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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02. 이방인.
by. 달꿈 - 게임 판타지
2023년. 12월 1일. 오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근교에 위치한 폐교의 운동장에 낯선 불 빛 두개가 번뜩이는가 싶더니, 모래알 굴리는 소리와 함께 차량 한대가 멈춰선다. 이윽고 운전석과 조수석에선 두 명의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조심해서 옮기자고.."
그들은 뒷 자석에 축 쳐진 채로 누워있는 사내를 짊어진 채로 유유히 폐교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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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빈은 일이 매우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야는 여전히 흐렸고,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정장을 입은 이들이 끌고 가는 데로 갈 뿐이었다.
'제길..!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야 하는데!'
이미 상황은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장의 사내들은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우빈을 끌어내고 있었다. 우빈은 이러한 일들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납치와 인신매매. 우빈이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들이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와 빈 공동을 울리는 구둣발 소리, 규칙적으로 울어대는 벌레의 울음소리들 까지도. 모든 것이 우빈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우빈을 푹신한 소파 따위와도 같은 곳에 눕혔다. 곰팡이 냄새 같은 것이 우빈의 코를 간지럽힌다. 아마 이곳은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았던 곳 같았지만, 이 고약한 냄새에 대해서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우빈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하는 시야와 함께 큰 두통을 느끼고는 눈을 찡그렸다. 이제 이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빈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그들이 우빈의 머리에 무언가 씌우는 것이 느껴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우빈으로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고, 대신 불안한 추측들만 머릿속을 헤짚고 다닐 뿐이었다.
"읍!! 읍!!"
드디어 입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손에서, 팔에서의 감각이 느껴져왔다. 극악의 공포가 약기운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일까, 우빈은 최대한으로 몸을 비틀며 그들에게 저항을 해보려 하였다. 하지만 우빈의 미약한 저항으로는 장정 둘의 힘을 이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놈이 벌써 깨어났군! 이봐 이쪽 좀 잡아!"
우빈의 몸 이곳저곳에도 무언가가 붙여졌다. 그것은 차가운 금속따위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이는 우빈을 더욱 두렵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우빈의 두려움은 극에 다다랐다. 그의 몸부림도 더욱 심해졌지만, 이윽고 자신의 팔을 타고 무기력함이 다시끔 우빈을 엄습한다. 흐릿한 시야를 돌려 자신의 팔을 보니, 방금 뺀 듯한 주사기 하나가 우빈의 팔 옆에 아무렇지도 않게 널브러져 있었다.
"후우, 이제 좀 조용해 졌군. 양이 부족했나.."
정장의 사내 중 한명이 헝클어진 자신의 옷매무새를 고쳐입고는, 다시끔 우빈을 들어 푹신한 소파로 이끌었다.
'이.. 이제 죽는건가! 도대체 왜 저들은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거지?'
지금 자신은 전기 의자에 앉은 사형수가 된 것이라. 우빈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눈은 반쯤 풀려있고,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사형 집행인들은 우빈을 흘겨보며 서로 무어라 수군 대고 있지만, 이미 귀까지 먹먹해진 우빈에게는 들릴 턱이 없었다.
"준비가 다 되었군! 젊은 친구, 많이 놀란 것 같은데 해치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마. 자 그럼.."
뒤에서 벨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궁지에 몰린 쥐 마냥 잔뜩 겁을 집어먹은 우빈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온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짤막한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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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그곳은 완벽한 판타지 세계를 구현하는데 가장 성공한 게임이며, 전용 콘솔을 만들어 유저로 하여금 실제로 그 세계의 일원인 것 처럼 느끼게 해 주는 파격적인 조작시스템을 구현한 게임이었다. 게임 부스 안에 헤드셋 같은 것과 뇌파 측정기 같이 생긴 동그란 고무 여러개를 이곳저곳에 연결시킨 채 부스 안에 있는 소파에 누우면, 그 모습만은 마치 중환자실의 환자와도 같지만, 게임 속에서는 그것이 마치 실제로 일어나고 일인 것 처럼, 촉감, 냄새, 고통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조작감은 둘째치고 마치 현실과 구분이 전혀 가지않는 세상에서의 자신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광고 그대로 '또다른 세계'인 것이었다. 예를들면 아직 많은 유저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지역인 '르빌의 설산'같이 온통 흰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곳을 가기 위해서는 '뼛 속까지 사무치는 냉기'를 감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그 곳에 가려 한다면 두터운 털 옷 장비부터 챙기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었다.
