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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第二十六章). 무공(武功)보다 더 무서운 것.
이른바 공력(功力)이라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잘 다룰 수 있게
단련(鍛鍊)하지 않은 상태라면 마치 예리한 흉기(凶器)와도 같아서
도리어 제어를 벗어나서 자신을 해칠 수가 있는 법이다.
단순한 예로, 조금전에 자신의 병기에 의해 죽은 그 사람이 그러
한 이치를 증명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단련되지 않은 공력이 체내에 증가되게 되
면 일정기간 동안은 무공이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용(運
用)하기 어려워져서 퇴보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량의 공력의 증가는 그 단련(鍛
鍊)을 어렵게 만들어서 그 진척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는커녕 오히
려 크게 둔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호인(江湖人)들이 늘상 꿈에도 그리는 공력의 증가라
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공절기(武功絶技) 등의 사용에 의해 잘 단
련된 것이 아니고는 어려우며, 그래서 강호의 명문정파(名門正派)
에서는 갑작스런 공력의 증가보다는 꾸준한 단련에 의해 공력을 증
가해 갈 수 있도록 제자(弟子)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눈앞의 이 사람들은 본래는 그래도 제법 상당한 무공
(武功)의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만 어린아이와
도 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바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솔직히 그들이 무공초식(武功招式)을 운용하는데는 어려움이 있
을 지라도 한꺼번에 달려들게 되면 분명 그 파괴력 때문에 금몽추
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인데도, 금몽추의 동작(動作)
하나하나를 보고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자신들
의 무공에 대한 자신감(自信感)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
다.
어쨌든 눈앞의 이들은 비단 그 무공뿐만 아니라 외형적(外形的)
인 모습 등에서도 괴이(怪異)한 점들이 많아서 여러 가지 다른 원
인이 있을 것이고, 또한 연구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미친 사람들은 알고보니 어리석은 데다가 또한 바보들이로군
요? 하기는 일단 미쳤다면 어리석은 데다가 바보이기도 하지만 말
이예요.'
궁구가의 심어전음을 들으며 금몽추는 그래도 방심(放心)하지 않
고 주위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단순하기만 하다면 애초에 그를 포위
하여 공격할 생각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금몽추가 궁구가의 옆에 서있다가 느릿하게 앞으로 움직이기 시
작하자 별안간 그 전면(前面)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지 않고 즉각
손속을 펼치며 무수한 암기(暗器)들을 발출하기 시작했다.
금몽추가 보기에는 그들의 병기무예(兵器武藝)는 암기무예(暗器
武藝)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으나,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암기
무예를 더욱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으며 상황이 어렵다고 느
껴지자 자신들의 그 자랑거리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곧 그들의 과거의 습관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 그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고, 게다가 지금의 그 암기수법(暗器手法)은 위력이 훨씬 더 형
편없어진 상태였다.
금몽추는 일순간 그 자리에서 급작스럽게 허공(虛空)으로 도약하
여 모든 암기들을 피해낼 수가 있었고, 이어 재차 신형(身形)을 대
여섯 번이나 회전하여 궁구가의 옆으로 돌아왔다.
'저들의 암기(暗器)는 하나같이 특이한 것들이로군요. 주인님께
서는 혹시 저들의 내력(來歷)을 알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금몽추는 가볍게 웃으며 궁구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미 너는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나를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냐?
저 푸른 광채(光彩)가 도는 강침(鋼針)은 벽린침(碧燐針)이라고 하
는 것으로 부시독(腐屍毒)이라고 하는 극독(劇毒)이 발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 음험(陰險)하게 보이는 가느다란 쇠못은 이른바
천심정(穿心釘)이라고 하는 유명한 것이지. 저것은 거의 소리도 없
이 상대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게다가 저것들은 극락자(極樂刺)라고 하는 것들이로군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성숙파(星宿派)에서 그러한 암기(暗器)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마침......'
