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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40
#.1 씬. 강석의 집 거실.(밤)
39회 연결 상황에서.
천갑 : 그래서 말인데. 네가 가지고 있다는 그 족보 말이다. 그걸 내놨으면 싶다.
강석 : (당황해서) 아버지?
단아 : (굳어지고)
천갑 : 너도 강석이 저 놈이 족보 사러 다니는 거 보고 대충은 눈치를 챘겠지만,
내가 일찍이 조실부모 하고 열 살도 되기 전부터 넝마를 주우며 목숨을 연명한 사람이다.
다행이 재복은 좀 타고 났던지, 돈을 좀 벌어서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행세를 하고 살지만,
가슴에 맺힌 게 참 많은 사람이다.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세울 번듯한 집안이라는 게 없다. 그래서 강석이 저 놈 등을 떠밀어 족보를 사들이라고
그렇게 독촉을 했던 거구. 이제 너도 내 집 사람이 될 테니
시애비 가슴에 맺힌 한을 좀 풀어줘야 하지 않겠냐?
강석 : 아버지? 전 그냥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란 걸로 만족할 수 있어요.
두 분 자식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구요. 그건 혜주도 마찬가질 거구요.
천갑 : 넌 좀 가만있어. 이젠 너도 명문 종가의 딸을 아내를 맞아들일 테니,
어른 말씀하는데 그렇게 툭툭 자르는 버릇 좀 고쳐라. 하교수?
단아 : 네.
천갑 : 네가 내 맺힌 한을 풀어줄 방법을 안가지고 있다면, 이런 말도 안 꺼냈을 거다.
그치만, 우리가 얼마를 들여서라도 사려고 했던 그 족보 네가 가지고 있다면서?
단아 : (암담하고)
영자 : 어른이 물으시는데 왜 대답이 없니?
단아 : 네, 가지고는 있습니다.
천갑 : 그럼, 강석이와 결혼도 하는 마당에 그걸 못 내놓을 이유가 없지 않겠냐?
강석 : 아버지, 내놓을 사람 같았으면 진작에 내놨죠.
족보라는 게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하교수.
천갑 : 내가 지금 돈 주고 사겠다는 거냐? 이건 그야말로 한 솥밥을 먹게 된 사람으로,
한 가족으로 늙은 시애비의 소원을 좀 풀어달라고 하는 거 아니냐?
(단아에게)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나도 안다.
천하에 없는 돈 귀신, 졸부 이천갑, 다들 그러지. 내가 그 딱지를 떼 내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지?
단아 : ......
천갑 : 그래, 너도 살아온 방식이 있고, 또 고지식한 아이니 지금 당장 대답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고, 대답을 해줬으면 한다.
물론, 그 대답이라는 게 좋은 쪽이어야 한다는 거 꼭 명심해라.
강석 : 아버지, 그렇게 말씀 하시는 건 협박이죠.
천갑 : 내가 지금 쟤 손목이라도 비틀었냐? 협박은 무슨 협박이라고 이러냐, 이러길.
영자 : 그리고 나도 한마디 하겠는데.....
단아 : (영자를 보면)
영자 : 결혼하면 학교는 그만 둘 거지?
단아 : 네?
영자 : 난 원칙적으로 내 집 며느리가 밖으로 나도는 게 싫은 사람이다.
여자는 자고로 집안이 평안할 수 있도록 집안에서 남편 내조나 잘하면 되는 거 아니니?
강석 : 박사 학위도 받아야 하는데, 학교를 그만 두라고 하시면 어떡해요? 어머니?
영자 : 너 왜 말이 달라지니? 너 결혼하면 여잔 무조건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던 애야.
강석 : 그거야, 아무나하고 선보고 다닐 때 얘기죠.
영자 : 박사 학위는 받아. 그건 집에서 공부하면서도 받을 수 있는 거 아니니?
천갑 : 여보, 그거는 좀 아니다.
영자 : (천갑 보고) 뭐가 아니야?
천갑 : 나도 우리 집 며느리가 조신하게 집에서 남편 내조나 하면서 집안이나 평온하게 지켜줬으면 싶지만,
그냥 평범한 직업도 아니고, 교수 아니냐? 훈장. 난 국민학교도 졸업을 못해서 그런지....
영자 : (기겁을 하면서) 여보, 당신 정말 왜 그래? 박사 학위까지 있는 사람이
국민 학교도 졸업 못했다는 농담은 왜 자꾸 해?
천갑 : 됐다. 이제 쟤도 우리 집안사람 될 텐데, 뽀록낼 건 빨리 내고 살자.
난 가방끈이 그야말로 짧아도 너무 짧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그나마 국민 학교는 졸업을 했구.
영자 : (헛기침 하고)
천갑 : 가방 끈이 짧아서 그런지 내가 선생이라는 양반들을 무조건 존경부터 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니까 학교는 계속 나가도록 해라.
영자 : 여보.
천갑 : 집안에 교수 하나쯤 있는 거 나쁘지 않다. 족보까지 생길 거구,
이젠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명문가로 거듭날 텐데, 교수 며느리 나쁘지 않아.
오늘 얘기는 이걸로 끝내고, 밥 먹자, 밥.
#.2 씬. 강석의 집 식당.(밤)
천갑, 영자, 강석, 단아, 순진, 식사하는.
아줌마, 국 그릇 놓아주고.
천갑 : 아, 그리고 말인데, 여보?
영자 : (보면)
천갑 : 우리 이사를 하는 게 어떨까?
영자 : 이사?
천갑 : 대단한 족보까지 있는 집안이면, 아무래도 한옥이 좋지 않겠어?
강석 : 아버지, 이 사람 체하겠어요.
천갑 : 내가 뭘 어쨌다고 넌 자꾸 그러냐? 맛있게 먹어, 맛있게.
단아 : 네.
순진 : 이모부? 이모부 댁에 족보도 있어요?
천갑 : 곧 찾게 될 예정이다.
단아 : (난감하고)
강석 : (그런 단아 눈치 보는)
#.3 씬. 남교수 사무실.(밤)
강석, 단아, 들어오는.
강석 : 손 따줄까요?
단아 : (보면)
강석 : 체했을 거 같은데.
단아 : (의자에 앉는)
강석 : 우리 아버지, 너무 없어 보이시죠?
단아 : (무표정하게 보는)
강석 : 내가 없어 보이는 짓 자주 하는 것도 유전인가 봐요.
단아 : .....
강석 : 아무리 썰렁해도 좀 웃어주지 그래요? 사람 무안해서 그러는데.
단아 : 아버님 저렇게 기대 하시는데 어떡해요?
강석 : 잘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 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에요.
단아 : (보면)
강석 : 쌩까는 거요.
단아 : (흘겨보는)
강석 : 쭉 그걸로 밀고 나가요, 그럼 아버지도 결국엔 손드실 거예요.
단아 : 드릴 수 있는 거면 드리겠어요. 하지만....
강석 : (단아 손 잡으며) 알아요.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단아 : (그래도 걱정이 되고)
강석 : 아니면, 이 참에....
단아 : (보면)
강석 : 에이, 점수나 따자 하고 확 내놓던가.
단아 : (기가 막혀서 보고)
강석 : 좋은 기회 아닙니까?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랑 우리 부모님 다 감동 시킬 수 있는?
단아 : 진심은 아니죠?
강석 : (웃고) 우리 위장연애 할 때로 돌아간 기분 들지 않아요?
단아 : (보면)
강석 : 맞춰 봐요,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단아 :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이 나와요?
강석 : 뭐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데요?
단아 : 난 정말 걱정 된단 말이에요.
강석 : 그냥 시아버지 되실 양반 참 재미있으시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설마 족보 안내놓는다고, 니들 결혼 못 한다 그러시기야 하시겠어요.
그럼 진짜 없어 보인다는 거 아실 텐데.
단아 : 잘 말씀드릴 수 있는 거죠?
강석 : 아, 그 여자, 사람 말 참 못 믿네.
단아 : 워낙 족보에 대한 집념이 강하신 거 같아서 그래요.
