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화산섬・용암동굴 세계자연유산 등재
우리가 고근산을 오르기 전날 기분 좋은 낭보가 날아들었다. 우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이다. 세계가 우리 제주의 자연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불국사와 석굴암 등 7건의 문화유산은 보유하고 있지만 자연유산으로는 제주가 처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자연과 문화유산을 동시에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세계자연유산은 이번에 추가한 다섯 곳을 포함하여 모두 167곳에 이른다. 세계의 수많은 절경을 생각하면 턱없이 적은 수이다.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도 아직 세계유산 반열에 오르지 못하여 총리를 중심으로 등재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굴을 포함하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등 크게 세 곳이다. 여기서 거문오름은 우리가 2005년 9월29일과 2006년 9월21일 올랐던 선흘 거문오름이다. 작년에 가랑비가 오는 날 비옷을 입고 산행을 했는데 얇은 비옷이 가시덤불에 찢겨서 너덜너덜해진 광경을 회상하면 기억이 날 것이다. 이 오름 굼부리를 거멀창이고 하는데 그만큼 깊고 여기서 용출된 용암류가 북동쪽 해안까지 흐르는 동안 만장굴 등 20여개의 동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용암이 흐르던 계곡에 거대한 원시림이 덮여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됨으로서 제주는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할 것이다. 벌써부터 영국의 BBC 등 세계적인 방송사들이 특집방송취재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많이들 몰려와서 나쁠거야 없지만 조용히 오름을 즐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활동 공간이 좁아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문화유산인 제주 화산섬을 보러온 관광객들이 수많은 기생화산체인 오름들을 그냥 둘리 없기 때문이다. 오름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가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만큼 제약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를 오름은 많다. 우리는 세계적인 자연유산인 제주에 살며 오름에 오른다는 긍지를 가지고 더욱더 오름 사랑과 보존에 앞장서자.
▲ 안개 낀 고근산을 망연히 오르내리다
일기예보는 또 빗나갔다. 목요일부터 장맛비가 내려 무더위가 한풀 꺾인다더니 아침부터 찜통이다. 다행히 한라산 쪽에 하얀 구름이 짙게 덮여 산 너머 남쪽에는 여기와 다른 세상이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른바 푄현상,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높은 산을 넘을 때 기온이 낮아지면서 비나 안개가 되어 내리고 산을 넘은 후에는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부는 현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산하가 모는 차를 타고 산업도로에 접어들어 경마장을 지나자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서귀포시 관내인 탐라대 입구를 지나자 안개는 20~30m 앞도 잘 안보일 정도로 심하다. 산하가 안개등과 비상등을 켜고 잔뜩 긴장해서 운전한다. 대정 갈림길을 조금 지난 곳에서 은하수가 모는 차를 만났다. 역시 바짝 긴장하여 앞만 보고 가는 걸 손짓으로 간신히 알려 뒤를 따르게 했다. 중산간도로인 16번 도로에 접어들어서도 좀처럼 안개는 개일 줄을 모른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고근산 앞에 있는 강창학 경기장에 도착했다. 앞장과 관수네가 먼저 와 있었다. 관수네는 두 달 만에 나온 산행이라 건강한 모습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되도록 빠지지 말고 행복한 산행을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근산 입구에서 기다리는 완산까지 모두 열두 명이다. 특이한 것은 일 때문에 부인들이 대거 빠져 홀애비만 여섯이다. 고근산은 2005년 7월14일, 부인들이 동참하기 시작한 뜻 깊은 오름인데.......
고근산 산책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기팔의 고근산 시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지만 운동을 하는 시민들이 자주 보인다. 준비 운동을 하고 안개 낀 오름 계단을 망연히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茫然히’란 한기팔의 詩碑에 있는 詩語다. 사전에 찾아보니 ‘생각 없이 멍하다’ ‘아득하다’라는 뜻이다.
......죽어진 죄로/ 죽어진 죄로/ 孤根山만 茫然히 오르내린다.
안개가 자욱한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산을 오르다보니 이 망연히 하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몇 개의 계단을 밟고 올랐는지 모르겠다. 산책로 주변에 나무가 울창하여 더운 줄을 모르겠다. 10분을 걸었을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안개가 모든 것을 가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작년에 보았던 아름다운 주변 경관이 눈에 선하다. 산 아래로는 서귀포 시가지와 앞바다의 섬들이 그림처럼 곱고 월드컵 경기장의 모습도 장관이었는데. 산 위 쪽은 어떻고. 각시바위와 한라산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었는데.
