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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님 비정규직 특강>
비정규직 개악안 투쟁에 관한 특강 요약
<왜 우리는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사활을 걸고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안 투쟁에 나서야 하는가?/ 김진숙>
1. 부산의 보수성
-선거가 끝나면 부산에 산다는 게 뒤지게 쪽팔린다. 한나라당이 수도이전 반대하면 저들도 반대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한나라당이 반대하니까 저들도 한다?..
저는 이번 총선에 정동영하고 통했던 게 육, 칠십 대는 투표하지 말라는 거였다. 더 나아가 박정희가 나라를 살렸다고 믿고 군대를 다녀온 오십 대 이상의 경상도 남자들에겐 투표권 주면 안된다고 본다. 자격시험을 보든가...(웃음과 박수)
노무현이 잠깐 대기발령 받고 있을때 부산 사람들하고 선거 얘기가 되더라.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얘기의 결론은 저에게 이렇게 묻는 것으로 끝나더라, ‘아지매 전라도지예?’
그런데 박근혜 이 여편네가 나타나서 다 휘저어버렸는데, 박근혜가 야당 지도자냐? 바로 박정희 딸 아니냐.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도 아는 사실이다.
거 부산 사람들보러 박근혜가 왜 좋냐고 했더니 시집을 안 가서 좋디야? 시집은 나도 안 갔는데 하니까 넌 못 간거지 한다.(웃음) 그야말로 말초적인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거다. 박정희 정권이 청렴결백했다는 건 웃기는 개소리다.
워낙 틀어막고 해먹으니까 당시에 몰랐던 거 아니냐. 정수장학회는 장물장학회다. 뭔 놈의 장학회가 방송사 지분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냐. 박근혜는 여기 출근도 하지 않으면서 천백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월급 백만원도 못 받는 것들이 이걸 찍어준다니까? 오직 경상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구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하얀 두루마리를 입은 팔십 먹은 영감이 박근혜가 오니까 그 앞에 너부죽 엎드리며 한다는 말이 ‘오래 사십시요!’(웃음) 이게 말이 되냐?
내가 60년 생이다. 박정희가 18년 대통령 해먹으리라고 생각이냐 했겠냐? 내가 태어나서면서부터 열아홉살 될 때까지 글마가 대통령 해먹었다. 박정희가 딱 죽고나니까 우리 동생이 그러더라구, ‘누나, 이제 박대통령은 누가 해?’ 참 내.(웃음과 박수)
2. 국가보안법이란..
박정희가 그렇게 해 먹을 수 있었던 근거가 뭐냐? 제가 한진중공업 땜쟁이였다는 건 다들 아시죠? 한진중공업 입사해서 스물한살 때 첫 휴가를 받아서 혼자 유달산에 놀러갔다.
처음 가는 길이라 여기 저기 물어보고 카메라로 동서남북을 찍고 있는데 짜바리(경찰) 둘이 오더니 연행해 갔다.
지금이야 인권이 어떻고 미란다원칙이 어쩌구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짜바리하고 눈만 잘못 맞으면 이박삼일은 똥밟은 시절 아니냐? 이박 삼일 동안 생사를 몰라요. 어디 대공분실에 있는지, 남부경찰서에 있는건지..(중략)
파출소에서 배낭을 막 뒤지면서 하는 말이 대공용의자를 잡았다는거야. 나는 그때 그말이 뭔지도 모르고 있는데, 아무리 뒤져도 난수표가 나오나, 무전기가 나오나, 뒤지던 끝에 지덜끼리 그러더라 지가 김일성이라도 이런 걸 간첩으로 내려보내진 않겠다고.
그날 밤에 집에 갈 수가 없어 숙직실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벽에 표어들이 죽 붙어있는 거라. 이걸 보고 내가 왜 붙잡혀 왔는지 알겠더라.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웃음과 박수)
‘이웃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이건 좀 낫다.
‘사랑하는 내 애인 알고보니 간첩’ (웃음)
지금도 촌에 가면 농협 바람벽에 이런 거 붙여 있다. 기억나냐, 멸공방첩, 반공방첩 하고 그 밑에 적혀있는 간첩색출요령.
