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자가 중국인의 문자가 아니라 우리의 문자임을 자각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한자가 우리의 문자임을 이해함으로써, 한자가 우리의 문자가 아니라는 국민적 편견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문자라고 버린 한자를 다시 내 문자화함으로써, 한자가 가지고 있는 온갖 정보와 한자가 만들어내는 지식을 내 지식으로 소화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자는 중국인이 쓰지 않는 한자이다. 중국인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 사어가 된 문자이고, 秦나라 때의 문자라고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쓰는 한자로 쓰인 중국의 고전들이 중국인의 조상이 만든 저작들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고조선이 진시황 8년(서기전 213)에 멸망하였으므로, 이 말의 신빙성을 더해 준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자에 접근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 만약 진나라 성립 이전에 누군가 쓴 저작들이 중국인의 조상이 쓴 저작이 아니라면 누가 썼다는 말인가?
한자에는 이렇게 우리를 각성하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깨어 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한자교육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한자를 폐지한 한글전용을 통하여 몰상식하고 무식하고 무지몽매한 국민으로 전락하였다. 내가 누구인가를 밝힐 수 있는 내재적인 정체성을 알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열등국민으로 전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고조선시대 이전에 우리 조상 東夷가 방대한 기록으로 남긴 저작에서 우리의 참모습을 발견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삼국시대 이래로 중원을 차지한 종족의 속국으로 전락하였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慕華思想으로 사대주의의 극치를 이루었다. 儒家가 나라를 통치하면서,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이 海東孔子가 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았다. 해동공자란 공자의 아류라는 말이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 유습이 그대로 전승되어 서양의 문물에 물든 서양원숭이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몬 모습을 찾자면, 한자가 우리의 문자임을 깨달아, 스스로 습득하여, 쓰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 한자의 역사와 개념
1) 왜 한자가 우리 문자인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조상 東夷의 桓字와 중국인의 조상 夏華의 漢字로 구분할 수 있다. 桓字와 漢字로 구분되기 이전에 오직 桓字만이 있었다. 한자가 桓字로 인식되던 시대엔, 中原에 오로지 동이만이 있었다. 동이에서 하화가 갈라져 나옴으로써 漢字로 불리게 된 것이다.
동이에서 하화가 갈라져 나온 때는 중원에서 치우천왕, 유망, 황제가 중원을 3분하여 동이의 깃발 아래 三祖로서 활동하던 시기(서기전 2706-2598)였다. 황제가 유망을 아우르고, 涿鹿의 冀州에서 싸운 涿鹿大戰에서 치우천왕을 전사시키면서, 치우천왕과 유망을 승계한 동이와 황제를 승계한 하화는 이때부터 분리되었다. 치우천왕이 멸망 후에 265년이 경과한 다음에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이때까지도 동이의 문자인 桓字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러나 진시황 8(서기전 213)년에 고조선이 秦에게 멸망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중원에서 동이가 소멸하게 됨으로써 동이의 문자인 桓字도 소멸하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後漢(25-220) 때에 와서, 許愼이 桓字 9,358자를 하화의 문자로 해석하여 「說文解字」라는 字典을 편찬하였다. 「설문해자」에서 하화의 문자로 재해석한 문자가 오늘날의 우리가 쓰고 있는 漢字(지금 중국에서 쓰고 있는 백화문이 아님)의 시조문자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동이의 桓字와 하화의 漢字의 구분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이가 쓰던 문자를 桓字라고 하고, 하화가 쓰기 시작한 문자를 漢字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동이의 역사를 잊어버린 후손들이 桓字의 성립과정과 소멸과정이 반영된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桓字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우리가 쓰는 漢字를 중국의 고문자라고 하고, 진나라 때 문자라고 하기도 한다. 漢字가 소멸하여 그들의 역사에서 이미 사라진 문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진나라 때의 문자를 쓰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桓字와 漢字를 모두 승계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진나라의 문자를 쓰고 있다고 대단히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인이 한자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가 바로 漢字에 桓字의 시대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2) 桓字와 漢字 분별