강석 : 우리 아버지, 뭐에든 집념 강하신 분이예요.
어머니 이기자고 스무 시간씩 고스톱 치시는 거 보면 몰라요?
단아 : .....
강석 : 내가 어려운 일 해결해주면 상 같은 거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단아 : (보면)
강석 : 오늘 사고치는 거 어때요?
단아 : (주먹으로 강석의 어깨를 때리는)
강석 : 야, 이 여자 주먹에 감정 실리는 거 봐.
#.4 씬. 종가 전경.(밤)
#.5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석호, 영인 앉아서 얘기하고 있는.
만기 : 특별한 말씀은 없으시구?
영인 : 네, 그냥 신식으로 결혼식을 했으면 좋겠다고만 했어요.
만기 : (끄덕이며) 신식 결혼이면 삼월 할머니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거구, 네가 애를 많이 써야겠구나.
#.6 씬. 마루.(밤)
석호, 영인, 만기의 방에서 나오는. 부엌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 들리고.
#.7 씬. 부엌.(밤)
영인, 들어오면, 진아, 말순 설거지 하고 있는. 바닥에 깨진 접시 보이고.
영인 : 왜 설거지를 두 사람이 해?
말순 : 할머니 감기기운이 있으신 거 같아서 들어가시라고 했어요.
조만씨는 쌍화탕 데워서 가지고 들어갔구요. (진아와 말순 접시 손으로 잡으려고 하면)
영인 : 조심해. 손 베.
말순 : 이거 형님이 깬 게 아니라 제가 깬 거예요, 어머니. 제가 워낙 살림에 서툴러서요.
영인 : 나도 살림 자랑은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뭐라 할 말이 없네.
나도 그릇 많이 깨먹었으니까 너무 주눅들 들 거 없어. 그럼 수고들 해. (나가는)
말순 : 우리 어머니, 진짜 쿨하시지 않니?
#.8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책 보고 있으면, 진아, 들어오는.
수영 : 힘들죠?
진아 : (앉으며) 서툴러서 그렇지 힘든 건 모르겠어요.
수영 : 돌아앉아 봐요, 어깨 주물러줄게요.
진아 : 됐어요.
수영 : 돌아앉아요. (억지로 돌려 앉히고 어깨 주물러주는) 요, 작은 어깨로 이 큰 살림 어떻게 하나?
진아 : 저 혼자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말순 언니랑, 아니 동서라 나눠하고, 삼월 할머니랑 조만씨도 있잖아요.
수영 : 제수씨는 내일부터 출근할 텐데, 그럼 진아씨가 더 힘들 거 아니에요.
진아 : (뒤돌아보고)
수영 : 왜요?
진아 : 당신이라는 좋은 말 놔두고 자꾸 진아씨라고 하실 거예요. 당신?
수영 : (쑥스럽게 웃으며) 당신 힘들어서 어째요?
진아 : 괜찮아요, 여보가 어깨까지 주물러주는데 힘들 게 뭐 있어요. (히 웃고)
수영 : (보면)
진아 : 여보 당신 하니까 닭살이 막 돋아서요. 진짜 좀 쑥스럽긴 하네요.
수영 : 당신도 그런데 늙은 난 오죽하겠어요.
#.9 씬. 태영의 방.(밤)
말순, 교통 경찰복 다림질하고 있는. 그 옆에 앉아 동동이 게임기로 놀고 있는 태영.
동동은 말순 옆에 붙어 앉아서 경찰복을 보는.
동동 : 와, 짱 멋있어요. 엄마?
말순 : 응?
동동 : 훈장 같은 건 없어요?
말순 : 훈장?
동동 : 네. 대통령한테 받은 훈장이면 더 좋은데.
말순 : 그런 건 없는데.
동동 : (실망스럽고) 없으시구나.
말순 : 왜 그게 있어야 해?
동동 : 현지 아빠는 대통령한테 훈장도 받으셨거든요.
말순 : 현지? 여자 친구야?
태영 : 여자 친구라고 하기엔 좀 뭐한 사이지. 맨날 동동이 저 놈 쥐어 패는 애 하나 있다.
동동 : 이젠 안 때린다 뭐.
말순 : 너 여자애한테 맞고 다니니? 그럼 안 되는데.
엄마가 태권도랑 유도 좀 하는데, 가르쳐줄까?
동동 : 저도 태권도 배워요. 그리고 여자애 때리려고 무술 배우는 거 전 싫어해요.
남자는 그러면 안 되거든요.
말순 : 와, 우리 동동이 멋있다.
태영 : 멋있긴, 맷집이 생겨서 잘난 척 하는 거야.
동동 : (째려보고)
말순 : (다림질하다가) 아, 또 두 줄 됐네.
태영 : (보고) 야, 바지 주름을 두 개 잡으면 어떡하냐?
말순 : 내가 다림질이 좀 안되는 편이라 그래.
태영 : 네가 뭔 잘하냐? (말순 밀쳐내며, 다리미 들고) 비켜봐라.
말순 : 다림질 할 줄 알아?
태영 : 대한민국에서 군대 갔다 온 남자치고 다림질 못하는 남자가 있는 줄 아냐? (힘껏 다림질하는데)
말순 : 와, 힘 좋다.
태영 : 네 남편 힘 좋은 거 이제 알았냐?
동동 : 안되겠다. (일어서는)
말순, 태영, 동동을 보는.
동동 : 할아버지한테 가서 일러야지. 아빠가 엄마한테 너, 너 그런다구.
태영 : (얼른 동동 잡으면서) 아들 왜 또 이러냐? 네 엄마랑 나랑은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정다워서 그러는 거야.
여보, 당신 그러는 거 우린 진짜 근지러워서 못하겠지? 그지?
말순 : 응.
동동 : 아빠?
태영 : 왜?
동동 : 아빠 말투 무지 싸 보이는 거 몰라?
태영 : (벙하고)
동동 : 결혼을 했으면 그것부터 고쳐야 하는 거 아냐? 이제부턴 달라질 거라고 했어? 안했어?
태영 : 아니,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냐? 말이라는 게 습관인데.
동동 : 오늘은 안 이를 테니까 앞으로 조심해. (정중하게 말순에게 인사하면서) 어머님, 안녕히 주무세요.
말순 : 어, 어. 아드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태영 : 너 왜 아빠한테는 인사 안하냐?
동동 : 받은 걸로 치세요. (하고 나가는)
태영 : 저 자식은 근본적으로 지 아빠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말순 : (웃다가 다리미 보면, 태영이 누르고 있어서 타고 있는 바지) 바지, 바지.
태영 : (놀라서 다리미 들다가 손 데고) 아 뜨거.
#.10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영인 들어오는.
영인 : 부르셔서 무슨 말씀 하셨어?
단아 : 그냥, 잘 지내보자구요.
영인 : 그 말씀 하시려구, 일부러 부르신 거야?
단아 : 밥 같이 먹고 싶으셨나 봐요.
영인 : 그래, 그럼 다행이네.
단아 : (보면)
영인 : 아, 아니야. 쉬어. (나가는)
#.11 씬. 석호의 방.(밤)
석호, 잠옷 갈아입고 있으면, 영인 들어오는.
영인 : 단아한테는 별 말 안했나봐. 그냥 밥만 같이 먹고 왔대.
석호 : 단아한테도 혼수 때문에 만났었다는 말 하지 말지 그랬어?
영인 : 그럼 애 또 걱정할 텐데, 그런 말을 왜 해? 하지만, 끝까지 모를 수는 없을 거 아냐?
석호 : 알 때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그냥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하자.
영인 : 근데, 열 불 나는 건 사실이야.
석호 : 또 그런다.
영인 : 모자라는 애 시집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바리바리 싸서 보내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하고 그렇단 말이야.
석호 : 우리 단아 조용히 시집보내야 하잖냐?
영인 : 그런 시어머닌데 조용히 시집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단 말이야.
#.12 씬. 강석의 방.(밤)
강석, 천갑 들어오는.