일, 산에서 낚시가방 메고 내려오는 자
이, 농구화에 뻘흙을 묻혀갔고 다니는 자
삼, 담배값을 물어보는 자 (웃음)
사, 압권이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 (웃음과 박수)
이게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어디 간첩만 불편하냐? 내가 팔육년에 대공분실을 세 번 갔다. 거긴 뭐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팬다. 옷 다 벗겨서 군복 갈아입히고 고무신 신겨 놓은 뒤에 줘패기 시작하면서 누구 아냐? 누구 아냐? 하면서 백 명의 이름을 갖다 댄다. 정말 비슷한 이름이라도 나오면 대고 싶었다.
워낙 나오는 게 없으니까 그놈들이 상부에 뭐라고 보고했게? 자생적 공산주의자! (웃음)
그게 국가보안법이고 그걸 움켜쥐고 있는 게 한나라당이다.
3. 진보에도 계급이 있다.
-조선일보를 볼 순 없으니 한겨레신문을 보는데 이게 잘 나가다가 선거때만 되면 민주당보 짓을 했다가 열린뚜껑당보짓을 했다 한다.
촛불시위를 할때도 이거야 말로 평화시위의 모범이라고 한다. 왜 화염병을 주워던지냐 이거야. 수십만의 촛불이 일렁이면 아름답지, 그걸 누가 몰라?
팔십년 대 집회 한번 하려고 하면 다 전화 도청하고 그 자리에 먼저 경찰들이 가 있는다. 이럴 땐 집회 자리를 만들려고 화염병 안 던질 수가 없었다. 쟤들이 먼저 최루탄으로 도발하니까 화염병 던져서 집회할 자리를 만드는 거다, 그 불 끄러 가는 동안 자리 만들어서 노래 부르고 쟤들이 그 불 다 끄고 우루루 또 몰려오면 다시 또 던지고....
그 때 그 시절에도 촛불 들었으면 아름다웠을까? 아마 전국 양초제조공장 압수수색 떨어졌을 거다. 아마 촛불에 관한 특별법 만들어졌을걸? (웃음과 박수)
그게 역사다. 그렇게 온 역사를 간과해서 안되는 거다.
그렇게 촛불이 아름다우면 그럼 부안은 뭐냐? 이백일 넘게 촛불 켜들었던 부안은 뭐냐?...
그래서 계급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시대를 가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4. 산업의 주인은 노동자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 작가 조정래가 쓴 한강이란 소설이 있다. 한강을 읽다보면 칠권에 박태준 이야기가 반이나 나온다.
박태준이야말로 포항제철의 주인이고 이 땅의 진정한 산업역군이라는 얘기가 반권에 걸쳐 나온다.
그 말이 맞나 보자. 포철에는 시뻘건 철근만 하루에도 수백만개가 뽑아져 나오고 그것으로 건물과 다리가 만들어진다. 시뻘건 철근이 뽑아져 나오다가 하나가 불량이 나서 철근이 솟구치는데 옆에 있는 노동자를 꿰고 지나간 것이다.
철근이 항문으로 들어가서 머리로 나왔다. 그러고 떨어졌다. 그 시신을 놓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위로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나 ‘아유, 그나마 로에 안빠진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 옆에 용광로가 있었는데 거기 빠졌으면 가관일 뻔 했지, 그야말로 꼬치에 튀겨지는 셈이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이 시신을 놓고 뭘 고민했는 줄 아나? 두고간 그놈들을 걱정했게? 아니다, 그 철근을 그대로 관에 넣을지, 시신에서 철근을 빼고 관에 넣을지, 관 크기에 맞게 철근을 자를지...그 고민을 했다는 거다.
저는 포항제철은 이런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본다. 포철에도 노조가 있다. 조합원이 18명이다. 수만명 넘는 사업장에 이십년동안 그 수가 변함이 없는 게 이상하다. 한명이 정년 되어 나가면 또 한명이 채워진다. 그 포철에 노조를 만들었다가 노조간부가 부모 보는 앞에서 박태준에게 따귀를 맞았다. 그게 박태준이 한 짓이다.
5. 노조운동에 대한 사회의 무지
91년에 삼화고무에 김경은이라는 노동자가 있었다. 운동화는 가죽이 두꺼우니까 종종 미싱바늘이 부러지기도 한다. 그렇게 부러진 미싱바늘이 김경은의 눈으로 들어갔다. 조장한테 가니까 뭐 어디 그런 걸로 조퇴 시켜 주는 데 봤냐?