가급적이면 漢字에서 桓字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이다. 漢字에서 桓字를 찾아내어 함께 가르치도록 한다. 일단 「說文解字」에 등재된 문자를 모두 동이의 문자인 桓字로 보고, 「설문해자」에서 오늘날 쓰고 있는 문자를 찾아내어 漢字의 의미와 함께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할 일은 전혀 다른 둘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문자를 찾아내어, 왜 서로 상이한 의미를 갖게 되었는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고조선의 멸망과 고조선의 문자 말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관련되어 있으리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시황시대에 일어난 坑儒焚書사건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이의 문자를 고집하는 유가와 이를 반대하는 진시황파 유가의 충돌에서 빚어진 사건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에, 중원에서 고조선이 멸망하고 중국인의 선조 하화족이 문화를 아우르면서, 허신이 桓字를 漢字로 새롭게 해석하여 기록한 것이 「설문해자」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자의 의미해석이 동이해석에서 하화해석으로 옮겨간 경우라고 하겠다. 이점을 주의 깊게 살피면 동이의 桓字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3 한자 교수법
1) 현황
현재 행해지고 있는 한자교육은 학문적으로 검토가 되지 않은 교수법으로, 덮어놓고 가르치는 주입식 교수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에서 한자의 언어의 의미론적인 측면, 문자의 기호학적인 측면, 사회현상적인 측면과 이를 가르치고 받아들이는 당사자 간의 심리학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따라서 현행 한자교육에 이 네 가지 측면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2) 한자의 의미론적인 측면
한자는 동양문화를 형성해 온 귀중한 문자이다. 이 문자 자체에 이미 역사가 반영되어 있고, 철학과 사상과 문화와 풍습이 반영되어 있다. 한자교육에서 이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이점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 「설문해자」는 물론이고, 「康熙字典」과 특히 「周易」을 비롯한 동양고전에 대한 공부를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자에는 辭典的 의미 즉 개념적 의미를 초월하여,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점에 유념해야 한다.
한자의 언어적 의미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개념적 의미
의사소통의 핵심적 요소가 되는 논리적이고 인지적인 내용이 개념적 의미이다. 이 의미는 개개인의 언어경험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언어공동체가 공유하는 의미를 그대로 표현한다.
예컨대, 狗는 ‘개’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개’는 ‘개’라는 실체와 아무 상관이 없으나, 이 문자를 ‘개’로 보기로 한 약속이 이미 시행되고 있으므로, 개념적 의미에서 ‘개’가 된다. 그러나 狗를 扁과 旁으로 나누면, 변은 견犭자로, 방은 구句자로 나뉜다.
犭자는 ‘개’라는 뜻이고, 句자는 한글자전에서 ‘구부러지다’, ‘끝나다’라는 뜻이다. 이 두 문자를 붙이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句자의 의미가 석연치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자로 발음되고 있으니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강희자전」에, 句에 拘의 의미가 있음을 기록하였다. 拘자에는 ‘잡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狗자에 犬+拘의 의미가 있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狗자에 ‘잡는 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된다.
또한 犬자는 大+丶자이다. 大는 ‘크다’, ‘넓다’, ‘풍만하고 아름답다(肥美)’, ‘처음(初)’, ‘임금(大王)’, ‘길다(長)’라는 뜻이고, 丶자는 ‘점’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어깨에 점을 찍어서 ‘개’임을 나타내었다. 그렇다면 이 ‘개’는 ‘멍멍이 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별칭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로잡힌 사람’이 犬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犭자와 句자는 拘의 의미로 쓰인 문자로 볼 수 있다. 사로잡힌 사람이 狗이고, 이 狗가 어느 시점에 가서 진짜 개를 의미하는 문자로 의미가 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시기는 언제쯤 될까? 우리 역사에 민족구성원으로서 五加가 등장하는 때가 桓國時代 말기이다. 이때 오가 안에 狗加가 있었다. 그러므로 구가에서 개를 기르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개라는 말은 구라는 말의 변음으로 볼 수 있다.
