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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第二十五章). 미녀(美女)와 위군자(僞君子).
사당의 안으로 들어가자 우선 느껴지는 것은 음산(陰散)하고도
지저분한 악취(惡臭)였고, 하얀 안개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마치 유
령(幽靈)처럼 허공에 둥둥 떠올라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
어왔다.
금몽추는 짐짓 내부를 둘러보는 듯하다가 일순 크게 놀랐다는 듯
이 웃으며 소리쳐 말했다.
"아니 당신들은 바로 삼로(三老)가 아니오? 헌데 어째서 모두들
여기에 와 있다는 말이오?"
확실히 금몽추는 이곳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천로(天老)가 입가에 담담한 미소(微笑)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
다.
"물론 저희들은 소주인님(少主人)님을 뵙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
이지요. 조금전에 소주인님께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
나 구태여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그대로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금몽추는 겨우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일부러 태연하게 웃어 보
인 후에 대꾸했다.
"하기는, 하 하 하! 당신들은 그 강시들을 상대하는데 일부러 나
설 필요가 없었소. 나 이 곤륜삼성(崑崙三聖)이 그따위 물건들에게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극심한 모욕이었던 것이
오. 게다가, 흐흐흐...... 나는 사실 당신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어째서 내
가 유독 이쪽으로 곧장 걸어왔겠소? 나는 그야말로 당신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러한 놀라운 능력(能力)들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외다. 하 하 하!"
화로(花老)가 문득 요염(妖艶)하게 웃더니 입을 열어 말을 받았
다.
"소주인님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저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호호...... 그래서 저희들도 모든 것을 소주인님께
의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금몽추는 다소 거만한 표정이 되어 오른손을 휘휘 내저었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오.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오. 헌데
당신들에게는 혹시 다른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오?"
의로(醫老)는 여전히 좋지 않은 기색(氣色)을 하고 잠자코 있었
지만, 천로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조금전의 그 환혼강시(還魂彊屍)들을 상대해 보셨으니 대강은
아시고 계시겠지만, 현재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좋지 않은 상태
입니다."
"환혼강시? 으음, 환혼강시라......? 당신들도 그것들을 보았다
는 말이오? 헌데 어째서 그것들을 처치하지 않......? 아니오. 굳
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나의 삼절(三絶)중에서 가장 낮은
이 무절(武絶)만 해도 실로 놀라운 경지(境地)라는 말이오. 으허
허! 헌데 대체 그 환혼강시들이 뭐가 어쨌다는 말이오? 내가 알기
로는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 무슨 음산백골문(陰山白骨門)
이라는 곳에서도 이런 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던데?"
의로가 드디어 눈살을 찌푸린 상태로 입을 열어 말했다.
"아까 그 환혼강시는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그다지 흔한 종류가
아닙니다. 소주인님께서는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군요! 게다
가 현재 강호(江湖)에는 그런 환혼강시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혼강시(煉魂彊屍)들도 수두룩하고, 또한 여러 가지 다른 괴물(怪
物)들도 넘쳐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실로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환혼강시는 말 그대로 혼백(魂魄)을 돌아오게 했다는 것으로 비
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강시(彊屍)들이지만, 연혼강시(煉魂彊屍)
는 그 환혼강시를 온갖 술법(術法)과 약물(藥物) 등을 사용하여 단
련시킨 것으로 비단 흔하게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들도
대단한 것들이다.
이 강시들은 물론 죽은 시체라는 점에서 실혼인(失魂人)과 다르
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금몽추는 대뜸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서 크게 화를 내며 의로에서
소리쳤다.
"당신은 정말 사사건건 내게 시비를 거는군!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진짜로 그러한 사실을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
는가? 으흐흐흐! 그것은 실로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다만 모든 사
실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그대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그
런 말을 했던 것이다. 흐 흐 흐...... 좋아. 현재의 강호무림(江湖
武林)이 크게 어수선하다는 것은 나도 인정을 하지. 하지만 설마하
니 그것들이 모두 다 오선(五仙)의 짓이라는 말인가?"