천갑 : 왜 무슨 얘긴데? 연속극 보는 사람을 끌고 올라오냐?
강석 : 아버지? 그 사람한테 족보 내놓으라고 하신 거 진심 아니시죠?
천갑 : (보고)
강석 : 그냥 그 사람 한번 떠보려고 그러신 거죠?
천갑 : 너, 내가 그렇게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냐?
강석 : 아버지, 왜 그러세요? 그런 거 진짜 없어 보이는 일이라는 거 모르세요?
천갑 : 왜? 하교수가 느네 아버지 진짜 없어 보인다 그러디?
강석 : 아버지는. 그 사람이 그런 말 할 사람이에요?
천갑 : 그럼? 못 내놓겠다고 해?
강석 : 난감해해요. 그 사람.
천갑 : 난감할 게 뭐가 있어. 가지고 있는 거 시아버지가 좀 내놔라 하면 내놓으면 되는 거지.
강석 : 그 사람도 내놓을 수 있으면 내놓고 싶대요.
천갑 : 그럼 됐네 뭐.
강석 : 근데요, 아버지, 그게....
천갑 : (자르며) 여러 말 할 거 없어. 리조트 황제 꿈도 접은 네 아버지야.
그럼 뭔가 다른 꿈이 있어야 사람이 살 거 아니냐?
리조트 황제 꿈 접은 대신에 명문 종가의 후예로 거듭나겠다고 맘먹은 거니까 방해하지 마라.
명문 종가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면서, 나도 역시 명문 종가의 후예였다, 그러면
사람들한테 좀 먹어줄 거 아니냐. 생각을 해봐라, 하회장 같은 양반이 아무하고나 사돈 맺겠냐?
넝마로 돈만 모은 졸부 이천갑인 줄 알았더니 역시 저런 내력이 있었구나,
사람들이 그럴 거 아니냐구? 그러니까 넌 하교수나 잘 구슬러.
강석 : 아버지.
천갑 : (어깨 툭 치며) 믿는다, 아들. (나가는)
강석 : (난감한)
#.13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족보를 싼 보자기 책상에 올려놓고 착잡한 심정으로 보고 있는.
족보 뭉치를 어루만지는. 울리는 핸드폰.
단아 : (받고) 네.
강석E : 뭐하고 있어요? 또 공부합니까?
단아 : 아니요. 아버님께 잘 말씀 올렸어요?
강석E : 설득 중입니다. 워낙 끈기 하난 타고나신 분이시라 쉽게 넘어오실 것 같진 않네요.
단아 : 어떡해요?
#.14 씬. 강석의 방.(밤)
강석, 핸드폰 들고 침대로 움직이면서.
강석 : 어떡하긴요. 끈기로 버텨야죠.
단아E : 역정 내시진 않으세요?
강석 : 역정까지 내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믿는다 아들 그러시기만 하시네요.
단아E : 그래서 뭐라고 말씀 드렸어요?
강석 : (침대에 앉으며) 마음속으로 그랬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시는 거거든요.
단아E : 강석씨?
강석 : (미소 지으며) 이건 그냥 해프닝이에요. 우리 쉽게 결혼하면 재미 없을까봐, 하늘이 장난치는 거라구요.
아, 이건 말도 안 된다. 우리가 쉽게 결혼하는 거냐구요? 역사상 6.25 전쟁 이후 최대 전투를 치뤘는데.
단아E : 농담하지 말구요.
강석 : 농담 아닙니다. 나 여기 저기 총상이 장난 아니라구요.
#.15 씬. 단아의 방.(밤)
단아 : (미소 지으며) 마음속으로 이상한 말 하지 말고, 공손하게 다시 말씀 올려 봐요.
강석 : 내가 기막힌 작전 하나 짜놨는데, 만나서 의논합시다.
단아 : .....
#.16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진아 앉아있는.
진아 : (통장을 들고, 통장과 수영을 번갈아보는) 이걸 왜?
수영 : 이젠 진아씨가 관리해요.
진아 : 이렇게 많은 돈을 제가 어떻게?
수영 : 난 돈 쓸 데도 없는 사람인데 가지고 있어봐야 뭐해요.
월급 모아놓은 거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진아씨가 가지고 있으면서 나 용돈도 주고 그래요.
진아 : 그냥 가지고 계세요. 저도 돈 쓸데없는데 가지고 있어봐야 뭐하겠어요.
수영 : 내일, 돈 좀 꺼내놔요.
진아 : (보고)
수영 : 단아 시집가는데 오라비로 얼마라도 내놔야 하지 않겠어요?
#.17 씬. 부엌.(밤)
말순, 냄비에 물 끓이고 있는. 진아, 들어오는.
진아 : 뭐하세요?
말순 : 우리 서방님께서 출출하다고 국수 좀 끓여달라신다. 형님은 왜 나오세요?
진아 : 자리끼 가져가려구요.
말순 : 아주버님도 출출하시면 국수 좀 드시지?
진아 : 아니에요. 근데, 국수 끓일 줄은 아세요?
말순 : 그냥, 해보는 거지 뭐. 그래도 다행인 게,
냉동실에 국수 국물 얼려놓은 게 있지 뭐니. 아니, 있잖아요, 형님.
진아 : (주전자와 그릇 챙기면서) 참, 언니?
말순 : 동서.
진아 : (웃으며) 동서? 단아 아가씨 결혼하시는데, 얼마나 내놔야 하는 거예요?
말순 : 어?
진아 : 우리 그이는 너무 과하게 내놓는 것도 좋진 않을 테니 저보고 알아서 통장에서 찾아놓으라고 하는데,
얼마나 내놔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혀요.
#.18 씬. 태영의 방.(밤)
태영, 국수 젓가락으로 건지는. 퉁퉁 불은 국수.
태영 : 이게 잔치 국수냐? 칼국수냐?
말순 :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먹어?
태영 : 떡이 졌네, 떡이, 이게 수제빈지 국순지.
말순 : 하태영?
태영 : 왜?
말순 : 통장 좀 내놔봐.
태영 : 통장?
말순 : 아주버님은 형님한테 월급 통장 넘기셨대. 그럼 댁도 그래야 하는 거 아냐?
태영 : .....
말순 : 어서.
태영 : (하는 수 없이, 책상 서랍에서 통장 꺼내주는)
말순 : 단아 아가씨 시집가는데 오빠로 좀 내놔야 할 거 아냐.
(통장을 펼치는데) 49만원.....(태영 보면서) 이게 전부야?
태영 : (끄덕이고)
말순 : 총 재산이 49만원이 전부냐구?
태영 : (끄덕이는) 야, 근데 국수 진짜 많이 불었다.
말순 : (국수 그릇 옆으로 치우면서) 지금 국수가 불었네 마네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냐?
어떡할 거야? 아주버님은 턱하니 단아 아가씨 결혼 자금 내놓으실 건데, 쪽팔리지도 않냐?
태영 : (주눅이 들지만 억지로 오버하면서) 나 원래 그런 놈인데 뭐.
말순 : 그게 자랑이냐?
#.19 씬. 종가 전경.(아침)
#.20 씬. 만기의 방.(아침)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말순(교통경찰 정복 차림으로) 단아, 동동. 주정. 서있고,
만기, 앉아있는.
석호 :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인사하는데)
말순 : (순간적으로 손으로 경례 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
태영 : (말순, 팔꿈치로 툭 치는)
말순 : (얼른 손 내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다녀오겠습니다.
만기 : 그래, 다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들 하고 오거라.
#.21 씬. 마루.(아침)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말순, 주정, 단아, 동동, 방에서 나오는.
삼월, 진아 서있고.
동동 : 아빠?
태영 : 왜?
동동 : 학교까지 좀 태워다 줘.
태영 : (멍하니 보면서) 웬일이냐? 아빠가 학교 데려다 주는 거 싫어서 난리치던 놈이?
동동 : 엄마?
말순 : 응?
동동 : 학교 앞에서 잠깐 내려주실 수 있죠?
말순 : 어? 어.