마침 누군가 설산의 무릎까지 쌓인 눈덮힌 산을 가로질러 가고있다. 온몸에 두른 예티의 가죽으로 보아 결코 예사 인물은 아니었다. 이유인 즉슨, 가장 상대하기 쉬운 예티가 레벨이 140부터 이기 때문인데, 현재 알려진 유저 중 두번째로 레벨이 높다고 알려진 '용기사 이카'가 레벨이 134인 점을 감안했을 때 저 인물은 최소한의 요행이나 도를 지나친 호승심 따위로 이곳에 온 이는 아닌 것이다.
"후욱..후욱.."
그의 얼어붙은 콧수염 사이로 세찬 입김이 쏟아져 나온다. 온몸을 꽁꽁 둘러 싸 매어도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자그만 몸덩이 하나 지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힘들어 하는 기색을 찾아 볼 수 없다. 그의 아이디는 '무사'. 최근 삼개월 내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유저였다. 대륙 유일의 '검성(sword master)'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NPC나 유저, 혹은 인터넷 매체들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가 검성의 업적을 이룬 것이 삼개월 전이니, 그 당시 그의 레벨은 150 이었다. 당시 가장 높다고 알려진 용기사 이카는 당시에 레벨이 105였으니, 당시로썬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성격이 어떠한지, 실제로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에 사는 지 조차 알려진 바가 없었다. 얼마 전 부터 연계 퀘스트를 진행하느라 설산을 넘고있는 그의 레벨은 200에 근접해있었지만, 그런 그도 설산 앞에선 미력한 인간에 불과했다.
"추위가 이정도일 줄이야! 촌장의 조언이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군, 하지만 이 상황에서 몬스터라도 나오면 그건 좀 위험하겠는데?"
세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게 말이라고 했던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예티 세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제길, 이놈들, 아까부터 내 뒤만 따라다니더니 말하기가 무섭군!"
무사는 툴툴대며 등 뒤에 메고있던 장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현실과도 다름없는 소리를 내뿜으며 은빛 나신을 드러 낸 장검의 예리함 마저 현실과도 다를 것 없는 것이다. 예티는 지능이 상당한 몬스터 답게 삼각형의 방진을 이루며 무사를 압박했다. 무사는 검을 비스듬히 눕히고는 속삭인다.
"한놈만 걸려라!"
무사의 검에서 은은한 빛이 도는가 싶더니 그는 재빨리 앞의 예티를 향해 내달린다.
"크와악!"
예티가 괴성과 함께 그의 검과 맞부딪히지만 자신의 체력이 주욱 빠지는 것을 알고 재빨리 몸을 뺀다.
"크와앙!"
무사는 노련한 솜씨로 재빨리 뒤를 돌아본다. 그 중 한마리는 '철의 장막'이라는 스킬에 걸려 공중에서 몸을 바둥거리며 체력이 느릿느릿 줄어들고 있었다.
"오케이, 한마리!"
남자는 옆의 예티에게도 검을 휘갈겼다. 검의 잔상만 보일 법한 상당한 속도의 검놀림이었다. 하지만 예티 역시 만만찮은 고레벨 몬스터였다.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을 세워 몇차례의 공격을 막아 피해를 최소화 하더니 재빠르게 뒤로 몸을 날린다.
"어딜 도망.. 큿!"
동시에 뒤에서 따끔한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체력이 1/3정도 깎여있는 것을 느낀 무사는 등골이 서늘하였다.
'잠깐 방심하면 큰일나겠군!'