천로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들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계속 그 일들을 조사해 보고
있었으나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금몽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증거가 없다면 또한 그들을 처벌(處罰)할 수도 없
는 일이 아니오? 본문(本門)에서는 그 증거가 뚜렷하지 않거나 상
대방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처벌하지 않도록 되어 있소. 당
신들도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보는데?"
의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세상(世上)을 모두 망가뜨리고 난 뒤에
어떻게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늦은 것입니다. 모든 규율(規
律)에도 예외는 있는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볼 때 지금 그들을 제거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금몽추는 다시 얼굴이 벌개져서 약간 생각을 굴려 보는 듯하다가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들은 혹시 내 능력(能力)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크게 착오하고
있는 것이오. 본문에서는 이른바 처벌을 위한 처벌을 하지 않소.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당신들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이해가 될
것이오. 나는 지금 바로 그들을 처벌할 수는 없소. 그러니 당신들
도 계속 그들을 추적(追跡)하여 알아보고 또한 그 증거를 찾아내도
록 하시오."
화로가 교소(嬌笑)하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알겠어요. 호호! 하지만 요즈음 보아하니 소주인님께서는 뭔가
곤란을 겪고 계시는 것 같던데, 저희들이 도와드리지 않아도 괜찮
을까요?"
금몽추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약간 건방진 말을 하는군! 당신들이 감히 내 일에 대해
서 알 수가 있다는 말이오? 내게 어떤 도움이라도 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오? 으흐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도 말
고 어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그게 바로 나를 돕고 당신들
을 위하는 길이오."
천로는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이내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당신들은 아울러 이번의 사태에 의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소."
사당을 나와서 얼마쯤 더 걸어가니 문득 그의 앞에 궁구가가 나
타났다.
금몽추는 내심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즉각 궁
구가를 향해 소리쳤다.
"이 멍청한 녀석, 이 빌어먹을 녀석, 대체 여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나타난다는 말이냐?"
궁구가(宮九佳)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금
몽추를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저는 방금 마악 잠에서 깨어 주인(主人)님을 찾아오는 길입니
다. 설마하니 저더러 잠도 자지 말고 주인님을 모시라는 말은 아니
겠지요? 만일 그렇다면 정말로 너무하시는 군요.'
금몽추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가 그리 너무하다는 말이냐?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함께 가
자. 우선 이 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궁구가는 이에 헤벌쭉하니 웃고는 즉시 다가와 그를 등에 태우며
다시 심어전음(心語傳音)으로 말했다.
'저는 주인님의 의중(意中)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대
체 이번에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죠?'
금몽추는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느릿
하게 대꾸했다.
"이번에 나는 백리선생(百里先生)을 만난 이후 부모(父母)님의
원수에 대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곤륜삼성으로서 복수(復讐)라
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일이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들 모두에게 마
땅한 대가는 치루게 해야 하겠지. 물론 세상(世上)을 편안하게 하
는 것이야말로 나의 본분이라고 할 수가 있고...... 어쨌든 그들은
모두 영웅비무대회(英雄比武大會)에 참석하기 위해 무림맹(武林盟)
으로 향하고 있을 테니, 우리도 이제부터 서둘러 그 쪽으로 가도록
하자."
'무림맹은 복우산(伏牛山)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면 되겠군요?'
금몽추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너는 한낱 미물(微物)에 불과하면서도 그와 같은 세상의 지리
(地理)에 대해서도 훤하게 알고 있으니 이것을 어느 누가 믿을 수
가 있겠느냐? 하기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근본적으로 크게 다를 것
은 없는 일이지. 지금 곤륜파(崑崙派)로 가 본다고 해도 그들은 대
부분 무림맹으로 떠나고 없을 테니 우리도 그 쪽으로 가도록 하
자."
그런데 금몽추가 궁구가의 등에 타고 불과 얼마 가지 못했을 때
문득 다시 두 사람이 나타나 앞을 막는 것이었다.
"금공자! 아주 실망스럽소. 이대로 그냥 아무런 결말도 없이 떠
나버릴 생각이란 말이오?"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은 바로 제운우(齊雲友)와 공심(空心)이었
다.