무엇인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 즉 狗는 애완용의 작은 종류의 개가 아니라, 전쟁터에 나가서 적을 사로잡을 만큼 덩치가 큰 개를 의미한다. 동양별자리에는 天狗라는 별자리가 있는데, 이 천구가 하늘을 지키는 대단히 큰 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조선시대에도 있었던, 狗加라는 종족명칭을 쓰는 종족도 애완용동물 개를 족표로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구자의 의미를 이렇게 파생시켜 보면, 구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가 밝혀진다. 따라서 그 형상을 이미지화하여 전달한다면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렇게 본래의 문자의 의미를 찾아가는 학문을 文字學이라고 한다.
(2) 연상적 의미
연상적 의미는 좀더 세분화 된다. (1 言外的 의미, (2 사회적 의미, (3 반사된 의미, (4 聯語的 의미가 있다.
(1 언외적 의미
언외적 의미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적 의미에 언어 사용자들이 관습적으로 의미를 추가하여 쓰는 또 다른 의미를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남자란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전적 의미 이외에서도 남자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센 힘, 군대, 짧은 머리, 斗酒不辭 등의 문자에서 남자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남자의 의미가 힘, 군대, 短髮, 酒에 파생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과 시대적 상황, 사회현상 등에서 남자의 의미는 찾아진다. 따라서 남자와 관련이 있는 한자를 찾아내어 가르칠 수 있다.
예컨대, 男子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軍人을 남자의 범주에 넣어 함께 가르칠 수 있다. 이때 학생은 남자라는 이미지 속에 군인을 받아들인다.
(2 사회적 의미
사회적 의미는 사회적 환경에 의하여 개념적 언어에 다른 의미가 추가된 경우이다.
정치현실이 만들어낸 이중적 의미로서 당 대표나 당수를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전두황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등 정당보스가 제왕적 의미의 당수와 동일시되는 시대를 살아 왔다. 그래서 당수에서 제왕을 연상하고, 또한 대통령을 연상하게 되었다. 이분들이 휘두르던 제왕적 권력행사가 국민을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결과적으로 정치 무관심에 빠지게 하였음도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黨首와 帝王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帝王이라는 단어 하나로 우리의 현대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을 비판하고, 현실개혁의 대안까지도 짚어 볼 수 있다.
(3 연상적 의미
하나의 단어가 개념적 의미 이외에도 언어사용자의 연상작용에 의하여 전혀 다른 의미의 문자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祖國이라는 단어에서 父母나 沈黙(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서처럼)을 떠올릴 수 있고,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을 떠올릴 수도 있다. 신화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금성이나 목성에서 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 엉뚱하게 金星이나 木星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상상력의 폭을 넓혀 준다는 의미에서 활용할 만 하다.
가령 조국이라는 문자에서 목성이라는 문자를 연상하였다면, 두 문자를 연결하여 하나의 의미를 창출하고자 할 때, 우주과학에 대한 지식을 동원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로켓을 쏘아 올려 목성을 탐사한다든가, 목성프로젝트니 뭐니 하는 것을 동원하여 의미창출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로써 조국이라는 진부한 문자가 첨단과학의 조명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의미조작을 필요로 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에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조작된 의미를 밝혀냄으로써 거짓이 밝혀짐으로, 이데올로기나 모략의 허구성을 밝혀내는데도 쓸 수 있다.
(4 聯語的 의미
연어적 의미는 단어의 연상적 의미가 언어로서 작용하는 경우이다. 어떤 단어가 다른 어떤 단어와 어울려 쓰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맥에서 함께 쓰여 언어로 소통된다.
잘생긴 여자를 美人이라고 하나 잘생긴 남자를 美人이라고 하지 않는다. 잘생긴 여자는 美女라고도 한다. “그 사람은 미인이야.” 했을 경우에 그 사람을 지칭하는 미인은 미녀를 의미하지 미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 그 사람이 미인 즉 미녀로 연상된 경우이다.
