉아서 응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어딘가를 헐레벌떡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우릴 놔두고 어딜 가시는 걸까? 하지만 그 이상
신경 쓰진 않았다. 선생님은 운동회의 꽃인 릴레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우리 반 애들이 모두 교실로 돌아와, 종례 시간을
기다리는데, 때마침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까 본 옷차림 그대로 쓰윽 반으로
들어오셨다. 얼굴은 어두웠다. 그러나 뜸을 들이진 않았다.
“지수가….죽었다”
한마디만 했다. 그리고는 좀 흐느끼더니만, 반장, 부반장은 끝나고 같이 병원 영안실로
가자고 했다. 난…그 이후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난 반장도 아니었다. 부반장도
아니었다. 줄반장도…. 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을까? 아직도 후회된다. 내가 우리 반에서
지수랑 가장 친했으니까, 나도 갈래요! 하고 선생님한테 떼쓰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난
아무 말도 못하고 지수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난 펑펑 울었다. 지나가는 아줌마
하나가 날 흘끔 쳐다봤다. 내 인생에 죽음이란 단어가 처음 들어온 날이었다. 지수네 집을
가려면 큰 길을 하나 건너야 했는데, 우리가 항상 다니던 골목길을 따라 가면, 거기가
공교롭고 어중간하게도 횡단보도와 횡단보도의 딱 중간 지점이어서, 가끔 양 쪽 차를
확인하고 그냥 무단횡단해서 뛰어가곤 했던 걸 기억한다. 차에 치었단다. 몸이 붕 떠서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단다. 지금…지수네 아빠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지수를 못
잊고 있을까. 아마 그렇겠지. 여기 또 있어요. 지수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사람이.
지수를 생각하며 뒤척이다가 새벽녘에나 잠들었나 보다. 하마터면 신입사원주제에 지각할
뻔했다. 아침도 못먹고 뛰쳐나왔는데, 딱 시간이 또 사람들 많을 시간에 걸려 버렸네.. 몇
정거장 되지도 않는데 이거 불편하게 됐군. 하지만 찡겨서 몇 번 흔들리다보면 도착하겠지
하고 있는데, 교대역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더니만 또 와장창 탄다. 허걱..나…. 다음에
내려야 되는데… 나도 뒤로 밀리지 않으려고 지지 않고 안간힘을 쓰며 문 가에 버팅기고
있었다. 그런데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입고 있는 하얀 원피스 상의에 검은 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겨드랑이 밑, 어쩌면 가슴쪽일 수도 있어서 음흉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주려고 살짝 떼어주려고 잡아 당겼는데, 이놈이 이놈이, 그냥 붙어있던 실밥이
아니고, 어딘가서부터 풀리고 있는 중인 실밥의 끄트머리였나부다. 도르르르하면서 실밥이
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걱. 안돼. 안돼. 조금만 더 당기면 그냥 툭 떨어질거야 하면서
한번 더 당겼는데, 또 도르르르 하면서 실밥이 풀려 늘어진다. 그러는 사이에 우연히 그
여자가 뒤를 돌아 보고는 자기 가슴 바로 옆에서 엉거주춤 하고 있는 내 손을 보았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한번 휙 쳐다보더니
“꺄!!!!치한이야!”
그 여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른다. 너무 황당해서 나도 실밥을
얼른 놓았다.
“(조곤 조곤) 저… 저…. 그게 아니구요”
“(빽~ 빽~)도와주세요, 치한이에요~”
그 여자는 처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빠른 판단력과 상황대처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좌우로 빽빽거리더니만, 결국은 다음 강남역에 밀려서 같이 내렸는데, 경찰서로
빨리 가자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도 다 그러라는 분위기였지만, 내리는 사람들이 모두들
샐러리맨들인지라 끝까지 붙어있는 사람은 없고, 결국은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우리 둘만
달랑 남았다. 씩씩거리면서 날 노려보는 그녀에게 난,
“저, 진짜 아니라니깐요? 실밥이 붙어 있어서 떼어 주려고 한 것 뿐이라니깐요?”
라고 설명을 했지만 막무가내다. 지하철이 떠난 후에 사람들이 빠져나간 홈에서 둘이서
언성 높이고 있으려니까, 마침 거기에 있는 여직원이 다가온다.
“무슨 일이시죠?”
“치한이에요, 이 사람.”
“아, 정말, 아니라니깐요?”
이렇게 해서 우린 같이 역무소 안으로 들어가서 조사(?)를 받게 됐다. 난 안 그래도 늦게
생겼는데 재수가 없으려니까 남자도 아닌 것이 치한으로 몰리게 생겼다. 밝혀야 되나
어쩌나 고민 때리는 사이에 아까 그 여직원이 경찰을 데리고 왔는데, 마침 여경이었다.
그래서
“저기요, 잠깐요.”
하고 난 그녀를 구석으로 불러서
“흠흠, 저, 제가 실은, 이런 사람 이거든요? “
하면서 난 와이셔츠 사이로 어깨 브라자 끈을 살짝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인상이 험악해 져서 날 째려보더니, 저쪽으로 가려고 한다. 아무래도
날 브라자 하고 다니는 변태 샐러리맨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얼른 다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구요! 제가요~ 휴우… 저, (작게) 여자거든요?”
“네? 뭐라구요?”
“(주위를 살피며 귓가에다) 제가요, 사실은 남장한 여자라구요.”
얼굴을 떼고 보니, 그녀는 놀란 듯이 천천히 내 얼굴을 보더니, 가슴, 얼굴, 가슴을 번갈아
보더니,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내 사타구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타구니 쪽을 툭툭 치며) 없거든요? 없거든요? 제가 좀 사정이 있어서 오늘 이 꼴로
나왔다가 오해를 좀 산 모양인데, 좀 봐주세요~ 네? ”
하고 에헤헤 웃으면서 귀여운 목소리를 냈더니 이제야 좀 믿는 모양이다. 날 그냥
보내주었다. 휴우~ 죽는 줄 알았네. 강남역 밖으로 일단 나오니, 생각했던 것 보다 꽤
시간이 널럴하다. 길가에 나와있는 토스트가게가 눈에 띄었다.
아침은 절대 굶지않는다. 이것이 내 신조이다. 뭐라도 먹어야 겠어서 포장마차 앞에 섰다.
토스트와 두유를 먹으면서 시계를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는데,
”토스트 하나요!”
하고 옆에서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리다. 무심코 쳐다보니, 현준이 그자식이다.
푸크크크.. 토할 뻔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옆을 쳐다보는데,
”굿모닝?”
하면서 현준은 상큼하게 인사를 하다. 난, 입가에 흘러내리는 케찹을 대충, 걸려있는
두루마리 휴지로 닦아내며 가슴을 쿵쿵치면서 입안에 든 토스트를 어쨌든 재빨리 삼켰다.
”어제 요한인 잘 들어갔냐?”
하고 현준이 묻는다. 이 자식이, 내가 요한이라니까.
“잘 들어갔다, 덕분에.”
하고 낮은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피식. 웃더니 현준이가, ‘그래?’ 한다.
”우리 좀 있다가 얘기좀 하자, 요한아. “
출처:죠이꼬의 소설카페
첫댓글 담편도 빨리 올려주세요~~
담편 원츄!
앞으론 열심히 댓글 쓰겠습니다. 작가님 힘내시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