"마침 성숙파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 그들은 어째서 저런 모습들이고 또한 애써서 나를 공
격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설마하니 저들이 그 잔혹(殘酷)스럽다는
성숙파의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구나."
'그렇죠. 저들은 지금 잔혹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저 멍청하고 힘
만 센 바보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이 자리에서 밤
을 지샐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주인님께서는 저들을 물리칠 수 있는
복안(腹案)을 가지고 계시겠죠?'
금몽추는 힐끗 궁구가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꾸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실로 너와 같은 녀석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구나. 좋아, 어쨌든 나의 이 강호행(江湖行)은 험난(險難)하기 짝
이없고 또한 운도 따라주지 않는 것 같구나. 잘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우선 몇가지를 시험해 봐야 하겠다."
느닷없이 금몽추의 오른손 중지(中指)에서 시퍼런 광채(光彩)가
일어나더니 그 푸릇한 기운(氣運)이 마치 길쭉하게 늘어나는 것처
럼 소리없이 전면(前面)으로 뻗어나갔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지강(指 )인 것 같지만, 그러나 조금 더 연
하고 부드러워서 강기( 氣)로 보기에는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금몽추의 바로 앞에 있는 그 장년(壯年)의 사나이는 다른 사람들
과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금몽
추의 지력(指力)이 바로 코앞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자 오히려 몸이
굳어 버린 듯 멍청한 표정으로 서버렸다.
실상 그러한 점을 노리고 펼쳐진 것이었기 때문에 금몽추의 지력
은 다음순간 정확하게 그 장년인의 마혈(痲穴)을 제압해 버리고 말
았다.
일반적으로 마혈을 제압당하게 되면 그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
어져서 행동(行動)이 정지(停止)되기만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장
년의 사나이는 그렇지 않았다.
느닷없이 전신(全身)의 기혈(氣血)이 들끓어 오른 듯 안색이 시
뻘겋게 변하더니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는
것이 아닌가.
궁구가가 장난스런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내 심
어전음으로 다시 말했다.
'과연 예상대로군요. 저 녀석은 체내의 공력이 단련되지 않아서
그저 마혈을 제압당했는데도 진기(眞氣)가 함부로 날뛰어서 그만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리 심한 상태
는 아니니 차라리 저렇게 되는 것이 저 녀석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금몽추는 웬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궁구가를 돌아 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도 이 방법이 상당히 공력(功力)을 소모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저 많은 사람들을 모두 다 저렇게 만
들려면 나는 그만 공력이 바닥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강한 적(敵)이 나타나게 된다면 나는 그만 꼼짝없이 당
하게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느냐?"
궁구가는 금몽추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웃는 눈빛으로 대꾸했
다.
'주인님은 정말로 엄살이 심하시군요. 남들이 들으면 그 말이 전
부 사실인 줄로 알겠습니다. 하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주인님의 능
력(能力)은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설마하니 이 불쌍한 미물에게 저 많은 흉적(凶賊)들을 모두 다 상
대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금몽추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너는 정말로 지나치게 영악스러워서 내가 감당하기가 어렵구나.
그럼 너는 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조금전에 주인님께서 사용하신 수법은 바로 곤륜파(崑崙派)의
그 유명한 지공(指功)인 일지태허강(一指太虛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백연탄(白筵 ) 이상의 경지(境地)에서나 위력을 제대
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인데, 주인님께서는 그것을 일부러 황화예(黃
化 )의 경지에서 발출하는 것처럼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거기
에는 당연히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군요. 하지만 곤륜파의 무공
에서도 그다지 공력을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단숨에 여러명을 제압
할 수 있는 지법(指法)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일지태허강
(一指太虛 )의 요결(要訣)에 금룡십팔해(擒龍十八解)의 이치를 가
미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금몽추는 도무지 상대할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
며 재차 말했다.