한밤중이어서 더욱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각기 신법(身法)
이 대단해서 느닷없이 불쑥 나타났다.
그런 말을 하는 제운우의 표정이 몹시 불쾌해 보이는 것을 보고
금몽추는 싸늘하게 주시하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정말 귀도 밝군. 나는 몰래 떠나려고 했는데 대체 어
떻게 그 사실을 알고 뒤따라온 것이오?"
공심이 나직하게 불호를 외우며 합장(合掌)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백리선생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급히 뒤따라온 것입니
다. 만일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십시오."
제운우는 가볍게 냉소(冷笑)하며 다시 말했다.
"그는 항상 모든 일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오. 그
주위에 있는 사람은 늘상 그래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니, 우리가
이런 정도의 불편함을 주었다고 해도 감히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
오."
금몽추는 마주 음산(陰散)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고보니 제대협(齊大俠) 당신은 위군자(僞君子)로군? 내가 이
렇게 떠나면 당신은 바라던 대로 왕소저(王小姐)와 맺어질 수 있어
서 더 좋을 텐데 어째서 그렇게 일부러 화가 난 척을 하는 것이오?
설마하니 그러고도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할
수가 있소?"
제운우는 그 말에 일순 두 눈에서 벼락같은 안광(眼光)을 발출하
며 우장(右掌)을 날렸고, 이어 고함을 질렀다.
"뭐라고! 이런 우라질 자식!"
갑자기 궁구가의 주위로 칠 팔 장의 위맹스러운 장력(掌力)이 거
의 동시에 날아갔고, 쾅쾅쾅! 하는 굉음과 함께 땅바닥이 커다랗게
패이며 하늘로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갔다.
"왕소저는 오직 너만을 원하고 있다. 나는 이미 그녀를 포기한
지 오래라는 말이다. 그런데 감히 네가 그녀를 욕보일 생각이냐?
나는 결코 그녀를 욕보이는 녀석을 두고 볼 수 없다!"
제운우의 장력은 일부러 빗나가게 후려친 것이기에 궁구가와 금
몽추는 전혀 아무런 피해도 당하지 않았으나, 그 일이 더욱 금몽추
로 하여금 화가 나게 만들었다.
"흐흐흐! 그럼 지금 내게 손을 쓰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로군? 흐
으으...... 비록 왕소저를 취할 수는 없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
은 용서할 수 없다니 정말 대단한 순정(純情)인걸? 게다가 그토록
빠르게 그녀를 포기할 수 있었다니 이는 실로 뜻밖의 일이외다."
공심이 여전히 합장을 한 자세로 미소하며 말했다.
"지금 제시주가 비록 흥분하여 무례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그
것은 모두를 위한 일인 듯하니 금시주께서 그만 이해해 주시오. 그
리고 제시주께서는 어서 금시주께 사과드리는 것이 좋겠소이다."
제운우는 비록 한순간 노화(怒火)가 치밀어 올라 자신도 모르게
장력(掌力)을 퍼부으며 위협적인 행동을 했지만, 이내 그러한 것들
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는지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금몽추를 주시
하며 서 있었다.
금몽추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자 궁구가에게서 내려서며 더욱 음
산하게 소리쳤다.
"소화상(少和尙)께서는 이 일에 나설 필요가 없소. 나 이 곤륜삼
성(崑崙三聖)이 이와 같은 모욕을 당하고도 그대로 있을 줄로 알았
다는 말이오? 흐 흐 흐! 제운우 이 더러운 녀석아! 그렇다면 어서
덤벼라! 내가 네놈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실로
오산(誤算)이다!"
공심은 금몽추가 느닷없이 험악(險惡)하게 나오자 그만 입을 다
물고 말았다.
제운우는 이에 두 눈에서 노기에 가득찬 살광(殺光)을 번뜩였으
나, 이내 표정을 암울(暗鬱)하게 굳히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
다.
금몽추는 그것을 보고 음침(陰沈)하게 웃더니 곧장 제운우의 앞
으로 다가가서 철썩철썩! 연달아 십여 차례나 뺨을 후려쳤다.
