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에 대한 상식적인 간단한 설명
창시자
무하메드(Muhammad 570~632.6.8)
교리
이만 6가지
1 하나님(神,알라).
2 천사(天使,말라이카)
3 성전(聖典,꾸루안)
4 예언자 또는 사도(使徒,나비)
5 내세 또는 부활(復活,아힐라).
6 예정 또는 정명(定命,카달) 을 믿고
다섯 가지 행함(다섯개의 기둥)
샤하다 - 이슬람의 신앙 고백으로,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이다" 라고 하는 일정 구절아랍어로 된 고백이다.
살라트 - 매일 5회의 기도
사움 - 이슬람력 9월(라마단) 한달 동안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음식 및 음료의 섭취와 성행 위를 금한다.
또, 라마단을 잘 지키면 3일간 축제를 벌여 축하한다. 무함마드가 헤지라 때 도주계획을 세우는데 머리가 흐려지지 않도록 단식한데서 유래한다.
자카트 - 일반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부자들의 재산의 2.5%나 농민들의 연 생산의 10-20%정도이며, 이 돈이나 생산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된다.
하즈 - 이슬람력 12월(둘 힛자)에 이루어지며 경제적 신체적으로 능력이 있는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 행해야 한다.
그 외에 여섯번째 기둥으로 간주되는 지하드(성전(聖戰) 역시 교리로 인정된다. 지하드는 고투·노력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신체가 건장한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수행해야 하는 의무이다. 이는 이슬람 공동체를 비이슬람 공동체로부터 지키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의미한다.
분파(分派)
대별(大別)해서 아파와 수니파
그리고 간단한 비교
동남아의 인도네시아는 2억5천만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이슬람 국가이며 전 세계의 이슬람교인들의 수는 17억 정도로 기독교 다음으로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 24억, 힌두교 10억, 불교 5억 기타종교와 무종교 17억
참고로 유교는 종교가 아님
이슬람 인구의 대부부늘 차지하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는 수니파임
이슬람의 역사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그리고 현재 인류의 걱정거리인 IS에 대해서(인너넷 참고 및 인용)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지게 되는 형식적인 이유는 창시자 무함마드에서 지배자 칼리파로 이어지는 권력 계승 문제지만 종교의 특성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종교는 처음에는 순수한 종교로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권력이 되기 때문에 종교를 순수한 종교로서 인식하는 쪽과 종교를 권력이라고 인식하는 쪽과의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도 처음에는 순수한 종교일 뿐이었으나 300여년이 지나면서 권력화가 되면서
국가자체가 되기도 하고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만들어진 집에 이사를 들어오는 형태가 되었지만, 이슬람은 종교적 세력이 군사력을 갖추게 되고 정복을 통해서 제국이 되는 형태로 종교가 나라를 만들어 간 셈이 된다.
이슬람 세력이 제국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의 출발이 아라비아 반도로 로마나 서구의 변방이었기 때문인데 가능했었는데 이때가 7세기 말과 8세기 초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지게 되는데
첫 번째 갈등 원인은
이슬람은 종교이자 국가였기 때문에 후계자가 반드시 필요했으나 모하메드가 후계자를 지목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종교의 정통성을 이어갈 혈통이냐 이슬람 국가를 이끌어갈 능력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두 번째 갈등의 원인은
아라비아반도와 페르시아지역의 민족 계통이 다른 것으로 아라비아반도-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는 셈족(아랍 흑인 이나 아랍황인) 계통 아랍인이고, 페르시아지역은-지금의 이란- 아리아인 계통인 파르사족으로 피부가 희고 백인계열로 민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슬람 제국이 형성되고 그 당시 옛 페르시아지역에 세워진 왕조인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해 점령한다.
7세기 및 8세기의 이슬람의 세력권으로 아랍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무함마드가 죽고 알리 이후에 지금까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시작되는데
지금까지 이어져 1300년 정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그의 친구이자 장인인 아부 바르크(1대)로 인정한다.
그 이후의 우마르(2대)-우스만(3대)-알리(4대)도 칼리파로 인정한다.
즉 무함마드의 혈통보다는 이슬람 제국의 유지가 더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시아파는 1~3대를 부정하고
그나마 혈통적인 문제가 없는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알리(4대)를 1대 칼리파로 여긴다.