"너더러 누가 미물(微物)이라고 하겠느냐? 네게 누가 감히 두려
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정말 네녀석은 대단한 녀석이로
구나!"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일순간 금몽추의 양손은 열 개의 손가락이
벌어지며 눈부시게 시퍼런 광채(光彩)를 사방(四方)으로 발출하고
있었다.
하나의 강력(强力)한 위력의 지풍(指風)이 열 개로 나뉘게 되면
그 위력은 더 이상 강력하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 정도의 위력이라고 해도 눈앞의 사람들을 제압하
는 것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느닷없이 열 명의 사나이들이 마치 급살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뒤로 벌렁벌렁 나가떨어졌고, 뒤를 이어 다시 금몽추가 지풍
(指風)을 날리자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사방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의한 신음소리가 진동하기 시작
하는 가운데 드디어 금몽추는 마지막 남은 다섯 명의 사람들을 향
해 지풍을 날렸다.
아까 처음에는 살벌하기만 했던 이 곳의 분위기는 이제는 오히려
처량한 느낌마저 주기 시작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런데 이 때 약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지막 남은 다섯명의 사람들 가운데 두 명은 역시 제압당해 뒤
로 나가떨어졌지만, 세 명의 사람은 제압당하지 않고 일순간 번쩍
신형(身形)을 옆으로 날려 그 지풍(指風)을 피해 버리는 것이 아닌
가?
그 세 명은 두 명의 초로인(初老人)과 한 명의 노인(老人)이었는
데, 두 명의 초로인들은 즉시 더욱 빠르게 신형을 영활하게 움직이
며 장력(掌力)을 마구 날리기 시작했고, 한 명의 노인은 그와는 달
리 신형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거의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두 명의 초로인들이 장력을 날리는 것은 공격적인 것이라기 보다
는 수비(守備)를 위한 것으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금몽추 등에게는
하등의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와는 달리 노인의 신형이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다소의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금몽추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나자 그만 어쩔 수가 없다는 듯
이 쓴웃음을 지으며 궁구가를 돌아 보았다.
"이번에는 너의 그 방법이 잘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곤
란하게 되지 않았느냐?"
궁구가는 그 커다란 두 눈을 맑게 빛내다가 대꾸했다.
'저 두 명의 초로인이 펼치는 무공(武功)은 바로 반혼팔장(返魂
八掌)과 연운팔번(憐雲八飜)이라는 경신술(輕身術)로 그리 신경 쓸
것은 아닙니다. 역시 그들은 성숙파(星宿派)의 사람들이로군요. 하
지만 저 노인이 펼치는 것은 성숙파의 무형신공(無形神功)이라고
하는 특수한 절기(絶技)인데, 말하자면 진실한 무공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고 남을 속이기 위한 사술(邪術)에 가까운 것입니다. 내공
(內功)과 보법(步法)을 교묘하게 병행하여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
나지 않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만일 그의 현옥통진공(玄玉通眞功)
의 내공(內功)이 이미 십성(十成) 이상의 경지(境地)에 올라 있다
면 주인님의 현재 입장으로는 약간 상대하기가 곤란할 것입니다.'
금몽추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의 현옥통진공은 이미 십성 이상의 경지에 올라 있다. 그의
무공은 현재 거의 대홍락(大紅落)의 경지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지.
너도 이미 알다시피 나는 이제 더 이상 어쩔 수가 없구나."
궁구가는 속으로 가볍게 웃다가 다시 말했다.
'흔히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승부(勝負)라고 하는 것은 그저 무
공(武功)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위 강호에서는 무공이 삼
(三)이고 경험이 칠(七)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금 저자
들은 제정신이 아니니 주인님께는 현재의 위치에서도 저들을 상대
할 적당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곤륜파의 무공중에는 요음장(
陰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척도 없이 상대를 격타할 수가
있고, 섬전수(閃電手)는 번개같은 빠르기를 자랑하며, 음풍조(陰風
操)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헛점을 색출하여 파고들며 정확하
게 가격합니다. 만일 거기에 일지태허강의 수법(手法)을 가미한다
면 능히 저 멍청해진 노인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
단 그렇게 제압한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은 이전의 과정은 알아볼
수가 없고 그저 일지태허강의 수법만을 보게 되는 것이죠.'
