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신년 전국집회 후기
1.
오래 기다려 온 전국집회. 우리 가족 일곱 명은 전날 서울로 왔다. 아이들이 여행이나 온 듯 마냥 즐거워해서 우리도 덩달아 마음이 들뜨고 행복했다. 그런데 지방 사람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행사에 참여하려면 이렇게 숙박을 해야 한다. 서울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지방사람의 설움(?)에 깊이 공감하였다.
전국집회 안내가 성서신애에 두 번 나갔는데 여러 곳에서 전화를 주셨다. 정말 많이 기다렸다든가 기대된다는 말씀이 대부분이었다.
‘모두들 매우 보고싶어 했었구나.’
앞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더라도 이번처럼 1일이라도, 아니 한 나절이라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2.
아침 일찍 여성플라자로 향했다. 오류동집회의 조규철・한정주 님이 벌써 와 있었다. 우리는 교재와 함께 일본의 이마이칸 홍보지와 기념파일을 늘어놓았다. 다과는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간단히 준비하였다.
드디어 그리던 동지(^^)들이 한 분 한 분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서로 손을 크게 흔들고, 어깨를 두드리고,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함박 웃음이 가득했다. 오랜만의 만남이 얼마나 기쁜지 복도와 강의실은 설레는 기운으로 꽉 찼다.
10시. 손현섭 선생의 사회로, 석진우 선생님의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부르며 시작했다. 석 선생님은 2주 전(12월25일)에 돌아가셨다. 이 찬송을 부르니 석 선생님 뿐만 아니라 지난 3년 동안 하늘나라로 가신 최병인 선생님, 박현경・성정환 선생님 부부, 박찬운 선생님 등 빈 자리를 실감하였다. 이윽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1) 진영선, “성서, 단테의 신곡, 일상”
신곡연구자이며 단테의 광팬인 진 선생은 역시나 신곡을 알리고자 하는 열심이 가득했다. 선생은 2000년 겨울 전국집회에서 신곡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무려 20년간 책 한 권에 꽂혀 있었던 셈이다.
“영원한 생명의 길로 화끈하고 재미나게 안내해주는 성서안내서가 신곡 외에 또 있을까? 단테가 원래 붙인 제목 ‘희극’이 말해주듯, (신곡은) 그야말로 일품의 최고 명작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힘이 약동한다.”
진 선생은 지금 구약 역사서를 공부하는 중이시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리 크리스천이 그 영원한 생명의 길을 밝히는 사명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흰 머리가 예쁘신 70대의 언니(?)의 열강을 들으며, 노년기를 정말 알차고 아름답게 보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2) 손문일, “요한복음 공부 서론”
미국에서 돌아와 부산대에서 근무하며 가족끼리 부산모임을 시작하기까지 개인사를 먼저 들려주고, 요한복음 공부 서론을 발표해주었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을 대조하며 요한이 특히 예수님의 신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태초 이전부터 있었던 로고스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는 것.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는 첫 구절을 낱말마다 뜻풀이를 해주어 새롭게 다가왔다. 이는 인간의 머리로의 사색이나 명상으로 얻어낸 결론이 아니라 성령의 계시와 영감으로 믿게 된 사도요한의 신앙의 확신이라는 어거스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에 더욱 정진하기를 빌었다. 그런데 PPT화면을 온갖 아이콘으로 장식하여 눈은 즐거웠으나, ‘저 그림은 뭐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또 화면이 무려 30개가 넘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는데 딱 맞춰 끝내주어서 수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답구나 했다.
3) 배은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목사이며 작가인 찰스 쉘던의 소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의 내용을 소개하는 강의였다.
소설의 주인공 맥스웰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1년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활목표를 실천하기로 서약을 한다.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도 참여하게 되어 초대교회의 놀라운 은총과 성령강림이 도시와 빈민가를 변화시켰고, 주변 도시로 전파되었다고 하는 해피엔딩 소설이다.
배은선 선생은 한국철도박물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근대화 시기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이 씌어진 1896년 무렵의 우리나라 역사를 상기시키며 말씀을 전개해 나갔다. 같은 시기이지만 예수와 무관했던 우리의 개화기와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고심했던 미국이 대조되어 흥미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김은정 선생이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적지않은 문제도 불러왔다. 그리스도인이 Social justice(사회적 정의)를 강조하다 보면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우리 무교회는 성서를 공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삶을 추구하자. 우선해야 할 것은 실천 주장보다 진리탐구이다.”
이후 소감회에서도 성서공부에 중점을 두자는 말씀들이 많이 나와서 무교회에서 자란 배 선생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철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서적까지 집필하여 한국 철도역사에서 보배같은 존재가 되신 분이다. 몇 년 있으면 정년퇴임이라 하니, 이제부터 그 빛나는 열정을 성서연구에 쏟아주시기를 바란다.
# 점심시간
점심은 인근 여의도에서 도시락을 배달하여 먹었다. 코로나의 위험도 있고 해서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식사하였다. 조규철 선생이 잔반을 수거통을 준비해 와서 수월하게 뒷처리를 할 수 있어 감사했다.
# 한국성서신우회 임원 개편
3년간 회장대리 체제로 운영되었던 한국성서신우회의 임원개편과 활동보고가 있었다. 대면교류가 불가한 상태라 월1회 온라인으로 일한청년우화회와 정보교환을 하며 서면교류를 해왔다고 한다.
