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4·3, 해군 기지와 한반도에 치닫는 전쟁 위기를 막기 위해 2013년 4월 3일, 2013년 4월 3일, 4·3 항쟁 65 주년을 맞아, 강정의 육지와 바다에서, 제주 국제 공항과 4·3 평화 공원에서, 서울에서 곳곳에서 피켓팅이 열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녁에는 제주시 벤처 마루에서 43인의 작가가 쓰고 7인 사진가의 사진이 담긴 '그대 강정' 책 출간을 축하하는 북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여러분의 사진과 글을 모아보았습니다.
1. 제 2의 4·3 이 진행되는 강정 현장
(사진: 최**)
(사진: 최**)
(사진: 최**)
(사진: 최**)
시에서 측정을 한다. 측정 결과 사업단 앞 기지는 공유 수면 지역이라 했다...
2. 제주 김포 공항 --> 사진 추후 추가
3. 4·3 평화 공원의 평화 행동
이미지 출처: 제주 소리, 2013년 4월 3일
이미지 출처: 제주 소리, 2013년 4월 3일
이미지 출처: 제주 소리, 2013년 4월 3일
이미지 출처: 한겨레, 2013년 4월 3일
(사진: 최**)
4·3 평화 박물관 전시 (사진: 최**)
4·3 평화 박물관 전시 (사진: 최**)
4·3 평화 박물관 전시 (사진: 최**)
크레이그 미 이지스 구축함, 당시 제주 바다에 뜬 이 배위에서 미국은 학살에 대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합니다. B-52 (링크) 가 날아가고 핵폭탄을 16 개 탑재할 수 있는 B-2 (링크)가 날아가고 핵 항공모함 (링크)이 들어온다 하고 레이다 (링크)가 들어온다는 한반도... 4·3 과 그 때는 무엇이 다른가요. 전쟁의 위기가 이 처럼 극악한 때가 없던 때 우리는 65 주년 한국 전쟁의 전초였던 4·3 을 맞고 있습니다. 강정에 미국이 유린할 전쟁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4·3 평화 박물관 전시: 4·3 당시 미국의 작전 지도 (사진: 최**)
출처: 서울 경제, 2009년 9월 9일 (이** 님 자료 제공)
4·3 평화 공원 위령 제단 내부에 전시된 희생자 위패들 (사진: 최**)
4·3 평화 공원 위령 제단 내부의 비문 (사진: 최**)
'오늘은 제주 4.3이 일어난지 65년이 된 날이었습니다.
추정 사망자만 3만명. (당시 제주인구의 10%)
이념의 이름으로 자행된 비극을 기억합니다.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살해당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람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국제 앰니스티 한국 지부 및 Mi **)
" 4.3항쟁이 초기 평화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제노사이드로 변화하게 된 계기가 된 게 바로 박진경이죠. 직전 9연대장이었던 김익렬 연대장 당시는 군은 철저히 중립이었습니다. 모병공고에서도 '군은 좌도 우도 아니다'는 공고문을 내서 모병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당시 9연대장이었던 김익렬과 무장대 사령관이었었던 김달삼간의 4`28 평화협정 체결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합작으로 5.1 오라리 방화사건이 터지면서 4.3은 소강상태를 벗어나 급격하게 강경모드로 전환합니다. 당시 경무부장이었었던 조병옥이가 제주도에 내려와 강경진압 명령을 내리고 이에 반발한 김익렬 연대장이 조병옥이와 멱살잡고 주먹질을 한 죄(?)로 해임됩니다. 그 다음에 연대장으로 부임한 놈이 바로 일제시대 때 일본군 소위를 했던 박진경이었습니다. 박진경이는 취임하자 마자 강경진압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한달만에 대령으로 승진까지 하게 되지만, 결국 승진 회식 날 술처먹고 막사에 들어가서 자던 중 무자비한 강경진압에 반대하던 문상길 중사에게 총 맞아 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온 놈이 바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있는 송요찬이었죠. 송요찬이 오면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4.3 제노사이드를 본격화하는 불법계엄과 소개령, 3광(굶겨 없애고, 태워 없애고, 죽여 없애는) 등을 통해 초토화작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4.3 당시 김상사 같은 놈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일부는 김상사 같이 학살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약을 한 놈도 있었지만, 또 한 부류는 차마 맨정신에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마약을 한 놈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박진경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제주시 충혼묘지에 세워져있고, 박진경의 고향인 경상남도 남해군에는 노태우 정권 당시 동상까지 세워졌으니 4.3영령들이 무덤을 박차고 나올 일입니다. " (진** 님 자료 인용 글)
'제주 사람들은 4.3에 대해 말하는 걸 싫어한다.
난, 그게 단순히 너무 고통스런 기억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럼, 혹시 아직도 그 무서운 '연좌제'나 '빨갱이'의 낙인이 두려운 걸까??
그러나, 그것도 다는 아니었다.
터져나올듯한 고통의 기억을 억누르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다무는 커다란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제주도엔 그때의 가해자와 그때의 피해자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후손들도 살고 있다.
지금도 귤따는 철이 되면 서로 품앗이를 해야하고,
촌집을 떠나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나가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인연 중엔 가해자나 피해자의 후손인 경우가 참 많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4.3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폐쇄성이 강한 섬지역에서 그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가슴에 묻는 것이다.
나는 제주사람들의 그 깊은 한숨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눈물을 보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런 현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된 후에야 4.3이 왜 비극인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제주사람들에게 4.3을 말하라고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에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제주대 사학과대학원에 들어갔으면 4.3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더 깊게 하고 싶었다.
제주사람들의 아픔을 대신 말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비극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4.3을 많이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주를 떠났지만,
언제든 가면 반갑게 만나줄 사람들이 그립고,
많은 기억들이 남아 있는 제주도를 사랑한다.
사진-<悲雪>
4.3당시 이 곳(現 4.3평화공원)에서 희생된 변병생모녀상'
(한** 님 글/ 사진)
4. 해상 불법 공사 반대!
문정현 신부님 전송
(사진: 박**)
(사진: 박**)
(사진: 박**)
(사진: 박**)
'오탁수방지막을 임의대로 설치하면서 이에 항의를 하자 다른 오탁수방지막으로 막아버리는 해경과 시공사....원래는 철조망안에 있던 오탁수방지막이 15 m정도 밖으로 설치...막가파식 불법오탁수방지막 설치 현장.. ' (박** 님 글)
5. 그대, 강정, 북 콘서트
(사진: 릭키 루니/ 조정 전송)
(사진: 최**)
(사진: 강**)
방쌤... 무대 감독이면서도 강정에서 2년 여 가까이 지내며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강정에서 보낸 분입니다.
'그대 강정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나옵니다. 현기영선배님은 추천사에서 지는 싸움도 싸우는 것이 참된 인간이라고 적었습니다. 근데 저는 지는 싸움은 하기 싫습니다. 반드시 이기고 싶습니다. 해군기지가 없는 강정마을을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계속 눈물이 나옵니다.' (신** 님 글/ 사진)
아이들이 노래하네요. ' 핵 전쟁이 벌어지면 이 작은 지구는 멸망하지..'
'강허달림. 나는 그가 헤치고 가는 슬픔의 얼음 터널을 흔들리며 따라가는 중. '(사진/ 글: 조**)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