금몽추는 이에 다소 냉소(冷笑)하며 대꾸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네가 직접 손을 쓰는 것
이 어떠냐?"
궁구가는 내심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저의 이 뭉툭한 네 다리로는 그와 같은 지
법(指法)을 펼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솔직히 주인님의 의중(意
中)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혹시 실수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결국 네녀석은 혼자서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정작 일을 할 때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겠다는 심산이로구나. 흐흐흐! 만일 네녀석이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차라리 데리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말과 함께 금몽추의 중지가 다시 세워지며 푸릇한 광채를 발했는
데, 이번에는 그 지력(指力)이 곧장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만하
게 흩어져서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밀려나갔다가 이윽고 안개속으
로 스며들 듯 사라져 버렸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
내 짤막한 경악성과 함께 보이지 않던 노인의 모습이 뻣뻣하게 굳
어진 채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 성공한 것 같았다.
이어 다시 금몽추의 지풍이 번갈아 튕겨지며 남은 두 노인의 경
악성이 짧게 들려왔다.
그 세 사람에게 다른 점이 또 있다면 그들은 비록 마혈(痲穴)을
제압당했으나 다른사람들처럼 주화입마의 현상을 보이지 않고 그대
로 서있다는 점이었다.
무학(武學)이 백연탄(白筵 )의 경지에 오르면 일단은 주화입마
의 위험에서 거의 벗어나게 된다고 한다.
그 뒤로는 심마(心魔)라는 더욱 무서운 위험이 더욱 강력하게 도
사리게 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지금 그 세명의 모습이 남들과 다른
것은 단순히 무공이 높은 경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하여 그 일단의 멍청한 습격자들을 모두 제압한 이후 금몽
추는 다시 궁구가의 등에 올라탔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쨌든 성숙파에 한 번 가 봐
야 하지 않겠습니까?'
금몽추는 여전히 냉소하며 대꾸했다.
"내게 지금 별로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을 벌써 잊었느냐? 게다
가 그 성숙파는 워낙에 은밀(隱密)한 곳에 위치하여 찾아내기도 쉽
지 않단 말이다."
궁구가는 이번에는 대꾸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주인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일종의 엄살과도 같다. 주인
님의 능력(能力)이라면 충분히 그 모든 일들을 다 해치운 다음에
움직여도 상관이 없지만 일부러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것이다. 하
지만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말을 그대로 믿으니, 그것이야말로 주인
님의 의도라고도 말할 수가 있겠지.'
제압당해 쓰러져 있는 그 수십 명의 사람들을 뒤로 하고 금몽추
는 궁구가의 등에 올라탄 채로 얼마간 더 나아갔다.
'이제 적들은 더 보이지 않는군요.'
금몽추는 주위를 둘러 보다가 건성으로 대꾸했다.
"적들이 더 보이지 않는다구?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느냐?"
궁구가는 다소 놀라서 말했다.
'아니 그럼 저도 간파할 수 없는 대단한 적이 또 기다리고 있다
는 말입니까?'
금몽추는 손을 들어 어두워진 사방(四方)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이 어둠과 추위가 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
가 어서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장애(障碍)라고 할 수가 있
지."
'아 그런 것이었군요.'
"그럼 너는 이런 것들이 간단하다고 생각된다는 말이냐? 그럼 어
디 지금부터 네 힘으로 쉬어 갈 곳을 찾아 보아라."
궁구가는 즉각 빠르게 신형(身形)을 움직여서 돌아다니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사방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지만 궁구가의 능력으로 그 눈위를
발자국하나 남기지 않고 나는 듯이 나아가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
다.
그리고 잠시 후에 궁구가는 신형을 멈춰세우고 말했다.