그는 다시 뒤를 돌아 자신을 공격한 예티에게 빠르게 검을 꽂아 넣었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그런 소모전의 반복이라면 상황은 무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몇 수의 공방이 오고가자 무사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쳇, 이래서야 끝이 없겠군. 오늘 하루는,, 조심해야겠어!'
무사는 검을 바닥에 내리 꽂으며 외친다.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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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는 예티들의 시체에서 '예티의 가죽'만을 무두질하여 가져갔다.
"예티의 가죽 6장이라.."
그는 뜨뜻한 김이 올라오는 그 가죽을 가방속에 우겨넣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가 지금 하고있는 퀘스트는 '만년설로 자란 얼음 꽃' 열 송이를 모으는 것이었다. 설산의 마을 촌장의 외동딸이 병에 걸렸는데, 이를 위한 약재의 재료를 구하기 위한 뻔한 스토리의 퀘스트였다. 현재까지 모두 여덟송이를 모았으니..
"저기도 한 송이 있군!"
무사는 '주변 탐지'로 밝아진 시야로 저 멀리 흰 설산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꽃 한송이를 발견하고는 우악스럽게 몸을 이끌었다. 그는 발견 한 꽃을 향해 가면 갈 수록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으음? 가만있자.. 저것은?"
꽃 옆에 무언가 시커먼 것이 뉘여있었다. 무사는 다시 주변탐지를 발동하여 '그 것'의 정체를 살폈다. 그 것의 모습은 마치..
"사람이다!"
무사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 다을 때 즈음, 그 곳엔 과연 앳된 티를 아직 다 못 벗어난 소년이 누워 있는 것이었다. 무사는 '만년 설로 자란 얼음 꽃'을 먼저 주워담고는 -NPC임이 거의 확실한 그 소년을 깨웠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랐기 때문에- 소년을 흔들어 깨웠다.
"이봐, 이봐! 일어나라고!"
하지만 소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얼어죽지는 않은 듯 몸에는 아직도 따뜻한 체온이 맴돌았다.
"이런, 유저는 아닌 것 같은데.. NPC 인가?"
무사는 어쩌면 '조형물'의 일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던젼에 흔하게 널린 해골 바가지라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의 엉뚱한 생각은 소년의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으..으음.."
"이봐, 괜찮나?"
그때 갑자기 알림창에 퀘스트가 뜨는 것이었다.
*정체 불명의 아이.
-정체 불명의 아이가 설산에 쓰러져 있다. 우선 의식을 찾을 수 있도록 주위의 동굴로 데려가자.
성공요건 : 아이의 생존 / 실패요건: 아이의 사망 / 보상: 이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 입니다.
무사는 퀘스트의 내용을 샅샅히 살펴보았다. 이것은 그가 퀘스트를 받을 때 항상 해 온 오랜 습관이었다. 그래야 알짜 퀘스트 만을 받아 들일 수..
*퀘스트를 받아들이 셨습니다. 진행중이던 모든 퀘스트가 취소되었습니다.
알림을 본 무사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 색이 변하는 것은 말 할것도 없었다.
"뭐? 퀘스트가 뭐 이리 북치고 장구치고야!! 나는 승낙 한 적 없어! 제기랄, 퀘스트는 왜 모두 취소가 되는거야!! 이딴게 어딨어!!"
무사는 당장이라도 운영진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었지만, '어떤 약속'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한스러웠다.
"제기랄, 젠장!"
무사는 볼멘소리를 하며 아이를 업어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예티의 가죽을 몇장 덮어씌웠다. 이 아이야 얼어죽든 알 바 아니었지만, 모든 퀘스트가 취소 된 이상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얄미운 목소리의 알림창이 다시한번 뜬다.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10:00분 남았습니다.
"아주 제멋대로인 퀘스트구만! 알았어, 알았어, 간다고. 퉷!"
무사는 바닥에 침을 탁 뱉어내고는 무릎까지 쌓인 눈 속을 헤짚으며 동굴을 찾아 나섰다. 그가 뱉은 침이 다 얼기도 전에, 그의 모습은 이미 설산의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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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ㅜㅜ
첫댓글 우왕 ^*^재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