"이 개돼지만도 못한 녀석! 네놈이 감히 나를 노려본다는 말인
가? 흐흐흐! 어디 다시 한 번 그 잘난 무공(武功)을 써 보지 그러
느냐? 이제는 설마하니 그럴 용기조차 없어졌단 말이냐?"
제운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으나 오히려
두 눈의 살광을 지우고 표정만 더욱 암울하게 굳혔다.
대뜸 제운우의 안색이 벌겋게 물드는 것을 보고 공심이 다가와서
만류하려고 하자, 금몽추는 일순 가볍게 웃더니 그를 향해 비웃듯
이 말했다.
"나는 이른바 호걸(豪傑)은 모욕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생각
하여 여태까지 참고 있었던 것이오. 그런데 실로 이 자가 이와 같
이 함부로 나오다니...... 흐흐흐, 그것은 실로 이 곤륜삼성을 잘
못보고 하는 짓이었지. 이 녀석이 나의 진정한 능력(能力)을 보았
다면 그야말로 입에 게거품을 물게 되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소화상?"
공심은 상황이 이렇게 험악하게 변하자 표정이 우울해졌으며 가
볍게 웃으며 합장을 하고 이렇게 말을 받았다.
"아미타불, 이 일은 처음에 제시주가 잘못한 것이오. 하지만 이
제는 그만 금시주도 그것을 용서하고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이외다. 우리는 사실 제법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사이가 아니었
소?"
'이 소화상도 이제는 내게 공손히 대하지 않고 역시 저 지저분한
녀석과 한통속이 되어 가는구나.'
금몽추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굴린 뒤에 짐짓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좋소. 나는 곤륜삼성이니 당연히 모든 일을 참고 용서해 주어야
만 하겠지. 휴우, 실로 이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쉬
운 노릇이 아닌 것 같소. 하지만 나는 바로 그러한 대단한 능력들
이 있기에 곤륜삼성인 것이외다. 소화상! 그대는 사실 그렇게 걱정
할 필요가 없소. 나는 본래부터 이 미련한 녀석을 용서하고 있었던
것이오."
공심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아미타불, 그렇다면 실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금몽추는 다시 한 번 제운우를 싸늘하게 노려본 다음에 걸음을
옮겨 궁구가에게 다가가 올라타며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 무례(無禮)한 짓을 하는 녀석과는 다시 어울
리지 않는 버릇이 있소. 나도 계속 소화상과 함께 여행(旅行)을 하
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구려. 자,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겠소. 만일 내가 없어서 다소 불편하고 어려운 점이 생긴다
고 해도 나를 원망하지 말기를 바라오."
공심은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합장을
하고 말했다.
"아미타불, 그럼 시주께서도 무사하시길 빌겠습니다."
금몽추는 즉시 표정을 냉랭(冷冷)하게 굳히고 궁구가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궁구가야, 어서 이만 가자!"
하지만 금몽추는 불과 얼마 더 가지 못해서 다시 한 사람의 제지
를 받아야만 했다.
산골짜기에 쌓인 눈이 주위를 희미하게 밝히는 가운데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왕산산(王珊珊)이었다.
그녀는 안색이 다소 수척해져 있었는데, 그를 보자 고개를 숙이
며 울음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저는 당신께 사과드리기 위
해서 이렇게 급히 따라온 거예요."
금몽추는 약간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가볍게 냉소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이렇게 사과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니겠소? 소
저가 제운우와 혼인(婚姻)을 한다면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
을 것이오."
왕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제 말뜻은 그런 것이 아니예요. 저는 이미 당신의 사람이기 때
문에 결코 다른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어요. 제가 사과드리겠다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 제가 당신께 함부로 대해온 점에 관한 것이예
요. 저는 설령 당신이 저를 피한다고 해도 끝까지 당신을 따라갈
거예요."
"아니,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소? 나는 저번에 다른 여자들과 깊
은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소저와는 이제 어울릴 수 없다고 말이오.
설마하니 그새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말이오?"
왕산산은 재차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영웅(英雄)은 삼처사첩을 거느릴 수가 있다고 했어요. 하물며
당신과 같은 분은...... 당신이 앞으로 더 많은 여자들을 상대한다
고 해도 저는 마찬가지로 당신의 처첩이 될 거예요. 이 사실은 변
함이 없어요."