'아, 저런 곳에 사람사는 집이 있군요. 혹시 사냥꾼의 집이 아닐
지 모르겠습니다.'
금몽추는 궁구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소 칭찬하는 어조로 입
을 열어 말했다.
"실로 이런 곳에서 사람사는 집을 발견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
다. 그저 하룻밤 묵어 갈 적당한 동굴(洞窟)이라도 발견한다면 다
행스러운 일이지. 이제 너도 제법 수작을 부릴 줄을 아는구나."
궁구가는 그 칭찬이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투정을 부리듯이 중얼거렸다.
'정말 주인님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정작 중요한 일을 해
냈을 때는 대수롭지 않다고 하시다가 고작 이런 사소한 것을 했을
때는 칭찬을 한단 말이야. 내가 그래 겨우 이정도밖에는 안되는 사
람...... 소란 말인가?'
그 집은 비록 낡고 보잘것이 없는 모옥(茅屋)이었으나 이런 산속
에 홀로 지어져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제법 규모가 큰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 개의 모옥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이어져 있는 형상이었으며 불
이 밝혀져 있었는데, 금몽추와 궁구가가 다가가자 그 안에서 여인
(女人)의 음성이 나직하게 들려왔다.
"막내가 어디로 갔지? 이렇게 날이 어두워졌는데 혹시 길을 잃어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얘들아, 너희들도 나가서 찾아 보았느냐?
여보! 그렇게 있지만 말고 어서 당신도 나가서 막내를 찾아 보세
요."
여인의 음성은 다소 온유롭게 들리기도 했지만 이 주위의 삭막한
분위기 탓인지 어딘가 음산(陰散)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러나 안에서 일어나는
인기척 등으로 미루어 보아 제법 여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
양이었다.
"실례합니다. 주인장 계십니까?"
금몽추가 그렇게 소리높혀 부르자 안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기척이 일더니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아마도 조금전에 말을 했
던 그 사람인 모양이었다.
평범하고 다소 갸름한 용모에 잘룩한 허리, 커다란 엉덩이를 가
지고 있는 그녀는 잠시 금몽추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 바깥양반을 찾아 오셨나요? 그러시다면 어서 안으로 들어
오세요."
금몽추는 웬지 근심이 서려 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폐를
끼치게 된 것이 다소 미안스럽기도하여 즉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
다.
"아닙니다. 저는 이 곳을 지나가는 길인데 마침 날이 저물고 마
땅히 쉬어 갈 곳도 없고하여 하룻밤 이곳에서 묵어갔으면 하고 부
탁드리려는 것입니다."
여인은 잠시 더 금몽추의 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깊이 생각해 보
는 듯하다가 이윽고 좌측에 있는 건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저를 따라 오세요."
여인이 금몽추를 데려간 곳은 넓은 헛간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그 절반은 방으로 꾸며져 있어서 자유로이 오르내릴 수가 있고 이
를테면 이런 곳에서는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궁구가는 자신도 바닥 한쪽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크게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여인은 금몽추가 소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도 별로
탓하는 기색도 없이 다소 멍하니 실내를 둘러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저희에게 지금 약간의 일이 생겨서 안방을 내어드릴 수가 없군
요. 이 곳이 다소 누추하기는 하지만 편히 주무시도록 하세요. 헌
데, 아직 식사는 하지 않으셨나요?"
금몽추는 여인의 표정이 몹시 수심에 가득차 있는 것 같아서 감
히 다른 것을 더 부탁하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마침 저는 조금전에 배불리 식사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다른
것은 더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인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어 곧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
다.
금몽추는 약간 망설이다가 그녀가 마악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에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 지금 보아하니 이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데...... 혹시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무
슨 일인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가 없겠습니까?"
여인은 약간 멈칫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향해 말
했다.