장군을 연어적 의미로 사용했을 때, 남한에서는 현역 군 장성이나 퇴역 군 장성을 의미하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일 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침에 장군께서 개에게 물리셨다.”고 하면, 그 연어적 의미는, 남한에서는 “아침에 아무개 장군께서 개에게 물리셨다.”는 의미가 되지만, 북한에서는 “아침에 김정일 장군께서 개에게 물리셨다.”는 의미가 된다.
이 역시 문자의 참의미를 밝힘으로써 의미조작의 허구성을 밝혀내는데 쓸 수 있다.
(3) 의도적 의미
의도적 의미는 언어를 쓰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 의미를 구사하는 경우이다. 감정적 의미와 주체적 의미의 두 가지가 있다.
(1 감정적 의미
감정적 의미는 말하는 사람이 그 말이 가지고 있는 개념적 의미와 다르게 의미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周易」의 乾爲天卦 初爻에서 潛龍은 물밖에 나오지 않고 은거하는 상태의 용이다. 그러나 이 말은 아직 상상의 동물인 용이 아니라, 登極하지 않은 예비 임금을 의미한다. 여기에 근원하여 아직 임금이 되지 않은 예비임금이 살던 저택을 潛邸라고 한다. 이때 잠저는 ‘용의 집’이 아니라 아직 임금에 오르지 않은 상태에 있는 어떤 분이 사시던 집이다. “조용히 해!”라고 했을 때, “조용”은 잠저에 살고 계신 예비 임금인 ‘邸龍 ’에서 나온 말이다. 임금이 되실 분이 아직 잠저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조용’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말이 지금은 “떠들지 말라”는 감정적 의미의 말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2 주체적 의미
주체적 의미는 말하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의미를 강조하여 말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순서를 바꾸는 경우에 문장의 초점이 이동하게 되는 경우이다. 북한의 한 군중대회에서, 구호를 선창하는 자가 “金日成 首領任!”을 “수령님 김일성!”으로 김일성과 수령님을 바꾸어 선창했다면,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전달된다. “김일성 수령님”은 “김일성이 수령님”이라는 뜻이고, “수령님 김일성”은 “수령님이 김일성”이라는 뜻으로 주체의 의미가 뒤바뀐 경우이다. “모든 수령이 모두 다 김일성”이라는 엉뚱한 말이 되고 만다.
이상 의미론적인 관점에서 한자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하여, 한자의 의미를 명확히 하려면 이러한 이론적인 토대가 있어야 할 것이다.
4 가르치기의 실제
1) 현실
요즈음 초등학교 학생에게 한자교육을 시키는 학부모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필자는 2003. 7. 13.(日) 09:30-16:00에 경기도 분당, 용인, 판교 일대에 거주하는 40명 정도의 3-5학년 학생으로 구성된 ‘강화도 역사문화 현장답사팀’을 따라다니며 하루 종일 관찰한 적이 있다. 이들 학생 중에서 한자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고, 필자가 확인한 3학년 한 여학생은 「강화역사문화관」에서 선생님이 쓰라고 한 ‘금표’를 한자로 金標로 쓰고 있었다. 이를 보면 국민 사이에 한자교육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현실적으로 사회여건이 확산되어 가는 공감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로 보인다.
(1)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재의 필요성
현실에 맞는 교재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현실에 맞는 교재가 제작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 있다. 필요한 교재의 제작이야 말로 국민 의식혁명에 크게 기여하게 되리라고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교재 집필자의 자질이 크게 좌우할 것이다.
(1 교재 집필에 고려해야 할 사항
교재는 차세대 국민의 의식을 개혁하여야 한다는 정신적 기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혼돈된 가치관, 범람하는 낡은 외래사상, 공항상태의 사유체계가 혼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를 바로잡으려면 이점에 초점을 맞춘 교재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교육에 힘써야 한다. 필자는 아이들을 한자교육을 통하여 애국자를 만들 수 있고, 반역자를 만들 수도 있고, 국가가 요구하는 동량을 만들 수도 있고, 나라를 망치는 방국배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변증법적 의미조작과 세뇌교육을 통하여 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이러한 교육방법은 사회주의국가에서 국가적 목적 수행을 위하여 써먹은 바가 있다.