'뭐라구? 이 여자는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지기라도 한 것이 아닐
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리어 바보가 되고 만 것이겠지.'
금몽추는 어안이 벙벙해 져서 잠시 그녀를 바라 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하하, 소저가 그렇게 결심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로서는 달리 도
리가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싫다는 남자(男子)에게 억지로 매달리
는 여자(女子)처럼 바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내 이제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더 이상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소. 그
러한 것을 알고도 계속 나를 따라 오겠다면 그야 어쩔 수가 없는
것이겠지. 흐흐흐, 이거야 말로...... 나를 정말 귀찮게 하는군."
말이 끝나자 마자 금몽추는 즉각 궁구가를 재촉하여 그녀의 옆을
지나쳐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왕산산은 그의 말에 일순 안색이 더욱 창백해 지고 가늘게 몸을
떨었으나, 이내 고개를 들어 그가 사라져 가는 방향(方向)을 바라
보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는 그녀의 두 눈에는 맑
고도 밝은 광채(光彩)가 떠올라 주위를 환히 비추고 있는 것 같았
다.
'주인님, 그녀에게 너무 심하게 대하신 것이 아닙니까?'
궁구가의 말에, 금몽추는 다소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꾸했
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너는 아직 나의 뜻을
알지 못하겠느냐? 나는 잠시 강호유람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 삼
성요(三聖 )를 완전히 떠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머지 않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될텐데, 설마하니 그런 여자가 스스로 그런 황
량한 곳으로 가서 살려고 하겠느냐?"
'그러니까 주인님은 오히려 그녀를 위해서 그런 모진 말씀을 하
신 것이로군요?'
금몽추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나를 위한 것이다. 만일 그 곳을
지겨워하는 여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라면 내 어찌 불행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으레 그런 부잣집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
며 화려(華麗)하게 자라난 여자(女子)들은 도저히 그런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기 어려운 법이다. 만일 너도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앞으로 여자를 고를 때에...... 으음, 너에게는 별로 해당되는 사
항이 아니로구나."
궁구가는 묵묵히 계속 걸음을 옮겼으나 내심 이렇게 혼자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주인님이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만일 좋아하지 않는다면 심심풀이로 데리고 있다가 싫증나면 다시
쫓아 보내면 되는 일이 아닌가......? 나라면 일을 결코 이렇게 힘
들고 귀찮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벌써 사방에 심한 폭설(暴雪)이 내려서 주위가 온통 흰눈으로 뒤
덮혀 버렸고, 길을 가기가 어려워졌다.
궁구가는 워낙에 신통스러운 녀석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 때문에
길을 가는 것이 지장을 받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간혹 길을 잃어버
리기도 하고 속도가 느려지기도 했다.
곤륜파가 이미 무림맹(武林盟)을 향해 길을 떠났다는 것은 역시
예상대로 사실이었으나, 며칠동안 길을 가면서 금몽추는 다소 의아
해 지게 되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이미 곤륜파(崑崙派)의 무리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어야 할 것인데도 아직 그 사람들은 거의 흔적(痕迹)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금몽추는 그들을 지나쳐 왔거나 아니면 그들이 일
부러 다른 먼 길로 돌아서 갔기 때문에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 아
닐까?
금몽추는 한동안 그 문제로 고민을 하기도 하고 한 번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 보기도 했지만, 이윽고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생각
했다.
'어차피 그들은 무림맹으로 가는 것이니 우리가 그쪽으로 가다
보면 역시 쉽게 만나게 될 것이다.'
군자(君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있듯이, 지금 그
가 곤륜파에 보복하는 것은 그다지 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생각해 보면 그가 보복해야 할 대상은 그 곤륜파 뿐만은 아니기 때
문이다.