주정 : 너 엄마가 경찰인 거 애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동동 : (씩 웃으며) 훈장까지 다셨으면 진짜 좋은데.
말순 : 내가 우리 동동일 위해서라도 훈장 하나 꼭 타도록 해볼게.
동동 : 그래주시면 고맙구요.
석호 : 자, 다들 나가자. (모두 밖으로 움직이면)
수영 : (진아에게) 오늘도 고생해요.
진아 : (미소 짓는)
삼월 : (진아에게) 새색시 두고 출근하기 싫은 모양일세, 우리 하실장.
진아 : (얼굴 붉히는)
#.22 씬. 회사 전경.(낮)
#.23 씬. 영인의 사무실.(낮)
영인, 전화 중.
영인 : 네. 알겠습니다.
석호, 들어오는.
영인 : 그럼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석호 : 점심 약속 있어? 같이 점심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자고 왔는데.
영인 : 사부인께서 또 보자시네.
석호 : 왜 또 무슨 일로?
영인 : 나가봐야 알지. 친척 명단에서 빠진 사람 있다고 하지 않을라나 몰라.
#.24 씬. 강석의 사무실.(낮)
강석, 코트 입고 있는. 태영 들어오는.
태영 : 어디 나가냐?
강석 : 네.
태영 : 형이랑 같이 점심 먹자고 왔는데.
강석 : 그 사람한테 가서 먹을 겁니다.
태영 : 너 정말 그러고 싶냐? 이제 곧 결혼하면 지겹게 붙어있을 텐데,
점심시간까지 달려가서 우리 단아 얼굴 보고 와야 하냐구?
강석 : 보고 와야 합니다.
태영 : 하여간 너 참 여러 가지로 독하게 군다.
노크 소리.
강석 : 네.
진호, 들어오는.
진호 : (긴장한 표정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강석 : (무심하게) 누군데?
진호 : 김선태씹니다.
강석 : (순간 조금 굳어지는)
태영 : 전화 받아라. (나가는)
진호 : 명성 셋째 아들입니다.
강석 : 몇 번이야.
진호 : 3번입니다.
강석 : (수화기 들고 버튼 누르는) 이강석입니다. (듣고) 미안합니다.
전 김선태씨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럼 일이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수화기 내려놓는)
진호 : 제가 만나보는 게 어떨까요?
강석 : 뭐하러?
진호 : .....
강석 : 긴가민가하면서 간 보는데 확신 줄 일 있냐?
#.25 씬. 남교수 사무실.(낮)
단아, 남교수 들어오는. 단아, 고통스러워하면서, 의자에 앉는.
남교수 : 그러니까 손님들 박물관 안내는 나 혼자 한다니까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오전 내내 손님 맞을 준비하느라 동동거리고, 일본 손님들에 중국 손님들에 그게 몇 시간이니?
단아 : 내년에 전임 받으려면 교수님들께 잘 보여 둬야죠.
남교수 : 행여나. 네가 전임 때문에 그랬겠다.
온갖 정성 다 들여 가꾼 박물관 다른 사람이 안내하는 거 못미더워서 그런 거지.
단아 : 교수님 못미더워서 그런 거 진짜 아니에요. (그러면서 다리 주무르는)
남교수 : 그냥 퇴근해. 다리 또 말썽 났는데.
단아 : 오후에 또 손님들 오시잖아요.
남교수 : 그러다 너 쓰러진다.
들어오는 강석.
강석 : (남교수에게 인사하는)
남교수 : 잘 왔어요, 이강석씨. 하교수, 집에 좀 데려다 줘요.
단아 : 교수님.
남교수 : 하루 종일 박물관에서 일하느라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면서
오후에 또 손님들 맞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부리네요.
강석 : (단아를 보는)
단아 : 그 정도 아니에요.
남교수 : 이강석씨가 저 고집 좀 꺾어 봐요. 난 두 손 두 발 다 들었으니까. (나가는)
강석 : (팔 잡으며) 가요, 데려다줄 테니까.
단아 : 그 정도 아니라니까요. 조금만 앉아있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강석 : 무슨 여자가 이렇게 고집이 세. (하면서 의자에 앉아 단아 다리 주무르려고 하면)
단아 : (깜짝 놀라서 몸 뒤로 빼는) 뭐하는 거예요?
강석 : 다리 주물러 주려고 하잖아요?
단아 : 됐어요.
강석 : 아니, 결혼할 남자가 다리 좀 주물러주겠다고 하는데, 얼굴까지 새빨개지고 그럽니까?
걱정되네, 이 여자.
단아 : 뭐가요?
강석 : 결혼하면, 어떡하려고 이럽니까?
단아 :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게요.
강석 : 첫날밤 치르는데 석 달 열흘 가는 건 아니겠죠?
단아 : 그 정도는 아니겠죠.
강석 : 참 사내놈 애태우는 방법 여러 가지 알고 계십니다.
단아 : (미소 지으며) 그 작전이라는 게 뭐예요?
강석 : ......
단아 : 아버님 설득할 작전 있다고 했잖아요?
강석 : 뺨 한대 때려요.
단아 : 네?
강석 : (얼굴 들이대면서) 빨리요.
단아 : 왜 그래요?
강석 : 어서요. 때리라니까요.
단아 : 뭐하는 거예요?
강석 : (단아 손 가져다가 자기 얼굴 때리는)
단아 : (멍하니 보고)
강석 : 내키지는 않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단아 : .....
강석 : 임신 했다고 합시다.
단아 : (입 벌어지고)
강석 : 그럼, 족보고 뭐고 우리 아버지 뒷전이실 겁니다.
손주가 생긴다는데 딴 말씀 하시겠냐구요. 임신 4주 정도 어때요?
단아 : (어이가 없어서 장난스럽게 강석의 뺨 때리는)
강석 : (버럭) 이럴까봐 내가 먼저 때린 거잖아요?
#.26 씬. 한정식 집 룸.(낮)
영인, 영자, 앉아있는, 앞에 찻잔 놓여있고.
영자 : 저번엔 아직 제가 정리가 안 되서 못 드렸었어요. (종이 내놓고)
영인 : (한숨이 나지만, 참으면서) 빠진 친척 분이 계셨었나보네요?
영자 : 아니요. 친척분들 명단은 그게 전부구요. 이건 시집 올 때 하교수가 준비했으면 하는 것들이에요.
영인 : .....
영자 : 가구며, 그릇, 가전제품 등등하고, 저하고 우리 바깥양반, 그리고 하나 밖에 없는 시누이 혼숩니다.
영인 : (참자)
영자 : 일껏 애써서 준비해 보내셨는데, 저희 집 분위기와 맞지 않으면 문제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가 브랜드까지 정해봤습니다.
영인 : 참, 꼼꼼하시네요.
영자 : 새 사람 들이면 제 친지들이 다들 구경올 텐데, 너무 초라해도 양쪽 집안 망신 아니겠어요?
영인 : (종이 보면서, 기가 막히고) 시어머님께 모피 코트도 해야 하나 봐요?
영자 : 요즘은 그게 기본이잖아요.
영인 : 저희 집안도 근래에 혼사를 두 건이나 치뤘지만,
워낙 집안 풍습이 사치를 경멸하는 분위기라 이런 게 기본인 줄은 몰랐어요.
영자 : (헛기침 하면서) 이 정도를 사치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한데.
제가 아는 어느 댁은 시동생 승용차까지 혼수로 해온 신부가 있어요. 그것도 외제차로.
영인 : (물만 마시는)
영자 :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구요. 그리고 참, 결혼식 말인데요.
영인 : 네.
영자 : 호텔에서 하는 게 편하겠죠? 날씨가 풀리면 야외 결혼식도 괜찮겠지만,
그건 날짜 잡히는 거 봐가면서 정하는 걸로 하고, 저희 쪽에선 하객이 한 천명 선이 될 거 같은데.
영인 : 네? 처, 천 명이요?
영자 : 우리 바깥양반이 워낙 대인 관계가 넓으신 편이시라서요.
보셨잖아요? 그랜드 오픈식 때도 우리 쪽 손님이 좀 됐던 거.