(2) 학습의 연계성
준비된 교재가 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충분히 고려된 교재라면, 지금 가르치는 문자와 내일 가르치는 문자의 연계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오늘 가르치는 문장은 내일 가르치는 문장과 연계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억을 환기시키기에 용이하고, 한자의 이미지화, 서사화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단순한 의미의 단어에서, 단순한 의미의 단문으로 이행하고, 단순한 의미의 단문은 복잡한 의미의 긴 문장으로 이행될 수 있다. 연계성이 있는 단어나 문장을 가르치면, 의미 학습에 흥미를 유발하는 연상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기억에도 도움이 된다.
(3) 학습의 형식주의와 내용주의
(1 형식주의
언어에 형식주의적인 요소가 있다. 북한의 언어는 북한 언어의 형식을 갖고 있고, 남한 언어는 남한 언어의 형식을 갖고 있다. 언어의 형식은 의미를 한정한다. 민족이라고 할 때, 북한의 민족은 적대계급으로서 타도해야 할 대상을 제거한 종파분자로서의 민족이고, 남한의 민족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한반도를 떠난 사람들로서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면 모두 민족의 범위에 들어간다. 이렇게 언어에는 언어를 인지하는 형식이 있다.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서 “우리는 한 민족입네다!”라고 말했다면, 민족의 의미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상에 뿌리를 둔 학습의 결과가 언어의 형식주의를 결정한다. 주체사상은 주체형식주의를 결정하고, 타락한 자본주의는 타락자본주의형식을 결정한다. 언어학습에서 이점을 밝혀내야 한다.
(2 내용주의
형식에 반대되는 말로서 내용이 있다. 따라서 형식주의가 있으면, 내용주의가 있을 수 있다.
형식주의를 내용을 둘러싸고 있는 외곽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내용은 형식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을 말한다.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계층적, 세대적, 지역적, 성별적, 직업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다양한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의미가 같을 수 없으므로 내용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性이란 말에서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양하다. 성의 포르노적 의미, 대중매체의 상품성으로서의 의미, 여성운동의 대상으로서의 의미, 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유교적 의미의 등 다양하다.
(4) 언어의 구조주의
기호학적인 측면에서 언어의 기호는 旗標와 記意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圖象, 指標, 象徵의 관계로 구분하기도 한다. 언어의 실제성이 어디에 있느냐에 중점을 둠으로써 언어의 참과 거짓을 구별해 내는 것이 언어구조주의가 하는 일이다.
언어는 사회구성요인에 의하여 생겨나고, 또한 변화한다. 가령 한자가 태어나던 시대의 사회요인이 한자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사회가 멸망하든가 반역으로 변동되었다면, 그 문자를 폐기처분하지 않는 한 그대로 쓰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문자를 쓰면서 사회적 조건들이 그 문자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朝鮮의 朝자는 ‘아침’, ‘처음’, ‘시작하다’, ‘알연하다’, 는 의미의 문자인데, 애초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의 문자였다. 제사의 의미로 ‘조’자를 쓸 때는 아직 조선이 생겨나기 이전의 시대(전욱고양과 중여곤의 시대)였다. 그러나 조선의 탄생과 함께 ‘아침’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자는 사회적 변동에 의하여 제사에 ‘아침’이라는 의미가 추가된 것이다. 鮮자는 ‘곱다’, ‘뚜렷하다’, ‘깨끗하다’, ‘작다’는 의미의 문자인데, 조선이 생겨날 때, ‘곱다’는 의미였다가 조선이 멸망한 이후에 ‘작다’는 의미로 폄하되었다고 본다.
