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의 개막식 장면 그리고...손기정 마라톤 경기장면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폐막식도 있군요. 시간 약 23분 못됩니다. 동영상 출처 :여울목
여기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현대한국인의 영웅 손기정님을 생각하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서해성씨가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에 터잡아 하종강이 씀.)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 남승룡 선수가 동메달을 땄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석한 조선 사람 선수는 모두 7명이었다. 8월 1일, 올림픽대회 입장식에서 일본 대표단에 포함된 조선 선수들이 입장할 때는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고 일장기가 올라갔다. 입장식이 끝나고 조선인 선수 7명이 운동장 한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한 사내가 찾아와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위해서 승리의 노래 응원가를 불러주갔습네다.” 사내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구겨진 악보를 꺼내더니 혼자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 사내가 바로 안익태 선생이었고 그것이 애국가가 불리워진 최초의 기록이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안익태 선생은 객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운동장 한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식민지 청년 일곱 명 앞에서 한 사내가 구겨진 악보를 펴 들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을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목젖까지 올라오는 울음을 참기가 어렵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마라토너 황영조가 경기장에 들어오면서 화려하게 손 키스를 하는 동작을 관중들에게 보여 준 일을 두고, 손기정 할아버지는 꾸짖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는 마라톤 선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 모습은 세계 스포츠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 42 킬로미터를 거침없이 내달려온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을 들어오면서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승리에 대한 어떤 표시도 없이, 의연하게 돌진해 들어온다. 한 점 웃음기조차 없는 무표정한 얼굴의 우승자,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손기정 선수의 승리의 모습이다.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트랙의 마지막 바퀴를 도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에서는 조국을 빼앗긴 식민지 청년의 비애가 뚝뚝 묻어 떨어진다. 마라톤 경기가 끝난 뒤, 조선 사람 선수들은 한 동포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그 동포의 이름은 안봉근이었다. 생각나는 비슷한 이름이 있다. 바로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외로 탈출한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이 독일에 살고 있었다. 손기정 선수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안봉근 씨의 안방에 들어선 나는 난생 처음 태극기를 보았다. 선명한 색깔로 나뉜 음과 양, 그리고 태극을 감싼 괘. 저것이 태극기로구나. 저것이 우리 깃발이로구나. 온몸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승리를 축하하는 환영이었으나 분위기는 엄숙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동포 한 사람은 손기정 선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나는 손 군이 단순한 운동선수라고만 생각지는 않네. 오늘 일본인들의 축하 파티가 있음에도 이렇게 피를 나눈 동포들의 모임에 나와 주었으니, 이야말로 애국지사가 아닌가?” 안봉근 씨는 또 이렇게 말했다. “손 선수나 남 선수가 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소.” 승리를 축하하는 즐거운 저녁식사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비장하고 엄숙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국민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배양하는 데에 애국가를 철저히 이용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도 일어나 애국가를 들어야 했고, 길을 가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어야 했던, 희극 같은 시절을 경험한 우리 세대는 애국가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민중가요가 단 한 곡도 없던 시절에 우리는 “유신헌법 철폐하라!”, “박정희를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애국가를 부르면서 길거리로 나갔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었던 명동성당 농성을 지킨 사람들과 명동 부근 길거리를 메웠던 ‘넥타이 부대’를 하나로 이어준 것도 애국가였다. 앞으로는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얼굴 대신 베를린올림픽 대회장에서 7명의 조선인 선수들 앞에서 혼자 목청껏 노래를 부르던 안익태 선생의 얼굴을 생각하기로 했다. [헤럴드 생생뉴스 2005-09-28 11:11]
‘슬푸다!!?’ 일제 강점기 때 일장기를 달고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고(故) 손기정 옹의 심경이 담긴 친필엽서가 공개됐다.
이 엽서는 손기정 옹이 1936년 금메달을 딴 뒤 베를린 현지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슬푸다(슬프다)’라는 단어와 느낌표, 물음표가 내용의 전부다.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뛴 까닭에 금메달을 획득한 뒤에도 기쁨이 아닌 ‘슬푸다’고 표현한 손옹의 글귀에서 망국의 한(恨)이 전해진다. 또 느낌표와 물음표에선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손옹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손기정 옹은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당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면서도 가슴 부분에 달린 일장기를 월계수로 슬며시 가려 일본인으로 비쳐지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엽서는 KBS2의 프로그램 ‘스펀지’팀이 손기정 옹의 외손자로부터 받은 것으로 오는 10월 1일 오후 6시40분에 100회 특집으로 전파를 탄다.
故 손 기정옹의 우승 소감에 묻어나는 비애를 느낄수있습니다.
그의 애국심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집니다. -_-;;
남승룡에게 손기정이 부러웠던 이유
남승룡은 손기정의 금메달이 부러웠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와 3위를 한 남승룡 선수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입니다. 손기정 선수는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어진 묘목으로 자연스럽게 가슴의 일장기를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합니다.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는 묘목을 받지 못했고, 가슴의 일장기를 가릴 수 없었기에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묘목이 바로 서울 특별시 기념물 제5호로 중구 만리동 2가에 있습니다. 윗 사진은 바로 그 묘목이 자란 손기정 월계관수입니다.
손기정 때문에 세번 울었다는 백범 김구 선생님
“손기정 때문에 세 번 울었다. 한번은 올림픽 우승 소식에 감격해 울고, 또 한 번은 손기정이 일제에 의해 필리핀 전선에 끌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불쌍해서 울고, 그리고 귀국해 건강한 손기정을 만나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반가워서 울었다.”
인터넷에 오른 어느 독일인의 글 - 스테판 뮐러씨로 밝혀 졌습니다. -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지도를 펴기 바란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중심에 있다. 놀랍게도 2000년간 한번도 자주성을 잃어본 적이 없는 기적에 가까운 나라이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장의 사진때문에 나는 이 나라,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윗 사진은 동아일보를 폐간하게 한 유명한 사진입니다.
이 불가사의한 사진....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 한국의 태극기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하의 과연 높은 정신적인 종교 유교의 민족답지 않은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1988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그리고 개막식,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어느 연출가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극적이게도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경기장에 태극기가 올라가자 비극의 마라토너 '손'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그럼으로써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도서관에 달려가라,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2005년 10월28일 개관한 용산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된 손기정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이 글을 쓰신 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도 깨 비 -
|
출처: 도깨비 원문보기 글쓴이: 도깨비
첫댓글 감격 또 감격,,,,,,,,,,,,,,,,,,,,,요새 '일본 그 가면의 실체'라는 이승만 박사의 영문 서적 번역물을 보았는데,,, 그 선견지명이 놀라왔습니다,,,, 손기정과 안익태,,, 남승용도요,,,, 우리 민족의 얼을 생각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