그것도 추리고 추려서 그만큼이었던 거거든요.
저희 집안으로썬 첫 결혼인데, 안 부르면 서운해 하실 분들이 워낙 많아서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려면 만 명도 넘겠지만.
영인 : 그럼 호텔이 아니라 월드컵 경기장 같은 곳을 빌리는 게 어떨까요?
영자 : 네? 아니, 결혼식을 어떻게 운동장에서?
#.27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영인 앉아있는.
석호 : (종이 보면서) 모피에 양장에 한복에, 이걸 다 시어머님께 드려야 한다는 거야?
영인 : 그것만인 줄 알아?
석호 : 그럼 뭐가 또 있어?
영인 : 하객이 천명이래? 천명?
석호 : 천명?
영인 : 하객들 선물은 은쟁반으로 하고 싶으시대.
석호 : (어이가 없고)
영인 : 우리 단아 시집보내려면 집 팔아야 하는 거 아냐?
#.28 씬. 수영의 사무실.(낮)
수영, 전화 중. 태영, 서류 들고 들어오는.
수영 : 알았네, 내가 처리 하지. (전화 끊고)
태영 : 강석이 단아하고 점심 먹는다고 나가더니 아직 안 들어왔어. 이거 결재 받아야 하는데.
수영 : 지금 전화 받았다.
태영 : 강석이 전화였어?
수영 : 내가 대신 결재 해달라고 하는구나.
태영 : 아니, 이 자식, 아무리 우리 단아한테 미쳐있는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근무 시간까지 땡땡이 치고, 결재도 형더러 대신하라고 하고. 연애에 미쳐서 일은 아예 뒷전이네.
수영 : 단아가 하루 종일 박물관 손님들 안내하느라 서있지도 못할 정도인가 보다.
바로 집에 데려가고 싶은데, 오후에 또 손님들 안내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대.
그거 끝내고 나서 바로 집으로 데려가야 하니까 회사로 못 들어올 거 같단다.
태영 : 그래? 단아 그 자식은 왜 그렇게 외곬순지 몰라. 그렇다면야 뭐 내가 이해하지.
수영 : 일 밖에 모르는 냉혈한인 줄 알았는데,
일도 미루고 우리 단아 챙기고 있는 거 보니까 난 흐뭇하고 그렇다.
태영 : 그 자식 우리 단아랑 천생연분인 건 맞나봐. 단아 밖에 생각 안하는 거 보면, 그 자식도 외곬수잖아.
수영 : 또 그 자식?
태영 : 나 나름의 애정 표현이다.
#.29 씬. 마루.(낮)
병도, 주정, 카메라 들고 만기의 방에서 나오는.
병도 : 오늘은 그래도 두 컷 정도는 쓸 수 있겠다.
주정 : 나 우리 오빠가 저렇게 카메라 공포증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다.
병도 : 나 방송국 들어간다.
주정 : 왜 한 끼 해결 않고 가냐?
병도 : 국장님이 술 좀 같이 먹자고 애걸을 하신다.
주정 : 나도 나갈까?
병도 : 되셨거든요.
강석, 단아 팔 부축해서 들어오는.
단아 : (팔 빼내면서) 괜찮다니까요.
주정 : 어, 일찍 오네.
영인, 방에서 나오는.
영인 : 또 왔어요?
강석 : 사윗감 반기시는 인사치곤 좀 냉랭하시네요.
영인 : 사윗감 때문에 머리 아파서 일찍 퇴근했는데, 집에서 또 부딪히니 절로 말이 냉랭하게 나가네요.
주정 : 무슨 말이야? 조카댁? 사윗감 때문에 왜 머리가 아파?
영인 : 그런 게 좀 있어요. 근데 아직 근무 시간 아니에요? 이실장?
강석 : 이 사람이 다리가 아파서 데려오느라 좀 일찍 퇴근했습니다.
영인 : 왜 또?
#.30 씬. 단아의 방.(낮)
단아, 다리에 찜질하는 영인.
영인 : (밖을 향해) 조만씨? 물 좀 다시 데워다 줘.
단아 : 그만해도 돼요, 어머니.
영인 : 다리 부은 것 봐. 왜 이렇게 요령 없이 일을 해.
#.31 씬. 마루.(낮)
단아의 방 앞. 안절부절 하는 느낌으로 서있는 강석.
삼월, 대야 들고 걸어오는.
강석 : 저....
삼월 : (보면)
강석 : 저도 좀 들어가 보면 안될까요?
삼월 : 안돼요. 아직 혼인 전인데, 단아가 다리 보여주려고 하겠어요? 그러는 건 아니에요.
강석 : 네.
삼월 : (대야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만기, 방 문 열고 나오면서.
만기 : 왜 거기 그러고 서있나? 들어오게. 승부 봐야하지 않나?
#.32 씬. 만기의 방.(밤)
만기, 강석, 바둑 두고 있는.
강석 : (밖에 신경이 쓰여 건성으로 바둑돌 놓고 있는)
만기 : (강석을 보는) 뭐하나?
강석 : 네?
만기 : 이미 죽은 자리에 뭐 하러 돌을 놓냔 말일세?
강석 : 아, 네.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저 사람 아픈 것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도저히 승부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만기 : (미소 짓고) 변하긴 변했구만.
강석 : ......
만기 : 처음 그 공원에서 전 천성이 야박한 장사치입니다, 할 땐 그런 말 절대 못할 사람 같았는데.
조만E : 어머나, 너 또 왜 맞았니?
#.33 씬. 마루.(밤)
동동, 눈이 멍들어 서있는. 조만, 그 앞에.
영인, 삼월, 단아의 방에서 나오는. 진아, 부엌에서 나오고.
삼월 : 세상에, 또야? 또 현지한테 맞은 거야?
석호, 수영, 태영, 들어오는.
태영 : 다녀왔습니다.... (하다가 동동 얼굴 보고) 야, 야. 너 진짜 왜 그러냐?
#.34 씬. 만기의 방.(밤)
만기, 동동, 태영, 강석, 영인, 주정, 앉아있는.
만기 : 오늘은 왜 또 맞은 게냐?
동동 : 편지에 답장 안 준다구요.
태영 : 무슨 편지에 답장을 안 썼는데?
동동 : (주머니에서 종이 꺼내 만기 앞에 내미는)
만기 : (편지 펼쳐 보고, 동동을 보고) 이걸 현지가 주더냐?
동동 : 네.
태영 : 할아버지, 저도 좀..... (편지 보고) 뭐야? 이게, 너 나랑 결혼하자. 이, 이걸 현지가 줬단 말야?
주정 : 동동이 너 여자애한테 프로포즈 받은 거냐? 진짜 요즘 애들 빠르네.
아니, 그럼 답장을 쓰지 왜 안 써서 맞고 들어 오냐?
동동 : 뭐라고 써요. 난 너랑 결혼 못해, 해도 맞을 거구.
주정 : 그럼 한다고 하면 되잖아?
동동 : 저.....
태영 : 저 뭐?
동동 : 지금 현지랑 결혼하겠다고 했다가..... (앙하고 울면서) 더 좋은 애가 생기면 어떡해요?
주정 : 우리 동동이 인생 진짜 복잡해졌구나.
조만E : 어머나. 이건 또 무슨 일이래요?
주정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35 씬. 마루.(밤)
말순, 장기에게 부축 받으면서 들어오는. 조만, 삼월, 서있는.
말순, 얼굴이 만신창이가 돼있고. 옷도 치마에 화장도 야하게 하고.
옷도 찢어져 있는 상태에, 무릎도 스타킹 터지고 피멍이 들어있고.
석호, 수영, 방에서 옷 갈아입고 나오는.
삼월 : 어, 어쩌다....
장기 : 형사과에 지원 나가셨다가 그만.
석호 : (놀라서) 얘야?
말순 : (인사하고) 다녀왔습니다.
태영, 영인 방에서 나오는.
태영 : (입 벌어지고, 말순에게 달려들며) 말순아?