이 혈통 계승문제로 물론 분파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 이토록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 피지배층이었던 페르시아인의 후손인 지금의 이란땅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아랍반도와 페르시아 지역을 지배했던 이슬람 제국들 간단 정리하면
정통 칼리파 시대(632-661) : 1대~4대 칼리파까지를 이르며, 초기 이슬람 제국 건설. 아랍인 중심
우마이야 왕조(661-750) : 칼리파 선출제에서 세습제로 전환. 아랍계-수니파, 페르시아계-시아파 갈등 시작. 아랍계-수니파가 패권 잡음
아바스 왕조(750-1258) : 우마이야 가문 및 아랍인들의 권력 독점에 반발해서 생긴 왕조. 이슬람 문화적 전성기(8-9세기). 수니파.
아바스 왕조 후기에 수니파 시아파간 갈등이 심각해져 각 지역별로 세력이 난립하고, 투르크족까지 중동으로 진입하게 된다.
아랍권은 유일한 시아파 왕조인 파티마 왕조(909-1171)를 제외하면 이후 생성된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오스만투르크 등이 모두 수니파였다.
페르시아권은 셀주크 투르크, 호라즘 왕조, 티무르 제국 등 외부 민족들이 받아들인 수니파의 영향권에 있다가
사파비 왕조(1501-1736)에 이르러 시아파 왕조가 들어서게 되고,
사파비 왕조는 고대 페르시아와 함께 현재 이란의 역사적 뿌리가 된다.
이라크는 아랍반도와 페르시아 지역의 중간 위치이기 때문에 가장 종교,정치,인종 갈등이 극명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사우디-이란의 중간지점)
현재 이슬람국가의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
아랍-이슬람제국은 (630~1258) 꽤 오랜기간 전성기를 구가한다.(칼리파-우마이야-아바스)
몽골 제국의 공격으로 당시 이란 지역의 호라즘 왕조, 아랍 지역의 아바스 왕조가 멸망한다.
당시 이슬람 세력 최후의 보루였던 북아프리카 지역의 맘루크 왕조가 몽골 제국의 공격을 막아낸다.
몽골 제국(일 칸국) 멸망 이후 중동은 아랍 지역(맘루크), 아나톨리아 반도(오스만), 이란 지역(티무르) 등으로 세력이 나눠진다.
이후 중동의 패권을 잡은건 오스만 제국이다.
투르크-이슬람 세력인 오스만제국은 중세부터 근대초까지 강력한 제국을 형성해 전성기를 구가한다. (1299~1922)
이란의 사파비 왕조(1501~1736)는 시아파 왕조로 당시 수니파였던 오스만 투르크가 세력을 넓히는 것을 막아낸다.
중동, 아나톨리아반도, 발칸까지 차지했던 오스만 제국은 근대 서구유럽과의 파워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마지막 승부수였던 세계1차대전에서 오스만 투르크는 연합국에게 항복. 제국은 분할된다.
오스만 제국의 분할지도
이후에 이슬람 세력은 명실상부 서구세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후엔 유럽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미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이후에 이슬람권에서는 서구를 따르려는 세속주의(터키)와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슬람 주의(이란)가 나타난다.
(이러한 이슬람 주의 중에 극단을 띄는것이 원리주의, 와하비즘 등이다.)
세계대전이후에 이러한 현상은 현대의 터키를 비롯해 중동국가들에게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IS(Islamic State) 의 출현
미국은 중동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시 라이벌이었던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을 경계하기위해 와하비즘(아랍인들은 코란의 가름침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상)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당시 미국입장에서 악의 축인 소련-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지금의 악의 축인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키워준 꼴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에서
이슬람이 서구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이후 중세시절의 영광을 꿈꾸는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이
오일을 통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싸움을 해보겠다는 것이 폭력적 극단주의 단체들이 발생하고
IS가 출현하게 되었다.
IS는 수니파 극단주의 이념인 와하비즘(이슬람 극단주의)을 사상으로 삼고 있는데 수니파가 이슬람 제국의 주도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수니파의 와하비즘은 종교적 이념을 넘어서 강력한 이슬람 제국을 지향하는데 IS는 이 이념을 계승하게 된다.
이슬람 제국이 가장 강성했던 중세초 (지금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서구와 경쟁하던 시절)의 제국의 부흥을 위해서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던 짓은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기독교는 신교와 구교의 종교전쟁을 끝으로 종교를 걸고 전쟁을 하진 않는다.
사실상 같은 문화권끼리 전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종교적 명분을 내세울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현대에는 자원-독립-이념 등을 명분으로 싸워왔다.
그러나 이슬람은 여전히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명분으로 내세우던 그 밑바탕에는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권력를 쥐어보겠다는 패권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