형광등 아래서 조장이 눈을 까뒤집어 보니 안 보이거든. 그래서 다시 가서 일을 하라고 지시했고 그 날 잔업까지 했단다. 그런데 일하는 중에 그 바늘이 눈 뒤에까지 이어져서 시신경을 다 파괴해버렸다. 그때 김경은의 나이 열여덟이었다...
여러분 프레스 노동자가 왜 지손가락 지가 잘라먹는지 아는가? 습관적인 동작 때문에 영점 일초만 늦어도 그 안에 손가락이 들어간 걸 알면서도 기계를 밟는 거다...이른바 주방의 명품 퀸센스를 만드는 사업장에서는 손가락이 네 개가 한꺼번에 잘라졌다.
그런데 봉합을 한다는 것이 손가락을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곳에다 붙여놓았다...이런 일이 있어도 ‘본인부주의’로 보고가 된다.
이런 노동자가 하루에도 수십 명이다. 비정규직이고 노동조합이 없으면 제대로 보상도 못 받는다.
화물연대 파업할 때 민주노총에서조차 무리한 파업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등을 돌렸다고 스스럼 없이 얘기한다. 삼개월 사이에 화물연대 노동자가 여섯명이나 자살했다. 개인사업자가 투쟁에 조직적으로 나서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조직사업해본 분들은 알거다.
화물연대 김해지부장 최복남 동지가 톨게이트에서 유인물을 나누어 주다가 젊은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다.
젊은 운전자의 요지는 그거다. 왜 이런 유인물을 나눠주며 교통을 마비시키고 물류를 중단시켜 사회를 불편하게 하냐는 거다. 그는 배운대로 한 것이다. 최복남 동지는 일단 유인물을 읽고 판단하라고 차에다가 꾸역꾸역 유인물을 넣어주려 했고 젊은 운전자는 최씨의 손이 들어 온 상태에서 유리문을 올린 채 달렸다. 어떻게 됐겠나? 유리문에 몸이 낀 채 길바닥에 쓰러졌고 그 위를 몇 대의 차가 더 지나가 개구리처럼 납작해져서 죽었다.
그 젊은 운전자도 노동자였을 것이다. 그 노동자가 대학을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교육을 십년 이십년 받아도 노동자들이 왜 투쟁하는지, 왜 자식이 셋인 아버지가 크레인에 올라가고 오십이 넘은 노동자가 지 몸에 불을 붙이는지 알려주지 않는 학교, 언론이 더 큰 문제다.
6. 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경계해야.
대한민국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십대 구십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나라다. 구십은 절대 십이 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환상을 믿는다. 로또를 백번 당첨되고 잔업을 백 대가리를 해봐라, 구십이 십이 될 수 있나..저는 구십이 단결해서 십을 없애고 백을 만드는 것이 평등세상이라고 본다.
현대자동차에서 지금 일부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어떤 단협안을 요구하고 있는지 아느냐. 애비가 정규직이고 아들이 비정규직인데 이 아버지가 내가 정년을 하게 되면 그 자리를 내 아들에게 줘서 정규직으로 해달라 , 이걸 노동조합 집행부에다가 요구하고 있다니까?
현실이 이렇게까지 되고 있는데 구십이 십이 될 수 있다고 환상을 심어주는 게 자본주의다. 연속극이나 광고를 봐라...부동산을 광고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고교등급제 문제가 뭐냐,
십이 지 자식들까지 십으로 만들려고 발악하는 거 아니냐? 노동자들이 잔업 많이해서 지 자식들 학원 많이 가르친다고 십이 될 수 있나? 그래봤자 정몽헌이 종밖에 더 되겠나? 노동자들도 이 이율배반을 깨지 않으면 자본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다.
7. 구조조정 투쟁
한진중공업이 명퇴투쟁을 2년 했다. 구조조정 싸움이 어려운 건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아닐 거라고 믿고 있는 거다.