말순 : (히 웃으며) 그래도 오늘 일망타진했어.
#.36 씬. 태영의 방.(밤)
말순, 한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태영, 딱하게 보면서.
태영 : 아주 잘들 한다, 잘들 해. 아들하고 엄마하고 같은 날 왕창들 깨지고 들어오고.
말순 : 뭐? 동동이는 왜?
#.37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앉아있고. 말순, 인사하는. 태영, 동동 서있는.
말순 :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만기 : 많이 다치진 않았느냐?
말순 : 네, 좀 여러군데 까지긴 했지만, 크게 다친 데는 없습니다.
만기 : 교통 업무만 보는 게 아니었냐?
말순 : 형사과에 여형사가 없어서 지원을 나갔습니다.
만기 : 공무를 수행하다 다쳤다니, 어쩌겠느냐? 흉 생기지 않도록 치료를 잘 하거라.
말순 : 네, 할아버님.
#.38 씬. 마루.(밤)
태영, 상 들고 나오는. 영인, 삼월, 조만, 진아, 상 들고 나오면.
강석, 동동, 장기 서있는.
장기 : 전 그냥 가도 되는데.
삼월 : 아니에요. 식사는 하고 가야죠.
태영 : 어머니?
영인 : (보면)
태영 : 이 사람 허리 다쳐서 앉아있기도 힘든데, 방에 가져가서 먹으면 안될까요?
영인 : 그렇게 해요.
태영 : 고맙습니다, 어머님.
동동 : 저두요, 할머니, 엄마랑 같이 먹으면 안 돼요?
영인 : 그래.
동동 : (얼른 상 들고 태영 따라 방으로 가는)
강석 : 저기요, 어머님?
영인 : 왜요?
강석 : 이 사람도 다리가 아파서 나와 먹기 그럴 텐데, 제가 방으로 가져다 먹이면 안 될까요?
영인 : 단아 방에 들어가고 싶어서 머리 쓰는 거 같은데.....
강석 : 아닙니다. 그리고 왜 차별을 하십니까? 작은 형님은 그러라고 하시면서.
영인 : 그 쪽은 부부잖아요?
강석 : 저희도 곧 부부가.....
단아, 방에서 나오는.
강석 : 다리도 아프면서 왜 나옵니까?
단아 : 찜질했더니 많이 풀렸어요.
강석 : (흘겨보면서, 혼잣말로) 손발이 맞아야 뭘 해먹지.
영인 : 단아 나왔으니 더 길게 말할 거 없겠네요.
#.39 씬. 강석의 집 식당.(밤)
천갑, 영자, 순진 식사하고 있는. 아줌마, 뒤에서 일하고 있고,
영자 : 또야, 또.
순진 : 이모, 이모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이젠 강석오빠, 내 아들이다 생각하시면 안돼요.
그냥, 며느리 남편이다. 이젠 내 께 아니라, 쟤 꺼다 그러는 게 우울증 안 걸리세요.
천갑 : 너 집에 안 내려갈 거냐?
순진 : 우리 엄마요, 오빠 결혼하고 나서 바로 우울증 걸리셨잖아요.
천갑 : 집에 좀 내려가라, 너.
순진 : 그걸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는 진 모르겠지만요.
엄마랑 새 언니가 생일이 이틀 차인 거예요. 새언니가 이틀 빠른데,
오빠 새언니 생일은 불러내서 이벤트다 뭐다 난리 부르스를 추고, 엄마 생일은 까먹은 거 있죠.
그날로 바로 싸고 누우셨잖아요.
영자 : (수저 놓고 일어서며)
천갑 : 왜? 왜?
영자 : (나가는)
천갑 : (순진 노려보며) 아주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라.
#.40 씬. 천갑의 방.(밤)
영자, 맥 놓고 앉아있는. 천갑, 들어오는.
천갑 : 순진이 저건 왜 저렇게 눈치코치가 없냐.
영자 : 틀린 말 아니야. 아들이 내 꺼라고 믿는 엄마만 바보인 세상인데 뭐.
천갑 : 우리 강석인 다를 거다.
영자 : 다르긴 뭐가 달라. 벌써부터 저렇게 여자 치마폭에 싸여서 정신 못 차리는데.
천갑 : 여보, 여보야?
영자 : 왜?
천갑 : 우리 혜주 빨리 시집보내자.
영자 : (보는)
천갑 :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우리 아들 뺏기게 생겼으면 남의 집 아들 하나 뺏어오면 되는 거잖냐?
아예, 데릴사위로 얻자, 우리.
영자 : (혹 하는 느낌으로 보는)
#.41 씬. 커피숍.(밤)
현규, 서있고, 앉아있는 친구들.
혜주, 뒤에서 손님 앞에 쥬스 놓아주고 있는.
성민 : 시험은 잘 친거냐?
강하 : 잘 칠 리가 있겠냐. 매일 술 처자시고 빌빌거리고, 여행 한답시고 싸돌아다니시고,
실연의 아픔 겪으시느라 공부할 틈이 어디 있으셨어야 말이지.
성민 : 야, 너 대학원 떨어지면 어떡하냐?
현규 : 무슨 걱정이냐? 바로 군대 가면 그만이지.
혜주 : (돌아서다가 굳어지는)
성민 : 진짜 군대 갈 거냐?
현규 : 가야지 별 수 있겠냐. 차라리 군대라도 갔으면 좋겠다. (돌아서다가 혜주의 눈과 부딪히고)
혜주 : (얼른 눈길을 피하는)
#.42 씬. 부엌.(밤)
삼월, 조만, 진아, 설거지 하는. 장기 서있는.
장기 : 정말 제 생애에서 가장 맛있는 저녁이었습니다.
삼월 : 뭐 차린 것도 없는데,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말순, 나오는.
말순 : 너 아직 안 갔냐?
장기 : 저녁까지 얻어먹고 설거지라도 해드리고 갔으면 좋겠는데.
말순 : 됐다, 우리 집 설거지할 사람 많으니까 어서 가라.
장기 : (조만을 보면서) 아까 숭늉 가져다주신 거 정말 감사합니다.
조만 : 네? 아, 네.
장기 : 전요, 그렇게 구수한 숭늉은 제 생애 처음이었습니다.
말순 : 너 뭐하냐? 지금?
장기 : 너무 맛있는 저녁 얻어먹고 감동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감사를 표하고 있는 거잖아요?
말순 : 알았으니까 그만 가라구.
장기 : 마당에 나뭇가지 떨어진 거 있던데, 제가 좀 치워드리고 갈까요?
조만 : 아니에요. 내일 낮에 제가 하면 되요.
장기 : 아니. 연약하신 몸으로 마당 청소까지, 그러시면 안 되죠.
말순 : 너 정말 지금 뭐하는 건데?
장기 : 제가 뭘요?
말순 : 제발 가라, 가. (끌고 나가는)
장기 : (끌려 나가며) 조만씨, 성이?
조만 : 네? 윤씬데.....
장기 : 아, 네 윤조만씨.....
조만 : 저 사람 왜 저러는 거예요?
삼월 : (웃으며) 사람 연분이라는 게 참 묘하지.
#.43 씬. 석호의 방.(밤)
석호, 영인, 강석 차 마시고 있는.
강석 : 근본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요.
피부 이식 수술을 받으면 지금보단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까요?
석호 : 그게 말일세. 교통사고 때 입은 화상이라, 화상 치료라는 게 좀 민감한 부분이 있다는구만.
피부 이식으로 겉만 치료를 했다간 속으로 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해서
우리도 그냥 저 상태로 놔둘 수밖에 없었네.
강석 : ......
영인 : 단아 치료도 치료지만.....
강석 : (보면)
영인 : 어머님이 결혼에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시는 게 아닌가 싶은데.
강석 : 무슨?
석호 : (영인 무릎 누르면서) 아닐세. 하객을 좀 많이 부르시겠다고 해서 하는 말이야.
늦었는데, 어서 가보게.
#.44 씬. 마루.(밤)
단아의 방 앞. 단아, 강석 서있는.