그야말로 무림맹(武林盟) 전체가 그의 적(敵)이라고도 할 수 있
기 때문에 만일 그가 지나치게 성급하게 곤륜파를 건드리다가 자신
의 출신내력(出身來歷)이 탄로나기라도 하면 오히려 그가 곤란해
지게 될 것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는 이제는 다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길을 가게 되
었는데, 그 날 날이 저물어 주위가 다소 어둑어둑해 지고 하룻밤
묵어갈 장소를 물색해야 할 때 문득 그의 앞에 난데없는 방해자들
이 나타났다.
깊은 산중(山中)의 작은 계곡(溪谷)을 지나가는데 느닷없이 주위
에서 인기척들이 일어나더니 홀연 수십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타
나 삽시간에 그를 사방으로 포위해 버렸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 의아해 하다가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궁구가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일단 강호(江湖)에 나서면 편안할 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
지만, 그러나 이 것은 약간 의외로구나. 저들이 내 재산(財産)을
노리고 온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러나 혹시 너를 잡아먹기 위해
서 온 것이라면 걱정이다."
궁구가는 앞발로 두 번 눈덮힌 땅바닥을 두드리며 고개를 좌우로
내두르더니 대꾸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저 사람들은 오히려 주인님께 더 관심이
있는 것 같군요. 혹시 저들에게 전생(前生)에서라도 원한(怨恨)을
샀었던 것이 아닙니까? 만일 제게 관심이 있다면 저는 상관없습니
다.'
금몽추는 실로 뜻밖인 듯 미소지으며 대꾸했다.
"나는 아직 너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네게 벌써 그런 희생정신
이 생겼다니 실로 대단한 일이로구나. 네가 만일 그들이 너를 잡아
먹도록 순순히 따른다면 그들은 그야말로 오늘 횡재(橫財)를 하게
되는 셈이다."
궁구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 보더니 다소 화가 난 듯 심어전
음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난 결코 저런 미친 자식들에
게 죽을 생각이 없다고요. 나는 결코 그런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는
소가 아니란 말입니다. 난 그저 저런 녀석들이 덤벼들면 하나씩 저
승으로 보내줄 뿐입니다.'
"그러냐? 그렇다면 나는 그만 오해(誤解)를 한 셈이로구나. 나는
그저 네가 그들에게 잡아먹힌다면 나도 혹시......"
이 수십 명의 사람들은 나타난 이후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누구도 단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하나같이 원한(怨恨)에 미친 사람들처럼 모두가
두눈 가득 시뻘건 혈광(血光)을 발하고 있었는데, 금몽추로서는 도
무지 그들을 이전에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금몽추가 말을 하는
도중에 어느 틈엔가 그 중의 한 사람이 땅속에서 솟아난 듯 빠르게
다가와 금몽추를 향해 낫과 같이 생긴 기형병기(奇形兵器)를 세차
게 휘둘렀다.
그 기형병기의 자루부분에는 쇠사슬이 길게 매달려 있었는데, 얼
핏 보기에도 그것이 연편(軟鞭)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그것은 또한 낫과 같은 병기의 공격범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금몽추는 그 사람의 운신법(運身法)에 비해 그 움직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것을 보고 그만 놀라 입을 다물며 황급히 허리춤
의 부러진 금검(金劍)을 꺼내 막았다.
창! 하는 예리한 금속성이 울림과 동시에 금몽추는 하마터면 그
진동에 의해 궁구가의 등에서 떨어져 내릴 뻔했다.
상상외로 그 자의 손목힘이나 공력(功力)이 엄청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 그 사람은 첫 번째의 공격이 실패하자 좌수(左手)
를 떨치더니 새파란 빛깔의 강침(鋼針)들을 무수히 쏘아냈다.
한 번 크게 놀랐기 때문에 금몽추는 그것에도 놀라운 위력이 있
으리라고 짐작하고 즉시 신형(身形)을 위로 뽑아올려 피하며 서너
번이나 공중(空中)에서 회전(回轉)을 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그만한 공력(功力)을 가진 사람이면 그 강침들은 최소한 도중에
서 서너 번의 변화(變化)를 일으키며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라고 생
각했는데, 뜻밖에도 그것들은 그저 세찬 바람만 일으킬 뿐 그대로
아무런 변화도 없이 스쳐 지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강침을 피한 다음에 금몽추가 일부러 서너 번이나 공중회전을 하
고 있었던 것은 다음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와
같은 광경을 보자 그는 다소 맥없이 궁구가의 등위로 내려왔다.