신임회장 한만하 선생, 총무 김복례 선생, 회계 배은선 선생, 감사 김철웅 선생이 수고해주기로 하였다.
4. 최길성, “창세기 공부 – 루터전집”
창세기 1장 1-5절을 루터를 중심으로 소개해 주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1절은 루터의 신조 제1조에 등장한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은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을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고 보존하고 지켜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로 그분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찬양하고 감사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또 이 부분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에 대해서도 알찬 자료와 함께 풀이해 주었다.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견해와 송두용・유희세 선생의 글도 소개해주어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또 창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에 최 선생의 생각을 기대했는데 나오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최 선생에게 아버지를 닮지 말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으라고 따뜻한 격려를 하고 있는 분이 계셔서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아버지 최정일 교수의 강의 스타일이 학자들의 글만 소개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제하시기 때문이다. 강의방식도 DNA 영향을 받는 걸까?
ps. 히브리어와 독일어 원문을 읽어주면서 강의를 진행하였는데, 그 두 개의 언어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감탄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어 자체보다 최 선생의 목소리가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최 선생 수업을 듣는 고딩들아, 꿀인 줄 알아라!” 여름집회에서 더 진행된 창세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5. 배지현, “그리스도 자녀에 합당한 의로운 삶에 대해”
배 선생의 강의는 크리스천으로서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바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존재하는 죄의 문제를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배 선생이 인용한 우치무라의 글에 답이 있었다.
“신앙생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죄를 범치 않는 게 아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우러러보는 일이다. 이 신앙 때문에 사람은 항상 의롭다 함을 얻으면서 산다. 사람은 항상 죄를 범하면서, 항상 용서받으면서 산다.”
사실 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는데도 매일 말 실수를 하고, 옹졸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는 잠자리에서 몸서리치며 이불킥을 하고 있으니 언제쯤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지?
(배지현 선생의 원고는 이 책 25쪽부터 실려있으니 읽어보시길.)
6. 김철웅, “예수 탄생 그 후”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기 전후의 사정을 현실적인 시선으로 파헤친 참 재미있는 공부였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200km 내외의 먼 길을 왜 만삭의 임산부를 대동하여 갔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흥미로운 풀이를 해주셨다.
그때의 청년 요셉에게는 네 가지 과제가 있었다. 호적 등록, 마리아의 출산 돕기, 태어난 아기의 할례, 출산한 여성 마리아의 정결의식이 그것이었다. 요셉은 이 네 가지 일을 한 번의 베들레헴 방문으로 완벽하게 마무리했다고 한다.
특히 아직 처녀의 몸인 마리아에게 쏟아질 비난을 차단하고 출산한 여성의 정결예식까지 마무리하기 위한 베들레헴 방문을 주도면밀하게 실행했다니 요셉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요즘말로 요셉은 훈남 그 자체다. 예수가 그런 인품의 요셉 슬하에서 자라난 게 참 다행이었다.
“세상의 남자님들, 요셉을 본받아 주세요.”
7. 소감회
전국집회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감회는 모임의 절정이다.
# 우리 모임은 성서진리로 나아가야 한다. 노평구 선생도 김교신 기념회에서 이제는 맛있는 성서를 이야기하자고 하셨었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더라도 성서에 입각한 강의가 되어야 한다. 중심은 성서이다.(종로집회)
# 무교회의 미래를 염려만 한 사람이다. 청년들의 강의를 들으며 안심했다. 게다가 여성 참가자가 이렇게 많다니…감동받았다.(전 대학교수)
# 신앙생활을 하긴 했었으나, 무교회 참가는 미루기만 했었다. 본격적으로 무교회인이 되기로 작정하면서 ‘신앙의 마중물’을 발간하게 되었다. 응원해주시기 바란다.(신앙의 마중물 편집인)
# 80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전국집회에 처음으로 왔다. 이런 집회가 필요한 건 서로 공부하기 위해서이다. 내 인생 경험으로 보면, 사람은 선을 추구하나 어떤 선한 목적이 있어도 악이 끼어들었다. 성서 진리 탐구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대방동집회)
# 여러분을 만나니 왜 그리 좋은지 육당 최남선의 시조로 내 마음을 전한다.(오류동집회)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던 이가 까닭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꾸 가더라.
(여러분도 저를 만나 좋으십니까? 물으시자 모두들 "예!"라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 무교회의 고령화를 걱정했었다. 그런데 어린 아이 때 보았던 분들이 강의를 한다고 하여, 건강이 안 좋지만 무교회 청년들의 발전을 보고싶어 기어이 왔다. 참 감사하다.(풀무집회)
# 나이가 들어 생각도 헷갈리고, 여기 와봤자 제대로 배우지도 못할 텐데, 그냥 그리운 마음에 오고 싶었다. 신년이 되면 겨울집회가 그립고, 여름이 되면 여름집회를 기대한다. 지금 여기에 있어서 마음이 정말 행복하다.(종로집회)
이번 집회는 어린이까지 세어 40명이 참여하였다. 일정이 모두 끝나고 헤어지는 발걸음이 가뿐한 듯해서 정말 좋았다. 우리도 늦은 밤 부산에 도착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 않아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모두 여름에 다시 만나요. 주께서 잘 보호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