강석 : 나오지 말아요.
단아 : 그래도....
강석 : (어깨 잡으며) 그냥 있어요. 아, 근데 진짜 궁금하다.
단아 : (보면)
강석 : 어떤 방에서 사는지. 당신은 내 방 들어와 봤는데, 난 못 들어가니 억울하기도 하고.
단아 : 별 거 없으니까 궁금해 하지 말아요.
강석 : 와이프 될 사람 방 한번 못 들어가 보는 것까지 애가 타다니.
진짜 이런 것까지 애타게 만드는 거,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단아 : (웃으며) 어서 할아버님께 인사 올리고 가요.
#.45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앉아있고, 단아, 강석 서있는.
강석 : 가보겠습니다, 할아버님.
만기 : 내일 저 아이 고조할아버님 제사니 오도록 하게나.
강석 : 아, 네, 알겠습니다.
만기 : 문중 어르신들도 오실 테니, 와서 인사 올려야지.
#.46 씬. 마루.(밤)
강석, 단아, 만기의 방에서 나오는. 영인 방에서 나오는.
영인 : 아직 안 갔어요?
강석 : 지금 가려구요, 내일 오겠습니다, 어머님.
영인 : 내일 또요?
강석 : 내일 이 사람 고조할아버님 제사라니 제가 와야죠.
영인 : 아예, 출근부 하나 만들어놓지 그래요?
#.47 씬. 커피숍.(밤)
혜주, 가방 들고 나오는. 현규, 청소하고 있는.
혜주 : 먼저 들어갈게요.
현규 : (보고) 오늘 왜 그래요?
혜주 : .....
현규 : 원래 말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더 말도 없고, 웃지도 않고.
혜주 : 웃어지지 않아서요.
현규 : 왜요? 집에 또 무슨 일 있어요? 오빠랑 하교수님 결혼에 또 문제 생긴 거예요?
혜주 : 아니에요.
현규 : 그런데 왜?
혜주 : .....
현규 : 무슨 일이예요?
혜주 : 군대.....갈 거예요?
현규 : .....
혜주 : (눈물이 맺히면서) 갈게요.
현규 : (혜주 앞 가로막으며) 나 군대 갈까봐 그러는 거예요?
혜주 : (시선 피한 채) 아무 욕심도 없는 줄 알았어요. 그쪽한테. 그런데 아니었나봐요.
볼 수 있는데 늘 있어서, 그거면 됐다 했는데. 갑자기 그쪽이 볼 수 없는 데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 하니까.
그냥 볼 수 있는데 있어주기만 했으면 좋겠는데.....미안해요, 갈게요. (현규, 피해서 나가는)
현규 : ......
#.48 씬. 현규 원룸.(밤)
현규, 혜주가 준 오르골을 열어보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혜주E : 그냥 볼 수 있는데 있어주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현규 : (어린 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혜주의 모습이 떠오르고.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고개를 젓는. 그러다 오르골로 시선이 가는)
#.49 씬. 헤주의 방.(밤)
혜주, 컴퓨터에 떠있는 현규의 사진을 보는.
혜주 : 오늘 같은 말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말 하면 그 사람 괴롭히는 거야, 그러니까 하지 마. 제발.
#.50 씬. 태영의 방.(밤)
태영, 말순, 동동 중간에 앉아서 두 사람 번갈아 보고 있는.
말순, 동동, 계란으로 눈가 문지르고 있는.
태영 : 참, 그림이다, 그림이야. 아들하고 엄마하고 눈탱이는 밤탱이가 되가지고.
말순 : 동동아? 현지랑 결혼하겠다는 답장 안하면 또 맞을 텐데. 어떡하니?
동동 : 그렇다고 남자가 맞기 싫어서 아무하고나 결혼할 순 없잖아요?
말순 : 그건 그렇지. 어쩌다 우리 동동이가 이런 험난한 인생을 살게 됐는지 모르겠다.
태영 : 참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모자간의 대화다.
#.51 씬. 부엌.(밤)
말순, 계란 들고 나오는. 진아, 나물 다듬고 있는.
말순 : 아직도 해요? 형님?
진아 : 내일 제사잖아요.
말순 : 역시 종부는 종부시네요.
진아 : 내일 일찍 퇴근해 오실 수 있으세요?
말순 : 내일 출근 안 해도 돼, 많이 다쳤다고 서장님이 내일은 쉬라고 하셨거든.
진아 : 다행이네요.
말순 : 저기, 형님?
진아 : (보면)
말순 : 단아 아가씨 결혼 자금 내놓는 거요, 며칠 후에 하시면 안 되겠어요?
진아 : 왜요?
말순 : 우리도 그냥 있을 순 없잖아요, 근데 저 사람이 가진 게 없어요.
그래서 대출을 받든 서비스를 받든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었고, 내일도 제사니.....
#.52 씬. 태영의 방.(밤)
태영, 말순 앉아있는.
태영 : 난 원래 대책 없이 사는 놈인 거 다 아시는데.
말순 : 내가 쪽팔려서 그래.
수영E : 태영아?
말순 : (얼른 일어나며) 네, 아주버님. (문 여는)
수영, 진아 서있는.
수영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말순 : 그럼요.
수영, 진아 들어와 앉는.
수영 : 빚 갚으려구요, 제수씨.
말순 : 네?
수영 : 결혼할 때 보증금 이 사람하고 나눠서 혼수 준비 하셨다면서요. 고맙습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말순 : 아니, 뭐 그런 걸....
태영 : 너, 그랬냐? 자식, 진짜 우리 말순이 의리 하난.
수영 : (봉투 내놓으면서) 저희가 준비한 거에서 정확하게 반으로 갈랐습니다.
일어나자, 아버님, 어머님께 드리러 가야지.
#.53 씬. 석호의 방.(밤)
석호, 영인, 수영, 진아, 태영, 말순 앉아있는.
영인 : (봉투 두 개 들고 앉아있는)
석호 : 너희들까지 이럴 건 없는데.
태영 : 오라비가 되서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시집을 간다는데 어떻게 가만 있어요.
말순 : (태영을 보는)
태영 : 많지는 않지만, 저희 마음이니 받아주세요.
영인 : 고맙네.
수영 : 혼수 과하게 해가는 건 사치라 부끄러운 일이지만, 단아한테는 뭐든 더 해주고 싶네요.
얼마 안 되지만 이거라도 보태서 잘 해보내주세요, 어머님.
영인 : 그래요. 단아 시댁에서 흡족해할 만큼 잘해서 보낼게요.
#.54 씬. 강석의 집 전경.(아침)
#.55 씬. 강석의 집 식당.(아침)
천갑, 영자, 강석, 혜주, 순진 식사하고 있는.
천갑 : 저녁에 하교수 데리고 와라. 이젠 답을 들어야지.
강석 : 오늘은 안 되는데요, 아버지.
천갑 : 왜?
강석 : 그 사람 고조할아버님 제사라 가봐야 해요.
영자 : (짜증나고) 오늘도 하교수 집에 가겠다는 거야?
강석 : 문중 어른들께 사위 될 사람으로 인사는 올려야 하잖아요?
영자 : 왜 아예 데릴사위로 들어가지 그러니? (일어나 나가버리는)
천갑 : 야, 임마, 적당히 둘러대지, 곧이곧대로 하교수 집에 갑니다, 그러냐.
회사 일로 회식이 있다고 해도 될 걸. 고지식한 하교수랑 만나더니 너까지 물 든 거냐?
강석 : 그러게요, 예전처럼 머리 굴리는 게 잘 안되네요.
천갑 : 하교수, 그거 내놓겠다고는 하지?
강석 : (일어서며) 일찍 회의가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겠어요. (얼른 나가는)
천갑 : 명문 종가에서 어른 수저 놓기 전에 벌떡벌떡 일어나 나가는 거 고쳐해, 너.
#.56 씬. 종가 전경.(밤)
#.57 씬. 만기의 방.(밤)
만기, 평촌, 촌로1,2, 석호, 수영, 태영, 강석, 앉아있는.
