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 천연항구 진해와 3.15 의거탑을 돌아보다
5월 1일, 온 산야에 푸르름이 짙어지는 계절에 접어들었다. 휴식일이라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아침을 들었다. 숙소에서 멀지않은 곳에 마산어시장이 있다. 굉장히 규모가 큰 시장이다. 시장을 관통하니 건너편에 복 전문 식당가가 있고 그 너머에는 아구 식당가가 늘어섰다. 복집에 들어가 시원한 지리를 맛있게 먹었다. 경남대학교 교수인 손명곤 체육진흥회부회장이 안내를 해주었다.
오늘 낮에는 자유시간, 우리 부부는 진해를 다녀오기로 했다. 일찍 전국의 주요도시를 섭렵하였으나 진해는 아직까지 못 가본 곳이다. 음식점에서 나와 어시장을 지나는 진해행 시내버스에 오르니 30분 만에 진해역에 도착한다. 역무원에게 가볼만한 곳을 물으니 10여분 거리에 있는 제황산공원에 올라가면 진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일러준대로 제황산공원 아래에 이르니 돌계단길이 있고 모노레일 카를 타고 올라 갈 수 있다. 재미로 모노레일을 타니(요금은 왕복 3천원이다) 승객은 아내와 단 둘, 전세낸 듯 둘이 앉아 내려다보는 진해의 풍광이 아름답다. 공원에서 내리니 진해탑이 우뚝하다. 8층의 전망대에 올라 진해의 전경과 주변 바다를 두루 볼 수 있다. 2층에는 박물관으로 꾸민 전시실이 있어서 진해의 역사와 문화유적들을 살피니 처음으로 찾은 진해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진해역에서 제황산공원으로 가는 광장 교차로에 우체국 건물이 아담하게 서 있다. 전시실의 유적에는 우체국도 들어있어서 내려오는 길에 들렀다. 1912년 10월 25일에 러시아풍의 건물로 지었다는 우체국은 금년으로 건립 100년을 맞는다. 사적 291호로 지정된 유적은 정문을 잠가놓아서 외양만 볼 수 있고 그 옆에 현대식으로 지은 새 건물이 있다. 창구로 들어서니 안내를 맡은 직원이 무슨 용무인가 묻는다. 오랜 역사를 지닌 우체국의 기념팜프렛이라도 있는가 찾으니 그런 것은 없다며 창구책임자인 실장을 부른다. 실장은 차 한 잔 드시라며 우체국의 연혁을 간단히 설명한다. 공직생활 중 체신부 국내우편과장을 3년여 지낸 터라 우체국을 보면 남다른 애정이 간다. 창구에는 유치환의 시 '행복'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그림과 함께 붙어 있다. 한번 읽어보자.
행 복 유치환(柳致環)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우체국을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마산행 차에 오르니 11시, 버스 안의 안내를 보니 우리가 내릴 곳보다 한 정거장 더 가면 3.15 의거탑이다. 이곳에서 내려 비석에 새긴 글들을 살피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에게 고개를 숙였다(1960년 3월 15일의 1차 의거, 4월 11일의 2차 의거에서 12명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700여 명이 체포, 구금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다.) 마산 3.1 5 의거 기념사업촉진회가 1962년에 의거탑에 새긴 글을 적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저마다 뜨거운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 15일. 머리는 독재의 총 아래 꽃 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니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에 빗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도다.' 목숨 바친 영령들의 뜨거운 눈물인듯 기념비에 새긴 글을 적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진다.
의거탑 옆에 무학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담벼락에는 당시의 총탄자국이 19개 남아 있다. 이를 보존하자며 낡은 담벼락의 수리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진해의 우체국 앞 교차로에는 10월유신을 기념하는 비가 서 있다. 유신 다음해인 1973년에 건립한 것을 1976년에 그 장소에 옮겼다는데 동일한 통합시가 된 창원시내에 목숨바쳐 독재에 항거한 3.15 의거탑과 독재정치의 상징인 10월유신기념비가 서 있는 것을 창원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거탑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시장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마트에 들려 과일과 우유를 사서 점심으로 가름했다. 연일 잘 먹었으니 위장도 좀 쉬어라. 오후에 아내가 문신미술관에 가보자고 말한다. 밖에 나와 택시를 타려고 중년남자에게 방향을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주며 걸어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미술관까지 걸어서 30여 분, 미술관 옆에 시립박물관이 있고 옛 회원현의 성터도 있어서 좋은 탐사코스가 되었다. 문신은 이곳 마산 출신의 조각가인데 스스로 지은 미술관에 필생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다가 죽기 전에 이를 창원시에 기증하였다. 아내는 그의 작품도 훌륭한 예술품이거니와 이를 시민들이 공유하도록 기증한 마음이 더 아름답다고 찬탄한다. 시립박물관에서 창원, 마산, 진해의 역사와 인물을 접하여 더 알찬 문화탐방이 되었다. 높은 곳에서 마산과 창원을 잇는 마창대교와 마산시내를 조망하며 마산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 6시, 숙소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에서 돼지갈비로 저녁을 들었다. 낮에는 쑥찜질방을 다녀온 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 이 등 각기 적절하게 휴식을 위하였다고 말한다. 저녁에도 비가 내린다. 내일은 어떨는지. 아무려나 우리는 예정된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