「論語 雍也」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中庸之爲德 其至矣乎 民鮮久矣
이 글에 대하여, 지금까지 “중용의 덕 됨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다. 중용을 능히 행하는 자가 적었다.”라고 해석해 왔다. 과연 이 문장이 순수하게 해석된 참 문장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의미를 조작한 거짓 문장인가? 구조주의가 참 언어와 거짓 언어를 구별하여 무의미한 언어를 찾아내자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이점을 밝혀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鮮자가 ‘작다’는 의미로 쓰이기 전에 ‘조선’의 ‘선’자로 쓰였으므로, 다시 해석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선’자를 ‘작다’고 해석하는 것이 거짓 해석이므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선’자의 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조선’의 ‘선’자로 해석하면, “중용의 덕이 됨은 지극한 것이다. 조선의 백성이 지켜 온지 오래이다.” 로 해석된다. 참과 거짓의 차이는 이렇게 엄청나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고전으로 알려진 저작들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이의 많은 저작이 언어세탁과정을 거쳐서 하화의 저작으로 둔갑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5) 복합적 교육방법
요즈음은 아이들의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세태이므로, 우선 집중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교육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놀이, 퀴즈, 보조교육자재의 활용, 집단행동, 현장학습이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는 기호학적인 측면에서, 학습의 보조수단으로 이미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각적으로 또한 청각적으로 이미지화 되려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제작을 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시각적인 효과와 청각적인 효과가 높을수록 기억에 용이하다. 또한 기억이 오래 갈 수 있다. 상상력을 확대할 수 있는 교육재료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지도 한 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국토, 국가, 국민, 남북분단, 인민, 사상,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역사, 종교, 등등 이렇게 지도 한 장에서 상상력의 은유적 사고의 표현을 찾아낸다. 이렇게 찾아내는 훈련을 함으로써 주입식으로 고착화 되어 있는 머리를 일깨워 상상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말도안돼는 소리..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사회에 굳이 소외계층을 만들면서까지 비효율적인 한자를 도입해야하나 글자하나놓고 유래와 뜻을 분석하는걸 고상한취미로 여기는 한자매니아들을 보면 한심하다. 해석하고 유추하고 분석하고 연상하는 능력을 기르는데는 그림이 차라리 훨씬낫다 오히려 격이 높지
예컨대, 男子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軍人을 남자의 범주에 넣어 함께 가르칠 수 있다. 이때 학생은 남자라는 이미지 속에 군인을 받아들인다.-->이런 고정관념을 기를바에는 서양 명화하나놓고 거기에 담긴 종교와 철학과 신화와 역사와 미술사와 화가개인의 인생과 사회상등을 따져보는게 훨씬더 낫지않은가
첫댓글 한자는 사라져가는 문자일 뿐입니다..... 벌써 한국어에는 음운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코 한자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30년 안에 한자는 한국어에서 사라질 겁니다.....
한자의 최대의 오점!-->새로운 의미의 명사에 적응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 이름을 표현할 때 표의 문자를 표음문자처럼 써버리는....
말도안돼는 소리..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사회에 굳이 소외계층을 만들면서까지 비효율적인 한자를 도입해야하나 글자하나놓고 유래와 뜻을 분석하는걸 고상한취미로 여기는 한자매니아들을 보면 한심하다. 해석하고 유추하고 분석하고 연상하는 능력을 기르는데는 그림이 차라리 훨씬낫다 오히려 격이 높지
예컨대, 男子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軍人을 남자의 범주에 넣어 함께 가르칠 수 있다. 이때 학생은 남자라는 이미지 속에 군인을 받아들인다.-->이런 고정관념을 기를바에는 서양 명화하나놓고 거기에 담긴 종교와 철학과 신화와 역사와 미술사와 화가개인의 인생과 사회상등을 따져보는게 훨씬더 낫지않은가
한자가 제일 싫다. 시험보면 한자때문에 평균 망치는..ㅜㅜ
"예컨대, 男子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軍人을 남자의 범주에 넣어 함께 가르칠 수 있다"??? 가르치는쪽에선 쉽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배우는 쪽에선 이래나 저래나 마찬가지다. 참.. 교육인들의 고난도문제 출제의 자부심이란... 배우는 사람의 배려가 우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