"예, 사실은...... 저희는 이곳에서 약초(藥草)나 나물을 캐고
사냥을 하며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바깥양반은 별로 대단하지
는 않지만 사냥하는 솜씨는 괜찮은 편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갑자
기 우리 막내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아까 낮에만 해도 있었는
데 혹시...... 혹시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
되요."
금몽추는 조금전에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의외라
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이 부근은 찾아 보셨습니까? 실례지만 귀댁의 막내아드님의 나
이가 몇살인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여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것은...... 그것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내가 오늘은......
오늘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는 분명히 오늘 낮에 집앞에
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휴우, 혹시 당신은
우리 아이를 본적이 없나요?"
금몽추는 약간 아연해 졌으나 이내 그녀가 자식을 잃어버리고 너
무나도 상심(傷心)하여 정신이 혼란해 진 것을 알고는 가볍게 웃으
며 대꾸했다.
"저는 방금전에 이리로 왔기 때문에 귀댁의 아이는 보지 못했습
니다. 어쨌든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셔야 할 텐데 걱정이로군요."
여인은 재차 길게 한숨을 내쉬고 처연한 신색(身色)으로 말하며
밖으로 사라졌다.
"그럼 편히 주무세요."
실내의 벽면에는 사냥하는 도구들과 짐승가죽들이 걸려 있어서
정말로 이 집이 사냥으로 생활해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지금과 같은 눈덮힌 겨울철에는 약초나 나물을 캘 수가 없기 때
문에 사냥만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구가는 그 아랫쪽에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잠을 청하려고 하다
가 웬지 눈을 멀뚱하게 뜨고는 금몽추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상합니다. 이 집은 정말로 이상해요. 마치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 같아요.'
금몽추는 허름한 침상위에 누워서 뭔가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
가 고개를 돌려서 대꾸했다.
"네녀석이 무서움을 다 타다니 그거야 말로 희한한 노릇이로구
나. 대체 뭐가 그토록 이상하다는 게냐?"
궁구가는 도리어 어이가 없다는 듯이 금몽추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럼 주인님은 정말로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입니
까? 우선 조금전의 그 여자도 아주 이상했지 않습니까?'
금몽추는 잠시 궁구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일순 가볍게 탄식을 하
며 말을 받았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누구라
도 그 속사정을 알기 어려운 일들이 숨어 있는 법이지. 나는 이 집
에도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는 그저 지나가는 과객(過客)일 뿐이니, 이렇게 하룻밤을 신세지고
떠나면 그만이다."
궁구가는 그만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하지만 주인님은 이미 그녀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
으셨습니까? 일단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실행하실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금몽추는 재차 탄식을 하고 고개를 들어 허공(虛空)을 응시하다
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그렇다. 나는 네녀석이 잠든 사이에 움직이려고 했더니
네녀석은 지나치게 눈치가 빠르구나. 실로 그와 같은 남의 아픈 속
사정을 구경하는 것이 뭐가 그리 좋겠느냐?"
궁구가는 그의 앞으로 다가오며 꼬리를 툭툭 쳤다.
'그래도 어쨌든 제가 어떤 일에 빠지게 되는 것은 싫습니다. 저
이 궁구가는 비록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으니 데려가
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금몽추는 이에 몸을 일으켰다.
"좋다, 그럼 함께 나가 보자."
금몽추가 궁구가와 함께 밖으로 나가니 마침 그 여인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뭔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아, 나오셨군요? 뭔가 불편한 점이라도 있나요? 만일 출출하거
나 심심하시다면...... 어서 안방으로 들어오세요."
여인은 안방의 문을 열고 금몽추를 안으로 인도했다.