그러나 이만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산북에 있었으면 찜통더위에 땀깨나 흘리고 있을텐데 이런 시원한 곳에서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기다려도 안개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아 굼부리를 한 바퀴 돌고 오름을 내려왔다.
▲ 제지기 오름과 보목리 자리물회
계획에는 고근산을 오르고 인근에 있는 각시바위를 오를 예정이었다. 작년에 오르내리면서 비를 흠뻑 맞기는 했지만 정상에서의 그 신비한 걷힘과 아름다운 주변경관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같이 안개 낀 날은 그런 기적 같은 일을 바랄 수도 없을 뿐더러 수목이 울창한 오름이라 안개 속을 뚫고 오르기도 힘들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보목리 자리물회 먹으러 가는 길에 제지기 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제지기 오름은 보목리 바닷가에 섶섬을 마주하고 있다. 비고가 85m로 낮은 편에 속하나 경사가 급하여 만만하게 볼 오름이 아니다. 횟집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올해는 바닷가 쪽으로 오르기로 했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정상에는 운동기구까지 마련된 휴식공간으로 꾸며진 오름이다. 바닷가인데도 소나무들이 곧게 가지를 뻗고 높게 자라는 것이 산북의 바닷가 나무들하고는 다르다. 나무 밑에는 원추리가 한창 꽃을 피워 길손을 맞고 있다. 참나리도 잎겨드랑이에 흑자색 살눈을 가득 달고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었다.
정상에는 바다 쪽으로 전망대를 마련해 놓았다. 섶섬이 손이 잡힐 듯 가깝고 지귀도가 낮게 누웠다. 해안가라 안개도 걷혀 보목리 마을과 앞 바다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참을 넋이 빠진 듯 망연히 앉았다 오름을 내려왔다.
제주의 자리돔은 보목리와 모슬포가 유명하다. 이곳 보목리는 자리돔 축제로 유명한 명소이다. 오늘 늦은 점심은 보목리 자리물회를 먹기로 했다. 十匙一飯이라는 원칙을 지키자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오늘의 점심은 앞장이 대접하는 걸로 했다. 우리 C오동은 누가 점심 한 끼 선심 쓰기도 이렇게 힘들다. 좋은 일이다. 이러한 원칙은 계속 지켰으면 한다. 자녀 결혼 등 경사가 있을 때는 예외로 하는 것이 좋겠다. 시원한 자리물회와 소금구이 등으로 푸짐한 점심을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건강 때문에 오름에는 나오지 못했으나 친구들이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식당까지 나온 선달을 보니 반가웠다. 그의 헬쓱한 얼굴을 보니 가슴이 아팠으나 그의 입담은 살아있어 여전히 우리를 웃겼다. 건강이 빨리 회복되어 산행을 같이 할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점심을 잘 먹고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 쪽으로 향하니 오늘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음을 느꼈다. 우리는 비록 안개가 끼었지만 시원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여기는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가 계속되었다는 것을. 완산의 말처럼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오래 놀다 올 것을........ 2007. 6. 28.
첫댓글 제주도가 점점 복 받는 섬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옛날에는 제주도 사람이라는 걸 숨기려 했었는데 이젠 어디 가서도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더구나 세계자연유산 지정도 확정됐으니 더욱 목에 힘을 주게 되었다. 오름사랑, 자연사랑, 제주사랑 굿짝 이어 나가자. 선달, 베롱해 점젠 무리하지 말고 조심 조심 또 조심하시게.
자연 유산등재 !!제주인으로서 자랑스럽고 긍지감을 가질만 하다!! 앞으로 계속적인 보존 관리에 우리 모두의 책임의식이 막중하다고생각되는군. 풀잎 하나 ,작은 나뭇가지 하나 다칠세라 조심 조심 다녀야 겠군요. 아울러 기율 부장님의 큰 목소리를 즐겁게 듣기로합시다!! ....감사 합니다.
그런데 육지사람들 왜 그래? 중앙지나 방송들이 입 봉하고 있으니. 배가 아픈 일도 아닌데...
해군기지 안 된덴 허난, 부에난...
오름들이 세계 자연유산으로 되면 우리 C오동은 어디로 가야 할까? 월드컵 경기장에서 우리 축구가 이라크와 3:3으로 비겼어야 평화로운 것인데...ㅋㅋ 너무 좋은 일에 호사다마?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도가 내 고향이고, 또 이런 축복의 땅에 살고 있다는것 자체가 너무나 큰 기쁨이고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