자기만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자본을 순진하게 보는 거냐. 오십 대 이상 아저씨들 육백명이 명퇴대상이 됐다.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이 사람들을 정리해고 시키는 이유가 뭔가? 바로 젊은 사람들과 분리시키려는 자본의 논리다...어떤 사업장에서 남성 조합원들의 고용 보장 받는 댓가로 여성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시키는데 동의했다는 얘기는 익숙하다. 그 위원장에게 왜 그딴 식으로 했냐고 물었더니 뭐라는 지 아냐? 아지매들은 어차피 반찬 값 벌러 나온 것 아닙니꺼?
아니, 여자들 월급이 반찬값이면 남자들 월급은 안주값이냐?
이런 자본의 논리가 ‘(상황이)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에도 침투해 있다는 게 신자유주의의 무서움이다.
육백명의 아저씨들이 싸우다가 삼백명은 더럽고 아니꼽다는 이유로 사퇴를 쓰고 나가고 2년만에 이겨서 막걸리를 마시는데 아저씨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 조합의 사무국장은 2년만에 처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근데 사장이 합의한 사실을 회장이 번복하자 노동조합의 지회장이 할 일이 무엇이었겠나? 밤 11시에 자식이 셋인 애비가 혼자 크레인에 올라가서 129일을 햇빛과 비를 피할 데 없는 그 공간에서 짐승처럼 갇혀 살았다.
129일동안 밥을 까만 비닐 봉지에 담아 매달아서 올려보냈는데 바람 때문에 크레인에 도착하면 저절로 비빔밥이 돼있더란다. 작년 여름이 더웠다지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겐 생애에서 가장 더웠을 거다. 하루는 냉면이 먹고 싶다고 크레인에서 전화가 왔다.
냉면을 올려보낼 때마다 번번히 실패했다. 수십 미터짜리 크레인까지 국물을 안 흘리고 올려 보낼 수가 없는 거다. 결국 내려와서 먹으라고 했는데 그 냉면이 사자밥이 되었다.
그때 그 시신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영장을 내린 게 저놈들이다. 그게 구조조정 싸움이다.
8.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결단이 필요하다
한진중공업에도 하청노동자가 반이 넘는다... 어떤 노조에 가니까 노조간부가 차를 하나 샀는데 억대의 차가 있더라. 은근히 자랑했다. 연봉이 육천만원이랴. 그 사업장 화장실에 갔더니 더운 여름날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화장실 앞에서 박스를 깔고 쉬고 있었다.
월급을 물었더니 11년동안 아홉시간 일하는데 63만원이라고 했다. 그래도 옆에 회사보다는 나은 대우라고... 다시 노조 사무실에 와서 그 간부에게 얼마나 일했냐고 물었더니 하루 여덟시간씩 9년됐다고 한다.
전라도 익산에 원광대 병원에서 작년에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부산에서 거기까지 가봤는데 투쟁하고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정규직 노조에 가서 물어보니, 거기에는 간호사나 병원직원들이 있는데, ‘우리가 왜 파업을 하느냐?’면서 정색을 하며 안 가르쳐 주더라. 이미 타결이 됐나? 그러면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지, 욕이라도 해주고 가려고 아줌마들을 찾았는데 지하 2층에 가서야 그들을 발견했다.
그곳은 아줌마들이 옷갈아입고 휴식하는 공간인데, 세상에 그렇게 습기차고 형편없는 곳을 어디서 못 봤다. 아줌마들은 월급이 40만원이었는데 용역 재계약시 38만으로 깍여서 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월급이 깍이니까 이 아줌마들도 자식이나 노동부에 물어봤겠지.
그러다가 60평생에 우리나라에 최저임금법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것도 무려 51만8천1백50원이라는 걸.. 임금 뿐만 아니라 그런 곳을 휴식 공간으로 내준 놈들이 사람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 여기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로비에 올라가서 하든지, 정문 앞에 천막을 치던지, 원장 집 앞으로 가던지 해야 될 거 아니냐고 했더니, 로비에 있다가 내려왔대.
왜 내려온 거냐고 했더니 정규직 노조 지부장이 내려가 있으라고 했대. ‘아줌마들이 여기 이러고 있으면 환자가 떨어져서 협상하기 어려우니까 내려가 있으라’고 했단다.