안방에서는 말소리는 없었지만 등불이 흔들리며 빛을 발하는 가
운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는지 무엇인가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나이가 중년(中年)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나이는 여인의 남편으로
보였고 다른 다섯 명은 나이가 어린 남자아이들이었는데, 그들의
입가에는 시뻘건 물이 흐르고 있었고 연달아 우두둑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구가는 차마 금몽추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그 안을 바라보았는데 일순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을 자세히 바라보
고는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은 한무더기의 익히지 않은 고깃덩이였는데,
거기에는 검은 머리카락들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맹수들도 사냥을 해서 날것으로 먹으며, 더러 개중에는 배가 고
플 때에는 자신의 종족들을 잡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궁구가가 놀라고 있는 것은 그 여섯 사람의 두눈에
는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기이(奇異)한 광기(狂氣)가 떠올라
있었으며 자신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다는 사실
이었다.
'미, 미쳤구나. 이들은 모두 다 미친 사람들이로구나!'
금몽추는 이미 그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안으로 들어
서서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어느새 그의 몸에서는 마치 노을의 광채(光彩)와도 흡사한 장엄
(莊嚴)하고도 은은한 서광(瑞光)이 등불보다도 밝게 스며나오고 있
었는데, 천천히 그 사람들의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여인을 포함하여 모두 일곱명인 그들은 그때까지는 비교적 조용
한 편이었는데, 일순 금몽추의 몸에서 나온 그 노을빛 광채를 대하
게 되자 갑자기 하나같이 두눈에서 무시무시한 광기(狂氣)가 더욱
심하게 폭사되었고 일제히 번쩍 신형(身形)을 날려 금몽추를 덮쳐
가기 시작했다.
궁구가는 그들의 기세(氣勢)나 그 빠른 몸놀림 등으로 미루어 순
간 그들 모두가 무공(武功)을 익힌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착각할
뻔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단지 그
엄청난 기운(氣運)과 광기(狂氣)를 뺀다면 여늬 보통사람들과 행동
이 다를 바가 없었다.
금몽추는 반쯤 눈을 감고 있어서 흡사 선정(禪定)에 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일순간 덮쳐든 그들을 향해 눈부시게 빠른 속
도로 각기 일장(一掌)씩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의 그러한 장력(掌力)은 정확하게 그 사람들의 백회혈(百會穴)
에 가서 닿았으며, 그들은 그렇게 장력을 얻어맞자마자 즉시 그 자
리에 죽은 듯이 쓰러져 버리는 것이었다.
방안의 상황이 그렇게 조용해 지자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궁구가
는 절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금몽추는 이어 그 선공(禪功)을 거두고 여러 가지 지저분한 물건
들을 제거해 버린 후에 느릿하게 밖으로 걸어나왔다.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잠을 자도록 할까?"
아직 자정(子正)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궁구가는 마치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며 말했다.
'미쳤어요? 나는 죽어도 더 이상 이 집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어
요. 차라리 밖으로 나가 눈속에서 잠을 자는 것이 나을 거예요. 그
러니 어서 이만 갑시다, 주인님!'
금몽추는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이만 다시 길을 떠나도록 하자."
조금전까지만 해도 궁구가는 다소 피곤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나자 정신이 번쩍 나고 그렇게 몸에서
기운(氣運)이 치솟을 수가 없었다.
금몽추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궁구가는 즉시 네 발로
땅바닥을 박차며 마구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어둠속을 달렸을까.
궁구가는 체력의 한계(限界)를 모르는 소이기에 그 상태로 정신
없이 거의 두어 시진(時辰)은 내달렸던 것 같았다.
점차로 마음이 안정되고 또한 생각할수록 궁금해 지는 것들도 있
고하여 궁구가는 드디어 달리는 속도를 늦추며 입을 열어 말했다.
'정말 그 사람들은 이제 괜찮을까요?'
금몽추는 담담한 어조로 웃으며 대꾸했다.
"왜 걱정이 되느냐?"
'그들은 자신들이 한 짓을 모르고 계속 아이를 찾고 있었으니 나
중에 다시 깨어나 제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다시 정신이 혼란해 질
게 아닙니까.'
금몽추는 다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 모든 가능성(可能性)을 대부분 제거하여 그들이 다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 주었다."
궁구가는 그제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세상에서 무공(武功)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제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대체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그리 오래전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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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