그 자는 다시 그 기형병기를 휘둘러 세찬 공격(攻擊)을 퍼부어
왔는데, 이번에는 쇠사슬을 잡고 길게 공격을 해왔으므로 금몽추는
깜짝 놀라서 미처 막아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훌쩍 신형을 날려 피
했으며 내려오는 즉시 그 자의 앞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그 낫과 같이 생긴 병기는 한 번 뻗어나간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쇠사슬에 이끌려 되돌아 왔는데, 금몽추는 그것을 피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공격하여 기선(機先)을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금몽추가 부러진 금검으로 초식(招式)을 펼치
며 다가들자 그 자는 웬지 다소 멍청한 표정이 되어 그저 그의 얼
굴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자는 비단 공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행동거지가 이상하여
도무지 상대로 하여금 예측을 할 수 없게 하는 것 같았다.
실로 이런 자는 무공초식(武功招式)들이 괴이음험(怪異陰險)하고
돌발적으로 발출되기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 어려울 수가 있다.
금몽추는 바로 그러한 것 때문에 곧장 상대방의 사혈(死穴)을 노
리며 공격해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도 다소 멈칫하며 실초(實招)를
허초(虛招)로 바꾸고 상대방의 반응을 예의주시했다.
헌데 바로 그 때, 느닷없이 퍽! 하는 격렬한 타격음과 함께 피와
뇌수(腦髓)가 쫙 뿌려지며 그 자의 머리가 박살이 나서 흩어져 버
리는 것이 아닌가?
조금전의 그자의 기형병기는 바로 회수된 것이 아니라 슬쩍 빗나
가며 뒤로 돌아갔는데, 그것이 느닷없이 다시 회전(回轉)해 오며
어처구니가 없게도 오히려 그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던 것이다.
머리통이 박살이 났는데도 살아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금몽추는 뜻밖에도 그 자가 자신의 기문병기를 회수할 능력(能
力)이 없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대개 제아무리 살검(殺劍) 위주의 방어를 하지 않는 무공절기(武
功絶技)를 익힌 사람이라고 해도 최소한 자신의 병기(兵器)에 의해
격타당하게 하지는 않는 법이고, 또한 그런 것부터 배우는 것이라
고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죽은 자는 비단 공격(攻擊)을 하는 것이 두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다친 것처럼 자신의 병기에 스스로 당하고 만 것이 아닌가?
'혹시 이 자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어떻
게 그와 같은 대단한 공력(功力)을 갖추게 되었던 것일까?'
수십명에게 포위된 상황이라면 도저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만
큼 한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몽추는 그 죽은 자 하나만을 상대하면서도 내심 계속해서 주위
의 상황이 불안(不安)했었으나, 알고보니 이상하게도 전혀 그럴만
한 사태가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다른 수십명의 사람들은 전혀 그를 공격하지 않고 있었고 사방을
빙빙 돌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공세(攻勢)라기
보다는 오히려 수세(守勢)에 가까웠으며 아무리 눈을 씻고 바라보
아도 진법(陣法) 같지도 않았다.
마치 계속해서 움직이며 공격을 하려고 하고 있지만 일단 조금
앞으로 나오고 나면 불현듯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져서 황급히 뒤로
물러나곤 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만일 무공(武功)이 자매판(紫枚瓣)의 경지에 있는 무림인(武林
人)에게 어느날 갑자기 백연탄(白筵 )의 공력(功力)이 주어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과연 그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공력을 사용하여 자
신의 모든 무공(武功)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强力)하게 사용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疑問)은 대개 무공을 배우지 않았거나 아직 초보(初
步)의 경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마치 꿈이나 공상처럼 많이
생각되어 온 문제이다.
그러나 일단 무공이 일정한 경지(境地) 이상에 도달한 사람들은
능히 스스로 그러한 이치(理致)를 파악할 수가 있으며, 소위 하루
아침에 절정고수(絶頂高手)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즐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