평촌 : 낯이 익은데.
만기 : 왜 이천갑 회장이라고 아버님 장례 때도 오셨고, 지난 번 제사에도 오셨던 분 자젭니다.
평촌 : 아, 그래. 그 멸문한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던 그 양반.
만기 : 네, 맞습니다.
평촌 : 멸문 했던 가문의 후예들로 제대로 만났구만.
#.58 씬. 부엌.(밤)
삼월, 영인, 진아, 말순, 조만, 단아, 바쁘게 일하고 있는.
주정, 음식이나 주워 먹고 빈둥거리는 느낌으로.
주정 : 일 할 사람 너무 많다, 너무 많아.
조만 : 할머니?
주정 : 왜?
조만 : 일 할 사람 너무 많으니까 저 다른 데로 가라고 하시는 거죠? 지금?
주정 : 내가 언제....
조만 : 정말 서운해요. (울면서 뛰쳐나가는)
주정 : 아니, 빈둥거리고 있는 거 미안해서 한마디 했는데 쟤 왜 저래? 할멈?
삼월 : 저게, 조만이 저 애 운명의 비극 아니겠어?
강석, 들어오는.
삼월 : 왜요?
강석 : 물 좀.....
단아 : (얼른 물 따라서 건네는)
강석 : (잠깐 나오라는 눈짓)
#.59 씬. 마루.(밤)
강석, 서있으면, 단아 부엌에서 눈치 보면서 나오는.
단아 : 왜요?
강석 : 이씨 중에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명문에 속하는 파가 뭡니까?
단아 : 네?
강석 : 어른들께서 물으실 때를 대비해둬야죠.
단아 : (미소 지으며) 무슨 이씬데요?
강석 : 경주 이씨요.
단아 : 그럼 그냥 그렇게만 말씀드리세요.
강석 : 그럼 그냥 넘어가주실까요?
단아 : 아직 젊어서 집안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니 부끄럽다고 말씀드리세요.
강석 : 아직 젊어서 집안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니 부끄럽습니다.
단아 : 참 잘했습니다. (웃으며 부엌으로 움직이는)
강석 : 아직 젊어서 집안 내력에 대해 자세히.....(혼자 연습하는)
단아 : (돌아보고 웃는)
#.60 씬. 부엌.(밤)
삼월, 말순, 진아, 조만, 손님들에게 들려 보낼 찬합 만들고 있고.
말순 : 전요, 어느 집안에서 제사 음식을 가져왔다고 해서 맛있게는 먹었지만 우리 집인 줄은 몰랐어요.
요즘 세상에 제사 음식 돌리는 집안도 다 있구나 신기해 했는데.
서장님이 진짜 맛있다고 하셨거든요. 제가 이 집안으로 시집 온 줄 아시면 다시 보시겠는데요.
삼월 : 젊은 분들은 남의 집 제사 음식이라고 꺼리지 않던가?
말순 : 뭐 몇 분은 안 드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맛있게들 먹었어요.
특히 어제 온 장기가 우리 집 부침을 얼마나 걸신들린 듯 먹었는데요.
삼월 : 손님들 배웅하고, 얼른 챙겨서 경찰서에도 가야지.
조만 : 할머니? 오늘은 저도 따라 가면 안 돼요?
삼월 : (의미 있게 웃으며) 그러려무나.
#.61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영자, 강석, 앉아있는. 테이블에 예쁘게 싸여있는 보자기.
천갑 : 여보. 이 보자기 싸는 거 나중에 하교수한테 꼭 배워둬라.
영자 : (뚱해 있으면)
강석 : 어머니가 배우실 게 뭐 있어요. 그 사람보러 다 싸라고 하면 되는데요.
천갑 : 그런가? 그럼 그건 배우지 마라. 아줌마?
아줌마 : (부엌에서 나오며) 네, 회장님.
천갑 : 이거 풀어서 술상 좀 만들어 봐요.
아줌마 : 네. (보자기에 싼 찬합 들고 부엌으로 움직이는)
천갑 : (영자에게) 뚱해 있지 마라. 오늘은 문중 어른들한테 인사드리러 가야 했다잖냐?
영자 : 너 이러는 거, 나중에 네 마누라 고생 시키는 거란 것만 알아둬. (방으로 들어가는)
천갑 : 임마, 네 엄마 질투의 화신으로 만들지 말고 알아서 기어.
강석 : (미소 짓는)
#.62 씬. 마루.(밤)
삼월, 조만, 태영, 말순 들어오는.
태영 : 아이고, 손바닥 부르트겠네. 무슨 악수들을 그렇게 하자고들 하시냐?
말순 : 좋아서들 그러신 거잖아? 나말순 경장이 이렇게 좋은 집안으로 시집 간 거 몰랐다구.
나 어깨에 너무 힘들어갔지?
태영 : 그렇게 좋으냐?
말순 : 응. 조만씨?
조만 : 네.
말순 : 아무래도 장기가 조만씨한테 관심 있는 거 같아요.
조만 : 어머나. 몰라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는)
태영 : 조만아, 얼레리꼴레리다.
삼월 : 놀리지 마. 나이 서른 먹도록 살림 귀신이 붙어서 담 밖 세상 모르고 산 애야.
태영 : 그러니까 잘 됐잖아요. (부엌에 대고) 우리 조만이도 잘 하면 시집가겠네.
삼월 : 놀리지 말라니까 그런다.
#.63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진아 어깨 주무르고 있는.
수영 : 한달에 한 벌 꼴로 제사 있는데, 힘들어서 어떡하죠?
진아 : 저 이 집 종부거든요. 한달에 제사 열 번 있다고 해도 까딱 안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수영 : 너무 세게 나온다.
진아 : 있죠.
수영 : (보면)
진아 : 저, 아무래도 이 집 종부가 될 운명으로 태어난 거 같아요.
몸은 좀 고된데, 왜 이렇게 신나 죽겠는지 모르겠어요.
수영 : (뒤에서 조심스럽게 진아의 어깨를 감싸 안는)
#.64 씬. 태영의 방.(밤)
코까지 골면서 잠들어 있는 말순. 태영 옆에 앉아서 얼굴에 연고 발라주는.
태영 : 아이고, 대견한 우리 말순이. 얼굴은 이 모양이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아 죽는지.
말순 : (잠꼬대로) 서장님, 우리 신랑이에요.
태영 : (흐뭇한 심정으로 보면서) 그래, 말순아.
개망나니였던 하태영, 자랑스러운 네 신랑으로 열심히 살아볼게.
#.65 씬. 강석의 방.(밤)
강석 : (책상 앞에 앉아서 핸드폰) 연습 열심히 했는데 묻지들도 않으시고.
#.66 씬 단아의 방.(밤)
단아 : (핸드폰, 미소 짓는)
강석E : 문중 어른들이 신랑감 잘 골랐다고 하시던가요?
단아 : 저한테 직접 하신 건 아니구요.
강석E : 잘 골랐다고 하시죠?
단아 : 사내 얼굴 너무 뻔지르르 해서 단아 고생하고 살지 않을까 걱정하시던데요.
#.67 씬. 강석의 방.(밤)
강석 : (책상 앞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니, 이 얼굴이 어떻게 뻔지르르 하게 생긴 겁니까?
조각같이 완벽한 거지.
단아E : 오늘 약 안 먹었나 봐요?
강석 : (미소 짓고) 그러니까 빨리 시집 와서 약 좀 챙겨 먹여줘요.
#.68 씬. 회사 전경.(낮)
#.69 씬. 강석의 사무실.(낮)
강석, 일하고 있는데, 진호, 실랑이하면서.
진호 : 안 계신다니까요. (문 벌컥 열리면서 들어오는 선태, 그런 선태의 팔을 잡으며 들어서는 진호)
강석 : (보는)
선태 : 나 누군지 모르지?
강석 : (일어서는)
선태 : (다가서며) 김선태야.
강석 : 그런데요? 무슨 일이십니까?
선태 : (강석의 멱살을 잡으며) 몰라서 물어, 이 새끼야.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