더 골때리는 건 그 정규직노조가 작년 자기들 임금인상시에는 가열차게 투쟁했던 곳이다. 어용노조가 아니다.
그 때 파업에 앞장섰던 노조 간부가 하는 말 ‘40만원 받던 아줌마들이 갑자기 51만원을 주장하면 병원 경영은 어떻게 합니까?’ 지가 무슨 원장이야? 이 사람은 월급이 200만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제가 이 사람의 200만원이 많아서 임금인상투쟁하지 말라는 것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떤 놈은 200만원이 작고 어떤 년은 51만원이 많아?
문제는 그런 데 있다.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임금이 작아도 된다, 식당 아줌마들이 백만원 받으면 많이 주는 거다라는 생각. 이런 치사한 놈들이 노조 간부라니까.
그리고 밖에 나와서 시민들에게 비정규직철폐하자고 유인물을 나누어 준다. 이런 사람들은 시민은커녕 자기 조합원들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나는 우리 운동이 진짜로 내려가야 한다고 본다. 17~18년 동안 민주노조운동 열심히 해왔긴 했으나 결국 정규직 임금인상만 위해 싸운 거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다 놔두고...
9.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과 연대투쟁
비정규직 보호 입법이란 게 뭐냐. 근로자파견법 만들어서 몇 년 해보니까 현대자동차, 금오타이어 같은 곳에서 불법파견이 문제 되니까 합법파견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
WTO, FTA로 시끄러운데, 난 아무리 WTO란 말을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던데, 월드 테러리스트 올가니제이션이라 생각하니까 이해되더라...
한일FTA가 체결이 되면 자동차시장이 개방되는 건데 자동차만 해도 일자리가 2만개가 없어지는 거다. 이런 것들을 위해 노무현 정부가 개악하려는 거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연대란 말을 잘 쓴다. 이 연대란 말을 가장 적실하게 표현한 것을 재작년 경희의료원 구내 식당 아줌마에게서 들었다.
경희의료원에서 구조조정시에 제일 먼저 식당에부터 용역을 주겠다고 하니 이십년 넘게 일해온 아줌마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로비를 점거해서 싸우고 있는데 하루는 깍두기들 수십 명이 왔다. 공권력을 투입시키기에는 부담스러우니까 병원측에서 용역 깡패를 부른 것이다.
이들과 대치해서 싸우는 중에 한 아줌마가 기절했다. 근데 웃기는 건 자기네 식당 아줌마가 쓰러졌는데도 병원 응급실에서 거부하더라는 거다. 어찌어찌해서 치료받기는 했는데 알고봤더니 그 아줌마가 쓰러진 이유가 더 가관이다.
어디 맞아서 기절한 게 아니라 그 용역 깡패들 속에서 자기 아들을 만나서 그랬다는 거다. 취직했다길래 축하해주며 오늘 아침까지도 따뜻한 밥을 해먹인 자기 아들이 거기 있는 거다. 이미 비정규직인 아들이 비정규직이 안되는 어머니의 투쟁을 막기 위해 나와 있는 모습, 이십일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이렇게도 만난다.
어쨌든 내가 부산에서 왔다니까 이 아줌마가 사람을 하나 찾아달란다. 울산에서 올라온 빨간 조끼 입은 청년이라는데 그것만 가지고 내가 어떻게 아나? 그래 왜 찾느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그 청년에게 밥 한끼 못 사준 게 마음에 걸린다는 거다.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될 때 장대비 속에 한 노동자가 회기역 부근에서 출근길에 유인물을 나눠 주면서 외쳤다는데, 경희의료원 노동자 여러분! 현대자동차에 정리해고가 도입되면 전국의 사업장에서 정리해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아줌마는 그 유인물을 받지 않았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4년 후 자기가 그 처지가 되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 청년이 오죽 막막했으면 서울까지 와서 고함을 쳤을까? 그 심정이 이해되더란다. 그 때 그 청년 유인물 받지 않은 것, 고생한다고 밥 한끼 못 사준 게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 때만 해도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되는 것은 남의 일이었다.
여러분, 노동자에겐 남의 일이 없다.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가 불쌍해서 그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고 그들의 차별을 없애지 않고 끌어올려 하나가 되지 않으면 내가 그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이게 연대다...
위 글의 마지막 출처: