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씨와 김선경 작가는 ‘나이듦에 대하여’를 화두로 고민을 많이 했다. 이근후씨는 나이듦을 인식하면서부터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벅찼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아, 오늘 또 하루를 벌었구나’ 하는 기쁨을 매일 느껴요. 젊었을 때에는 몰랐던 기쁨이에요. 생물학적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면서부터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사치인 것 같아요. 젊어서의 재미만 생각하면 노년은 불행해요. 나이 들어 느끼는 재미는 젊은 시절과는 달라요. 등산을 예로 들어 보죠. 젊어서는 산 정상에 오르는 일이 재미있었다면 지금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어요.”
김선경 작가는 마흔 살이 되면서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썼다. 그는 월간 ‘좋은 생각’ ‘행복한 동행’ ‘문학사상’에서 특유의 따뜻하고 깊은 시선을 살려 실력있는 편집자로 인정받았다. 출판사를 차려 잡지를 창간하는 등 과감히 도전을 했으나 적자를 내고 문을 닫았다. 그는 “‘서른 살엔…’이 마흔 살이 되어 되돌아본 이야기라면 이 책은 ‘마흔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쓰기 위한 선행학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흔이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나이”라고 했다.
“‘마흔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언제 쓸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죠. 그런데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이 만만해졌어요. ‘아, 너무 겁먹을 필요 없구나. 이런 마음 가짐으로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라고 할까요?”
두 사람에게 “나이듦의 즐거움이 무엇인가?”라는 공통의 질문을 던졌다. 둘은 모두 “나이듦의 즐거움은 근본적으로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근후씨는 “나이 들면 시간이 많아지고 남 눈치 볼 일이 적어지는 좋은 점도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죽음에 가까워지는 게 뭐가 즐겁겠어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예요. 환자들을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대단해요. 죽음의 불안과 슬픔에 억눌려 있는데 인생의 틈새에 숨어있는 재미가 보이겠어요? 잘 찾아보면 주어진 여건에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구석은 얼마든지 있어요.”
이근후씨는 왼쪽 눈이 실명됐고 당뇨, 고혈압, 관상동맥협착, 담석, 통풍, 허리디스크 등 일곱 가지 병이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아프고 병을 앓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면서 “삶이 다하는 날까지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김선경 작가 역시 “40대가 되니 몸의 변화도 확 느껴지고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다”고 말을 뗐다. “하지만 선생님의 삶을 통해서 나이듦의 즐거움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애쓰고 노력해야 즐거움이 보인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이근후씨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있다. 최근 캠페인으로 자리 잡은 ‘작은 결혼식’을 그는 일찌감치 실천했다. 2남2녀를 둔 그는 네 자녀에게 결혼 비용으로 한 자녀당 공평하게 500만원씩만 지원했다. 살림살이가 불어나는 재미가 결혼생활의 큰 즐거움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다. 또 하나, 결혼하면 무조건 6개월간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행히도 반대나 갈등 상황이 없이 다 따라주었다. 일방적 선언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설득과 동의를 거친 결과다. 그는 “가족간의 철학을 공유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나는 아이들이 돌 때부터 세뇌시켰다”고 농을 했다.
2002년부터는 한 지붕에서 다섯 가족이 산다. 부지만 부모가 제공하고 다가구주택 집 건설 비용은 네 자녀가 각자의 형편대로 내게 했다. 1층은 이근후 교수 부부가, 2층은 맏딸과 막내 아들이, 3층은 둘째 딸, 4층에는 큰 아들 가족이 산다. 한 집에 모여살자는 제안은 이 교수의 정년 퇴임 무렵 첫째 며느리가 먼저 해 왔다.
다섯 가족 14명이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억지 정성과 사랑 없는 행위가 서로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는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더불어 살 수 있는 대원칙을 세웠다. 바로 상호 불간섭주의와 독립성 보장이다. 한 지붕이지만 각 가정마다 별도의 출입문을 만들어 독립성이 보장되도록 했고, 서로의 집에 가기 전 전화로 사전에 허락을 구했다. 또 가정의 일과 개인의 일을 가족 전체보다 우선시하도록 했다.
그는 자녀와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싶으면 엄한 아버지, 엄한 할아버지가 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며느리와 사위 앞에서 권위를 버렸다. 불편한 손님 같은 가족이 되지 않기 위해 그 스스로 며느리 앞에서 러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고, 벌러덩 누워서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며느리들에게는 ‘솔직하게 거절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또 자식들에게 애교를 떨 필요가 있다며 “자녀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건데 그 정도 치사함은 견딜 만하지 않아요?”라며 되묻는다. 그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부모세대가 자식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거꾸로예요. 젊은 세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흡수하면서 살죠. 두 세대의 청춘 시절은 달라요. 국민소득 200달러 시대에 성장한 사람들이 2만달러 세대의 청춘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섣부른 충고는 안 하니만 못하죠.”
가족의 독특한 삶은 화제가 돼 각종 매체로부터 숱한 취재 요청을 받는다. 부인 이동원씨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네 자녀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자녀는 각각 언론사 편집위원, 의사, 상담전문가, 영화 연출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자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자 이근후씨는 “사생활을 보장해주기로 아이들과 약속했다”며 입을 닫았다.
이근후씨는 이 책에서 너무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목표를 정하고 앞만 보면서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야금야금하면서 걸어가는 삶을 추구하라고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최선을 다하며, 악바리처럼 채찍질하며 살아서 끝에 뭘 하려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이근후·이동원 교수 부부, 김선경 작가와 다 함께 식사를 했다. 이동원씨는 책에 드러나지 않은 남편의 실상(?)을 하나둘 들려줬다. 부인은 물욕이 없는 남편 때문에 겪은 고충을 털어놓았다. “빨랫비누 열 장을 싸게 사기 위해 먼 시장까지 걸어서 낑낑대고 다녀왔지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여덟 장을 남한테 줘 버렸어요. 이 양반 퍼주는 건 유전이에요. 네팔 봉사 가면서도 죄다 자비로 가고. 내가 속 끓인 건 말도 마세요. 그런데 이 나이 돼서 보니 남편이 맞아요. 베풀면서 살아왔더니 어딜 가나 당당해요.” 아내가 웃었다. 남편도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